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연중 제25주간 금요일 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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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0-09-17 ㅣ No.4393

연중 제25주간 금요일 9/25

 

가끔 나로 인해서 주 예수님과 교회가 어려움을 당하고 고통받으시는 것은 아닐까 하는 죄책감과 송구스러움 속에서 괴로워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들으신 후 제자들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으십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루카 9,20) 베드로가 나서서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20) 라고 대답합니다. 베드로의 이 대답은 하느님께서 세상을 구하러 보내주신 구세주이십니다라는 뜻이었겠습니다.

 

그런데 정작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이 대답을 들으시고는 곧 바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하게 분부하”(21)십니다. 왜 그러셨을까? 예수님께서는 메시아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바에 대한 선입관으로 예수님을 바라보기를 원하지 않으셨는가 봅니다. 당대 유다인들이 바라는 메시아, 그리스어로 번역하여 그리스도라는 말에 담겨 있는 민족적이고 정치적인 의미를 잘 알고 게셨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대신 메시아의 진실한 면모를 밝히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22) 메시아는 정치적으로 점령군인 로마를 내쫓고 유다인들에게 해방을 안겨주고 강대한 유다 민족의 나라를 세우리라는 기대에 정반대의 모습을 제시하십니다. 메시아에 대한 민족적이고 정치적인 기대를 품고 있는 유다 사람들의 원의를 들어주지 못하고, 사랑하는 희생으로 그 원의를 채워주지 못한 미움과 원망을 한 몸에 받고 거부당하고 저주받아 죽어야만 하는 숙명 같은 처지를 알립니다. 물론 죽음으로 그치지 않고 부활하리라는 사실도 함께.

 

오늘 날 사람들의 기대에 온전히 부응하지 못해 상처받고 미움받는 이들을 기억합니다. 한 가정의 부모와 자녀에서부터 사람들 사이에서 기대와 요구를 서로 주고받는 관계 안에서 어쩔 수 없이 희생당하는 역할과 아픔도 기억합니다.

 

우리의 사랑과 기대를 온전히 받으시면서도 늘 우리들의 삶 속에서 소외되고 희생되셔야 하는 십자가의 예수님을 기억하며 기도합니다. 주님, 저희로 인하여 고통받고 신음하시는 주님, 저희를 구하소서. 어머니 마리아님, 저희를 지켜주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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