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성당(明洞聖堂) 농성 관련 게시판

4월 21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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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환 [franco2] 쪽지 캡슐

1999-04-22 ㅣ No.3

4월 21일(수)

06:05 - 성당 마당에 왠 백차?

      언덕 위 안내실, 2명의 경찰과 4-5명의 규찰대, 10여명의 농성자, 안내실 직원 1명

      깨어진 안내실 유리창, 두 다리를 쭉 뻗고 앉아 깨어진 유리 조각을 피 묻은 양 손에  

      부여잡고, 한 손은 유리 조각을 목에 들이 대고 있다.

        그는 고아로 자랐고, 구치소를 들락이며 일정한 거처없이 떠돌아 다니다, 어떤

      신자의 도움으로 예비 신자 교리반에 등록 새로운 삶을 살기로 다짐 했다고 한다.

      삶이 힘들고 고달프면 아무도 없는 깜깜한 새벽 성당 뒷편의 성모동산에서 성모님을

      바라보며 울곤 했었단다.

        오늘 새벽(01:00경) 성모동산을 찾았으나 성모동산을 가득메운 농성천막으로

      성모님께 갈 수가 없었단다. 울화가 치밀자 옛 버릇으로 심한 욕설을 퍼 부었단다.

      계속 욕설을 퍼 부으며 안내실을 통과할 무렵, 농성단 규찰대의 검문(?)이 있었단다.

      더욱 화가난 그는 더욱 악을 써가며 아주심한 욕설을 퍼 부었단다. 그리고는 끊임없는

      실랑이가 계속되었고(05:00까지), 급기야는 몰매를 맞았단다. 위기에 처한 그는 안내실

      유리창을 깨었고, 사태가 심상치 않자 농성단은 경찰을 불렀다.

        깨진 유리 조각을 빼았으려 했으나 놓지 않고 김 신부님만을 찾는다. 안내실 전화로

      김 신부을 깨워 사태 해결을 부탁.

07:30 - 사목협의회실

      규찰대 1명, 규찰부장 1명과 면담.(성당 내 어떤 상황하에서도 비폭력 강조와 항의)

      규찰부장(정식사과:모든 책임을 지겠다. 다만 체포영장의 발부로 지금은 곤란하다.)

      참으로 잘못을 시인 했다. 안스러워 보인다. 다시 이야기 하기로 하고 헤어짐.

07:50 - 사제관 앞

      김 신부 : 다행이 큰 부상은 아니기에 수녀님에게 치료를 부탁하고, 간신히 진정

      시키고, 이해를 구했단다. 한 없이 울더니 "다 용서하고 이곳을 떠나겠다"고 해, "이번

      주일에 꼭 보자고 다짐받고"는 보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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