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 화

상급 평의회[Con.] 2008년 7월 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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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나뚜스 [senatushp] 쪽지 캡슐

2008-10-29 ㅣ No.75

 

Allocucio - July,  2008

베데 맥그레거 신부-꼰칠리움 영적지도신부


레지오와 사제

   레지오 마리애 역사에 있어서 가장 주목할 만한 일중에 하나는 수많은 형제 자매들이 나이에 관계없이 레지오 안에서 또는 레지오를 통하여 그들의 소명을 발견하였다는 것입니다.  많은 레지오 단원들이 성직자와 수도자가 되었고, 이것은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와 이제는 하나의 사실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리고 또 많은 사람들이 레지오를 통하여 지역 교회안에서 결혼하고 삶을 살아가는 그들의 소명을 뚜렷이 인식하고 있으며 이것도 또한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온 사실입니다.  그리고 말 그대로 수 백만명의 평신도들이 성인들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소명을 잘 인식하고 있고 또 레지오 단원으로 평신도 사도직을 수행 하는 것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것 또한 계속적으로 이루어진 사실입니다. 이러한 일들을 얘기하는 것은 금년이 이러한 소명을 키워 나가기 위해 특별히 봉헌된 해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소명은 성직자와, 수도자, 그리고 결혼과 같은 평신도들에게 맡겨진 사명과 소명 등을 전부 아울러 말합니다. 소명을 다짐하는 금년에 저는 모든 소명에 대하여 계속적으로 언급해 나가겠지만, 오늘은 특히 사제의 소명과 이 특별한 소명 안에서 레지오의 역할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제직의 의미에 대하여 기술한 보편 교회 교리서는 다음과 같이 ‘아르스의 성자’의 말을 인용하였습니다.: ‘사제는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구원사업을 계속해 나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제들을 진정으로 잘 이해한다면 우리는 두려움으로서가 아니라 사랑으로서 우리의 죽음을 맞이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사제직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속 깊은 사랑입니다.’  사제는 이 세상에 현존해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사제들이 존재해야 하는 의미는 예수님을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만약에 성찬례가 없어서, 우리 모두에게 가까이 계시며 또 우리에게 다가 오시는 예수님을 느낄 수 있는 성체가 없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황폐하겠습니까. 그리고 또 만일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의 죄를 끝없이 안아 주시고 따뜻하게 힘을 붇돋아 주시는 화해의 성체가 없다면 이세상은 얼마나 절망적이고 낙담스럽겠습니까. 그 성체 안에서 우리 주님께서는 그들이 무엇을 했던, 또 그들이 하느님을 어떻게 생각하던지 간에 죄인들에게 무한한 사랑을 선포하십니다. 복음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나는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몸이 아프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병자성사중에 성체안에서 우리를 치료해 주시는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다면 얼마나 슬픈 일이겠습니까. 그리스도가 우리 삶 안으로 오시는 길은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사제 안에서 또는 사제를 통하여 오시는 하느님의 섭리에 의한 계획을 우리는 짐작할 수도 없습니다.


