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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묘문화와 정서적 영향- 우형순 씨와 그 동조자들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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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덕순 [pdswow] 쪽지 캡슐

2005-09-16 ㅣ No.2491

- 우형순 씨와 그 동조자들을 말한다-

 

 


성서 상에 나오는 라자로 소생 기사를 언급해주자 "정말 라자로가 죽었을 때, 댁이 그걸(유족들이 오열하는 것을) 직접 봤나요?"라고 말하는 우형순 씨와 이에 동조하는 천주교 신자의 잡아 때기에 그만 질리고 말았다.

 

라자로의 누이 마리아와 그의 이웃들이 모두 같이 울더라는 말은 성서에 그대로 나와 있거니와 사실 이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오열하는 것은 나만의 주장이 아니라 인류가 있어온 이후, 인간에게 한결 같이 있어온 일이며 또 앞으로 그럴 수밖에 없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임에도 우형순 씨와 그 동조자들은 그들 스스로 성서의 내용마저 덮어버리고 장례식 앞에서 오열하는 유족들의 사례는 철저히 은폐를 하는 뻔뻔함을 보인다.

 

그래야 저들이 주택가 밀집 지역에서, 그것도 유치원과 학교 바로 앞에서 죽은 이들을 상대로 하는 돈벌이를 정당화하고 자라나는 아이들의 정서에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주장을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안티 기독교를 표방하는 이들이 저들 예수님을 믿는다는 골수 신자들에게 '예수가 부활하였는지 댁이 그걸 직접 봤나요?' 하는 것일 게다.
천주교인들이라는 저들이 저런 말을 하면서 지난 주일에도 미사는 잘도 드렸을 테지..
"정말 라자로가 죽었을 때, 댁이 그걸 직접 봤나요?"라며..
저들은 진정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직접 보았단 말인가?

 

 

 

우형순 씨와 그 동조자들은 말한다.
"댁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아무데서나 곡소리 내지 않습니다."라고.

 

아무대서 곡소리 내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다 우형순 씨가 본 사람들뿐인가 보지?
사실 장례를 차분하게 치르는 유족들도 있다.
그것은 두 가지의 경우라 할 것이다.
이미 운명하실 것을 알고 미리 마음을 잡으신 뒤에 보내신 경우, 아니면 돌아가신 분에 대한 정이 없는 경우..
이런 경우 대부분이 전자의 경우이지만 솔직히 후자의 경우도 있음도 사실이다.
하기야 장례식을 치르고 매장을 하러가면서 운구를 해주는 친구들과 히히거리며 웃고 농담하는 어느 30대 아들도 있더만..
아무튼 납골을 봉안하면서 통곡하는 유족들이 '없다'는 근거야말로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형순 씨와 그 동조자들은 마치 그런 분들은 전혀 없다고 호도 한다.

 

그러니 저들이 어찌 내가 목격한 사례를 인정하려들 것이겠는가!
그러니 어찌 민감한 아이들이 죽음이라는 인생의 짐에 너무나 힘겨워 하는 사례를 저들이 인정하려 들 것이며, 정작 저들 어른들조차 죽음이라는 짐을 제대로 지지 못하면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는 죽음에 대해서 잘 교육을 하면 아무 탈이 없을 것이라는 무책임하고 위선적인 소리를 어찌 하지 않겠는가.
욥의 세 친구들이 그랬던 것처럼...

 


"성추행은 사실이고, 납골당이 애들정서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댁의 추측입니다"라고 말하는 우형순 씨의 말.
바로 육영재단 이사장이 그런 식의 말을 하였다.
'성추행은 순전히 학부모들의 주장이고 아무 증거가 없지 않느냐'고...

 


사실 공릉동 같이 주택가 밀집 지역, 그것도 유치원과 중학교 바로 옆의 납골당이 아이들 정서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말하는 독실하다는 천주교 신자들의 그 주장이야말로 추측일 뿐임에도 말이다.

 

나는 분명히 말하였다.
납골당에 무덤덤한 아이들도 있겠지만 반면 매우 민감한 정서적 반응을 일으키는 아이들이 있을 수 있음을 말하였음에도 독실하다는 천주교 신자들의 귀에는 어디 와 닿을 리가 있겠는가.
저들이야말로 순전히 자신들만의 경험만 주장 하지만 또한 반대의 경험이 있음을 말하였음에도 저들 독실하다는 신자들은 어디 인정하려 들겠는가.
이게 바로 종교의 세뇌 효과인지 모른다.

