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4동성당

전신자 기차 성지순례(배론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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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업 [rlawhddjq] 쪽지 캡슐

2012-06-26 ㅣ No.9



창4.5동성당 전신자 기차 성지순례 일정표

 

일 시 : 2012. 9. 16 (일) ■ 인 원 : 864명

■ 장 소 : 배론성지 (충북 제천시) ■ 참가비 : 1人12,000원(중식포함)

■ 신청마감 : 7월31일(화)까지 “선착순”

■ 참가신청 : 여성구역장 및 반장 (구외 신자 본당사무실)“주민번호는 보험가입”

■ 출발시간 : 1시간 前 에 창동역 오시면 봉사자의 안내에 따라 기차 플렛품으로 이동

■ 기차탑승 : 오전6시까지 오셔서 구역별 지정차량 탑승 (1호차~12호차)

■ 이날 본당에서 거행하는 미사는 토요특전(오후7시)과 주일미사(오전6시30분)

교중미사(오전11시)만 있습니다.

시 간

일 정

소요시간

이동수단

07:00 ~ 10:30

창동역출발 제천역 도착

약3시간

기차

10:30 ~ 10:50

제천역 플렛홈 → 주차장이동 (지원버스탑승)

20분

 

10:50 ~ 11:20

출발 → 배론성지 이동

30분

지원버스

11:20 ~ 13:30

중식 및 배론성지 순례

2시간10분

 

13:30 ~ 14:50

교중미사 봉헌 (대성당)

1시간20분

 

14:50 ~ 15:00

인원점검 버스탑승

10분

 

15:00~ 15:30

1호차 ~ 10호차 : 역전전통시장으로 이동

11호차~ 20호차: 한방엑스포공원(한방마을)이동

30분

지원버스

15:30 ~ 17:10

1호차 ~ 10호차 : 역전전통시장 쇼핑

1시간40분

 

15:30 ~ 16:10

11호차~ 20호차 : 한방마을 (약초시장) 쇼핑

약초 전시홍보관 관람

약초비누.약초향기주머니만들기. 체험한방 발맛사지 체험

40분

 

16:10 ~ 16:30

11호차~ 20호차 : 역전전통시장으로 이동 →

20분

지원버스

16:30 ~ 17:10

11호차~ 20호차 : 역전전통시장 쇼핑

40분

 

 

역전전통시장

향토음식 먹거리장터 운영. 떡메치기 체험 즉석노래자랑

 

 

17:10 ~ 17:30

제천역 집결. 인원점검 (승차)

20분

 

17:30

제천역 출발 → 귀경

 

 

이날은 제천 역전시장 장날이 아니어서 시장의 수용인원 한계가 있어

A. B 두 그룹으로 나누어서 역전시장과 약초시장으로 이동함.










 

 

남성 총자치회





전신자 기차 성지순례

 

 

 



 

[맛과 멋 그리고 성지순례] 원주교구 배론 성지 (상)
우리나라 첫 신학교 세워진 ‘배움의 땅’

 

1. 입구에서 바라본 배론 성지 전경. 잘 가꾼 공원으로 소개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2. 황사영 순교 현양탑.
3. 성요셉신학교 초가집 앞에서 원주교구 여진천 신부가 순례온 학생들에게 당시 신학교 생활을 설명하고 있다.
4. 황사영이 북경에 있는 주교에게 조선교회 재건을 요청하는 백서를 쓴 토굴. 성요셉신학교 바로 옆에 있다.

 

 

배론 성지로 출발하기에 앞서 배론 성지 홈페이지(http://www.baeron.or.kr)를 둘러보고는 배론이야말로 우리나라에 있는 수많은 성지 가운데서 둘째가라면 서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만으로도 손꼽히는 성지가 되기에 충분한 신앙 유산을 셋씩이나 갖추고 있으니 성지 중 성지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듯 싶었다. 한 울타리에 우리나라 첫 신학교 성요셉신학교와 황사영이 백서를 쓴 토굴, 그리고 한국교회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 신부 묘소를 둔 신앙의 요람이 바로 충북 제천에 있는 배론 성지다.

