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연중 제15주일(다해) 루카 10,25-37; ’19/07/14

인쇄

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19-07-13 ㅣ No.3920

연중 제15주일(다해) 루카 10,25-37; ’19/07/14

미사의 영성 6 봉헌

 

 

 

예언자 엘리야 시대에 이스라엘 땅에 비도 이슬도 내리지 않았던 적이 있었습니다(1열왕 17,1 참조). 백성들은 농사를 지어야 하는데 비가 안 오니까 여러 가지 방법으로 기우제를 지냈습니다. 특별히 농사를 잘 짓게 해준다던 바알신에게까지 기우제를 지냈지만 비는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삼 년’(1열왕 18,1)이 흘렀습니다. 그래서 엘리야가 백성들 앞에 나서서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언제까지 양다리를 걸치고 절뚝거릴 작정입니까? 주님께서 하느님이시라면 그분을 따르고 바알이 하느님이라면 그를 따르십시오.”(21) 그리고 엘리야는, 일찍이 너의 이름은 이스라엘이다.”라는 주님의 말씀이 내린 야곱의 자손들 지파 수대로 돌을 열두 개 가져왔습니다. 엘리야는 그 돌들을 가지고 주님의 이름으로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제단 둘레에는 곡식 두 스아가 들어갈 만한 도랑을 팠습니다. 그는 장작을 쌓은 다음, 황소를 토막 내어 장작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물을 네 항아리에 가득 채워다가 번제물과 장작 위에 쏟으시오.” 하고 일렀습니다. 그런 다음에 그는 두 번째도 그렇게 하시오.” 하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두 번째도 그렇게 하자, 엘리야는 다시 세 번째도 그렇게 하시오.” 하고 일렀습니다. 그들이 세 번째도 그렇게 하였을 때, “물이 제단 둘레로 넘쳐흐르고 도랑에도 가득 찼다.”(31-35) 그리고 나서야 엘리야는 기도를 바쳤습니다. “저에게 대답하여 주십시오, 주님! 저에게 대답하여 주십시오. 그리하여 주님, 이 백성이 당신이야말로 하느님이시며, 바로 당신께서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셨음을 알게 해 주십시오.”(37)

 

엘리야의 기적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가 봉헌과 연관하여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엘리야가 기우제를 준비시키는 가운데, “물을 네 동이씩 세 번 제물 위에 부어 제단 주위로 넘쳐흘러 옆 도랑에 가득 괼정도로 제물 위에 부으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 삼 년이나 가뭄이 계속되었는데 물이 어디 있었겠습니까? 그리고 남은 물이 설령 있다 하더라도 다시 비가 내릴 때까지 고이고이 신주 모시듯이 아끼고 아껴야 할 물을 제물 위에 부으라니! 그것도 엘리야가 제단을 쌓을 때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상징하여 열두 개의 돌을 모았다면, 네 동이씩 세 번 부은 물은 이스라엘에 남은 물 모두를 주님께 바치라는 요구였습니다. 사람들은 무엇이라고 했을까? 아까워서 그리고 불안해서 못 내놓는 이들에게 한 번 더, 한 번 더해서 결국 열두 지파의 것 모두를 바치라고 할 때 사람들은 어떻게 했을까? 신약에서도 행실 나쁜 여인 마리아가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렸”(요한 12,3)을 때 제자들 가운데 하나로서 나중에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 이스카리옷이 말하였다.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요한 12,4-5) 만일 엘리야와 함께 하느님께 기우제를 드리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야훼 하느님이 참 하느님이심을 믿지 못한다면, 믿더라도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제물을 태워 물마저 다 말라 버릴 줄 알고 아까워했더라면, 엘리야의 지시대로 물을 주님 대전에 가져다 부을 수 있었겠습니까? “(유다)가 이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도둑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돈주머니를 맡고 있으면서 거기에 든 돈을 가로채곤 하였다.”(요한 12,6 참조) 주님은 주님을 믿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이스라엘에게 필요한 것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큰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1열왕 18,45)

 