 

아흔 아홉 마리의 양들이 괜찮을 지라도 단 한 마리의 양이라도 문제를 일으킨다면 만사를 제쳐놓고 한 마리의 잃은 양을 위해 찾아 나서는 것이 천주교 신앙의 근본이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우형순 씨와 그의 동조자들에게 반대의 사례를 말하여주어도 자신들의 체험만으로
일반화하며 주택가 밀집 지역 내, 미광 유치원과 공릉중학교 아이들의 정서에 아무런 피해도 주지 않을 것이라며 우기는데 더 이상 무슨 수가 있으랴.

 

그리고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고 오열하는 부모와 묘지에서 오열하는 남겨진 부양 가족들이 오열한 사례를 어찌 우형순 씨와 그의 동조자들, 저 천주교 신자라는 이들이 인정하려들겠는가.

 

사실 이러한 사례는 나만의 목격도 아니거니와 동서양을 막론하고, 시대를 초월해서 한결 같은 일이었음에도 우형순 씨와 그의 동조자들인 천주교 신자들은 철저히 자신들에게 불리한 사례는 은폐를 한고 만다.
바로 저들에게 '불리한 그 사례'들이 바로 유치원 아이들과 중학생 아이들의 정서에 너무나 큰 충격이 될 것은 자명함에도 저들은 주택가 바로 그 앞에서 행하는 3202 기의 납골 장례 과정들(물론 납골함 안에 봉안하는 과정만은 보이지 않겠지만, 그 중간 과정상에서의)이 전혀 아이들의 정서에 해를 주지 않는 다는 뻔뻔한 주장만 되풀이를 하는 것이다.
바로 저들 독실하다는 천주교인들이 세상 문제 앞에서는 자녀들에 대한 성모님의 자애를 운운하며 아이들의 정서를 그토록 위하는 듯이 운동하던 자들이 아니었던가!

 

이미 운명하실 것을 알고 미리 마음을 다잡은 상태에서 가족을 떠나보내는 유족들이 오열하지 않고 차분히 떠나보내는 사례들만 들면서..

 

 


여기서 잠시 외국의 묘지 사례를 볼까?
저들의 묘지는 분명 도심 속에 있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외국도 처음에는 도시 외곽에 묘지를 조성하다가 차츰 도시가 발달하면서 묘지가 도심에 흡수된 사례가 많다. 설령 도심에 흡수되거나 신설된다 하여도 태릉 성당 같이 아예 주택가에 바짝 접근시키는 것이 아니고 어느 정도 거리를 둔 후, 담장을 설치하고 그 주위는 공원처럼 조성을 한다.
그러나 태릉 성당처럼 주택가 밀집 지역 내, 유치원과 학교 바로 담장 옆에 있는 곳은 없다. (200야드나 1m나 같다고 하는 것은 우형순 씨와 그의 동조자들의 박박 우기기 일 뿐, 최소 거리로서 유효한 거리가 필요하다.)
그리고 설령 도심 속 주택가에 위치한다 할지라도 공릉동 같은 주민 밀집 지역이 아닌 한산한 주택가 도로 상에 좌우로 나무와 공원을 조성하고 담을 조성하여 최대한 주민들을 생각한다.
그러나 태릉 성당 납골당은 이와는 전혀 반대이다.
오로지 저들은 그들만의 돈벌이만 생각하고 있다.
공익을 빙자해서..

 

태릉 성당은 공원은커녕 전용주차장도 없이 지금도 미사 때면 차가 차버리는 성당 주차장을 그대로 이용하려 한다. 그 주차장은 노상에 노출되어 있기에 인근 주민들에게 모든 과정을 노출시킨다. 너무 울어 눈이 퉁퉁 부은 유족들이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며 차에서 내리는 모든 모습을 포함해서 말이다.

 

물론 미국 뉴욕의 맨하튼에는 빌딩 가 가운데에 공원 묘지가 있다는데..
그러나 그곳이 공릉동과 같은 주택가 밀집 지역과 비교 될 수는 없다.
적어도 뉴욕의 경우는 사무실 위주의 빌딩으로 주민 거주 지역에서는 일정 거리 이상은 떨어져 있으나 태릉 성당 납골당은 아예 주택가 2차선 이면도로 바로 반대편에 접근하여 세웠고, 또 여기에는 뉴욕과는 달리 유치원과 중학교가 아예 붙어 있다.
또한 뉴욕의 공원화 시설과는 다르게 태릉성당은 오로지 납골당 돈벌이 시설만 만들어 놓고 있다. 그 성당은 나무 몇 그루만 심어놓고 벤치 몇 개만 놓고는 공원이라고 하는 것일까?