 

강원도 원주 구학산과 제천 백운산 사이에 있는 배론(舟論)은 동네가 마치 배 밑바닥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배론은 원래 박해를 피해 숨어든 신앙선조들이 옹기를 구워 생계를 유지하며 신앙을 키워나갔던 교우촌.

 배론으로 가는 길은 박해시대 교우촌은 예외없이 깊은 산골짜기에 숨어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기에 충분했다. 지금이야 길이 잘 뚫려 길가에 줄지어 서 있는 험준한 산을 바라만 보면서 지나치지만 걷는 것 말고는 별다른 교통수단이 없던 200여년 전 박해시대로 돌아간다면 그야말로 첩첩산중이었을 것이다. 고속도로 좌우 높은 산들이 우리에게 편리해진 교통만큼이나 신앙생활도 편하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묻는 것 같았다.

 성지 입구에서 성지를 바라봤을 때 가장 먼저 든 느낌은 잘 가꾼 공원으로 소개해도 전혀 무리가 없을 정도로 풍광이 아름답다는 점이다. 두 팔 벌려 순례객을 맞는 예수상과 성지를 가로지르는 개울 좌우로 펼쳐진 배론 성지는 한 폭 그림이 따로 없었다. 한창 비가 온 다음이라 그런지 개울은 물도 많았고 또 무척이나 맑았다. 풍덩 뛰어들어 물장구라도 치고 싶은 개울물이 흐르는 소리와 매미 울음이 한데 어우러져 눈과 함께 귀까지 즐거워졌다.

 단풍이 가을에만 붉게 물드는 나무가 아니라는 것을 이곳 배론에서 처음 알았다. 여름철이라 푸른 나무만 가득하리라 예상했는데, 푸르름 사이사이에 홍단풍이 붉은 자태를 뽐내며 푸르름과 기막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예수상 앞 작은 연못은 또 얼마나 평화로운지….

 염불보다 잿밥이라더니, 멋진 경치를 감상하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뺏긴 것 같다. 마음을 가다듬고 본격 성지순례에 나섰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성지 오른편 산비탈에 있는 성요셉신학교다.

 신학당터 표시 십자가가 없다면 대부분 그냥 지나치지 않을까 싶었다. 방 두 칸짜리 작은 초가집 한 채가 우리나라 근대교육의 효시가 된 성요셉신학교라는 것을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오늘날 성신 · 성심 · 성의라는 3개 교정을 둔 거대한 가톨릭대의 출발이 바로 그 초가집이요, 이 땅에서 가장 먼저 서양학문을 가르친 곳이 그 초가집이다.

 성요셉신학교는 1855년 파리외방전교회 메스트로 신부가 세웠다. 내놓고 가르칠 수 없는 박해시대라 이토록 먼 골짜기에서 문을 열 수밖에 없었다. 당시 이곳에는 교우 70여 가구가 모여 살고 있었는데, 자신의 집을 신학교 건물로 내놓은 장주기(요셉) 성인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당시 교육을 맡은 이는 파리외방전교회 푸르티에 신부와 프티니콜라 신부. 신학생이 가장 많을 때는 10명까지 있었다고 한다. 성직자 양성이 열매를 맺을 무렵인 1866년, 병인박해로 인해 두 신부가 새남터에서 순교함에 따라 신학생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신학교는 문을 닫게 된다. 그러나 이때 뿌려진 교육의 불씨는 나중에 다시 되살아나 올해 개교 150주년을 맞는 가톨릭대의 밑거름이 됐다. 지금의 집은 한국전쟁 때 불타 없어진 원래 초가집을 1987년에 사진과 고증을 토대로 복원한 것이다.

 초가집의 비좁은 방, 성요셉신학교 교실에는 당시 학업에 열중하는 댕기머리 신학생들 모형이 놓여 있다. 언제 잡혀갈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에서도 묵묵히 가르치고 또 배웠던 신부들과 신학생들. 그들이 피와 땀으로써 뿌린 신앙의 씨앗이 오늘의 한국교회를 있게 했다는 역사적 진실이 가슴 뭉클하게 다가왔다.

