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복음 - 그리스도(성자)의, 사도들의, 교회의, 그리고 평신도들의 파견/사명(mission) _831 _1484 869_tran KH_err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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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19 ㅣ No.1492

 

당부의 말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글들은 어떤 특정인의 감정을 자극하기 위하여 마련된 글들이 결코 아니기에, 다음의 당부의 말씀을 드립니다:

(1) 지금까지 필자의 글들을 읽고서 필자에 대한 "분노(anger)" 혹은 "질투(envy)"를 가지게 된 분들은, 혹시라도 그분들께 "걸림돌(stumbling block)"일 수도 있는, 많이 부족한 죄인의 글들을 더 이상 읽지 마시기 바랍니다. 꼭 부탁드립니다.

(2) 그리고 위의 제(1)항의 당부의 말씀을 읽고도 굳이 이 화면의 아래로 스스로 이동하여, 많이 부족한 죄인의 아래의 본글을 읽는 분들은, 필자에 대한 "분노(anger)"와 "질투(envy)" 둘 다를 가지지 않을 것임에 동의함을 필자와 다른 분들께 이미 밝힌 것으로 이해하겠습니다.

(3) 그리 길지 않은 인생 여정에 있어, 누구에게나, 결국에, "유유상종[類類相從, 같은 무리끼리 서로 사귐 (출처: 표준국어대사전)]"이 유의미할 것이라는 생각에 드리는 당부의 말씀입니다.


+ 찬미 예수님!

 

1. 들어가면서

1-0. 다음은,  오로지 그리스도교의 고유한 바입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91.htm

(발췌 시작)
게시자 주 5-3: 사람들이 하느님을 찾아 나아가기만 하는 종교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먼저 사람들 한가운데로 다가오시는 계시 종교인 그리스도교의 다음과 같이, 위로부터 아래로, 즉 형이상학으로부터 형이하학으로, 단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방향성(directionality) 및 범주(categories)들"에 모두들 반드시 주목하도록 하십시오:

 

(0) 복음 (창세 3,15; 로마 1,1-4; 1,9)


(i)
성자(하느님의 아드님)의 파견(sending)/사명(mission)/역할(role) 및 그리스도의 복음(the Gospel of Christ) (마태오 4,12-17; 4,23; 9,35; 마르코 1,15; 루카 4,14-15)


(ii)
사도들의 파견(sending)/사명(mission)/역할(role) (마태오 10,26-33; 11,1; 28,16-20; 마르코 16,14-18; 루카 12,2-9; 24,36-49; 사도행전 1,6-8)


(iii) 평신도들의 파견(sending)/사명(mission)/역할(role) (마태오 24,14)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1-0: (1) 여기서, 위의  제(0)항은 주로 구약 성경에 예언된 바를 말하고, 제(i)항은 신약 성경 네 복음서들에 기록된 바를 말하며, 그리고 제(ii)항은 신약 성경에서 네 개의 복음서들 외의 경전들에 주로 기록된 바들을 말합니다.

 

[내용 추가 일자: 2021년 1월 23일]

(2) 다음에 발췌된 바는, "주석 성경", 로마서 1,1에서 "복음"(gospel, good news)에 대한 주석 전문이다. 첫 번째 문장이 "복음"이라는 성경 용어, 교리 용어의 자구적 어의(literal sense), 즉, 자구적 정의(definition)인데, "복음"이라는 용어의 그리스도교 교의 신학적 및 성서 신학적 정의(definition), 신비적/종말론적 어의(anagogical sense)를 제대로 학습하기 위하여, 이어지는 제(7)항 및 제(8)항까지 꼭 학습하도록 하라 :

(발췌 시작)
"복음"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나라를 세우시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시어 선포하게 하신 기쁜 소식이다. 그래서 "복음"에는 "하느님의 복음"(로마 1,1과 마르코 1,14),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로마 15,19; 마르코 1,1), "(하늘) 나라의 복음"(마태오 4,23 등)과 같이 여러 가지 수식어가 붙을 수 있다.(#1) 이러한 기쁜 소식 또는 복음의 새로운 성격은(로마 10,15와 루카 4,18-19에서 인용되는 이사야 52,7과 61,1 참조) 무엇 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된다. 구약 성경의 예언자들은 이미 모든 사람에게 베풀어지는 하느님의 사랑과 용서를 선포하였다. 그런데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약의 이 약속들이 성취되고 실현되는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사도 바오로는 로마서 제2절에서 이 점을 강조한다.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들이 선포하고 예고한 복음을 유다인이든 아니든 모든 사람에게 전하게 하시려고 바오로를 따로 선택하신 것이다.
(이상, 발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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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게시자 주: 따라서, "복음"(gospel)이란, 곧, "하느님의 복음"(로마 1,1과 마르코 1,14),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로마 15,19; 마르코 1,1), 즉, "(하늘) 나라의 복음"(마태오 4,23 등)을 말함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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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다음에 발췌된 바는, 바로 위의 제(2)항에 발췌된 "주석 성경"의 주석의 원출처인 프랑스어본 "공동번역성서(TOB)", 로마서 1,1에서 "복음"(Evanlile)에 대한 주석 전문인데, 바로 위의 제(2)항에 제시된 주석과 어떠한 자이점이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라:

 

(발췌 시작)

gospel_in_TOB_romans1_1.jpg 

(이상, 발췌 끝) 

 

(4) 다음은 "가톨릭 교회 교리서 용어집"에서 발췌한 바이다. 위의 제(2)항에 제시된 정의(definition)에서 말하는 "기쁜 소식"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더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cc_glossary.htm#g 

(발췌 시작)

GOSPEL

 

The "good news" of God's mercy and love revealed in the life, death, and resurrection of Christ. It is this Gospel or good news that the Apostles, and the Church following them, are to proclaim to the entire world (571, 1946). The Gospel is handed on in the apostolic tradition of the Church as the source of all-saving truth and moral discipline (75). The four Gospels are the books written by the evangelists Matthew, Mark, Luke, and John which have for their central object Jesus Christ, God's incarnate Son: his life, teachings, Passion and glorification, and his Church's beginnings under the Spirit's guidance (124, 514).

