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성서공부

수요성서(6월8일) 실천으로 옮기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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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효식 [vlxj3004] 쪽지 캡슐

2006-06-07 ㅣ No.99

 

  † 그리스도님 우리의 평화                                              6;8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 이라고

교훈을 주고 있는 야고보는

주님이 세상에 계실 때 하셨던 말씀을 기준으로 삼고

 

세상에 주님이 계실 때 그렇게 하신것 처럼

우리에게도 그렇게 살 것을 교훈해 주고 있습니다.

 

주님은

모든이 에게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또한

열심히 일해서 이익을 많이 남겨야 한다는 의무를 저희에게 주셨으며

열심히 일 하는 자에게는

더 많은 이익이 오도록 인도하여 주시며

훌륭한 결과가 오도록 인도하여 주시는 것을 믿사옵니다.

 

성서 말씀을 통하여

주옥과 같은 말씀을 온 몸으로 체험 하면서 

그 한 말씀 한 말씀은

살아있는 생명의 말씀임을 조금도 의심치 않고 믿사옵니다.

 

주님

성모성월 이 5 월에 우리의 믿음이 활짝 핀 목련 처럼

만개 하도록 인도해 주십시요.

 

 

※ 시련과 유혹 ※

 

 13 절

유혹을 당할 때에 아무도

"하느님께서 나를 유혹하신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악의 유혹을 받으실 분도 아니시지만

악을 행하도록 사람을 유혹하실 분도 아니십니다.

 

*유혹을 당할 때에 말을

"하느님께서 나를 유혹하신다."는해서는 안 됩니다

(메테이스 페이라조메노스 레게토 호티 아포 데우 페이라조마이)

 

하느님은 믿음의 성숙을 위해

테스트 하는 성격의 시험을 하시지만

죄에 빠지게 하는 유혹의 시험은 하지 않으십니다.

 

당신의 외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면서

당신의 아픔의 사랑을 통해

우리를 구원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의 영혼이 망가지는 시험은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한 영혼 한 영혼을

지극히 소중하고 귀하게 여기시는 하느님 이십니다.

 

우리의 영혼을 죽이기 위하여 작심하고 덤비는것은 사탄이 입니다.

 

▲마태오 4:1-11

유혹하는 자가 와서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해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뛰어내려 보시오.

성서에, '하느님이 천사들을 시켜 너를 시중들게 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너의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시리라.' 하지 않았소?" 하고 말하였다.

 

"당신이 내 앞에 절하면

이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사탄아, 물러가라! 성서에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하시지 않았느냐?" 하고 대답하셨다.

 

▲욥 기 1:6-12,

하루는 하늘의 영들이 야훼 앞에 모여왔다.

사탄이 그들 가운데 끼여 있는 것을 보시고

 

야훼께서 사탄에게 물으셨다.

"너는 어디 갔다 오느냐?" 사탄이 대답하였다. "땅 위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왔습니다."

 

야훼께서 사탄에게,

"그래, 너는 내 종 욥을 눈여겨보았느냐?

그만큼 온전하고 진실하며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악한 일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사람은 땅 위에 다시 없다."

하고 말씀하시자,

 

사탄이 야훼께 아뢰었다.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느님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이제 손을 들어 그의 모든 소유를 쳐보십시오.

그는 반드시 당신께 면전에서 욕을 할 것입니다."

 

야훼께서 사탄에게 이르셨다.

"좋다! 이제 내가 그의 소유를 모두 네 손에 부친다.

그러나

그의 몸에만은 손을 대지 마라."

이에 사탄은 야훼 앞에서 물러 나왔다.

 

*악을 행하도록 사람을 유혹하실 분도 아니십니다

 (파이라제이 데 아우토스 우데나)

우데나,(원형,우데이스)

그 누구도, 그 무엇 이라도,

페이라조메노스,(원형,페이라조)

유혹하다, 시험에 맡기다, 평가하다, 분석하다, 라는 뜻으로 유혹 입니다.

 

페이라조메노스 우데나: 그 누구도, 그 무엇을 가지고도,

                       우리를 유혹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14 절

사실은 사람이 자기 욕심에 끌려서

유혹을 당하고 함정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은 사람이 자기 욕심에 끌려서,(데...델레아조메노스)

13 절의 답변을 하는 입장 입니다.

 

시험을 하시는 하느님이 아니라

시험의 출처와 원인은 인간이며

시험은 인간의 욕심에서 시작이 되는것 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헤카스토: 모든 각 사람은,

우데나: 아무도...아닌, 이라는 뜻으로

모든 인간은 예외없이 시험을 받는데

그 시험의 원인은 다름 아닌 본인의 욕심 이라는 것입니다.

 

에피뒤미아스,(원형,에피뒤미아) 는 욕심 인데

어떤 특정한 대상에 대하여 갖게 되는 갈망 열망, 이라는 강한 욕구를 뜻합니다

 

본인이 추구하는 어떤 욕망에 집착이며

거기에서 나울 수 없는 집요한 집착 입니다.

그래서 그 욕망에 지배를 당하고 마는 상태를 나타내는 뜻입니다.