 황사영(1775∼1801, 알렉시오)이 북경에 있는 주교에게 조선교회 재건을 요청하는 백서(帛書, 편지)를 쓴 토굴은 성요셉신학교 바로 뒤에 있다. 1801년 박해가 일어나자 이곳으로 피신한 황사영은 토굴을 파고 8개월간 숨어 지내며 가로 62㎝, 세로 38㎝ 흰 명주천에 모두 1만 3311자로 된 탄원서를 썼다. 그러나 이 백서를 가지고 가던 황심이 체포되고 백서가 압수되면서 황사영은 27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순교했다.

 천주교 선교 자유를 위해 서양선박 수백 척과 병력 수만 명이 와서 무력시위를 해줄 것을 요청하는 황사영 백서는 국가 차원에서 볼 때는 반민족적 협박이나 마찬가지였고, 결국 박해를 확대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좁은 토굴 안을 바라보며 신앙의 자유를 위해 이곳에서 피와 땀으로 백서를 써내려간 황사영의 순수한 열정만큼은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비록 의도와 다른 결과를 낳긴 했지만 그 또한 하느님 섭리가 아니겠는가. 성지순례 문의 : 043-651-4527

  

맛집 - 동원가든

 학산 묘재 성지(남종삼 성인 유적지) 근처에 있는 동원가든이 자랑하는 음식은 토종닭 참숯불구이다. 30여년 전 이성우(안드레아, 43, 용소막 본당) 사장 어머니가 개발해 아들에게 전수한 참숯불구이는 토종닭에서 뼈를 발라내고 순 살코기만 양념에 버무려 숯불에 굽는 것인데, 양념 재료로는 후추와 생강, 마늘, 계피 등 천연 재료만 사용하고, 인공조미료는 전혀 쓰지 않는다. 참숯불구이는 석쇠에 올려놓고 직접 구워 먹는다는 점에서 프라이팬에 볶는 닭갈비와는 크게 다르다.

 뼈가 없어 남녀노소 누구나 편하게 먹을 수 있는 게 장점. 매콤 달콤 양념의 닭고기에 밴 참숯 향이 일품으로, 고기를 씹는다는 느낌이 전혀 없이 부드럽게 넘어간다. 가격은 3인 기준 2만 3000원.

 동원가든의 또 다른 자랑거리는 무학루(舞鶴樓)라는 커다란 정자다. 물고기가 노니는 커다란 연못 위에 지어진 무학루는 한여름 땀이 금방 식을 만큼 넓고 시원하며, 탁 트인 전망이 마음을 절로 여유롭게 만든다. 토종닭 참숯불구이 외에도 닭도리탕, 닭백숙, 오리구이, 오리백숙, 보리밥 등 식단이 다양하다. 배론 성지에서 5분 거리. 문의 : 043-651-8100

 

배론 성지 가는 길

 서울에서 영동고속도로를 가다가 원주 못 미쳐 남원주IC에서 중앙고속도로 제천 방향으로 접어든다. 남원주에서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신림IC에서 빠져나와 제천 방향 5번 국도로 가면 용소막 성당과 묘재 성지, 배론 성지가 5분 간격으로 잇따라 나온다. 부산 방면에서 올 경우 대구와 안동 → 영주 → 단양 → 제천을 거쳐 마찬가지로 5번 국도로 가면 된다. 배론성지 홈페이지 참조. [평화신문, 2005년 7월 24일, 글 남정률 기자, 사진 백영민 기자]

 


[맛과 멋 그리고 성지순례] 원주교구 배론 성지 (하)
‘땀의 순교자’ 최양업 신부 잠든 ‘성소의 땅’

 

1. 배론성지 왼편에 있는 ‘최양업 신부 바다의 별 대성당’과 너른 잔디밭은 가슴이 탁 트이는 시원함을 안겨준다.
2. 1915년에 세워진 용소막 성당 전경.
3. 최양업 신부 바다의 별 대성당 내부. 배 밑바닥처럼 빗살무늬 모양으로 길게 늘어진 천장이 눈길을 끈다.
4. 대성당 뒤편에는 최 신부 일대기를 조각으로 새겨놓은 최양업 신부 조각 공원이 있다.
5. 배론 성지에 있는 최양업 신부 묘소.