 

복음(gospel)

 

그리스도의 삶, 죽음, 그리고 부활 안에서 드러내어진 하느님의 자비(mercy) 및 사랑(love)으로 구성된 "좋은 소식"을 말합니다.(#2) 사도들과, 그들을 뒤따르는 교회가 전체 세계에 선포하여야 하는 것은 바로 이 거룩한 복음(Gospel) 혹은 좋은 소식입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571항, 제1946항). 이 거룩한 복음(Gospel) 은, 모든 구제하는 진리 및 윤리적 규율(moral discipline)의 출처로서, 교회의 사도전승(apostolic tradition,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전승) 안에서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75항). 네 개의 복음서들은 복음사가들인 마태오, 마르코, 루카, 그리고 요한에 의하여 쓰여진 책들인데, 이 책들은 그들의 중심 대상(central object)인, 하느님의 육화하신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을 위하여, 다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의 삶, 가르침들, 수난 및 영광을 받으심(glorification), 그리고 성령의 인도 아래에서 당신의 교회의 시작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24항, 제514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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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번역자 주: (1)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자비(慈悲)/애긍(哀矜)(mercy), 하느님의 자비/신성적 자비(divine mercy) 등의 용어들의 정의(definitions)들을 학습할 수 있는데, 나영된 순서대로 학습하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25.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61.htm <----- 필독 권고 

 

(2)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자비(慈悲)/애긍(哀矜)(mercy)라는동일한 주제와 관련된 나머지 졸글들을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works_of_mercy.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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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5) 따라서, "복음"(gospel)이라는 용어의 자구적 어의(literal sense)가 다음과 같이 정의됨(is defined)을 알 수 있다:

 

북음(gospel)

 

하느님께서 당신의 나라를 세우시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시어 선포하게 하신 기쁜 소식, 즉, 그리스도의 삶, 죽음, 그리고 부활 안에서 드러내어진 하느님의 자비(mercy) 및 사랑(love)으로 구성된 "좋은 소식"(the Good News)을 말하며, 또한 "하느님의 복음"(로마 1,1과 마르코 1,14),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로마 15,19; 마르코 1,1), 즉, "(하늘) 나라의 복음"(마태오 4,23 등)라고 불립니다.

 

(6) 다음은,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줄리오 알레니 신부님(1582-1649년)에 의하여 저술되어 1635년에 초간된, 신약 성경 중의  네 복음서들을 하나로 묶은 화합 복음서/조화 복음서의 한 종류인, "천주강생언행기략"에서 발췌한 바이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582-1649_쥬리오_아레니/1635_천주강생언행기략.htm  

(발췌 시작)

"천주강생언행기략", 권1_0_만일략경설&조목_4-19 (<---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만일략 = 복음(Gospel), 마두 = 마태오 (Matthew), 마이가 = 마르코 (Mark), 로가 = 루카 (Luke), 약망 = 요한 (John), 액제아(阨濟亞) = 그리스, 라마 = 로마, 성인 열라니모 = 성 예로니모 (St. Jerome, 347-420년), 성 달마소 교종 = 성 다마소 교황 (St. Damaso, Pope, 305-384년, 재위기간: 366-384년), 성인 오사정 = 성 아우구스티노 (St. Augustine, 354-430년), 슬도 = ???, 의살백이 = 엘리사벳, 액일다 = 이집트, 니각득목 = 니코데모, 서가이 = 시카르(즉, 야곱의 우물이 있는 사마리아의 한 고을), 가리륵아 = 갈릴래아, 갈발옹 = 카파르나움, 납영 = 나인, 일낙살이 = 겐네사렛, 저락 = 티로, 백살의달 = 벳사이다, 대박이 = 성경 본문에 주어지지 않은 주님 거룩한 변모가 일어난 산의 이름, 살마리아 = 사마리아, 백대니아 = 베타니아, 엽례각 = 예리코, 비랄다= 빌라도, 흑라득 = 헤로데] [주: 첫 번째 각주인 "중국인들이 만일략 이라고 말하는/일컫는" 에 대한 각주에서, "즉,  번역한 말(譯語)은 호보(好報, 좋은 소식) 복음(福音)이다" 라고 서술하고 있음. 다음에 있는 글을 또한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53_만일략.htm.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복음"은 당연히 "그리스도의 복음"을 말하는데, 가톨릭 보편 교회 교도권이 전통적으로 가르쳐온 이 용어의 의미/정의(definition)는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으니 꼭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87.htm] [주: 교황님을 말하는 "교종"이라는 번역 용어가 사용되고 있음. [사도 마태오와 사도 요한에 대하여] "종도" (즉, 요즈음 표현으로 "사도"), [마르코와 루카에 대하여] "성도"라는 번역 용어들이 사용되고 있음. 마태오 복음서"여덕아"국 문자, 즉, 마태오의 모국어인 "히브리어" (혹은 "아람어")로 저술되었음과, 나머지 세 복음서들이 "액제아"국 문자, 즉, "그리스어"로 저술되었음을 말하고 있음.] [주: 마태오 복음서가 애초에 (즉, 기원후 50년 경에) "히브리어" (혹은 "아람어")로 저술되었음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성서학자이신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의 가르침 등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36.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33.htm. 또한 성 예로니모가 다마소 교황님의 명령을 받아 성경을 태서제국(즉, 태서의 여러 나라들, 즉, 로마 제국의 여러 나라들)이 송독(즉, 글을 소리내어 읽음)하는 것을 편하도록 하기 위하여 로마 문자(즉, 라틴어)로 번역하였다는 언급도 있음.] 

 

복음_만일략_in_1635_천주강생언행기략_권1_0_만일략경설&조목_제1a쪽.jpg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왼족에서 세 번째 열(column)을 보라.

(이상, 발췌 끝)

 

참고로, "천주강생언행기략"1782년 이전에 이미 우리나라 조선에 전래되어[주: 강화도 소재 외규장각 소장 도서 목록에 책명이 기록되어 있음] "실학"에 관심이 많았던 당시의 조선의 임금과 유학자들이 학습하였던, 한문본 천주교 문헌들들 중의 하나임이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되는 책이다.

 

[내용 추가 일자: 2021년 2월 11일]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福音(복음)이라는 번역 용어의 최초 출처는 줄리오 알레니 신부님의 천주강생언행기략(1635년)일 것이다" 제목의 졸글을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58.htm <----- 필독 권고

 

그러므로, "福音(복음)이라는 신조어 번역 용어는, 개신교회 측의 용어가 결코 아니고, 한문 문화권 천주교회의 고유한 신조어 번역 용어이다.