 

이렇게

욕심 이라는 영향력 아래 있게되면

그 욕심과 욕망에

 

엑셀코메노스,(원형,엑셀코)

밖으로 끌어내다, 라는 뜻으로

 

사냥감이 덤불에서  질 질 끌려 나오듯이

자기의 욕망과 욕심에 아무 저항도 못하고 사탄이에 의해서

끌려 다니는 모습을 나타내는 뜻입니다.

 

텔레아조메노스,(원형 텔레아조)

미끼로 꾀이다, 미끼로 잡다, 라는 뜻으로

 

낚시나 사냥을 하기 위해

떡밥이나 덫을 이용하여 현혹시켜 걸리게 하듯이 

 

욕망과 욕심이 주는 달콤함에 유혹이 되어

무기력하게 끌려가는 것은

인간들의 스스로 욕심과 욕망에서 오는 것이지

제 3 자인 하느님이 그러한 시험을 주는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욕심으로 인해서 죄에 빠진다면

본인의 철저한 잘못이며

하느님 탓으로 돌리면 않된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욕심 이라는 본능은 후천적인 것입니다.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 하셨을 때는

인간에게 욕정과 욕심과 욕망은 없었는데

인간 타락의 결과로

후천적으로 갖게된 사망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치명적인 병 인것 입니다.

 

15 절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죽음을 가져옵니다.

(에이타 헤 에퓌디미아 쉴라부사 틱테이 하마르티안 헤 데 하마르티아

 아포텔레스데이사 아포퀴에이 다나톤)

욕심의 결과가 얼마나 참담하고 무서운 것인지 밝혀주는

야고보의 유명한 문장 입니다.

 

잉태→ 출산→ 성장→ 죽음, 이라는 논리로

모든 의미와 뜻을 함축 시키고 있습니다.

 

쉴라부사,(원형 쉴람바노)

시집가지 않은 처녀가 은밀하게 아기를 가지듯이

마음에 욕심의 씨앗이 뿌려졌고

그 욕심이 그 사람의 모든것을 움켜 잡고 있다는 뜻입니다.

 

욕심 이라는 달콤함이

그 사람의 모든것을 움켜잡고 있다면

태아가 자라서 출산을 할 수 밖에 없는것 같이

 

욕심의 결과가 어느 시기에 이르면 태어나게 되며

갖 태어난 욕심의 태아물은

아무 힘이 없는것 같지만,

무력해 보이지만,

아무것도 아닌것 처럼 보이지만,

이 욕심은 잉태하여

욕심과 욕망 이라는 괴물을 낳는다는 뜻입니다.

 

▲잠언 7:6-27

내가 우리 집 창에 기대어 창살문으로 거리를 내다보았더니 

어수룩한 젊은이들 가운데 한 지각없는 철부지가 눈에 띄더라.

골목을 지나

탕녀가 사는 길 모퉁이를 서성대다가

그 집 쪽으로 발길을 옮기는데

해가 지고 땅거미가 깔리며 어두운 밤이 되자

 

엉큼한 계집이 창녀처럼 치장하고 그 앞을 막아 서더라.

그 계집은

집에 붙어 있을 생각은 않고,

들떠서 수선을 피우며

이 거리 저 장터에서 길목마다 지켜섰다가

그 젊은이를 붙잡고

입을 맞추며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이렇게 말하더라.

 

저는 오늘 친교제를 드려 서원을 이행했답니다.

그래서 당신을 맞으러 나와 이렇게 당신을 만났군요.

제 침대에는

요를 펴고 이집트 산 화려한 천을 깔아놓았답니다.

자리엔 몰약에다 침향과 육계향을 뿌렸지요.

가서 밤새도록 놀며 한껏 사랑에 취해 봅시다.

 

남편은 멀리 길을 떠나 집에 없답니다.

돈주머니를 가지고 떠났으니 보름 안에는 오지 않을 거예요."

이렇게 달콤한 말로 꾀고 꿀맛 같은 말로 유혹하자

 

젊은이가 따라 나서는데

마치 푸줏간에 끌려가는 소와도 같이,

올가미에 걸려드는 사슴같이,

제 발로 창애에 걸려드는 새 꼴이 되어

언제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고 따라가다가

결국에는 화살이 박히고야 말더라.

 

이제 너희는 내 말을 들어라.

내 입에서 떨어지는 말을 명심하여라.

아들들아, 그런 계집을 따라갈 마음을 먹지 말고

그 길에서 헤매지도 마라.

 

그 계집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쓰러뜨린 줄 아느냐?

그에게 희생된 사람은 셀 수도 없다.

그런 계집의 집은

지옥으로 통하는 길이라 죽음의 방으로 내려가게 된다.

 

아포텔레스데이사,(원형,아포텔레오)

완성하다, 다 끝내다, 라는 뜻으로

 

시제가 수동태 분사 이므로

성취 될 때, 다 자랄 때, 완벽하게 자랄 때, 라는 뜻입니다.

 

욕심이 더 큰 욕심을 낳고

그 욕심은 야망 이라는 포장으로 욕망을 낳습니다.