 

 

그러니 어찌 선진국의 사례와 비교할 수 있겠는가!!
그 어느 나라도 유치원과 중학교 바로 앞에서 장묘 시설을 조성하였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그러면서 한국 천주교는 자신들에게 유리하면 외국 사례를 운운하면서 정작 자신들에게 불리한 사례는 입을 씻는다.
오로지 일제가 우리나라를 수탈하면서 마구잡이로 학교 옆에 조성한 묘지 사례만 언급한다.
저들은 자신들에게 필요하면 현대 선진국의 사례를 언급하지만 자신들의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서는 지금과는 너무나 사정이 다른 일제 시대부터 60년대까지의 사례를 아직도 물고있다.


우형순 씨와 그의 동조자들이 주장하는 말이 이렇다.
지하에서 납골 장례를 치루는 것이 보이느냐고.
하여 내가 말한다.
그럼 납골 장례를 치루기 위한 유족과 조문객들은 그래 지하의 비밀 통로로 오는 것인가!!!

 


우형순 씨가 그토록 주장하는 자신의 경험, 즉 연도 몇 번의 경험만 말하지만 실은 그 반대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슬픔에 땅을 치고 통곡하는 유족들의 사례를 저들 한국 천주교인들이 어찌 인정하고 싶겠는가!
그래, 연도하고 매장하러 오는 유족들과 조문객들의 얼굴에는 그늘진 슬픔이 없었는가 보지? 그게 우형순 씨를 비롯한 그의 동조자들에게는 인간이 평소에 슬퍼하는 표정과 그리 차이가 없어 보이나보지?
만약 누군가가 그런 표정을 짓고 직장이나 학교에 나온다면 어디 아픈 데가 있느냐, 어디 안 좋은 일이 있느냐 대번에 묻는 것은 당연한 터,
그런데 그런 슬픈 모습을 매일 보게 될 수 있는 아이들의 정서에 어찌 피해를 주지 않으랴!

 

그러나 이런 말이 나의 주장일 뿐이라고 잡아 때는 자들이 바로 우형순 씨와 그의 동조자들인 한국 천주교인들이다.
시대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일반적으로 느끼게 되는 정서적 영향을 말하여 주었음에도 저들이야말로 그들만의 주관을 뻔뻔하게 주장한다.

 

 

아마도 우형순 씨 자신이 이번 논쟁으로 납골당을 방문해 보았나보다.
그러나 그가 과연 태릉 성당이 세우려는 것과 같은 주택가 밀집지역, 유치원과 학교 옆에 공원화도 안되고 전용 주차장도 없는 납골당을 가보기는 한 것이란 말인가?
그래, 과연 그가 그곳에 납골당이 개장되는 하루 시간 내내 거기에 있어 보고서 하는 소리인 것이며, 또 일년 365일 내내 확인해 본 것이란 말인가?
단 몇 시간 관찰하고 마는 것말고 말이다!

 

주택가에서 떨어져 있고 공원화 시설도 하고 전용 주차장 등 여러 편의 시설을 확충한 곳과 태릉 성당 납골당이 어디 같을 것이며 이미 납골이 상당히 찬 곳의 모습이 이제 막 납골을 한참 시작하려는 지역과 또 어찌 같겠는가?

 

안타깝게도 우형순 씨와 그의 동조자들은 태릉 성당 앞은 가보려 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유리한 증거 찾는답시고 납골당과 무덤가만 뒤지겠지...
유족들이 오열하지 않는 사례만을 찾아서...
사실 저들이 공릉동에 가서보면 무엇하겠는가?
아이들 정서에 아무 지장도 없다고 할 것이 뻔한데..

 

 


여기서 우형순 씨가 자신의 경험 사례라고 내세운 것들을 보자.

 

자신이 다녔다던 고등학교가 60년대 이전부터 공동묘지였는데도 아무 탈 없이 다닌 선배들은 무엇이냐고 든 예..
그러나 정작 우형순 씨 자신은 이미 묘지가 덮어진 자리 옆에 초등학교가 들어선 이후에 그곳 고등학교를 다닌 것이고 묘지가 이미 상당수 덮여진 이후라 자신이 직접 그 정서적 영향을 체험한 적도 없는 순전히 우형순 씨 자신의 추측만을 말하고 공릉동 아이들에겐 아무 영향도 없다는 것이니 이 어찌 남 말이 아니겠는가. 