[이상, 2021년 2월 11일자 내용 추가 끝]

 

[내용 추가 일자: 2022년 10월 8일]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줄리오 알레니 신부님애 의하여 저술되어 1629년에 초간된 한문본 "미살제의"에서는 이탈리아어 vangelo (gospel)[즉, evangelium]의 음역(音譯, transliteration)으로서, "萬日略"(만일략) 대신에"萬熱略"(만열략)이라는 표현 이 사용되었음을, 실증적으로(positively) 확인할 수 있다. 참고로,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바로 이 사실을 처음으로 확인한 시점은 2016년 여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731.htm <----- 필독 권고

[이상, 2022년 10월 8일자 내용 추가 끝]

 

(7) ["복음"이라는 용어의 그리스도교 교의 신학적 및 성서 신학적 정의(definition), 신비적/종말론적 어의(anagogical sense)] 그리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들 중의 하나인,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인류의 빛"(Lumen Gentium), 제5항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the gospel of Jesus Chirst) 이란 곧, "하늘 나라의 도래"(the coming of the kingdom of God)으로 정의되고(is defined) 있다. 이에 대하여서는, 다음의 주소에 있는 졸글[제목: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Gospel)은 무엇에 대한 것?; 게시일자: 2009-12-04]을 꼭 학습하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87.htm <----- 필독 권고

 

(8) 다음은 교황청 공인 영어 성경인 NAB(New American Bible, St. Joseph 판)의 부록에 있는 Bible Dictionary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GOSPEL: In Greek, this word signifies good news, and specifically the good news of the Kingdom of God (Heb 4,2; Mt 4,23). St. Paul uses the word to indicate his preaching; later, the same word will be applied to the accounts of Christ's life (1 Cor 9,16; Rom 1,3).
 
복음(GOSPEL):  그리스어로, 이 단어는 좋은 소식(good news)을 의미하며, 그리고 구체적으로 말하면(specifically) 하느님 나라(the kingdom of God)에 대한 좋은 소식(good news)을 말한다(히브리 4,2; 마태오 복음서 4,23).(*1) 성 바오로는 이 단어를 자신의 설교를 가리키기 위하여 사용하며, 그리고 이후로, 같은 단어는 그리스도의 삶에 대한 기록들에 적용될 것이다 (1코린토 9,16; 로마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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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번역자 주: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복음"이라는 용어의 더 자세한 정의(definition)를 학습할 수 있다:

(*2) 번역자 주: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이에 대한 더 자세한 글[제목: 로마 16,25에서 <내가 전하는 복음으로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선포로> 는 번역 오류 이다; 게시일자: 2020-12-21]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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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2021년 1월 23일자 내용 추가 끝]

(이상, 게시자 주 1-0 끝)

 

이번 글에서는, 위의 (i) - (iii) 의 범주들 사이의 관계 및 역할 등에 대하여 함께 고찰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를 위하여, "mission(사명, 임무)" 이라는 그리스도교 신학적 용어에 대한 설명을 우선적으로 상기하도록 하겠습니다:

 

1-1. 다음은 St. Joseph 판 New American Bible의 부록인 Bible Dictionary에 주어진 "mission(사명, 임무)" 라는 용어에 대한 설명입니다:

 

(발췌 시작)
Mission.
Out of love the Father sends his only Son into the world. Jesus speaks in this way of his "mission" which is to save men by giving them Life (Jn 16,27-28). Then, just as the Father has sent the Son into the world, so Jesus sends the apostles into the world (Jn 20,21). This second mission is a prolongation of the former one.

 

사명/임무(mission)

사랑(love)에 기인하여 성부(Father)께서는 당신의 유일한 아드님(Son)을 세상에 파견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생명(Life)를 주심으로써 사람들을 구하시는(save)(요한 복음서 16,27-28) 당신의 "사명/임무(mission)"의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러고 나서, 성부께서 성자를 세상에 이미 파견하셨던 것과 꼭 마찬가지로, 또한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을 세상에 파견하십니다(요한 복음서 20,21). 바로 이 두 번째 사명/임무(mission)는 전자의 사명/임무의 어떤 연장입니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게시자 주 1-1: 다음은 요한 복음서 13,16-17 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입니다:

(발췌 시작)

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17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이상, 발췌 끝)

 

1-2. 다음은 Modern Catholic Dictioanry에 주어진 "mission" 이라는 용어에 대한 설명입니다. 첫 번째 문장이 이 용어의 정의(definition)입니다:

 

출처: http://www.therealpresence.org/dictionary/m/m235.htm
(발췌 시작)

MISSION

The term literally denotes "sending" and covers a variety of meanings, all somehow expressing the idea of a going forth from one person to others in order to effect some beneficial change in their favor. At the highest level are the divine missions of the Trinity: the visible mission of the Second Person, sent by the Father in the person of Jesus Christ, and the invisible mission of the Holy Spirit, sent by the Father and the Son. Christ then sent the Apostles to make disciples of all nations. Their mission was to preach the Gospel, baptize, and teach the people "to observe all the commands I gave you" (Matthew 28:19-20).The Apostles, in turn, personally and through their successors have been sending other faithful to continue the work of the Master in evangelizing the human race. Mission, therefore, is the purpose of vocation. All who are called to follow Christ are sent by Christ, in the person of his Church, to extend the Kingdom of God. (Etym. Latin missio, a sending.)

 

사명/임무(mission)

이 용어는 글자 그대로 "파견(sending)"를 나타내며 그리고 다양한 의미들을 포함하는데, 모두는 한 인격(a person)으로부터 다른 이들을 향하여 그들에게 유리하게 무슨(some) 호혜적 변화를 초래하기 위하여 한 개의 앞을 향하여 나감(a going forth)이라는 관념(idea)을 아무튼(somewhat) 표현합니다. (i) 가장 높은 수준에서 성삼위의 거룩한 사명/임무들이 다음과 같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으로(in the person of Jesus Christ) 성부에 의하여 파견되는(sent), 두 번째 위격(the Second Person)의 가시적 사명/임무(visible mission), 그리고, 성부와 성자에 의하여 파견되는, 성령의 비가시적 사명/임무(invisible mission). (ii) 그러고 나서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민족들을 제자들로 삼기 위하여 사도들을 파견하셨습니다. 그들의 사명/임무는 복음을 선포하고, 세례를 주며, 그리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to observe all the commands I gave you)" 백성을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마태오 복음서 28,19-20). (iii) 사도들은, 이번에는(in turn),  인격적으로(personally) 그리고 자신들의 후계자들을 통하여 인류의 복음화(evangelization)에 있어 이 스승님의 위업을 계속하기 위하여 다른 충실한 자들을 파견해 오고 있습니다(has been sending). (iv) 그러므로 사명/임무는 소명(vocation)의 목적(purpose)입니다. 그리스도를 뒤따르도록 부름을 받은 모든 이들은, 하느님의 나라(the kingdom of God)를 확장하기 위하여,  당신 교회의 인격으로(in the person of the Church), 그리스도에 의하여 파견됩니다. [어원. Latin missio, 어떤 파견(a sending).]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게시자 주 1-2: 바로 위의 (1) - (iii)항들 각각은 위의 제1-0항의 (i) - (iii) 각각에 해당할  것입니다.