이 욕망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 솟아 오르는

성장 과정을(아포텔레스데이사,(원형,아포텔레오)) 다 마치게 되면

 

최종적으로 데리고 가는 곳은 사망 이라는 종착역 이라는 뜻입니다.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죽음으로 분리되는

사망과 영원한 형벌의 문으로 인도 한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5:12, 6:20-21,  7:11

한 사람이 죄를 지어 이 세상에 죄가 들어왔고

죄는 또한 죽음을 불러들인 것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죽음이 온 인류에게 미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죄의 종이었을 때는

여러분은 정의에 예속되지 않고 제멋대로 놀아났었습니다.

 

그 때에 여러분이 얻은 것이 무엇입니까?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일들밖에는 없지 않았습니까?

그런 생활은 결국 죽음을 안겨줍니다.

 

▲묵시록 20:14,15

그리고 죽음과 지옥이 불바다에 던져졌습니다.

이 불바다가 둘째 죽음입니다.

이 생명의 책에

그 이름이 올라 있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이 불바다에 던져졌습니다.

 

사탄이는

달콤함과 감각적인 유쾌함,  만져지는 부드러움, 등

인간이 오감으로 느끼고 체험 할 수 있는 모든것을 우리 앞에 펼쳐놓고

어떤 것이라도 잡게하여, 더 큰 감각적인 체험을 하게하여,

빠져 나올 수 없도록 우리의 영혼을 꽁꽁 묶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더욱 즐기게 만들고

좀더 큰 것, 더욱 큰 것을 가져다 달라고 조르도록 만들어

끝이 없는 욕심과 욕망으로 치 닫게하며

 

간 을 있는대로 최대한 부풀려 놓고

결국 펑 터트려 죽음의 문, 영원한 형벌을 받을 그 문 앞에다

그러한 자들을 데려다 놓는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영원한 분리를 만들어 놓는것이

사탄이의 최대의 목표이며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죽기 살기로 덤비는 자가 사탄 이라는 사실 입니다.

 

16 절

나의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속지 마십시오.

(메 플라나스데 아델포이 무 아가페토이)

 

*메 플라나스데,

어떠한 일이 있어도,

무순 일이 있어도, 이것만은 사탄이에게 속지 말라, 는 뜻입니다.

 

플라나스데,(원형,플라나오)

길 을 잘못들게 하다, 옆 길로 벗어나게 하다, 나쁜 길로 끌어 들이다,

정도 에서 벗어나다, 잘못에 빠지게 하다, 라는 뜻입니다.

 

시제가 수동태 이므로

네게 욕심을 품게하고 욕망으로 발전 시키는 그 장본인은

하느님이 아니라

네 자신 에게서 나오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 욕심은 

곧 사탄이에 의해서 나오게 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메: 절대로, 기필코, 반듯이, 꼭,

    사탄이에게 넘어가지 말아라, 입니다.

 

17 절

온갖 훌륭한 은혜와

모든 완전한 선물은 위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하늘의 빛들을 만드신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는 것입니다.

하느님 아버지는 변함도 없으시고

우리를 외면하심으로써 그늘 속에 버려두시는 일도 없으십니다.

 

인간들 안에서

욕심 이라는 괴물을 자라게 해서

결국에는 죽음으로 몰고 가는 사탄이와 대비 시키면서

 

우리 아버지 이시며 

악과 절대로 공존 하시지 않으시는 성부 하느님의 자비를 통해서

주시는 은총과 축복을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도래스: 은총,

도레마: 선물,

우리에게 이렇게 자비를 베푸시는 하느님은

여러가지 각양 각색의 선물을 주시는 우리의 아버지 이십니다.

 

*하느님 아버지는 변함도 없으시고 (파르 호 우크 에니 파랄나게)

파랄나게: 이동, 변화, 변동, 바꿈, 입니다.

 

에 트로페스 아포스키아스마,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고자 하시는

은총과 자비와 축복에 대해서

 

하느님은

손 바닥 뒤집듯이 요랬다 조랬다 하시는 그러한 분이 아니시라는 뜻입니다.

 

언제나, 늘, 한결같이,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도 늘 같은 마음과

사랑으로 우리를 지켜 보시며

당신이 원하시는 삶의 모습으로

상향 조정이 되기를 학수고대 기다리고 계시다는 뜻입니다.

 

18 절

하느님께서는

뜻을 정하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피조물의 첫 열매가 된 것입니다.

 

▲에페소서 1:4, 5,   9-12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하시려고

천지 창조 이전에 이미 우리를 뽑아주시고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를 거룩하고 흠없는 자가 되게 하셔서

당신 앞에 설 수 있게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뜻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이었습니다

 

당신의 심오한 뜻을 알게 해주셨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시켜 이루시려고

하느님께서 미리 세워놓으셨던 계획대로 된 것으로서

 

때가 차면

이 계획이 이루어져서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하나가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을 뜻하신 대로 이루시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계획을 따라

우리를 미리 정하시고 택하셔서 그리스도를 믿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맨 먼저 그리스도께 희망을 둔 우리는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뜻을 정하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습니다.

(불레데이스 아페퀴에센 헤마스 로고 알레데이아스)

불레데이스,(원형,불로마이)

하느님의 뜻이나 절대적인 의지 와 결의를 뜻합니다.

 

이러한 의지로

하느님에 의해서 창조된 인간에게 

하느님의 선하시고 인자 하심을 베푸시는 자비하심을 의미 합니다.