 성요셉신학교와 황사영 토굴을 둘러봤으면 쉬어도 갈 겸 토굴 바로 앞에 있는 경당으로 눈을 돌려보자. 한옥 모양의 경당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 의자가 없는 커다란 방이다. 우리 식으로 정감 있게 지은 경당이 주위 경관과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면서 책상 다리로 앉아 있자니 마음이 절로 편안해졌다.

 더위도 식히고 다리도 쉬었으니 이제 최양업(1821∼1861년) 신부 묘소를 찾아갈 차례다. 성요셉신학교 오른편으로 나 있는 산길을 따라 최 신부 묘소로 향했다. 산길 입구에 있는 ‘평화통일을 위한 기도소’라는 비석을 지나면 겟세마니 동산과 야외 제대가 나오고, 최양업 신부 동상이 순례객을 맞는다. 최 신부 묘소 입구라는 표지다.

 산을 끼고 있는 많은 성지가 그렇듯이 동상에서 한참 위쪽에 있는 최 신부 묘소까지는 십자가의 길 14처로 이어진다. 십자가의 길 출발은 동상을 정면으로 보면서 왼쪽 길이다. 왼쪽 길을 선택하면 에돌아가긴 하지만 ‘보너스’가 기다리고 있다. 십자가의 길 기도도 바치고 나무 울창한 숲 속에서 맑은 공기도 듬뿍 마실 수 있다.

 상큼한 공기와 싱그러운 풀내음, 푸르디 푸른 나무들…. 비탈진 길목에 놓인 나무계단은 푹신푹신해서 산길을 걷는 피곤함을 잊게 했다. 포근하고 여유로웠다.

 원주교구 초대 교구장 지학순 주교를 비롯해 양기섭 · 최창규 · 이영섭 신부 등 7명의 성직자들이 잠든 원주교구 성직자 묘역을 지나 조금 더 올라가니 최 신부 묘소가 나왔다. 묘소는 초라하다 싶을 정도로 소박하다. 묘비엔 사제독마최정구지묘(司祭篤瑪崔鼎九之墓)라고 씌여있다. 독마는 최 신부 세례명인 도마(토마스)를 표기한 것이고, 최정구는 최 신부 관명(官名)이다.

 직접 순교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땀의 순교자’로 불리는 한국교회 두 번째 사제 최양업 신부. 그는 1861년 6월 경상도 전교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던 중 문경에서 과로로 쓰러져 선종했고, 그해 11월 조선교구장 베르뇌 주교에 의해 당시 신학교가 있던 이곳에 묻혔다. 박해 때문에 주인 없는 무덤처럼 버려졌던 묘소를 단장하고 묘비를 세운 것은 1945년 9월, 80여년의 세월이 지나서였다.

 현재 한국교회에서는 최 신부를 성인품에 올리려는 노력이 한창이다. 한국교회 첫 번째 사제 김대건 신부 그늘에 가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최 신부지만 한국교회 복음화를 위해 고군분투했던 그의 업적을 제대로 평가받을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묘소에서 내려와 배론 성지를 가로 지르는 개울을 건너면 또 다른 넓은 세상이 펼쳐진다. 개울 오른편의 성지가 아기자기한 맛을 준다면 ‘최양업 신부 바다의 별 대성당’과 너른 잔디밭이 있는 개울 왼편은 가슴이 탁 트이는 시원함을 선사한다.

 최양업 신부를 기리며 그분의 시복시성을 기원하기 위해 건립된 성당은 배 밑바닥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배론이라는 지명을 조형화한 것이 특징이다. 아닌 게 아니라 배 모양처럼 생겼다.

