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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교황의 사목적 과제 (하) 세상과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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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4-20 ㅣ No.93

[창간86주년 특별기획] 새 교황의 사목적 과제
- 신학자 100인 설문 바탕으로 (하) 세상과 교회

빈부격차 · 생태계 파괴 극복에 인류 미래 달렸다



교회는 세상 속에 존재한다. 인간의 권리와 존엄성이 훼손되는 세상의 현실은 곧 교회가 짊어지고 가야 하는 십자가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 그리고 급기야는 십자가에 못 박혀 인간의 죄를 보속하고 영원한 생명의 희망을 내어주신 것은 이처럼 세상, 하느님의 피조물 전체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새 교황의 과제는 교회 안에 갇혀 있지 않다. 교황은 하느님 백성의 통치라는 직무를 수행하지만, 궁극적으로 온 세상의 복음화를 위해 일하는 종이며, 복음화의 과제는 온 세상이 하느님의 은총에 참여하도록 이끄는 것이다. 새 교황의 과제에 대한 설문에 응답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신학자 100인은 이처럼 작금의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다양한 과제들에 대해서 매우 구체적이고 일관성 있게 지적하고 있다.

세상과의 관계, 그리고 세상 속에서의 새 교황과 그리스도인의 과제에 대해 신학자들이 가장 많이 지적한 것은 ‘빈곤과 세계화의 문제’(24명)이다. 빈곤은 그저 절대적인 궁핍의 상태에 대한 우려가 아니다. 갈수록 첨예해지는 양극화, 부익부 빈익빈의 문제와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빈곤의 문제는 세계화 현상과 신자유주의에 바탕을 둔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점을 염두에 두고 있다.

두 번째로 많은 지적을 하고 있는 것은 ‘생명·가정 윤리문제’(16명)이다. 낙태와 피임, 동성애 등 생명윤리 문제는 교회가 보수적이라는 세속의 비난 속에서도 결코 타협하거나 굽히지 않고 있는 윤리·도덕적 영역이다. ‘생태 문제에 대한 통합적 접근’(12명)과 ‘대화와 증거를 통한 선교’(10)의 과제도 신학자들이 새 교황의 중요한 과제로 꼽는다.

생태학적 관심은 생명윤리, 빈곤과 정의 구현의 문제와도 직결되는 것으로 인식된다. 또한 ‘대화와 증거’를 통한 선교와 복음화의 필요성은 곧 교회가 자신이 가르치는 바를 실천하는가 하는 진정성에 대한 문제 제기와도 직결되고 있다.


▨ 빈곤, 그리고 교회의 가난 실천

‘빈곤과 세계화의 문제’는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과제 중의 하나이다. 빈곤과 가난은 인류 역사에서 사라진 적이 없었던 고통이었지만, 오늘날 빈곤 문제는 그 양상을 달리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즉, 오늘날 빈곤의 문제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라는 이념과 경제 체제로 인해 야기되는 극단적인 양극화의 문제로 인식된다.

김인숙 수녀(인보성체수도회)는 이렇게 말한다.

“세계화의 문제는 경제 제도의 문제와 맞물려 있다. 국가 내 빈부격차 뿐만 아니라 세계화 시대에 국가간 빈부격차로 날로 심각하게 벌어지고 있다.”

김인숙 수녀는 ‘인간의 절제되지 않은 욕망’으로 양극화가 빚어지고 있으며 따라서 교회는 세계화의 부정적 측면을 시정할 국가간 경제·정치·제도적 혁신을 중재하는 역할을 해야 하며, 새 교황의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가 바로 이것이라고 제안하고 있다.

기경호 신부(작은형제회) 역시 같은 맥락에서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재화의 분배가 뒷전으로 밀려나고 부의 권력화가 일어나고 있다”며 그러한 흐름으로 인해 “구조적 빈곤층을 평생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 ‘운명적 빈곤층’으로 확정짓고 있다”고 개탄했다.

그러면 교회는? 교회가 짊어지고 풀어야 할 과제는? 실마리는 무엇보다도 ‘가난한 교회’의 정체성에 있다고 신학자들은 말한다.