 

외부의 간섭도 받으실 필요가 없으시고

주권적인 결단으로

인간에게 선함을 베푸시는 하느님의 의지로 우리 인간을 창조 하셨는데

 

사탄이에 의해서

빼앗긴 인간의 본성과

더불어 찾아온 인간의 죽음과 사망을

당신 자신은 사람이 되시어 이 땅에 내려 오셨고

 

당신이 처음으로 인간을 창조 하셨을 때의 그 본성을 회복 시켜 주시고

죽음과 사망을 없애시는 십자가 제사의 과정을 통하여

인간에게 다시는 죽음과 사망이 없는

독자적인 하느님의 결단으로

 

우리에게 다시 생명을 찾아 주셨다는 하느님의 자비를

나타내는 단어가 불레데이스 아페퀴에센, 입니다.

 

아파르켄,(원형,아파르케)

하느님께 드리는 첫 번 째 희생 제물,

첫 열매들, 맏물, 첫 수확, 이라는 뜻으로

 

구약의 율법의 조항으로 하느님께 드리는 제사시에

동물의 맏배, 곡식 수확에서 첫 열매,

전 인류의 중에서 장자로 선택하신 이스라엘,을 의미 합니다.

 

▲출에급기 4:22

그러면 너는 파라오에게 말하여라.

'야훼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은 나의 맏아들이다.

 

신약 시대에서의 의미는

죽은자들 중에서 첫 번째 열매의 의미로 부활하신 하느님이신 예수님

 

▲고린토전서 15:20-22,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

죽었다가 부활한 첫 사람이 되셨습니다.

 

죽음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온 것처럼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왔습니다.

 

아담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하느님에 의해서 예수님께 인도된 모든 선택된 영혼들을

예수님은 한 영혼도 빠뜨림이 없이 마지막 날에 모두 구원해

주실것 입니다.

 

▲요한복음 6:37-40

그러나 아버지께서 내게 맡기시는 사람은

누구나 나에게 올 것이며

나에게 오는 사람은 내가 결코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 뜻을 이루려고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이루려고 왔다.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내게 맡기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모두 살리는 일이다.

 

그렇다.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 내 아버지의 뜻이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모두 살릴 것이다."

 

이렇게 하느님의 은총으로 예수님께 인도되어

하느님을 믿게된 우리 모두는

예수님을 내세워 제 2 의 창조를 실현하신 하느님 섭리의 제 2 의

창조물이 바로 믿는 우리들 인것 입니다.

 

▲로마서 16:5

그들의 집에서 모이는 교회 여러분에게 문안해 주십시오.

또 나의 친애하는 에베네도에게 문안해 주십시오.

그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 신자가 된 사람입니다.

 

▲고린토전서 15:20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

죽었다가 부활한 첫 사람이 되셨습니다.

 

▲묵시록 14:4,5

그들은 여자들과 더불어 몸을 더럽힌 일이 없는 사람들이며

숫총각들입니다.

그들은 어린 양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다닙니다.

그들은 사람들 가운데서 구출되어

하느님과 어린 양에게 바쳐진 첫 열매입니다.

 

그들의 입에서는 거짓말을 찾아볼 수 없으며,

그들은 아무런 흠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들을 다시 천지창조 하셨던 그 시점으로

데리고 오시기 위하여

사망과 죽음을 없애시는 절차로써

십자가 위에서 스스로 제물되어 죽으시고 

 

우리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다시 찾게 하여주신

생명과 진리의 말씀으로

원래 창조 하셨던 그 인간의 모습으로 다시 만들어 내셨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10:8-19

하느님께서

"말씀은 네 바로 곁에 있고 네 입에 있고 네 마음에 있다."

하셨는데

이것은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을 가리켜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는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또 하느님께서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다는 것을

마음으로 믿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곧 마음으로 믿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에 놓이게 되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게 됩니다.

 

성서에도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수치를 당하지 않으리라."는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유다인이나 이방인이나 아무런 구별이 없습니다.

같은 주님께서

만민의 주님이 되시고 당신의 이름을 부르며 찾는 모든 사람에게

풍성한 복을 내리십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믿지 않는 분의 이름을 어떻게 부를 수 있겠습니까?

또 들어보지도 못한 분을 어떻게 믿겠습니까?

말씀을 전해 주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전도자로서 파견받지 않고서 어떻게 전도를 할 수 있겠습니까?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는 말이 바로 그 말씀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그 복음을 받아들인 것은 아닙니다.

"주님, 우리가 일러준 말을 누가 믿었습니까?"

하고 이사야도 한탄한 일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들어야 믿을 수 있고

그리스도를 전하는 말씀이 있어야 들을 수 있습니다.

 

나는 묻겠습니다.

그들이 그 말씀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까?

분명히 들었습니다.

성서의 말씀에도,

"그들의 소리가 온 땅에 울려 퍼졌고

그들의 말이 땅 끝까지 이르렀다." 하지 않았습니까?

 

나는 다시 묻겠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했습니까?

우선 모세의 말을 들어보십시오.

"나는 너희로 하여금 내 백성이 아닌 자들을 시기하게 하겠고

어리석은 백성을 보고 화나게 하리라." 하였습니다.