 

1-3.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신학 대전(Summa Theologica), Ia q43, 하느님의 위격들의 사명 혹은 파견  그리고 이 대전의 입문서/요약인 "신학대전여행", Ia q43, 하느님의 위격들의 사명 혹은 파견 은 다음에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076.htm <----- 필독 권고
 

2.

2-0. 복음 (창세기 3,15; 로마 1,1-4; 1,9)은, 성 바오로(St. Paul)가 다음의 로마서 1,2-3에서 구체적으로 말하듯이, "미리 성경(구약 성경)에 약속해 놓으신 성자, 즉 하느님의 아드님, 즉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을 말합니다:

 

(발췌 시작)
(로마서 2-3)
이 복음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예언자들을 통하여 미리 성경에 약속해 놓으신 것으로, 당신 아드님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상, 발췌 끝).

 

2-1. [파견/사명에 있어서의 첫 번째 단계] 성자(하느님의 아드님)의 파견(sending)/사명(mission)/역할(role) 및 그리스도의 복음(the Gospel of Christ) (마태오 4,12-17; 4,23; 9,35; 마르코 1,15; 루카 4,14-15)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으로(in the person of Jesus Christ) 성부에 의하여 파견되는(sent), 성삼위의 두 번째 위격(the Second Person)의 가시적 사명/임무(visible mission)를, 즉 지상에 하느님 나라의 개시(開始)(the inauguration of the kingdom of God)를, 즉 지상에 하늘 나라의 도래(the coming of the kingdom of heaven)를, 주된 부분으로 가지고 있으, 그리고, 성부와 성자에 의하여 파견되는, 생명의 제공자(the giver of life)이신 성삼위의 세 번째 위격인 성령(the Holy Spirit)(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경)의 비가시적 사명/임무(invisible mission)을 포함합니다.

 

2-2. [파견/사명에 있어서의 두번 째 단계] 사도들의 파견(sending)/사명(mission)/역할(role) (마태오 10,26-33; 11,1; 28,16-20; 마르코 16,14-18; 루카 12,2-9; 24,36-49; 사도행전 1,6-8)은, 그리스도께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들로 삼기 위하여 사도들을 파견하셨던 것을 주된 부분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사명/임무는 (i) 복음을 선포하고, (ii) 세례를 주며, (iii) 그리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to observe all the commands I gave you)" 백성을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마태오 복음서 28,19-20).(*) 그리고 베드로를 수장으로 하는 사도들의 파견은, 사도 계승(the Apostolic Succession)을 통하여,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으며, 그리고 사제, 부제 및 수도자들은, 바로 이러한 사명/임무를 수행하는, 사도들의 후계자들인 주교들의 협조자(collaborators)들입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927항, 제1461항, 제1462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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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자 주:
(1) 여기서, 마태오 복음서 28,19-20두 번째 파견된 자들인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의 사명/임무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제한하는(limit) 성경 구절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2) 바로 위의 제(1)항의 이유 때문에, "파견/사명"에 있어 두 번째 단계까지는 "정치(politics)"라는 용어와 이 용어의 파생어들은, 성경 본문 혹은, 가톨릭 교회 교리서 등의 가톨릭 보편 교회의 핵심 문헌들에서 사용될 여지가 전혀 없음 또한 주목하십시오. 그리고 지금 말씀드린 바로 이 지적은, 예를 들어, 아래의 3-1항에 발췌된 "간추린 사회 교리" 제83항에 또한 구체적으로 명기되어 있습니다.


(3)
다음은 요한 복음서 13,16-17 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입니다:

(발췌 시작)

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17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이상, 발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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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파견/사명에 있어서의 세 번째 단계] 평신도들의 파견(sending)/사명(mission)/역할(role) (마태오 24,14)은, 사도들이 인격적으로(personally) 그리고 사도 계승(the Apostolic Succession)에 의한 자신들의 후계자들인 주교들을 통하여 인류의 복음화(evangelization)에 있어 이 스승님의 위업을 계속하기 위하여 , 사제, 부제 및 수도자들로 이루어진 주교들의 협조자들의 도움과 함께, 다른 충실한 자들, 즉 은총의 지위에 있는 평신도들을 교회의 바깥을 향하여 파견해 오고 있는 것(미사, missa, sending)주된 부분으로 가지고 있습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899항, 제1332항).

 

2-4. 그러므로 사명/임무는 소명(vocation)의 목적(purpose)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뒤따르도록 부름을 받은 모든 이들은, 하느님의 나라(the kingdom of God)를 확장하기 위하여,  당신 교회의 인격으로(in the person of the Church), 그리스도에 의하여 파견됩니다.

 

게시자 주 2-4: 이상, "파견(sendings)들/사명(mission)" 의 그리스도교 신학적 의미에 대하여 함께 고찰하였습니다.따라서,  지금부터는, "파견/사명에 있어 세 번째 단계인, 교회의 바깥을 향한 평신도들의 파견/사명에 관한 가톨릭 보편 교회 교도권의 더 구체적인 가르침들을 함께 고찰하도록 하겠습니다.

 

3.

3-1. 다음은, 다음은,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 의하여 마련되어, 2004년 4월 2일자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 헌정(獻呈)된(dedicated), 사제 및 수도자들의 책무에 관한 "간추린 사회 교리" 제83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내용 추가 일자: 2013년 12월 26일]

게시자 주 3-1: 다들 잘 알고 계시겠지만, 신품에는
(1) 주교품
(2) 사제품
(3) 부제품
이렇게 셋이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사제들도 당연히 교회의 일부 구성원들이나,
그러나 사제들만이 교회의 전체 구성원들을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한편으로,

아래의 가르침, 주교님들의 직무에 대한 글이 아니고, 소속 교구의 교구장 주교(bishop)에 의하여 파견되는, 주교님들의 협조자(collaborators)들인, 신부(神父, presbyters, 즉 주교가 아닌 사제)들, 그리고 수도자(religious)들의 사명/직무의 범위와 한계(limit)에 대한 글입니다. 

아래의 글을 읽으실 때에 지금 말씀드린 바를 반드시 유념하셔야 할 것입니다.

 

다음은 요한 복음서 13,16-17 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입니다:

(발췌 시작)

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17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이상, 발췌 끝)

(이상, 게시자 주 끝)

[이상, 내용 추가 끝]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88.htm

(발췌 시작)
This social doctrine implies as well responsibilities regarding the building, organization and functioning of society, that is to say, political, economic and administrative obligations — obligations of a secular nature — which belong to the lay faithful, not to priests or religious[128]. These responsibilities belong to the laity in a distinctive manner, by reason of the secular condition of their state of life, and of the secular nature of their vocation[129]. By fulfilling these responsibilities, the lay faithful put the Church's social teaching into action and thus fulfil the Church's secular mission[130].