 배 밑바닥처럼 빗살무늬 모양으로 양쪽으로 길게 늘어진 천장이 독특한 성당 안으로 들어서니 무척이나 시원했다. 천장이 높고 실내가 넓어 에어컨이 없어도 서늘하다. 텅 빈 성당은 고요하면서도 경건함이 묻어나왔다. 어느 성당인들 그렇지 않을까마는 느낌이 강했다. 군데군데 성당을 아름답게 빛내고 있는 성미술 작품들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감실과 성수대는 최종태(요셉)씨 작품이요, 제대 십자가는 장동호(프란치스코)씨 작품이다. 두 사람 모두 한국교회 손꼽히는 조각가. 성미술은 이외에도 한둘이 아니다. 성미술이 성당 건축과 조화를 이뤄 하나의 걸작품을 이룬 것이 바로 ‘최양업 신부 바다의 별 대성당’이다.

 이 성당에 김대건 성인 유해가 모셔져 있으리라고는 상상을 못했다. 성당을 한 바퀴 천천히 돌아 제대 왼편으로 갔더니 놀랍게도 성인의 척추뼈 조각이 “큰 사랑과 진실한 마음,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하느님에게 청하고 구해야할 것이다”는 성인 말씀과 함께 순례객을 맞는다. 김대건 성인 유해 왼쪽에는 최양업 신부 가계도, 활동지역을 그린 그림 3점이 최 신부 아버지 최경환 성인의 무릎뼈 유해와 함께 전시돼 있다.

 성당 뒤편은 최 신부 일대기를 조각으로 새겨놓은 최양업 신부 조각 공원. 그냥 봐서는 30여개 조각으로 이뤄진 단순한 조각공원이지만 조각 하나하나는 유해 수십기를 안치할 수 있는 납골묘로 돼 있다. 납골묘라는 설명을 듣기 전에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납골당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불식시킬 수 있는 모범 사례라 하겠다.

 성당 앞은 마음껏 뒹굴고 싶은 너르고 푸른 잔디밭. 잔디밭 위쪽에 있는 성모자상과 아래쪽 끝에 있는 야외 제대는 역시 조각가 최봉자 수녀 작품이다. 부드럽고 온화한 성모자상은 힘겨운 세상사에 상처받은 마음일랑 이곳에 놓고 가라는 어머니의 따스한 손길처럼 느껴진다.

  

학산 묘재 성지, 용소막 성당

 배론 성지에서 신림IC 쪽으로 5분 정도 가면 오른쪽으로 학산 묘재 성지 푯말이 나온다. 푯말을 따라 조금만 들어가면 기와집 한 채가 나오는데, 이곳이 바로 병인박해(1866년) 때 치명한 남종삼(1817∼1866년, 요한) 성인 본가다. 103위 순교 성인 중에서 가장 높은 벼슬인 승지까지 올랐던 그는 의롭고 청빈한 삶으로 모든 이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아버지 남상교(아우구스티노) 또한 순교자로, 그들이 살았던 이곳엔 부자의 뜨거운 신앙과 애끓는 육친의 정이 넘쳐흐른다. 깨끗하게 잘 보존돼 있는 기와집은 항상 대문을 활짝 열어 놓고 순례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이곳에서 다시 신림 쪽으로 5분 거리 왼편엔 높다란 탑의 용소막 성당과 성서학자 선종완(1915∼1976년) 신부 유물관이 순례객을 반긴다. 1915년에 세워진 용소막 성당은 아담하지만 소박한 고딕양식이 매우 고풍스런 분위기를 자아낸다.

 성당 구내 유물관에 전시된 유품은 선 신부가 사용하던 낡은 책상을 비롯해 손목시계, 우산, 지팡이, 제의 · 제구 등 380여점과 각종 서적류 300여권. 고인의 생생한 숨결을 느끼게 하는 다양한 전시물은 한평생을 오롯이 하느님께 바친 고인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평소 유물관은 잠겨 있는데, 본당 수녀원(033-763-2342)으로 전화하면 문을 열어준다. 월요일은 쉰다. [평화신문, 2005년 8월 7일, 글 남정률 기자, 사진 백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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