 

오래 전 돌아가신 나의 외삼촌께서 젊으셨을 때, 집에 가는 중에 귀신을 보았다고 혼비백산  하였던 곳이 바로 무덤가 근처였다고 한다.
그리고 한센인들이 세상 눈을 피해 산 곳 중의 하나가 이 무덤가 근처였던 것은 그만큼 세상 사람들이 찾기를 꺼려하는 곳이기에 그곳만큼 그들에게 살기에 적지가 없었던 것이고 바로 그런 이유로 '문둥이들이 병을 치료하려고 지나가는 아이들을 잡아 간을 빼먹었다'는 소문이 나돈 곳도 바로 무덤가였던 것은 그만큼 지난 세월 동안 묘지가 주는 부정적인 정서에 기인하는 것을 말해준다.

 

우형순 씨는 말한다.
그럼 자신의 고등학교 선배들은 공동묘지 옆에서 공부하였는데 누구 미친 사람이 있더냐고...

 

그러나, 그런 말을 하는 우형순 씨 자신이야말로 미친 사람이 없었다는 증거를 대어보라.
미쳤다는 최 극단의 경우는 우형순 씨나 생각하시고 모든 학생들이 정서에 악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증거나 대어보라.
정작 자신이 그때를 살지 못하고서 어찌 그때를 증거로 대는 것이란 말인가.
모두 정서적으로 이상이 없었다는 증거를 대보란 말이다.
모두 말이다..
그의 선배는 그런 환경에서 다니고도 그래 불편 없고 행복하였다던가? 모두가?

 


예로부터 무덤가에서 귀신을 보고서 혼비백산한 경험을 한 이들의 입 소문이 어찌 한 두 사람의 이야기였던가.
그래서 우형순 씨 자신도 "귀신때문에 사람 죽었다는 내용도 있지만, 귀신 때문에 살아난 내용도 있습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귀신 때문에 사람이 산 경우가 귀신 때문에 죽은 사례와 어찌 같은 것이며, 이는 우형순 씨 자신이 태어나기 이전의 사람들이 겪은 정신적 공포의 경험을 우형순 씨 자신이 역으로 증언해버리는 것일 뿐만 아니라, 우형순 씨의 고교 선배들이 모두 정신적 탈 없이 학교를 다녔다는 것은 오히려 우형순 씨 자신의 추측일 뿐이라는 것을 역으로 실토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요즘에 들어 화자 되는 정신과 질환 중에 '명절증후군'이 있다.
며칠 뒤면 추석 명절이지만 유교 문화의 영향 하에서의 이 땅의 여성들이 겪게되는 말 못 할 정신적 고통, '명절증후군'.
명절이 되면 남들은 마음이 들떠 좋아하지만 정작 며느리들은 이 날이 지옥 같다. 남성들도 그런 면이 없지 않지만 여성들이 이 날 겪는 정신적, 육체적 괴로움에 비하랴.
평소에는 하지 않는 음식 장만하랴, 집안 대청소를 하랴, 이것저것 하게되면 그 노고가 대단함에도 어디 편히 누워 쉬지 못하고 시부모, 시댁 식구 눈치 보며 일만 해야 하는 이 날이 저들에게 너무나 큰 정신적 스트레스가 되고 만다. 그래서 이 명절이나 집안 제사 때가 되면 소화가 안되고 두통이 생기고 가슴이 꽉 막히는 등, 신경성 질환을 앓게 되고 심지어는 우울증에 몸살에 앓아 눕기까지 한다.

 

이런 증상이 옛날 여인네들에게도 분명 있었음에도 이를 병으로 진단하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분명 예전에도 있었음에도 말이다.

 

다만 예전의 우리 할머님들은 그저 꾹 참고 버티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그래서 옛날 분들이 제대로 못 먹는 상태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며 치료다운 치료를 받지 못하니 일찍 늙어 돌아가신 것이다. 그 당시에는 이를 화병 정도로, 몸에 사기가 침범한 정도로 치부하였으니 문제의 근원을 어찌 인정할 수 있었겠는가.

 

이처럼 예전에도 많은 정신과적 질환이 있었음에도 우리네들은 그저 화병 정도로 알고 입에 맞지도 않는 쓴 한약만 다려먹고 액귀가 씌운 정도로만 알고 무당 굿거리 하기 일쑤였지 않은가.
이것 하나만으로도 당시의 사람들에게도 정신과적 질환이 매우 많았음을 알 수 있지만 다만 그때는 그게 병인 줄도 모르고 그냥 꾹꾹 참고 살다 다른 병을 앓고 세상을 떠나기 일쑤였던 것이다.

 


어디 명절증후군 뿐이랴.