 

하느님 께서는

스스로 하신 진리의 말씀에 근거를 두시고

천지창조 때 부터 계획 하신 뜻을

당신의 외아들 예수님을 사람이 되게 하시고 이 땅에 내려 보내시고

인간들을 구원 하시겠다는 수순을 밟으시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 진리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믿음으로

   갖고 있는 믿음이 옳바르다는 것이 입증되는 실천적인 믿음 ※

 

19 절

나의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알아두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듣기는 빨리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십시오.

또 여간해서는 화를 내지 마십시오.

 

*누구든지 듣기는 빨리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십시오

(에스토...타퀴스 에이스 토 아쿠사이...브라뒤스 에이스 오르겐)

 

예수님 승천 이후에

얼마 동안은 유대인의 회당을 같이 사용 할 수 있었지만

유대 전통 교리와 잦은 마찰과 교리의 상이함으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유대인에 대해 박해가 시작 되었습니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많은 그리스도 교인들은

주변국으로 피난을 하였으며 그 곳에서 신앙 생활을 유지 하였습니다.

 

이럴때 이들의 모임은

같은 교우 중에서 어느 가정을 선택해서

그 집에서 모임을 갖게 되었고 말씀을 사도들로 부터 듣고

성체성사를 통하여 미사성제를 하느님께 봉헌 하였습니다.

 

이렇게 모임을 갖게 될 때

신앙적인 토론도 병행하게 되었는데

본 절에서 야고보가 말하는 것은

토론 할 때 이렇게 하라고 지침을 밝혀주고 있는 입장 입니다.

 

상대방의 이야기가 다 끝날 때 까지 경청해서 들으라는 것입니다.

상대가 이야기 하는것을 잘 들어야

그 이야기에 대한 답변을 잘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잘 듣지 못하고 자기의 이야기를 먼저 하고저 급급 하다면

토론의 본질이 무엇 인지를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상대의 의견을 무시하고 지기 주장만 내 세운다면

결국에 가서는

토론도 되지를 않고 분노를 나타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분노는

하느님의 의를 나타내지 못하는 것이므로

인내로써 상대의 이야기를 다 듣고

충분히 숙지를 한 다음에 본인의 이야기를 펼쳐 나가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상대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지를 않는다면,

상대의 이야기를 다 듣지않고 그 이야기를 무시하고 내 이야기를

우선시하여 말을 한다면,

 

먼저 이야기를 했던 당사자나

그 이야기를 막고 내 주장만 펼치려는

상대와 나는 분노를 서로에게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잠언 18:1,2  6,7, 13, 20, 21,

남 잘되는 것을 배아파하는 사람은 외톨이가 된다.

미련한 자는 깨우쳐주는 말을 싫어하고 제 생각만 내세우려 한다.

 

미련한 자의 입술은

싸움을 일으키고 그 입은 매를 청한다.

미련한 자는

그 입으로 망하고 그 입술에 스스로 옭아 매인다

 

다 듣지도 않고 대답하는 것은 수모받기 알맞은 바보짓이다.

 

입을 잘 놀리면

단 것을 실컷 먹고

입술을 잘못 놀리면 쓴 것을 들이켜게 된다.

죽고 사는 것이 혀끝에 달렸으니 혀를 잘 놀려야 잘 먹을 수 있다.

 

 

오르겐,(원형,오르게)

정신적인 긴장, 분노, 격노, 성질, 기질,

마음의 움직임, 동요에 대한 충동, 격렬한 분노, 입니다

 

▲잠언 19:11,  16:32,  12:13-19,  15:1,2,

사람이 슬기로우면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다.

남의 허물을 덮어주면 영광이 돌아온다.

 

함부로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은 용사보다 낫다.

제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은 성을 탈취하는 것보다 낫다.

 

못된 사람은 입술을 잘못 놀려 올가미에 걸리지만

착한 사람은 곤경에서 벗어난다.

 

입을 잘 놀리면

좋은 것을 배불리 먹고 수고하면 그만큼 돌려 받는다.

 

어리석은 사람은

제 잘난 멋에 살고 슬기로운 사람은 충고를 받아들인다.

 

어리석은 사람은

당장에 노여움을 드러내지만 어진 사람은 모욕을 받아도 덮어둔다.

 

바른말 하는 사람은 사실대로 진술하지만

거짓 증인은 하느니 거짓말뿐이다.

 

함부로 뱉는 말은 비수가 되지만

슬기로운 사람의 혀는 남의 아픔을 낫게 한다.

 

참말만 하는 입술은

길이 남아나지만 거짓말하는 혀는 눈 깜빡할 사이에 잘린다.

 

부드럽게 받는 말은

화를 가라앉히고 거친 말은 노여움을 일으킨다.

 

슬기로운 사람의 혀는

바른 인생길을 깨우쳐주지만

미련한 사람의 입은 어리석은 소리를 뱉는다.

 

본 절은

신약의 잠언 이라고 불리워지고 있습니다.

 

20 절

화를 내는 사람은 하느님의 정의를 이룰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의 정의를 이룰 수가 없습니다

(가르...다카이오쉬넨 데우 우크 에르가제타이)

대화 나 토론을 할 때

화를 내거나 성을 내지 말아야 한다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 입니다.