바로 이 사회 교리는 또한 사회의 건축 행위, 조직화 및 기능화, 달리 말하여, 어떤 세속적 본성의 의무들인, 정치적, 경제적 및 행정적 의무들에 관련한 책무/책임(responsibilities)들을 또한 의미하는데, 이 책무/책임들은, 충실한 평신도에 속하는 것이지, 사제(priests)들 혹은 수도자(religious)들에게 속하지 않습니다(*)[128]. 이들 책무/책임들은, 삶에 있어서의 그들의 지위에 기인하는, 그리고 그들의 소명의 세속적 본성(secular nature)에 기인하는 세속적 여건(secular condition)이라는 이유 때문에, 어떤 구별이 있는 방식으로(in a distinctive manner) 평신도들에게 속합니다[129]. 이들 책무/책임들을 구현함으로써, 충실한 평신도들은 교회의 사회에 대한 가르침(Church's social teaching)을 실행에 옮기고(put into action) 그리하여 그 결과 교회의 세속 사명을 구현합니다(**)[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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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 Cf. Catechism of the Catholic Church, 2039.
127. 『가톨릭 교회 교리서』 , 2039항 참조.

[128] Cf. Catechism of the Catholic Church, 2442.
128. 『가톨릭 교회 교리서』 , 2442항 참조.

[129] Cf. John Paul II, Post-Synodal Apostolic Exhortation Christifideles Laici, 15: AAS 81 (1989), 413; Second Vatican Ecumenical Council, Dogmatic Constitution Lumen Gentium, 31: AAS 57 (1965), 37.
129. 「평신도 그리스도인」 , 15항, AAS 81(1989), 413면; 교회 헌장, 31항, AAS 57(1965), 37면 참조.

[130] Cf. Second Vatican Ecumenical Council, Pastoral Constitution Gaudium et Spes, 43: AAS 58 (1966), 1061-1064; Paul VI, Encyclical Letter Populorum Progressio, 81: AAS 59 (1967), 296-297.
130. 사목 헌장, 43항, AAS 58(1966), 1061-1064면; 「민족들의 발전」, 81항, AAS 59(1967), 296-297면 참조.

(*) 번역자 주:
위의 간추린 사회 교리 제83항의 가르침은, 가톨릭 교회가, 소위 말하는, "정교분리(政敎分離, the separation of church and state)" 무조건적으로 동의하지 않기에 의미함에 반드시 주목하도록 하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정교분리"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입장은 다음의 굿뉴스 서버 제공의 우리말 가톨릭 대사전에 주어진 설명을 읽도록 하라: 

출처: http://info.catholic.or.kr/dictionary/view.asp?ctxtIdNum=3089 <----- 필독 권고

(발췌 시작)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정교분리에 대해 새로운 입장을 취하고 있다. 즉 교회가 정치에 직접 간섭함으로써 정교분리의 원칙을 파기한다는 가르침이 아니라 현대교회는 끊임없이 지상의 평화를 가로막는 전쟁의 야만성을 단죄하고(사목헌장 77) 전쟁의 온상인 과도한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해야 함을 강조하였다(사목헌장 83). 교황 바오로 6세도 <민족들의 발전 촉진에 관한 회칙>을 통하여 “얼마나 많은 민족들이 기아에 울고, 얼마나 많은 가족들이 빈곤에 허덕이는가 … 국가나 개인의 낭비, 허영심에 가득 찬 지출, 군비경쟁은 무엇인가. 교회는 아직도 굶주리고 불안한 생활을 계속하는 형제들의 운명에 무관심한 수 없다”(회칙 53, 74)고 강조하며 교회의 사회참여를 역설하였다. 정교분리의 원칙은 실제에 있어서 지켜지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정교의 이상적인 관계는 완전한 분리보다는 대등한 입장에서 서로 협력하는 것이다. 그레고리오 16세를 위시하여 역대 교황들도 완전하고 철저한 정교분리를 배척하였다.
(이상, 발췌 끝).
(이상, 발췌 끝).

 

3-2. 그리고 다음은 ,1994년 1월 31일자 교황청 성직자성 문헌, "사제의 직무와 생활 지침(DIRECTORY ON THE MINISTRY AND LIFE OF PRIESTS)" 제33항 전문입니다.

 

[내용 추가 일자: 2013년 12월 26일]

게시자 주 3-2-1: 다들 잘 알고 계시겠지만, 신품에는
(1) 주교품
(2) 사제품
(3) 부제품
이렇게 셋이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사제들도 당연히 교회의 일부 구성원들이나,
그러나 사제들만이 교회의 전체 구성원들을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한편으로,

아래의 가르침, 주교님들의 직무에 대한 글이 아니고, 소속 교구의 교구장 주교(bishop)에 의하여 파견되는, 주교님들의 협조자(collaborators)들인, 신부(神父, presbyters, 즉 주교가 아닌 사제)들의 사명/직무의 범위와 한계(limit)에 대한 글입니다.

아래의 글을 읽으실 때에 지금 말씀드린 바를 반드시 유념하셔야 할 것입니다.


다음은 요한 복음서 13,16-17 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입니다:

(발췌 시작)

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17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이상, 발췌 끝)

(이상, 게시자 주 끝)

[이상, 내용 추가 끝]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84.htm

(발췌 시작)

출처: http://www.vatican.va/roman_curia/congregations/cclergy/documents/
rc_con_cclergy_doc_31011994_directory_en.html
 

(발췌 시작)

사제의 직무와 생활 지침(DIRECTORY ON THE MINISTRY AND LIFE OF PRIESTS)

교황청 성직자성, 1994년 1월 31일


33. Political and Social Obligation.

33. 정치적 및 사회적 의무

 

The priest, as servant of the universal Church, cannot tie himself to any historical contingency, and therefore must be above any political party. He cannot take an active role in political parties or labour unions, unless, according to the judgement of the ecclesiastical authority, the rights of the Church and the defence of common good require it.(97) In fact, even if these are good things in themselves, they are nevertheless foreign to the clerical state since they can constitute a grave danger of division in the ecclesial communion.(98)

보편 교회의 종으로서 사제(priest)는 임의의 역사적 [변성(變成)함에 있어 연(緣)의] 비필연성(非必然性)(any historical contingency)(*)에 자기 자신을 관련시킬 수 없으며, 그리하여 그 결과 임의의 정치적 단체들 위에 반드시 있어야만 합니다. 그는, 교회의 권위의 판단에 따라, 교회의 권리들 그리고 공동선의 옹호가 그것을 요구하지 않는다면, 정치적 단체들 혹은 노동 조합들에서 어떤 능동적인 역할을 맏을 수 없습니다.(97) 사실, 심지어 이들이 그들 자체로 선한 일들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직자의 지위에 이질적인데(foreign to) 이는 그들이 교회의 통공(the ecclesial communion)에 있어 분열(division)이라는 중대한 위험을 만들어 낼(constitute) 수 있기 때문입니다.(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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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변성(變成)함에 있어 연(緣)의] 비필연성(非必然性)(contingency)"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는 다음에 있으니 필독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54.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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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ke Jesus (cf Jn 6:15 ff.), the priest "ought to refrain from actively engaging himself in politics, as it often happens, in order to be a central point of spiritual fraternity".(99) All the faithful, therefore, must always be able to approach the priest without feeling inhibited for any reason.