요즘 들어 크게 문제가 되고 있는 성희롱, 성추행도 예전의 여성들에겐 그저 남성들의 짓궂은 장난이나 친근함의 표시 정도로 인식되어왔다. 물론 유교 문화 하에서 남녀의 접촉을 엄히 금했던 시기가 있었고 요즘도 일부에서 그렇지만 미니 스커트로 대변되는 노출 문화가 일고 보다 많은 서양 문물에 접하면서 남녀의 접촉은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로와졌다. 그런데 여성들의 사회 생활이 늘어가면서 직장 동료나 상사로부터 겪게 되는 추행은 이미 정신적 폭행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저들이 우형순 씨와 그의 동조자들이 우기는 것처럼 자살하거나 미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상당한 정신적, 정서적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이 예전에도 있었음에도 예전에는 이런 것에 대한 '인식'이 전무하던 시대였던 것이다. 오히려 여성들이 몸가짐을 바로 하지 못한 탓이라며 되려 당하기 일쑤였다.

 

어쩌면 이런 것처럼 주택가 밀집 지역에서의 납골당들이 자신의 아이들에게 미치는 정서적 피해에 대한 인식을 많은 공릉동 주민들조차 '인식'조차 못하는 지도 모른다.
그런 개념조차 인식을 못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예전에도 오늘날 같은 신경정신과적 질환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는 이런 것에 대한 인식이 너무나 부족하였다.
그냥 그렇게 꾸역꾸역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일까?
한국인들의 정서에 한이 너무 많이 서려 있는 것이...
그래서 유독 화병이 많았던 민족인가 보다.

 

아무튼 우형순 씨와 그의 동조자들의 주장대로라면 예전에 우리네 어머님, 할머님들이 명절증후군으로 미쳐서 돌아가신 분이 있느냐, 그 증거나 있느냐, 그때도 아무 탈 없이 산 며느리들은 무엇이냐며 잡아 때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부정적인 환경이 사람의 정서에 미치는 영향을 오로지 누구 미친 사람이 있느냐, 자살한 사람이 있느냐며 몰아가는 우형순 씨의 사고 방식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성추행, 성희롱 당해서 누구 임신하였느냐, 미치거나 자살한 여자가 있느냐고 반문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저들이 저렇게 60년대 이전의 사고 방식과 정서로 21 세기의 아이들의 정서를 재단하는 것처럼 말이다.

 


거듭 말하거나와 사실 예전에도 무덤가는 사람들이 꺼려하다 못해 귀신을 보고 혼비백산하여 돌아온 사례가 있어왔던 곳이기도 하다.
그러니 우형순 씨가 살아본 적이 없는 이전의 선배들이 겪은 말못할 정신적, 정서적 피해를 우형순 씨 자신이야말로 전혀 알지 못한다.
그것은 순전히 우형순 씨 자신의 추측이었을 뿐, 아이들에게 그러한 죽음의 짐이 큰 정서적 짐이 되고 상처가 되는 것은 당연함에도 천주교 두둔에 눈 먼 저들 신자들에겐 그저 아무렇지 않은 일일뿐이다.
오로지 다행스럽게도 무덤덤 하게 자란 아흔 아홉의 아이들만 생각하는 저들의 모습이 바로 한 마리 잃어버린 양들은 입으로 잘도 외우고, 자녀들에 대한 성모님의 자애를 잘도 외치는 한국 천주교 교인들의 실상이다.

 

왜 해방 이후, 6.25 동란의 참상을 어느 정도 치유하고 국토를 돌보는 시점이 되자 학교 옆의 공동묘지를 이전하거나 폐장하게 되었겠는가?
그것을 이전하는 비용도 적지 않았을 것임에도.
그리고 현재 어느 지역이 한참 매장이 진행되는 곳에 학교를 세우고 있단 말인가!!


 
아마도 1960년대까지만 해도 우형순 씨가 말하는 사례는 많았을 것이다.
해방 이후에는 6.25 전쟁을 겪게 되면서 그 시절은 전 국토와 전국의 모든 가정들에 어디 초상집 아닌 곳이 없었을 정도로 암울했던 시절이었다.
그런 시대에 보릿고개도 넘기기 어려울 만큼 배고파서 묘지 근처이건 아니건 이런 문제로 정서를 보살필 여유도 없었던 때였고 그래서 국가에서 하라고 하면 했던 그 타성대로 꾹꾹 참으며 그냥 그렇게 살아야했다.

 

그러다 차츰 6.25 전화를 복구하면서 나라의 틀을 정비하게 되고 그래서 우형순 씨가 다녔던 고등학교 옆의 묘지도 뒤엎어 버리고 초등학교를 세우고 살아있는 사람들이 살만한 곳으로 만들어 간 것이며 그래서 우형순 씨 자신은 이미 사라진 묘지 터 옆에서 정서상의 아무 영향도 받지 않고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이다.