송창현 신부(대구대교구)는 “새 교황이 라틴 아메리카 출신이라는 점에서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이라는 복음적 가치에 다시 주목하게 된다”고 말했고, 한건 신부(부산교구)는 “새 교황이 청빈의 대명사인 프란치스코 성인의 이름을 선택했다”는데 주목하고 성인의 삶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현민 수녀(종교대화씨튼연구원장)는 세상과 연대하는 사랑의 나눔에 힘쓸 뿐만 아니라, 교회는 근본적으로 “먼저 가난해질 필요가 있다”며 “교회가 가난해져야 가난한 사람들의 교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평신도 신학자 오민환씨는 그리스도교가 “비인간적·경쟁적 자본주의와는 반대편에 서 있다”며 새 교황은 “인간성을 말살하는 가난의 구조를 물으면서,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사회의 그리스도교적 전망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빈곤과 생태 문제는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과제이다. 사진은 아프리카 빈민촌의 모습.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아이 앞쪽으로 심하게 오염된 물이 보인다. 아프리카는 가뭄으로 인한 극심한 식수·식량난을 겪고 있다.




- 바티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



▨ 생태계 문제의 통합적 전망 제시해야

김권일 신부(광주대교구)의 지적대로 “오존층 파괴, 지구 온난화, 빙하의 소실, 내륙 지역의 사막화, 지하수 오염과 고갈, 대홍수, 극심한 한파, 잦은 폭설, 강도 높은 지진, 핵발전소의 위험성 등은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들의 생명살이를 끊임없이 위협한다.” 신학자들은 따라서 이러한 생태학적 문제들에 대한 교회의 통합적이고 체계적인 입장들을 제시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생태 문제는 곧 생명의 문제라는 점을 모든 신학자들은 공감하고 있다. 곽용승 신부(부산교구)는 오늘날 환경 문제가 “인간이 삶의 터전의 훼손이며 결국 인간 생명의 위협으로 치닫는다”고 말했다.

여기에서 교황의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은 청빈을 웅변할 뿐만 아니라, 자연과의 화해를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백운철 신부(서울대교구)는 “프란치스코 성인을 교황명으로 정한 만큼 지구환경을 재건하고 피조물과의 평화로운 상생을 위해 환경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빈곤과 생태 문제는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과제이다. 이재돈 신부(서울대교구)는 “세계화에 따른 빈부의 격차와 생태계 파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인류의 미래가 달려 있다”며 “교회가 시대의 아픔에 동참하고 시대의 과제를 해결하는데 앞장서면, 교회의 쇄신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고 말했다.

결국 생태 문제는 그리스도인의 소명으로 인식된다. 조현철 신부(예수회)는 “하느님의 창조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적극적인 응답을 촉구한다”며 “생태 문제는 타자를 보는 시각, 타자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연관되고, 따라서 빈곤으로 대변되는 오늘날의 사회 문제와도 깊이 연결된다”는 의견이다. 하느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관계 회복이 곧 빈곤의 문제이며, 생태의 문제이고, 정의의 문제이다.

생태 문제의 한 가지 원인이 곧 그리스도교의 인간 중심적인 세계관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따라서 평신도 신학자 김남희씨는 이에 대한 새로운 신학적인 성찰이 이뤄져야 하며, 나아가 그리스도인의 구체적인 실천의 방안까지 제시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 생명과 가정의 가치 수호

오늘날 교회의 입장과 가르침이 세속의 원리와 가장 첨예하게 부딪히는 영역이 바로 생명윤리와 가정의 가치이다. 주로 낙태와 피임, 동성애, 그리고 생명과학의 발달에 따라 새롭게 두드러진 유전자 조작을 둘러싼 논란이 이 영역에서 매우 심각하게 갈등을 빚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교회는 이 문제들에 대해서 확고하고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신학자들은 인간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훼손에 대해서 교회의 기본적인 입장에 적극 동의하고 있다. 박정우 신부(서울대교구)는 분명하게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더라도 교회의 생명·가정 및 성에 관한 윤리적 가르침을 더욱 분명하게 선포해야 한다”며 “다만 현대인들이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설득력 있는 논리와 표현, 신앙적 근거를 제대로 제시하고, 자연법과 양심에 따르는 삶이 충만한 삶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올바로 제시할 것”을 제안했다.

대체로 신학자들은 윤리적 입장을 견지해줄 것을 요청한다. 평신도 신학자인 김혜경씨 역시 같은 맥락에서 절대적인 윤리적 태도를 일관성 있게 취할 것을 요청한다. 하지만 동시에 소수자에 대한 사목적 배려 역시 요청하고, 아울러 “낙태와 피임 등의 문제는 많은 경우, 사회구조적인 빈곤이나 정의 문제와도 연관된 것으로서 다각적인 해결 방안 모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평신도신학자 이연수 교수는 “원론적이고 교리 차원에서 이뤄지는 담론이 아니라 수많은 성 소수자, 낙태와 피임으로 죄책감에 사로잡혀 사는 이들에게 희망과 구원의 빛을 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가톨릭신문, 2013년 4월 21일, 박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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