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레지오

2006년 12월호 [향기로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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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마리애 [legio] 쪽지 캡슐

2006-11-29 ㅣ No.74

 

[ 주님만을 믿습니다 ]

 

제주교구 동광성당 천상 은총의 어머니 Pr. 고용성 미카엘 부단장

ꡒ야훼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 파아란 풀밭에 이 몸 누여 주시고, 고이 쉬라 물터로 나를 이끌어 주네ꡓ 성가테이프를 들으며 차창 밖을 보면 가을 하늘이 너무나 파랗고 화창하여 주님께 감사기도가 저절로 나오는 오후, 고용성 형제와의 약속 시간에 늦지 않도록 부지런히 동광성당으로 달려간다.

고용성(미카엘) 형제는 1946년에 아버지 고성표와 어머니 부영인 사이에서 5남3녀의 장남으로 구좌읍 상도리에서 태어났다.

군대 훈련소 시절, 군목이 와서 설교를 하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ꡒ세계 4대 성인 예수 그리스도, 석가모니, 공자, 소크라테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참종교를 세웠다.ꡓ 그 말씀이 머리에 각인되어서, 제대 후에 고향에 내려와서는 동네에 있는 예배당에 수십 차례 다녔다가 다시 잊고 살았다고 한다.

1970년에 성산수고에 발령을 받아 근무하다가 1971년에 중매로 김양수(헬레나) 자매와 결혼하여 그럭저럭 지내다가 어느날 아내가 남편에게 ꡒ여보, 일요일에 이렇게 집에만 박혀있지 말고 교회를 다니면 좋을것 같아요ꡓ라고 했고, 잊고 있던 예배당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동네에 있는 여호와의 증인, 제7일 안식일 교회, 장로교회를 두루 방문하면서 과연 어디를 다닐까 망설이다가 교회에 가서 상담을 하였다. 그런데 교회에 다니려면 몇 가지 제약조건이 있었다. 술과 담배를 못하고 특히나 조상님께 제사를 지낼 수 없다는 것이 맘에 걸렸다.

그러다가 성산포공소에서 1971년 4월부터 아내와 열심히 예비신자 교리를 받고 그해 성탄절에 서귀포성당 주임이신 양 하워르드(성골롬반 외방선교회 소속) 신부님께 미카엘, 헬레나라는 세례명으로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천주교 신앙생활을 시작한 미카엘 형제는 공소청년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주변의 난산공소, 표선공소, 우도공소, 세화공소, 김녕공소를 방문하며 전교활동과 청년회활동을 열심히 하느라 직장에 다녀오면 매일 공소에서 살다시피 하였다. 이렇게 젊은이들이 중심이 되어 열심히 전교활동을 한 결과, 주님께서는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시어 성산포공소를 1973년에 본당으로 승격시켜주셨다.

1975년에는 제2대 사목회장으로 임명되어 본당 평신도 활동의 주역으로서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다가 1977년 1월에 제주시로 이사하며 광양성당에 다니게 되었다. 신설본당인 광양성당에는 사무장이 없어서 사무장 일을 보며 당시 사목회장인 이창훈(아우구스티노) 형제가 사목회 총무를 맡으라고 해서 무척 바쁜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2년 후에는 사목회 부회장을 맡아 본당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1978년에는 레지오 마리애에 입단하여 정재영(스테파노, 전 광주 세나뚜스 단장) 단장 밑에서 일 년간 활동단원으로 활동하다가 1979년에는 야간대학에 진학하게 되어 레지오를 쉬게 되었다.

야간대학을 마친 1982년에는 구세주의 어머니 쁘레시디움을 창설하여 초대단장으로 활동하면서 레지오의 참맛을 느끼며 열정적으로 활동을 하게 되었는데 그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레지오를 쉬지 않고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1986년에는 제주시 ꡐ천주의 성모ꡑ 꾸리아를 설립하여 초대 단장을 역임하고, 1987년에 제주 ꡐ치명자의 모후ꡑ 꼬미씨움 서기가 되어 교구 평의회 간부로 활동하게 되었다. 1991년에는 제주 동문성당 ꡐ자비의 모후ꡑ 꾸리아를 설립하여 초대 단장을 역임하였다. 그리고 1993년에는 제주 치명자의 모후 꼬미씨움 부단장이 되었다. 1995년에는 제주 동광성당 ꡐ모든 은총의 중재자이신 마리아ꡑ 꾸리아를  설립하여 초대 단장을 역임하였다.