 

왜 60년대를 전후해서 학교 근처의 묘지들이 차츰 이장되어 덮여졌겠는가!

단순히 국토의 효율적 이용 때문이다?
그것은 적어도 한국인의 정서 상에서 묘지는 주택가 바로 옆에 두기는 적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형순 씨가 고등학교를 다녔던 곳도 내가 초등학교를 다녔던 곳도 이전의 묘지터를 이장하고 덮어버린 것이다.

 

 

사실 내가 전에 살던 집 주위가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유명한 묘지 터였다.
그곳은 박정희 정권 때부터 주택가로 전환하기 위해 무덤들을 뒤덮고 집터를 세우다가 전두환 정권 후기에야 비로소 주택 건설을 시작한 곳이다. 그 당시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 뒷산에 소수의 주인을 알 수 없는 묘지가 있었는데 언뜻 보아서 묘지인지 언덕인지 구분을 하기 어려운 상태로 자연 속에 파묻혀 있었다.
낮에 동네 친구들과 여럿이 어울려 놀 때는 그 근처를 다녔지만 밤이면 근처에도 가기를 꺼려했었고 또 낮이라도 해도 혼자서는 여간해서는 그곳을 지나치지 못하였었다.
머리가 쭈뼛 서는 느낌을 아마 체험한 이들은 알리라.

 

그래도 우리 식구가 그런 곳에 살 수 있었던 것은 그곳이 더 이상 매장을 하지 않았고 그래서 매장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주위의 산에 무덤이 산재해 있어도 이사지로 택한 것이다.
사실 그곳은 이미 1957년 때부터 묘지를 이전하고 주택가로 건설하였다고 한다.
만약 바로 내가 사는 집 근처에서 땅을 파서 관을 묻는 유족들의 오열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다면 어려서부터 민감했던 나는 더욱더 큰 정서적 상처를 입었을 것은 자명하다.

 

이렇게 이미 만장되어 자연 속에 파묻힌 지역과 한참 매장이 진행되는 지역의 차이가 엄연히 있음에도 아이들의 정서에 아무 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우형순 씨와 그의 동조자들과 같은 한국 천주교 신자들이다.

정작 자신은 매장이 대규모로 매장이 진행이 되고 있는 지역 그 앞에서 아이들을 키우지 않으면서..
또 자신은 이미 묘지가 뒤덮여져 사라진 이후에의 학교를 다녀놓고서..

 

나 역시 예전에 무덤이었던 곳에서 살아왔고 또 지금도 소수의 주인을 알 수 없는 묘지가 있는 근린 공원지를 산책로로 하고 있다.
이것은 민감한 정서의 사람들이 한참 매장이 진행되고 있는 묘지 바로 앞에서 일년 내내 살아야 하는 것과는 너무나도 다른 것이다.

 

 

 

적어도 한국인의 죽음에 대한 정서와 장례와 매장 풍습은 외국과는 다를 수밖에 없고 그 분위기 또한 다르다.
따라서 선진국의 사례를 들며 그들과 동일한 기준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적어도 외국의 문화를 답습하려면 문화적 완충과정을 거치고 진행하여야 하며 그래서 적어도 도심 속의 묘지나 납골 시설을 짓고자 한다면 적어도 '정서적 완충지'인 공원이라는 소 자연의 시설을 완벽히 갖추고 진행하였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천주교 유지 재단은 그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고 이것이야말로 선진 외국의 사례와도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
이 한국의 천주교 유지 재단은 돈벌이만 생각했지 주민들의 정서적, 문화적 충격에는 처음부터 관심도 없다 못해 이제는 유치원과 중학교 바로 옆마저 침범하려 한다.


성당 지하에 무덤이 있다는 유럽의 그 대형 성당들은 태릉 성당 같이 주택가 밀집지역 한 가운데에 있지는 않다는 것을 주목하라.
시가지가 발전하면서 주택가가 근접하여 침범을 한 곳이 있을지는 몰라도 유럽의 대형 성당과 개신 교회들은 도시 도로 상의 누구나 접근하기 용이한 지점을 기점으로 교회를 세운다.
한국처럼 극성스럽게(?) 주택가 안을 파고 들어가며 마구잡이로 대형 성전을 짓지는 않는다.
사실 교세 확장을 위해서라면 주택가 밀집 지역도 마다 않고 큼지막한 교회를 지어대는 극성스런 신자들로 가득한 나라가 세계에 한국말고 더 있으랴.
태릉 성당의 그런 모습이 바로 그렇다.