 

하느님의 의는 무엇 일까요

1,

하느님이 보시기에 좋은것 이며 이것을 통해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공의 입니다.

이 공의는

하느님의 정의 이시며 하느님의 속성 이시고

세상을 통치 하시는 기본 원리 입니다.

 

▲시 편 89:14

정의와 공정이 당신의 옥좌를 받들고,

사랑과 진실이 당신의 거둥을 인도하옵니다.

 

화 가 많은 사람이나 화 를 밖으로 많이 표출하는 사람은

판단력이 흐려지며 공정한 정의를 나타 낼 수 가 없습니다,

 

2,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 입니다.

내가 성을 냄으로 내 마음은 황패 하여지고

그 자리에 사탄이가 들어 오겠끔 자리를 만들어 주는것 이므로

그로 인하여 

나와 하느님과의 관계를 어긋나게 한다는 것입니다.

 

3,

분노는 이웃에 대한 배려가 없는것 이며

이웃의 단점만 파고 들게 하므로

하느님의 의를 드러 내는데 결정적인 방해와 장애물 역활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기준을 제시하는 야고보는

예수님의 산상수훈 교훈에 기초를 하고 있습니다.

형제에게 노하기를 더디 하고 저주 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 입니다.

 

21 절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온갖 악한 행실을 버리고

하느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속에 심으신 말씀을 공손히 받아들이십시오. 그 말씀에는 여러분을 구원할 능력이 있습니다.

 

*모든 더러운 것과 온갖 악한 행실을 버리고

 (아포데메노이 파산 뤼파리안 카이 페릿세이안 카키아스)

 

앞 절 에서 언급 했던

화와 성냄을 멀리하고 그것을 통해서 오는

모든 더러운 것과 온갖 넘치는 악한 행실을 벗어 버리라고

더 진전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뤼파리안,(원형,뤼파리아)

오물, 쓰레기, 불결함, 외설, 추잡스러운 말, 추행, 부도덕, 오염, 입니다.

 

사람의 입을 통해서 나올 수 있는 것들 로써

이런 말 들로 시작된

윤리적 도덕적 더러움 이라는 뜻이며

 

페릿세이안,(원형,페릿세이아)

악을 잘못 다스림으로 급속하게 팽창하는 모습의 뜻입니다.

 

사탄이가 주는 죄를 짓게 하는 속성으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나를 통재하지 못하면

내 안에서 분수처럼 악은 솟아 오르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악으로 전위 될 수 있는 모든 원인을 과감하게

아포데메노이,(원형,아포티데미)

자기 자신의 옛 모습을 완벽하게 벗어 버리는 것입니다.

내적인 악의 동기를 끊어 버리는 적극성을 말합니다.

 

▲에페소서 4:22- 27,

옛 생활을 청산하고,

정욕에 말려들어 썩어져 가는 낡은 인간성을 벗어버리고,

 

마음과 생각이 새롭게 되어

하느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새 사람으로 갈아 입어야 합니다.

새 사람은 올바르고 거룩한 진리의 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거짓말을 하지 말고 이웃에게 진실을 말하십시오.

우리는 서로 한 몸의 지체들입니다.

화나는 일이 있더라도 죄를 짓지 마십시오.

해 질 때까지 화를 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악마에게 발붙일 기회를 주지 마십시오.

 

하느님으로부터 선택을 받은 우리 교우들은

예수님과 함께

우리의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린것 이므로

 

우리 마음에 넣어주신 성령님을 통하여 

사탄이가 우리 마음에 들오지 못하도록

악한 죄악을 지을 수 있는

모든 동기들을 뿌리채 뽑아내야 합니다, 라는 뜻입니다.

 

▲로마서 6:4-6,

과연 우리는 세례를 받고 죽어서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스러운 능력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 생명을 얻어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같이 죽어서 그분과 하나가 되었으니

그리스도와 같이 다시 살아나서 또한 그분과 하나가 될 것입니다.

 

예전의 우리는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서 죄에 물든 육체는 죽어버리고

이제는

죄의 종살이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심으신 말씀을 공손히 받아들이십시오

  (엔 프라우테티 텍사스데 톤 엠퓌톤 로곤) 

성령님을 통하여 악의 동기들을 벗어 버렸으니

다시는

악이 우리 마음을 지배 하는 일이 없도록

하느님의 말씀으로 무장을 해야 한다는 말씀 입니다.

 

프라우테티,

사나운 짐승을 길들인 상태,

고열로 인해 고통 받던 환자가 약 으로 인해 진정된 상태,

갈급한 갈증 상태에 냉수 한 대접으로 갈증에서 벗어 난 상태를

나타내는 뜻으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내적인 악의 동기들을 추수리고 진정 시키는 상태를 뜻합니다.

 

▲ 마태오 5:5-7,

온유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만족할 것이다.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로곤: 말씀,

엠퓌톤,(원형,엠퓌토스) 은 가르침을 통해서 심기워진, 이라는 뜻으로

 

생명의 말씀, 진리의 말씀, 거짓이 조금도 없는 말씀,

그 말씀으로 내 영혼을 도배하고

악의 원인이

내게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생명의 말씀 꽉 붙잡고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말 을 할 수 있는 야고보는

본인의 체험에서

나온 말이기 때문에 확신에 차서 하는 말 입니다.