사제는 서품식에서 사제의 특성을 부여받습니다. 이는 사제의 인간적 본질 안에서의 변화를 의미하며, 그의 영혼이 하느님의 권능에 의해서 신비체인 교회의 머리이자 목자로서 언제 어디서나 그리스도로서 행동할 사명을 부여 받습니다.  사제는 미사때에 성체를 들고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이다’ 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것은 내 몸이다’ 라고 말합니다. 고해성사에서 보속을 주면서 ‘그리스도가 당신의 죄를 용서합니다’ 라고 말하지 않고, ‘나는 당신의 죄를 용서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사제는 선생님이나 의사들이 자리가 빌 때 대신해서 하거나 또는 예수님을 대신해서 파견된 대사나 대표로서 활동하는 대역이 아닙니다. 서품식에서 받은 사제의 특성에 의하여 사제는 그리스도이신 사제가 되었으며 따라서 사제안에서 사제를 통하여 행동하시는 그리스도 바로 그 분이십니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선물로 사제직을 주신 것을 묵상하면 앞부분에 사랑으로 우리의 죽음을 맞이 할 수 있다는 ‘아르스의 성자’의 말씀이 얼마나 가슴에 와 닿는 표현인지 알 수 있습니다. 아무도 사제의 소명에 대하여는 옳고 그르다는 말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사제의 역할이 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는 일이라고 할 때에 우리는 누구를 떠 올릴 수 있습니까?  이 세상에 그리고 우리 모두 각자에게  예수님을 모시고 오는 것이 특별한 소명이신 성모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모님과 사제는 이끌어 가는 길은 다르더라도 정확하게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목표가 같기 때문에 사제는 진정한 사제로서 그의 소명을 완수 하고자 생각한다면 성모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은 누구 보다도 예수님을 이 세상에 모시는 일을 잘 수행하신 분은 성모님밖에는 안계시기 때문입니다. 성모님만이 우리에게 예수님과 일치하여 하나 되게 하시고, 나아가 예수님을 다른 사람들에게 모시는 일을 어떻게 잘 할 수 있는 지를  알려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사제들의 삶에서 성모님의 특성, 즉 성모님이 모든 사제를 잉태하시고, 사제들의 정신적 삶과 그들의 모든 사목 활동에 있어서 그분께서 하시는 특별한 역할을 소홀히 한다면 사제의 삶은 피폐해 질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사제들의 소명안에 우리 레지오는 어떻게 참여 할 수 있을까요?   레지오는 그 목적을 수행하는 방법은 다를 지라도 이미 사제들과 동일한 목표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레지오가 존재하는 이유는 성모님 안에서, 성모님을 통하여, 성모님과 함께 예수님을 이 세상에 모셔 오기 위해서 입니다. 레지오는 성모님께서 온 인류를 잉태하심을 나누려고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레지오와 사제사이에 흐르는 돈독한 관계는 결코 과장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레지오와 사제는 성모님을 통하여 예수님을 이 세상에 모시는 일을 함께 수행하기 때문에 이 둘을 함께 굳건히 묶어 주시는 분이 바로 성모님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레지오는 사제가 그의 개인적인 많은 제약과 개인적인 죄를 무릅쓰고 그의 소명을 수행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사제는 궁국적으로 그의 모든 중요한 일을 이 세상 세속의 배에 싣고 가야하기 때문에 레지오는 사제들에게 희생과 봉사로서 크나큰 힘이 되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레지오 단원들은 특별히 사제의 손을 통하여 우리에게 오시는 성체를 경배함으로서 사제를 위하여 끊임없이 중재에 나서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금년 우리의 소명을 키워나가기 위해 특별히 봉헌된 해에 전 세계에 있는 레지오 단원들은 사제들을  더욱 깊고 새롭게 이해하고 사랑하며, 레지오의 영적지도자인 그들에게 더욱 힘을 붇돋아 주기를 바랍니다. 레지오는 사제들이 레지오 안에서 복음의 기쁨을 경험할 수 있고, 평신도들의 사도직 현실과 헌신적인 노력에 의해 힘을 얻을 수 있으며, 더욱 나아가서 우리 레지오 안에서  성모님이 살아 움직이는 것을 느끼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레지오에 이런 진정한 정신이 결여 되어 있다면 사제들은 점차적으로 또 필연적으로 레지오를 포기하게 될 것이며, 이는 사제와 레지오 모두를 위하여 하느님의 무한한 은총을 버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그 어떠한 것도 사제와 우리 레지오 사이에 있는 크나큰 신뢰의 기반을 무너뜨리지 못하도록 기도합시다.





*번역자 주해

‘아르스의 성자’:

성 마리 비안네 신부(1786-1859)

‘본당신부들의 수호성인’. 프랑스의 작은 마을 아르스의 본당신부로서 고해성사를 통해 화해하시고 은총을 주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하여 많은 사람들이 성지순례로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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