예수님처럼
(요한 복음서 6,15와 이어지는 몇 개의 절들을 참조하라), 사제(priest)는, 자주 발생하듯이, "영적 형제애의 어떤 중심점이 되기 위하여, 정치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행위를 삼가야의무가 있습니다". (99) 그 결과 열심 신자들 모두가 어떠한 이유에서든 억제(抑制)를 받는다는 느낌(feeling inhibited) 없이 사제(priest)에게 반드시 항상 다가갈 수 있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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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바로 이 두 문장들로부터 우리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442항의 교회의 사목자들(the Pastors of the Church)의  직접적인 정치 활동의 금지가, 사제들의 특정 정당의 당수가 되거나 혹은 특정 정당의 당원이 되는 것을 금할 뿐만이 아니라, 예를 들어, 교중 미사 중의 강론 말씀에서 일체의 정치적 발언의 금지, 그리고 언론 매체에 일체의 정치적 글의 기고 행위의 금지 등을 또한 포함함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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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iest will remember that "it does not fall on the shoulders of the Pastors of the Church to intervene directly in political activities and in social organisations. This task, in fact, forms part of the lay faithful vocation, in which they work by their own initiative together with their fellow citizens". (100) Nevertheless, he will not be absent "in the effort to form in them an upright conscience".(101) 
 
"정치적 활동들에 그리고 사회적 단체들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교회의 목자들의 어깨들 위에 떨어지지(fall on) 않음을 사제(priest)는 장차 기억할 것입니다. 이러한 과제는, 사실, 그 안에서 그들이 자신들의 동료 시민들과 함께 그들의 고유한 주도에 의하여 일하는, 충실한 평신도 소명의 일부분을 형성합니다." (100)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제는 "어떤 올바른 양심을 그들 안에 형성하고자 하는 노력에 있어" 장차 결여되지 않을 것입니다." (101)

 

The reduction of his mission to temporal tasks, of a purely social or political nature, is foreign to his ministry, and does not constitute a triumph but rather a grave loss to the Church's evangelical fruitfulness.


어떤 순전히 사회적 혹은 정치적 본성의, 세속적 과제들로 사제의 사명의 환원(reduction), 그의 사역에 이질적이며(foreign to), 그리하여 교회가 복음적 열매를 많이 맺음에 어떤 주목할 만한 성공(a victory)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중대한 손실(a grave loss)을
만들어 냅니다(constit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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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Cf C.l.C., can. 287 § 2; SACRED CONGREGATION FOR THE CLERGY, Decree Quidam Episcopi (8 March 1982), AAS 74 (1982), 642-645.
97. 교회법 제278조 2항; 교황청 성직자성, 교령 Quidam Episcopi, 1982.3.8., AAS 74(1982), 642-645 참조.
(98) Cf CONGREGATION FOR THE EVANGELIZATION OF THE PEOPLES, Pastoral Guide for Diocesan Priests that Depend on the Congregation for the Evangelization of Peoples (1 October 1989), 9 SACRED CONGREGATION FOR THE CLERGY, Decree Quidam Episcopi (8 March 1982), AAS 74 (1982), 642-645.
98. 「교황청 인류복음화성 산하 교회의 교구 사제 사목 지침」, 9항; Quidam Episcopi 참조.

(99) JOHN PAUL II Catechism of the General Audience of 28 July 1993 n. 3: "L'Osservatore Romano", 29 July 1993, cf ECUMENICAL COUNCIL VATICAN II Pastoral Constitution Qaudium et Spes, 43; SYNOD OF BISHOPS, Document on Ministerial Priesthood Ultimis temporibus (30 November 1971), II, I, 2b: AAS 63 (1971), 912-913 C.l.C, cann. 285 § 3; 287 § 1
99. 요한 바오로 2세, 1993년 7월 29일 일반 알현에서 한 교리 교육, 3항, 『로세르바 토레 로마노』, 1993.7.29; 사목 헌장 43항;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 직무 사제직에 관한 문헌Ultimis Temporibus, 1971.11.30., 2, 1, 2b, AAS 63(1971), 912-913; 교회법 제285조 3항; 제287조 1항 참조.

(100) Catechism of the Catholic Church, n. 2442; cf C.l.C., can. 227.
100. 『가톨릭 교회 교리서』, 2442항; 교회법 제227조 참조.

(101) SYNOD OF BISHOPS, Document on Ministerial; Priesthood Ultimis temporibus(30 November 1971), II, I, 2b: AAS 63 (1971), 913.
101.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 직무 사제직에 관한 문헌 Ultimis Temporibus, 1971.11.30., 2, 1, 2b, AAS 63(1971), 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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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내용 추가 일자: 2013년 12월 28일]

게시자 주 3-2-2: 다음은, 1999년 3월 19일자 교황청 성직자성 문헌 [제목: THE PRIEST AND THE THIRD CHRISTIAN MILLENNIUM TEACHER OF THE WORD, MINISTER OF THE SACRAMENTS AND LEADER OF THE COMMUNITY(말씀의 교사, 성사들의 사역자 및 공동체의 안내자인사제와 세 번째 그리스도교 천년기)] 제24항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위의 제3-2항에서의 가르침을 동일한 연장선 상에서 한 문장으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특히 각주(106)을 잘 들여다 보도록 하십시오:

출처: http://www.vatican.va/roman_curia/congregations/cclergy/documents
/rc_con_cclergy_doc_19031999_pretres_en.html
 

(발췌 시작)

24 [...] The priest should avoid falling into the contradictory position of abdicating exercise of his specific authority so as to involve himself in temporal, social or even political matters, (106) which God has left to the free disposition of man.