국토가 부족하여 요즘에는 매장이 완료되고 공원화가 완료된 공원묘지 근처에까지 학교 터가 침범을 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이런 지역은 매장이 대부분 완료되고 공원화 된 지역임을 명심하라.
그런데 우형순 씨와 그의 동조자들에겐 이것이 공릉동 주택가 한 가운데의 태릉 성당의 납골당의 경우와 같다고 우김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게 바로 자신의 종교 두둔에만 눈 먼 한국 천주교 신자들의 양심의 현 주소가 아니겠는가.
정작 자신들조차 지기에 버거운 죽음의 짐을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짐 지우는 이 시대의 바리사이들...

 


우형순 씨는 공릉동 주민들이 이번 일로 피해가 났는지 안 났는지 댁이 대차대조표를 만들서 한번 올려보란다.
저렇게 주민들이 정신적 피해를 받고 있음에도.
오히려 우형순 씨를 비롯한 천주교 측이 주택가 밀집 지역 내의 유치원, 중학교, 초등학교 옆에서 아이들의 정서에 영향을 끼치는 지의 유무를 조사하고서 올려 보라!!!
적어도 어느 지역에서 사업을 추진할 때, 그 사업의 추진자가 그 지역 환경과 사람들의 생활에 미치는 환경 영향 평가를 하는 것이 도리인터.
그러니 독실하다는 한국 천주교 신자들이 환경 영향 평가를 올리는 것이 도리가 아니겠는가!


우형순 씨는 지금 고려공원묘지옆에서 5년째 살고 있단고 한다.

직선거리로 50m 바깥부터 묘지 천지라고 한다.

이 사람의 거리 감각을 도무지 신뢰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그런데 거기는 거의 만장이 되어있는 상태이다.
그리고 그곳은 이미 공원화 한 곳이다.

아마도 산책로를 만들거나 나무도 심고 경관을 친환경적으로 고친 곳 말이다.
그래서 공원 묘지라 부르는 것이다.

 

이런 곳은 한참 매장이 진행되는 곳과는 전혀 다르다.
정서적 영향도 너무나 다르다.
이는 이제부터 매일 납골 장례를 보아야 하는 주택가 2차선 이면도로 상의 주민들과 유치원생들과 중학생들, 초등학생들이 겪는 정서와는 너무나도 다름에도 정서적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 아흔 아홉(?)의 아이들의 경우만 생각하는 것이 지금의 한국 천주교이다.
그럼에도 우형순 씨와 그의 동조자들은 공릉동의 태릉 성당 납골당과 만장이 된 공원묘지를 동일 시 한다.

 

무엇보다 우형순 씨와 그의 이웃들은 그런 곳을 택해서 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곳을 원치 않아서 공릉동을 택한 주민들에게 우형순 씨 같은 지역을 강요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
결코 일개 종교가 다른 이들의 선택을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적어도 도시의 발달 과정에서 도시가 묘지를 침범하는 것과 도시 한복판을 묘지가 침범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경우이다.
주민들의 선택이 다른 것이다.
누구나 자신이 바라는 환경을 선택할 권한이 있고 이를 일개 종교가 돈벌이로 짓뭉개서는 안될 일이다.

그러니 우형순 씨는 그런 곳이 좋으면 그 자신이나 평생 살라.
남에게 자신의 선택을 강요말고.
적어도 공릉동 주민들은 그런 환경을 원치 않아 선택하신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친절한 금자 씨가 그랬단다.
너나 잘 사세요(?)~

 


아마도 우형순 씨와 같이 우기기 좋아하는 신자들은 또 물고 늘어 질 것이다.
그러면 다른 지역에서 단 한 사람의 아이가 정서적 피해를 입기만 하면 도대체 어느 곳에 묘지를 세울 것이냐고?
댁은 죽지 않느냐고...

 

