옥수동성당 게시판

북한산에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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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용 [pgiuseppe] 쪽지 캡슐

2002-09-09 ㅣ No.5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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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후에 북한산 백운대에 올랐습니다. 도선사 - 인수산장 - 백운산장 - 백운대로 이어지는 매번 같은 코스 이지만 한번도 지루한 느낌이 없는 새로운 길처럼 느껴집니다.

 

오늘 지금 이 순간은 영원 속에서 결코 같지 않은 시간인 것처럼 산도 계절에 따라서 날씨에 따라서 그리고 제 마음 상태에 따라서 늘 다르게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감사한 것은 그런 나를 언제나 새롭게 맞이한다는 사실입니다.

 

산 사람들은 왜 힘들게 산을 오르냐는 질문에 "산이 거기 있기에 오른다"고 답합니다.

 

아무리 세상이 변하고 세월이 바뀌고 사람의 마음이 변해도 산은 늘 그 모습 그대로 있습니다.

그래서 고맙습니다.

 

모든 것이 변해도 언제나 변함없이 그 모습 그대로 서 있는 모습에서 힘과 용기를 얻습니다.

 

탕자의 비유의 작은아들이 돌아올 희망을 가진 것은 아버지는 늘 그 모습 그대로 계시다는 믿음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산은 하느님 같습니다.

 

다음 글은 제가 산에 오르는 또 다른 소중한 이유 중의 하나를 얼마전 한 일간지에 쓴 내용입니다.

 

물론 부끄럽습니다. 특히 이곳 옥수동에서는 그런 모습을 제대로 살지 못한 죄송함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가 사제가 되면서 간직한 마음이고, 앞으로도 영원히 제 삶의 끝까지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라 그 마음을 나누고 싶습니다. 그리고 옥수동 가족들께 그런 기도를 부탁드리고 싶은 마음에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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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도 사람을 존중했다]

 

 내가 즐겨 찾는 산은 북한산이다. 설악의 축소판처럼 여겨지는 빼어난 경관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상에 오르면 저 밑 옴쭉달싹 못 할 정도로 빽빽하게 들어선 크고 작은 집들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냄새를 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하느님이 세상과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하지만 사람이 없는 세상의 하느님이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또 사람의 살을 취하시어 이 세상 사람들 가운데 오신 예수님 강생(降生)의 신비는 과연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써 종교의 영역을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과는 구분되는 특수한 영역 혹은 신비의 범주에 가두려는 시도를 볼 때가 있다. 때로는 정치와 종교를 구분한다는 다분히 의도적인 명분에서, 혹은 극단적 종말론을 내세우면서 스스로 삶과의 관계를 단절시키는 모습이 그렇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그리고 존중받아야 한다. 그리스도교적 언어로 표현하면 그 사람 안에 살아계신 하느님의 모습이 담겨있고 또한 하늘이 땅으로 꺼져 살을 취하실 정도로 하느님이 존중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사제로서 살아가는 소명에 대한 분별력이 흐려질 때 나는 다시 북한산을 오른다. 그리고 다시 사람들 가운데, 더 깊이 사람들 속에 들어가야 할 소명을 새롭게 한다. 특히 일선 본당을 맡고 있는 사목자로서 내가 최우선으로 해야할 직무는 공동체 안에서 만나게 되는 모든 사람들을 참으로 잘 아는 것임을 깨우치게 된다. 그분들의 기쁨과 슬픔, 고통과 번뇌는 곧 하느님의 그것이고, 때로는 사목자인 나를 통하여 하느님이 그분들을 만나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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