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2동성당 게시판

(본당)가톨릭 그룹성서 체험담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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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2동성당 [songsan2] 쪽지 캡슐

2002-11-30 ㅣ No.2187

출애굽기반

                 변진선(소화 데레사)

 

지난해 1월 6일 세례를 받고 주위의 권유와 말씀 속에 하느님의 깊은 뜻을 알기 위해 그해 3월 창세기반에 문을 두드리게 되었습니다.

창조의 놀라운 일들을 행하시는 하느님, 우리의 존재와 삶은 하느님의 손안에 있다는 것과 아브라함 통해서 하느님의 약속이 불확실하고 인간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더라도 신뢰를 잃지 않고 그 약속을 소망하며 기다리는 것이 신앙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올해 3월에는 구약성서 안에서 가장 중심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는 출애굽기를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출애굽기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야훼 하느님의 이야기이며 이스라엘 역사 체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 탈출, 광야의 여정, 시나이 계획을 통해서 하느님의 구원업적을 잘 체험하였으며 이 체험을 통해서 무엇보다도 하느님이 누구신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곧 하느님은 야훼 한 분이시며 그 분을 출애굽기 사건을 통해 당신이 행방시키는 하느님이심을 계시하였습니다.

출애굽 사건은 억압자에게는 도전과 경고로 억눌린 자에게는 희망과 복음의 선포로 작용하였습니다. 하느님은 인간의 역사를 주도적으로 자유롭게 이끄시어 당신의 선한 뜻을 이루고자 하시며 따라서 인간의 역사에서 하느님의 뜻이 어떻게 드러나는 가를 우리 일상생활에서 살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목표가 뚜렷하지 않은 떠남은 한 낱 방황이나 유랑에 불과하다고 한다면 우리의 삶과도 같은 것 같습니다.

이 삶의 여정 속에서 저의 출애굽기의 체험을 이야기 할까 합니다.

지금부터 3년 전 자식들을 끔찍이 사랑하셨던 친정어머니께서 이른 아침 횡단보도에서 퇴임하신 한 신부님의 승용차에 치여 한달 동안 사경을 헤매시다가 자식들 이름 한번 제대로 불러 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가슴 아픈 사연이 있습니다.

그 당시 연세는 예순 여섯이며 건강하게 생활하고 계셔서 저희들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에 대해 믿기지 않았습니다.

친정아버지께서도 평생 교육자로 계시다가 어머니 보다 3년 먼저 돌아가셨으며 몇 해에 걸쳐 이별의 준비도 없이 부모를 잃은 저의 가족들은 더욱 마음 아파했습니다.

어머니께서 응급실에 계실 때 신부님과 수녀님이 몇 번 다녀가시면서 몸 둘 바를 모르겠다고 하시며 기도로써 저희를 위로하셨습니다.

가해자는 종교인이고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용서라는 것으로 뒷마무리가 깨끗하게 해결되었습니다.

장례를 다 치르고 수녀님 두 분이 저의 집에 찾아오셨습니다.

저희 가족들의 손을 꼬옥 잡으시며 너무 좋은 분들을 만나 이 은혜 평생 잊지 않고 저의 어머니와 가족을 위해 평생 동안 기도로 보답 하겠다며 먼 훗날 좋은 인연으로 다시 만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서류상의 일은 잘 마무리 되었지만 가족들의 마음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하루하루가 우울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런 날이 계속되는 과정에서 저의 남편(베드로)이 갑자기 저의 눈치를 보며 성당에 가고 싶다기에 처음에는 어이가 없어서 할말을 잃었습니다.

그 당시 저의 친정과 시댁은 독실한 불교 신자였기에 농담하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렇다고 주위에서 입교 권유를 한 것도 아닌데...

지금은 때가 이른 것 같으니 3년 후 아니면 1년 후에 다시 생각해 보자고 말해보았지만 제 말은 듣지 않고 주위에 성당 다니는 분이 있으면 소개시켜 주든지 하면서 그렇게 하겠다고 건성으로 대답을 하였습니다.

처음에 미루기 시작한 것이 어느덧 한달이 되면서 저에게 화를 내며 한바탕 집안 분위기가 소란해졌습니다. 남편의 고집에 못 이겨 가까이 사는 신자분에게 이야기를 하였더니 저의 집에 방문함과 동시에 바로 성당에 첫 발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예비자 교리는 9월인데 6월부터 주일을 빠짐없이 챙기는 남편의 모습을 보니 서운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성당 분위가 어떠냐고 물으면 마음이 너무 편안하다고 말하는 남편이 미웠습니다.

9월에 남편과 둘째딸이 예비자 교리를 시작하여 다음해 3월 5일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남편과 딸이 세례를 받는 날, 거의 마지막 끝날 무렵에 내키지 않았지만 꽃다발을 들고 성당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그 동안 심적으로 힘들었던 시간을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주위에선 축하한다면서 선물을 건네는 모습조차 보기 싫었습니다. 선물포장도 뜯지 않고 눈치만 보는 남편(베드로)은 십자고상만 벽에 달자고 할 때 마음만 있으면 되지 그것을 꼭 달아야 하느냐며 불만을 표시하였습니다.

십자고상은 결국 며칠 후 구석진 곳에 세워 놓고 바라보는 남편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남편한테 미안하기도 하고 아이 같으면 한번 때려 주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7월에 아들이 세례를 받고 남편은 지역장, 지금의 구역장이 되었습니다. 신영세자로써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맡고 나니 주위 분들이 야속하고 걱정 반, 부담 반으로 불만을 토로 하였습니다.

저의 도움이 필요로 하는 과정에서 저는 끌려가다 시피 하여 그 해 9월에 예비자 교리를 신청하면서 다음 해 1월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예비자 교리 중에도 신부님의 가르침은 딴 세상 이야기처럼 들렸고 시간만 때우고 왔다 갔다 하면서 얼떨결에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세례를 받고 첫 미사 때 기도문을 제대로 외지 못하고 있는 저의 모습이 너무 한심한 것 같아 그 때부터 기도문을 외우기 시작하였습니다.

기도문을 한 줄씩 외울 때마다 그 동안의 상처와 분노등 모든 적개심도 하나씩 잊혀져 갔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과정에서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하느님께 저를 온전히 맡겼습니다.

하느님도 그 마음을 어여삐 여기셨는지 평일미사와 쓰기성서 그리고 성서공부로 저를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저희 친정어머니의 일을 너무 잘 아시는 시어머님께서는 아무 거부 없이 예비자 교리를 거쳐 올해 세례를 받으셨고 얼마 전에 돌아가신 아버님께서도 대세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저의 큰 딸도 세례를 받으면서 성가정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제가 성서공부를 2년째 하면서 하느님은 나에게 당신의 자녀로 만들기 위해 미리 계획하고 계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하느님 자녀가 되지 않았더라면 저의 광야생활은 지금까지 계속되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신체적, 정신적, 감정적인 면에서 고통을 겪을 수 밖에 없음을 생각하며 저에게 일어난 모든 고통도 걸림돌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디딤돌로 작용하도록 구원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잘못을 내버려 두시지 않고 항상 굽어 살피시며 자비하심으로 언제나 구원의 손길로 우리들의 진정한 기도로써 손을 뻗치면 잡아주시어 이끌어 주심을 느꼈습니다.

소명 받아 떠나는 모세의 길이 희생과 아픔을 겪지 않으면 이루어 질 수 없음을 보여주듯이 저도 끊임없는 인내와 희생으로 저에게 맡겨진 소명을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결과는 오로지 하느님께 맡기는 겸손의 자세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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