 

24 [...]  사제(priest)는, 하느님께서 사람의 자유로운 성향에 이미 남겨두신 일시적인(temporal), 사회적인(social) 혹은 심지어 정치적인(political) 문제들(106)에 자기 자신을 개입시키기 위하여, 자신의 특정한 권위(specific authority)의 행사를 포기하는(abdicating) 모순된 지위로 떨어지는 것을 마땅히 피하여야 합니다(should avo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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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Cf. Catechism of the Catholic Church, n. 2442; CIC, canon 227; Congregation for the Clergy, Directory for the Ministry and Life of Priests, Tota Ecclesia, n. 33: l.c., pp. 3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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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이상, 게시자 주 끝)

[이상, 내용 추가 끝] 


3-3.
2002년 11월 24일자 교횡청 신앙교리서 문헌, "가톨릭 신자들의 정치 생활 참여 문제에 관한 교리 공지 (Doctrinal note on some questions regarding the participation of catholics in political life)" 전문 은 다음에 있습니다. 제1항의 마지막 단락에서 특히 다음과 같은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출처 1: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출처 2: http://www.vatican.va/roman_curia/congregations/cfaith/documents/
rc_con_cfaith_doc_20021124_politica_en.html

(발췌 시작)

1. ... 이 ‘공지’는 가톨릭 신자들의 정치 참여 문제에 관한 교회의 완전한 가르침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에 관해서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 핵심적으로 요약되어 있다. 이 공지의 목적은 다만 그리스도인의 양심에 부합하고, 민주주의 사회에서 가톨릭 신자들의 사회 참여와 정치 참여를 고취시키는 몇 가지 원칙들을 상기시키고자 할 뿐이다.11) 최근의 긴박한 세계적 사건들로, 모호하거나 이론의 여지가 있는 견해들이 생겨나고 있어서 이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에서 몇 가지 중요한 요소들을 명백히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상, 발췌 끝)

 

3-4.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의 제6항에서 발췌하고 있는,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의 첫 번째 회칙 [제목: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제26-29항을 꼭 읽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31.htm (제6항) <----- 꼭 필독 권고

 

왜냐하면, 다음의 제3-4항에 있는, 후임자이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첫 번째 교화 권고 중의 가르침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의 첫 번째 회칙 [제목: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제26-29항에서 가르치신 바와 동일한 연장선 상에 있기 때문입니다:

 

3-5. 다음은 현 프란체스코 교황님의 첫 번째 교화 권고 [제목: 복음의 기쁨] 제198항과 제205항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89.htm <----- 필독 권고
(발췌 시작)
"교회의 경우에, 가난한 자들을 위한 선택(option)은", 어떤 [문화적,] 사회학적(sociological)[, 정치적(political) 혹은 철학적] 범주라기 보다는 오히려(**), "주로(primarily) 어떤 신학적 범주(a theological category)입니다"(제198항).  

 
"정치는, 비록 검게되었지만(denigrated), 한 개의 고상한 소명(vocation)으로 그리고 애덕(charity)의 가장 높은 형식(forms)들 중의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라고 이 교황님께서는 확언하십니다(affirms).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의 삶들에 의하여 ...  교란받게 되는(disturbed) 더 많은 정치인들을 우리에게 주실(grant) 것을 저는 주님께 간청합니다!"(제205항).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3:
(1) 사실 바로 위의 제3항에서 말씀드린 바들 모두는, 1992년에 초판 발행된, 다음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442따름 정리들입니다. 그리고 2013년 다해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를 학습하여야 하는 "신앙의 해"였습니다. 바로 이 "신앙의 해"를 거치면서, 위의 제2항에서 학습한 서로 다른 속성들을 지닌 여러 "파견들"이라는 범주들 사이의 포함관계들을 또한 고려하면서, 시공간을 초월하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442항의 깊은 의미를 국내의 가톨릭 신자들 모두(여기에는 성직자 및 수도자들 포함)가 올바르게 이해하고 또 숙지하였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출처: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발췌 시작)
2442 정치 구조나 사회생활의 조직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교회의 사목자들이 할 일이 아니다. 이 임무는 동료 시민들과 더불어 주도적으로 행동해야 하는 평신도들의 소명이다. 사회 활동에는 여러 가지 구체적인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사회 활동은 항상 복음의 메시지와 교회의 가르침에 부합하며, 공동선(*)을 목표로 세워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다운 열정으로 현세적인 일들을 활성화하고, 이를 위해 평화와 정의의 일꾼으로 행동하는 것" 192)평신도의 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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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사회적 관심", 제47항: AAS 80(1988), 582면.

(*) 번역 자 주: "공동선(the common good)"정의(definition)는 다음에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57.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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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끝).

 

[내용 추가 일자: 2013년 12월 28일]

(2) 다음은,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442에 대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해설인 1993년 7월 28일자 교리 교육용 일반 알현 강론 말씀 [제목 Priests Do Not Have a Political Mission(사제들은 어떤 정치적 사명을 지니지 않습니다] 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84.htm <----- 전문 필독 권고
(발췌 시작)
It should be added that the presbyter's right to express his own personal choices is limited by the requirements of his priestly ministry. This limitation too can be an aspect of the poverty he is called to practice following Christ's example. In fact, he can sometimes be obliged to abstain from exercising his own right so that he can be a strong sign of unity, and thus proclaim the Gospel in its fullness. Even more, he must avoid presenting his own choice as the only legitimate one, and within the Christian community, he should respect the maturity of the laity (cf. Ench. Vat., IV, 1196), and even work to help them achieve that maturity by forming their consciences (cf. Ench. Vat., IV, 1194). He will do what is possible to avoid making enemies by taking political stands that cause distrust and drive away the faithful entrusted to his pastoral mission.

자신 고유의 개인적 선택들을 표현하는 신부(神父, presbyter, 즉 주교가 아닌 사제)의 권리는 그의 사제로서의 사역(priestly ministry)의 요구들에 의하여 제한됨이 마땅히 덧붙여 말해져야 합니다(should be added). 바로 이러한 제한은 또한 그리스도의 모범을 뒤따라 그가 실천할 것이 요청되는 가난/청빈(the poverty)의 한 양상일 수 있습니다. 사실, 사제가 일치의 어떤 강한 표지일 수 있도록, 그리하여 그 결과 그 충만함 안에서 이 복음을 선포할 수 있도록, 사제는 때로는 자신의 고유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으로부터 삼가는 것이 의무지워질 수 있습니다. 심지어 더, 사제는 자신의 고유한 선택을 유일한 적법한 선택으로서 제시하는 것을 반드시 피하여야만 하며(must avoid), 그리하여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 안쪽에서, 사제는 평신도들의 성숙도를 마땅히 존중하여야만 하고(Ench. Vat., IV, 1196 참조), 그리고 그들의 양심들을 형성함으로써 바로 그 성숙도를 그들이 성취하는 것을 돕기 위하여 심지어 마땅히 일하여야 합니다(Ench. Vat., IV, 1194 참조). 사제는, 의심(distrust)을 야기하는 그리하여 자신의 사목적 사명에 맡겨진 열심 신자들을 쫓아버리는, 정치적 태도들을 취함으로써 원수들을 만드는 행위를 피하기(avoid) 위하 가능한 바를 장차 행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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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1) 바로 이 두 문장들로부터 우리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442항의 교회의 사목자들(the Pastors of the Church)의 직접적인 정치 활동의 금지가, 사제들의 특정 정당의 당수가 되거나 혹은 특정 정당의 당원이 되는 것을 금할 뿐만이 아니라, 예를 들어, 교중 미사 중의 강론 말씀에서 일체의 정치적 발언의 금지, 그리고 언론 매체에 일체의 정치적 글의 기고 행위의 금지 등을  또한 포함함을 알 수 있습니다.