그렇기에 내가 말하는 것이다.
묘지 시설이든 납골 시설이든 그 기준과 원칙을 지키라는 것이다.
태릉 성당처럼 막무가내로 아이들의 유치원과 중학교 바로 옆에 세우는 몰상식한 행동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어느 정도의 거리를 주택가에서 떨어진 지역(이런 말을 해보았자 200 야드나 1m나 같다고 우기는 우형순 씨 같은 이들의 귀에 어디 들어오랴 만은)에 선진국처럼 공원화 시설과 전용 주차장을 제대로 갖춘 납골당을 지으라는 것이다.
거대한 콘크리트 성당 건물 하나 지어놓고는, 그것도 유럽과는 달리 대형 성당을 주택가 밀집 지역 속에 짓고는 선진국 같은 공원화 시설은 전혀 하지도 않고 오로지 납골 장사만 하면서 공익을 운운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 그토록 선진국의 장묘 문화를 운운하는 족속들이 선진국의 공원화 시설은 쏙 까먹은 심보는 무엇인가 말이다!!!
주택가 밀집 지역이기에 주민들이 반대를 할 판에 하물며 공원화 시설은 전무하고 납골당 전용 주차장마저 마련하지 않고서 어찌 주민들의 강한 반대가 없을 것이며 그러면서 어찌 선진 장묘 문화를 운운하는 것이란 말인가!
왜 천주교 자신들에게 유리한 사안만 강조하며 왜 지역 주민들의 정서를 짓뭉개는 것인가!
예수를 믿는 선진국 어느 나라가 대형 교회를 주택가 밀집 지역 한 가운데에 알 박기(?)를 하던가 말이다.
그러니 어찌 그대들 천주교인들이 돈벌이에 눈이 뒤집혔다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여기서 그럴 땅조차 포화 상태라는 소리는 말라.
천주교가 성지랍시고 광범위하게 소유한 땅을 풀면 많은 분들의 유해를 모실 수 있으며 어차피 천주교 성지는 순교자 성지라서 돌아가신 분들과 연계되니 그곳에 돌아가신 분들을 모시는 공익(?)을 펼치는 것이 바로 신앙적이지 않겠는가!!
안 그런가 미리내 성지 관계자들...

 

그리고, 우형순 씨 같은 이들이 또 하나 우기는 것은 천주교 소유의 땅이 많은지 내가 보았냐 도로 묻는데 그런 우형순 씨 자신이야말로 천주교 소유의 땅이 얼마 밖에 되지 않는다는 증거나 대어 보라.
지금 천주교 소유의 묘지 터를 사용한다면 적어도 수백 만기의 납골을 모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천주교 자신의 묘지 터와 성지로 소유한 땅부터 쓰고서도 그래도 부족하면 최후의 선택으로 주택가 학교 옆을 택하라는 것이다.

 

 

우형순 씨와 그의 동조자들은 "우울증 조울증 걸리고 극단적으로 자살도 한다고 했는데, 자살은 우울증 조울증 걸리면 다 하나요? 그러면, TV 에서 슬픈표정연기를 하면 안되겠군요."이라고 우겨댄다.

 

그래, 우형순 씨와 그의 동조자들 같은 이들에겐 누군가 죽어나고 미치는 것만 정신적 피해인가 보다.
저들은 우울증으로 죽어야만 정신적 피해로만 아는 사람이다.
우울증으로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게 사는 사람들의 고통을 저런 신자들이 어찌 알겠는가!
왜 정신과 의사들이 그들의 글에서 되도록 마음을 우울하게 만드는 프로보다는 보다 활기를 주는 프로를 권하겠는가. 아니 TV 시청보다는 보다 활력적인 취미 생활을 갖도록 말하겠는가!
그럼 살인이 범람하는 세상이니 우형순 씨와 그의 동조자들의 궤변을 빌리자면 살인 장면이 나오는 영화는 아예 만들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무리 예술적인 영화라도 말이다.

 


내가 이렇게 태릉 성당의 납골당 돈벌이가 부당함을 아이들의 정서적 차원에서 주로 언급을 하였지만 교통 및 주거 환경 차원에서 천주교 유지 재단이 지역 주민들에게 끼치는 피해 또한 큰 것이 사실임도 천주교의 두둔에 눈 먼 신자들의 눈에는 사설 납골당 업체만도 못한 저들의 돈벌이가 공익으로 보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저 악덕 기업체(!)의 행위가 말이다.

 

저들의 그릇된 신앙관과 상식을 꼬집어주었더니 오히려 저들은 같은 말로 박박 우기기만 한다.

나야말로 대부분의 일반적인 사람들의 정서를 토대로 반대의 사례를 분명히 지적하였음에도..
천주교 유지 재단의 공익이라는 순 거짓 명분에,
어른들도 지기 힘든 죽음의 짐을 아이들에게 지우고는 죽음에 대해 바르게 가르쳐주면 더 교육적이라는 무책임한 말만 되풀이면서..
이게 바로 우형순 씨와 그의 동조자들인 한국 천주교 신자들의 현 주소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저들이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정말 라자로가 죽었을 때, 댁이 그걸 직접 봤나요?"라고..
천주교 신자라는 이들이 요한복음의 내용마저 부인해 가면서..

 

그래, 저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직접 보았단 말인가?............

 

그러니 우길 것을 가지고 우기고, 동조할 것을 동조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 독실하다는 천주교 신자 양반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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