이러한 봉헌의 자세는 같은 열왕기 상권 17장에 나오는 시돈 지방의 사렙다 과부에게서도 드러납니다. 가뭄 중에 엘리야가 과부에게 물과 빵 한 조각을 달라고 하자 주 어르신의 하느님께서 살아 계시는 한, 구운 빵이라고는 한 조각도 없습니다. 다만 단지에 밀가루 한 줌과 병에 기름이 조금 있을 뿐입니다. 저는 지금 땔감을 두어 개 주워다가 음식을 만들어, 제 아들과 함께 그것이나 먹고 죽을 작정입니다.”(12) 라고 답합니다. 그런데도 그것으로 음식을 만들어 내 놓으라고 하자 그러자 그 여인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다. 과연 그 여자와 엘리야와 그 여자의 집안은 오랫동안 먹을 것이 있었다.”(15)

 

우리는 미사 전례에 드러난 봉헌의 전형적인 모습을 창세기 221절에서부터 18절까지 나오는, 아브라함이 하느님의 명대로 그의 아들 이사악을 바치는 장면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100세에 얻은 자신의 외아들 이사악을 바치는 아브라함(창세 22,5)의 믿음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께 대한 아들 예수님의 믿음을 발견합니다. 또한 번제물을 사를 장작을 가져다 등에 지고(6절 참조) 야훼이레로 올라가는 이사악의 모습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자기 스스로 제물이 되어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갈바리아 산으로 올라가시는 주님의 모습! 그리고 또 한편 인간에게는 인간이 애지중지하는 자기 아들을 제물로 바치기를 원치 않으셨던 하느님께서, 인간을 구하시기 위해서는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상의 제물로 삼으시기까지 하시는 바로 그 하느님의 사랑! 이것이 봉헌을 가능케하고 이루는 주님의 사랑이십니다. 예수님은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루카 22,42)하면서 자신의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냥 단순히 아버지의 명령이기 때문에 마지못해 하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정말로 옳은 것이기에 자신을 일치시킴으로써 아버지의 뜻을 완전히 이루셨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23,34) 하느님 아버지께 향한 아들 예수의 전폭적인 지지와 신뢰, 그리고 그 희생 제사는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매일 드리는 미사라는 희생 제사이며, 미사 봉헌의 의미이며 본질입니다. 그리고 이 봉헌은 그냥 죽음으로 그치지 않는, 아니 그칠 수도 없는 부활의 영광을 향한 희생 제사이며 구원의 십자가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이러한 봉헌이 이웃을 구원합니다. “나는 나 자신을 걸고 맹세한다. 주님의 말씀이다. 네가 이 일을 하였으니, 곧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 아끼지 않았으니, 나는 너에게 한껏 복을 내리고, 네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한껏 번성하게 해 주겠다. 너의 후손은 원수들의 성문을 차지할 것이다. 네가 나에게 순종하였으니, 세상의 모든 민족들이 너의 후손을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창세 22,16-18)

 

이제 봉헌의 시간입니다. 어떻게 하겠습니까? 세상의 문제들을 우리가 다 감당할 수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 우리 눈앞에 닥친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것 하나도 제대로 응답하지 않고, 또 우리가 섣불리 응답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기에 스스로 알아서 살아 나가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고 합리적인 이성을 앞세워 강변하며, 엄두도 나지 않고 또 어찌해야 할지 몰라서 오늘도 부담 속에서 자신을 애써 합리화하며 지나치려고 하십니까? “저마다 조금씩이라도 받아 먹게 하자면 이백 데나리온어치 빵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다.”(요한 6,7) “여기는 외딴 곳이고 시간도 이미 지났습니다. 그러니 군중을 돌려보내시어, 마을로 가서 스스로 먹을거리를 사게 하십시오.”(마태 14,15)

 

아니면, 매일 나와 우리 한 가족 먹을 것조차 넉넉지 못하지만 이것이라도 써 주십시오.” 하며 바치겠습니까? “여기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주님께로부터 받은 것 주님께 다시 드리오니 써주십시오.” 하는 마음으로 바치는 우리의 봉헌은 하늘 나라를 이룹니다. “예수님께서는 빵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물고기도 그렇게 하시어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주셨다. 사람들이 보리빵 다섯 개를 먹고 남긴 조각으로 열두 광주리가 가득 찼다.”(요한 6,9.11.13) 그러므로 여러분도 살아 있는 돌로서 영적 집을 짓는 데에 쓰이도록 하십시오. 그리하여 하느님 마음에 드는 영적 제물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바치는 거룩한 사제단이 되십시오.”(1베드 2,5)

 

------------------------------

연중 제15주일 꽃꽂이

http://bbs.catholic.or.kr/home/bbs_view.asp?num=1&id=175329&menu=frpeterspds2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36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