 

(2)  다음은 요한 복음서 13,16-17 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입니다:

(발췌 시작)

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17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이상, 발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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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내용 추가 끝] 
(이상, 게시자 주 끝). 


4. (이 글의 결론)
 
그러므로, 지금까지 살펴본 바로부터 우리는, 

4-1. 한편으로, 하느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교회의 바깥을 향하여 파견되어 온 자들의 대다수가, 교회 안에 존재하면서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하느님의 나라를 지키고 돌보기 위하여, 성별된(consecrated) 자들인 주교들과 사제들 및 부제들, 그리고 세 개의 복음적 권고들을 받아들여 공개 서원함으로써 하느님께 봉헌된(dedicated) 자들인 수도자들로 이루어진,(*) 주교들의 협조자들에 의하여 교회 안에서 신앙과 윤리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양심 교육을 받아야 하는, 평신도들임을 알게 되었습니다(위의 제2-3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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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자 주:
(i) 하느님의 나라를 지키면서 돌보는 것이 주된 임무인, 성별된 자들과 봉헌된 자들이 예수님을 본받아 모범적으로 가난/청빈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내용은, 예를 들어,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는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 [제목: 교황님의 역할 VII - 가톨릭교회교리서 제2442항 해설 외]제2항에서 가르치고 계신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84.htm
(ii) 가톨릭 그리스도교 영성의 핵심인 "영적 가난" (마태오 복음서 5,3;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544항과 제2546항) 에 대한 글은 다음에 있으니 필독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34.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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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다른 한편으로,
 하느님의 나라(the kingdom of God)의 확장을 위하여 평신도들을 교회의 바깥으로 파견하는 고유한 사명(mission)을 가진 주교들과 주교들의 협조자들[즉, 신부(神父, presbyters, 즉 주교가 아닌 사제)들, 부제(deacons)들 및 수도자(religious)들]이,

 

교회의 통공(the ecclesial communion)에 있어, 특히 평신도들 사이의 분열(division)이라는 중대한 위험을 만들어 내지(constitute) 않기 위하여, 

 

교회 안에 존재하면서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그리고 특히 그리스도의 평화(peace)와 정의(justice)로 이미 충만하게 가득차 있기정치적 행위(political actions)들이 전혀 필요 없는, 

 

하느님의 나라, 즉 하늘 나라(the kingdom of heaven) 안에 마땅히 그리고 항상 머물러 있으면서, 마태오 복음서 28,19-20에 주어진 고유한 사명/직무를 수행하여야함을 또한 알게 되었습니다(위의 제2-2항, 제3-1항, 제3-2항).

 

게시자 주 4: 또 다른 한편으로, 다음은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242 전문입니다. 특히, 자연인으로서 특정 사제 개인의 정치적 신념의 관철을 위하여서가 아니라, 소속 교구의 교구장 주교님의 협조자인 신부(神父, presbyters, 즉 주교가 아닌 사제)라는 직무 대행자으로서, 모든 사람들의 안녕(welfare of all men)에 부합하는(in accord with) 것들이라는 구체적인 언급에 주목하십시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78.htm (2013년 11월 27일자 글)
(발췌 시작)

2246 It is a part of the Church's mission "to pass moral judgments even in matters related to politics, whenever the fundamental rights of man or the salvation of souls requires it. The means, the only means, she may use are those which are in accord with the Gospel and the welfare of all men according to the diversity of times and circumstances."53


2246
사람의 근본 권리들 혹은 영혼들의 구원이 판단을 요구할 때마다, "심지어 정치에 관련된 사안들에 있어 윤리적 판단들을 내리는 것"은 교회의 사명의 일부분입니다. [이 때에] 교회가 사용할 수도 있는(may use) 모든(omnia) 수단들(subsidia)은, 시기들 및 여건들의 다양성에 따라, 복음 모든 사람들의 안녕(welfare of all men)에 부합하는(in accord with) 것들 그리고 오로지(et sola) 이들 뿐입니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4-3.
질문 4-3: 그런데 교회 안쪽으로 정치가 들어오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요?


질문 4-3에 대한 답변: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 [제목: 정치화(政治化, politicization란?]을 읽도록 하십시오. 특히 성직자 및 수도자들께서 꼭 읽으실 것을 강력하게 요청드립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341.htm <----- 필독 권고

 

추가 읽을꺼리들:
http://www.vatican.va/holy_father/john_paul_ii/audiences/alpha/data/aud19931103en.html <-- 필독 권유
[1993년 11월 3일자 요한 바오로 2세의 교리 교육용 일반 알현 강론 말씀, 제목: The Laity Fulfill Their Calling in the World(평신도들은 세상에서 자신들의 소명을 구현합니다), 주: LG 31에 대한 해설]


http://www.vatican.va/holy_father/john_paul_ii/audiences/alpha/data/aud19931124en.html

[1993년 11월 24일자 요한 바오로 2세의 교리 교육용 일반 알현 강론 말씀, 제목: The Laity Answer God's Call in a Variety of Ways(평신도들은 다양한 방식들로 하느님의 부름에 답변합니다)]

 

http://www.vatican.va/holy_father/john_paul_ii/audiences/alpha/data/aud19940413en.html <-- 필독 권유

[1994년 4월 13일자 요한 바오로 2세의 교리 교육용 일반 알현 강론 말씀, 제목: The Laity Are Called to Renew the Temporal Order(평신도들은 세속의 질서를 다시 새롭게 하도록 요청받습니다]

 

http://catechesisofthepopes.wordpress.com/major-themes/the-church/audiences/#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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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작업에 소요된 시간: 현재까지 약24시간 (자료조사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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