 

예수님 생전에 야고보 는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로 받아 들이지 않았던 인물 이지만

예수님 부활 승천 후 에

성령 강림 때에 성령충만 받고 변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공생애 3 년 동안에 하셨던 모든 말씀들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되 집으며 되 새기면서

 

그 말씀이

지극히 거룩한 하느님이신 예수님의 생명의 말씀 이었음을 체험한

자기의 체험담을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는것 입니다.

 

▲로마서 1:16,17,  3:21-27,

나는 그 복음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습니다.

복음은 먼저 유다인들에게,

그리고 이방인들에게까지 믿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구원을 가져다 주시는 하느님의 능력입니다.

 

복음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시는

길을 보여주십니다.

인간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성서에도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된 사람은

살 것이다."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이제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시는 길이 드러났습니다.

그것은 율법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율법서와 예언서가 바로 이 사실을 증명해 줍니다.

 

하느님께서는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아무런 차별도 없이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십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느님이 주셨던 본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모든 사람을 죄에서 풀어주시고

당신과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은총을 거저 베풀어주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는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제물로 내어주셔서 피를 흘리게 하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느님께서 당신의 정의를 나타내셨습니다.

과거에는 하느님께서 인간의 죄를 참고 눈감아주심으로

당신의 정의를 나타내셨고

 

오늘날에 와서는

죄를 물으심으로써 당신의 정의를 나타내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올바르시다는 것과

예수를 믿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신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내세울 만한 것이 무엇입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되찾게 되었습니까?

율법을 잘 지켜서 그렇게 된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믿음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22 절

그러니 그저 듣기만 하여

자기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말고

말씀대로 실천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기네스데 데 포이에타이 로구 카이 메 모논 아크로아타이

파랄로기조메노이 헤아우투스)

 

*듣기만 하여 자기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말고

 (카이 메 모논 아크로아타이 파랄로기조메노이)

 

▲마태오 7:15-27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양의 탈을 쓰고 너희에게 나타나지만

속에는 사나운 이리가 들어 있다.

 

너희는 행위를 보고 그들을 알게 될 것이다.

가시나무에서 어떻게 포도를 딸 수 있으며

엉겅퀴에서 어떻게 무화과를 딸 수 있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게 마련이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는 모두 찍혀 불에 던져진다.

 

그러므로 너희는

행위를 보아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다."

 

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산상교훈의 말씀을 상기하고

야고보는 서간을 쓰고 있습니다.

 

마태오는 예수님은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아라는 사실에 대해서

구약 성경을 수없이 인용을 했다면

야고보는

생전에 예수님이 말씀 하셨던 말씀들을 들추어내서

근거를 거기에 두고 서간을 쓰고 있습니다.

 

▲로마서 2:13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율법을 듣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율법대로 실행하는 사람입니다.

 

라고 사도 바오로 도

예수님의 생전의 말씀에 근거하여 서간을 썼고

예수님의 말씀에 모든 근거를 두고 복음전파를 하였습니다

 

파랄로기조메노이,(원형,파랄로기조마이)

잘못 세다, 오산하다, 그릇된 계산을 하다, 지우다, 강요하다,

떠 맡기다, 미혹하다, 함정에 빠뜨리다, 입니다.

 

파라(위반, 정도이탈) + 로기조마이(계산하다) 의 합성어로

잘못된 추론으로 기만하다, 라는 뜻으로

 

구약의 성서 말씀과 예수님의 말씀을

아전인수로 해석을 통하여 자기 멋대로 하느님의 말씀을 정의하여 놓고

자기가 믿고 싶은 하느님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믿음의 근거를 두고

우매하고 무식한 믿음으로

생명의 말씀을 무시하는 결과를 만들지 말라, 는 뜻입니다.

 

말씀을 듣고도

행동에 옮기지 않는 믿음은 거짓믿음 이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머리로만 받아 드리고 머리만 잔뜩 커져서

학문적인 신앙을 갖으면서 허위와 위선의 기쁨을 갖는다면

스스로 속이는 결과이고

종국에는 파멸로 이어 진다는 뜻입니다.

 

이 주제를 야고보는 2:14-26 에

좀더 구체적으로 전개해 나갑니다.

 

23 절

말씀을 듣고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제 얼굴의 생김새를 거울에다 비추어보는 사람과 같습니다.

 

24 절

그 사람은 제 얼굴을

비추어보고도 물러나서는 곧 제 모습을 잊어버리고 맙니다.

 

거울에다 비추어보는 사람과,(안드리 카타노운티...엔 에솝트로)

카타노운티,(원형,카타노에오)

흘끗 처다보는 것이 아니라

자세히 거울에 있는 자기의 얼굴을

꼼꼼하게 들여다 보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뒤 돌아 보면 그렇게 들여다 봤던

자기의 얼굴을 잊어 버리는 것과 같이

말씀을 통해서

본인의 내부 모습을 들여다 보아 놓고도,

변화를 해야 겠다고 결심을 해 놓고도

 

거울을 보고 뒤돌아서 지기의 얼굴을 잊어 버리는 것과 같이

결심도 잊어 버리고 원래의 생활 상태로 되 돌아가는 것과

다를바가 없다는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행위는 곧 자기를 스스로 속이는 것이고

말씀을 기만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25 절

그러나 우리에게 자유를 주는 완전한 법을 잘 살피고

꾸준히 지켜 나가는 사람은

그것을 듣고 곧 잊어버리는 일이 없으며

들은 것을 실천에 옮깁니다.