고 미카엘 형제는 ꡒ봉사자란 모름지기 물과 같아야 한다ꡓ면서 ꡒ물은 스스로 높은 곳에 오르지 못하여 항상 아래로 흘러가는 겸손의 미덕과 어떤 형태의 그릇에도 다 담겨지며, 더러운 것을 정화시켜주기도 한다ꡓ며 주어진 일은 순명의 정신으로 실천하고 있다.

1996년에는 제주교구 치명자의 모후 꼬미씨움 제7대 단장으로 피선되었는데, 이때는 제주교구에 레지오 단원이 폭발적으로 확산된 시기였다. 그리하여 교구 내 모든 본당에서 본당 꾸리아를 설립하다 보니 단원 기본교육, 간부교육, 단장교육, 기사교육, 특별교육 등 한 달에 두세 번의 교육을 진행하느라 집에 들어가기도 힘들었다. 교구 평의회 단장을 하면서 본당 일치의 모후 쁘레시디움 초대 단장을 겸직하였다. 2001년에는 동광성당 제2 꾸리아인 ꡐ모든 성인의 모후ꡑ 꾸리아를 설립하여 초대 단장을 역임하고, 현재 ꡐ천상 은총의 어머니ꡑ 쁘레시디움 부단장으로 활동 중이다.

고 미카엘 형제가 레지오 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 한 가지.

어느 날 친구가 병원으로 문병을 와달라고 했다. 그는 군 시절에 백령도에서 세례받았다며, 다시 성당에 다니고 싶다고 했다. 그리하여 교적을 찾기 위해 인천교구와 백령도성당에 편지와 전화를 수십 차례 했지만 확인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한 친구와 연락이 닿아 세례받은 것을 증명할 수가 있어서, 본당 양명형 신부님과 의논하여 새로운 교적을 만들었고 부인도 입교하여 세례를 받고, 관면혼배도 하였다.

고 미카엘 형제에게는 아픔이 있다. 2004년 장남이 회사 체육대회에서 400m 이어달리기를 한 후 쓰러져 그대로 하늘나라로 간 것이다. 쌍둥이 손자를 두고 먼저 떠난 아들을 용서하고 기도를 바치는 것이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형제는 새벽 5시에 일어나 묵주의 9일기도와 까떼나를 바치고 성경을 읽고 필사한 후 1시간 정도 운동을 하며 체력을 단련한다.

레지오에 대한 조언을 부탁했더니, ꡒ레지오는 평신도 단체입니다. 내가 하는 일이 하느님의 뜻에 맞는지를 판단하면서 활동해야 합니다.

개인적인 이해관계만 중시해서는 안 되고, 레지오 활동을 하면서 늘 사제의 의견에 맞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주교님 사목교서에서 소공동체 활동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레지오 단원은 소공동체 활동에 적극 동참하고 솔선수범해야 합니다. 성가정을 이루기 위하여 소공동체 활동에 동참한다는 것은 레지오 단원으로서의 올바른 역할이라고 봅니다. 소공동체를 살리는 것이 바로 레지오를 살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ꡓ라고 하셨다.

현재는 제주교육박물관 관장직에 있지만 금년 말에는 정년 퇴임하게 된다며 꿈에 부풀어 있다. 그동안 못했던 신앙활동과 봉사활동을 하고 싶고, 레지오를 통해 좋은 이웃들과 함께하는 본당 공동체를 만들고 싶은 것이다. 레지오를 해오면서 많은 감동과 기쁨의 시간도 있었지만 문전박대당한 적도 있고 시새움을 받은 적도 있다. 하지만 성모님의 정신대로 봉사하는 삶을 살고 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한다. 항상 젊게 활동하려는 고 미카엘 형제는 앞으로도 지역사회에 봉사함은 물론 평생 레지오 단원으로 남고 싶어한다.

ꡒ레지오는 평생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ꡓ 반문하는 고 미카엘 형제의 마음속에서 레지오를 소중하게 여기는 아름다운 마음이 겨자씨처럼 믿음의 나무로 자랄 것이다.

_김승호․암브로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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