이렇게 실천함으로써

그 사람은 하느님의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자유를 주는 완전한 법을 잘 살피고 꾸준히 지켜 나가는 사람은

(호 데 파라큅사스 에이스 노몬 텔레이온 톤 테스 엘류데리아스)

 

파라큅사스, 의 원형 파라큅토

파라(~ 곁에, ~보다) + 큅토(몸을 굽히다) 의 합성어로

어떤 사물을 보기 위해

몸을 굽히고 들여다 보다, 주의 깊게 들여다 보다,

호기심을 가지고 조사하다, 라는 뜻입니다.

 

생명의 말씀 속에 들어 있는 진리의 말씀을 스쳐 지나가지 않고

세세히, 자세히, 꼼꼼하게,

진리의 뜻을 적극적으로 찾는 행동을 뜻합니다,

 

이렇게 들여다 보고 찾게되면

그 진리의 말씀이 우리에게 완벽한 자유함을 준다는 뜻입니다.

 

야고보가 이야기하는 자유함은

이웃 사랑에 대한 실천 입니다.

 

▲레위기 19:17,18

형제를 미워하는 마음을 품지 마라.

이웃의 잘못을 서슴지 말고 타일러주어야 한다.

그래야 그 죄에 대한 책임을 벗는다.

 

동족에게 앙심을 품어 원수를 갚지 마라.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아껴라. 나는 야훼이다.

 

▲마태오 22:36-40

"선생님,

율법서에서 어느 계명이 가장 큰 계명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 가는 계명이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한

둘째 계명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 두 계명이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골자이다."

 

이러한 사랑을 이웃에게 실천에 옮김으로

톤 테스 엘류데리아스: 완벽한 자유함, 을 앋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자유는

 

▲갈라디아서 5:1,  13, 14,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셔서

우리는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마음을 굳게 먹고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

 

형제 여러분,

하느님께서는 자유를 주시려고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를

여러분의 육정을 만족시키는 기회로 삼지 마십시오.

오히려 여러분은 사랑으로 서로 종이 되십시오.

 

모든 율법은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하신 한마디 말씀으로 요약됩니다.

 

이 자유함은

예수님의 지극히 거룩하신 십자가 제사를 통해서

당신의 거룩한 생명을 버림으로 우리에게 주신 영원한 생명과 완벽한 자유함 입니다.

 

이 자유함 속에는

하느님의 지극히 거룩한 임재가 전재되어 있습니다.

 

▲고린토후서 3:17,18

주님은 곧 성령입니다.

주님의 성령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얼굴의 너울을 벗어버리고

거울처럼 주님의 영광을 비추어줍니다.

동시에 우리는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여

영광스러운 상태에서 더욱 영광스러운 상태로 옮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령이신 주님께서 이루시는 일입니다.

 

파레메이나스,(원형,파라메노)

곁에 남아있다, 지속적으로 머물고 있다, 입니다.

 

영원한 생명의 말씀 곁에,

이 말씀이 주시는 자유 곁에, 지속적으로 머물면서

이웃 사랑에 대한 실천을 옮겨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실천함으로써 그 사람은 하느님의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마카리오스 엔 테 포이에세이 아우투 에스타이)

안간힘을 내어 말씀을 힘써서 지키는 사람은,

그 말씀이 내게 하시는 지시를 충실하게 따르는 사람은,

행동에 옮기는 그 행함으로 축복을 받을 것이며

그 행함의 결과로도 축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율법을 내려 준 것은

그 율법을 지키면서 복을 받고 지키는 그 결과로 축복을 주시기 위해

율법을 내려 주셨지만

 

사탄이에 의해서 본말이 전도된 결과를 갖고왔기 때문에

새로운 기쁜소식인 하느님이 사람이 되시어

직접 이 땅에 내려 오신것 입니다.

 

주님이 직접 우리에게 주신 생명의 말씀을 듣기를 즐거워하고

그 말씀 지키기를 성실히 한다면

 

엔 테 포이에세이 아우투: 그가 행하는 그것 안에서,

말씀을 행하는 그 자체와 과정을 통해서

축복을 받게 된다는 것이며

그 순간 하느님은

지키고 실천하는 그에게 만족감과 기쁨을 넘치도록 주신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5:10

그러나 나를 사랑하여

나의 명령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그 후손 수천 대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은 사랑을 베푼다.

 

말씀 안에 사는 사람에게는

하느님이 주시는 축복을 절대로 접지 않으시며

그 말씀 지키고 실천에 옮기는 내 모습을 보시면서

하느님은 기뻐 하시고 즐겁게 여기시며 행복해 하시고 그 결과로

내게 그 후손 수천 대에 이르기까지 한결 같은 사랑을 베푼다,  라는  말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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