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재울성당 게시판

극상이에게... 성탄절이야기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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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민수 [piazzang] 쪽지 캡슐

1999-11-30 ㅣ No.511

영광이란 이름의 당나귀

 

  옛날 어느 먼 나라에 한 남자와 부인이 여인숙에 들었단다. 부인의 모습은 너의

엄마와 아주 비슷하게 생겼고 남자는 네 아빠처럼 턱수염이 긴 목수였단다. 그런데 여인숙엔 빈방이 없었어. 그래서 남자는 여인숙 주인에게 마구간이라도 좋으니 쉬고 가게 해달라고 사정을 했지.

  여인숙 주인은 부부를 바깥에서 잠시 기다리게 하고는 조그마한 마구간에

빈자리가 있는지 살펴보러 갔단다. 가축들은 모두 자기 보금자리에 자리잡고 있었어. 그는 동물들에게 나그네 부부를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물었단다. 마구간이 너무 비좁았기 때문에 나그네 부부를 재우려면 어느 동물이든 잠자리를 양보하지 않으면 안 되었거든.

 

  닭이 맨 먼저 매우 화난 소리로 말했지.

 「난 우리 보금자리를 절대로 남에게 내줄 수 없어. 더군다나 인간에겐 어림도 없지. 나는 돌봐야 할 가족도 있고 여우들의 습격에도 대비해야 해. 그래서 난 안된다구.」

  닭은 모가지를 길게 뽑고는 눈을 감아 버리는 거야, 글쎄.

 「너무 그렇게 딱딱하게 굴지 마, 새디.」

  그 옆의 외양간에 엎드려 있던 암소가 느릿하게 말했단다.

 「너도 그들을 들어오게 하면 기분이 좋아질 거야. 그러니까 자리를 조금씩만 양보해 주라구. 넌 지금 자리를 너무 많이 차지하고 있어. 하지만 난 비켜 줄 수가 없다구. 내일 아침 사람들에게 신선한 우유를 공급해야 하거든. 내 몸이 얼면 사람들은 영양가가 풍부한 우유를 얻을 수가 없어. 하찮은 사람들을 위해서 내 외양간을 양보하기에는 사회적으로 난 너무 중요한 존재란 말이야. 내 말 알겠지?」

  암소는 커다란 눈으로 여인숙 주인에게 윙크를 하고는 꼬리를 흔들어 볼기짝에 달라붙은 파리를 쫓았단다.

 「넌 어떠니, 꿀꿀아?」

  여인숙 주인은 돼지우리에 흙투성이로 엎드려 있는 돼지에게 물었단다.

 「나 말이에요? 지금 농담하고 계시는 겁니까!」

  꿀꿀이는 화를 벌컥 내며 대꾸했단다.

 「나한테는 물어 볼 가치도 없다구요. 아무도 나한테 뭘 요구하지는 않아요. 이런 더러운 돼지우리에서는 아무도 자려 하지 않으니까요. 나는 더럽고 불쾌해요. 내 잠자리는 사람들에게 적당하지 않아요. 차마 내보일 수 없다구요.」

꿀꿀이는 더러운 우리 속에 머리를 처박고는 돌돌 말린 꼬리만 내저었단다.

 「허어, 참! 이 일을 어떡한다? 너도 역시 안 되겠지, 스토니?」

  주인은 마구간에 누운 늙은 당나귀한테 물었단다.

 「뭐가 말이에요?」

  스토니가 반문했지.

 「네 잠자리를 나그네 부부에게 양보하는 것 말이다. 넌 지금 몸이 무거운데다 고집쟁이라, 이런 추운 날 밤엔 바깥으로 끌어낼 수도 없을 것 같구나. 어쩔 수 없지, 뭐. 나그네 부부에겐 마구간에도 빈자리가 없다고 말해야지. 그 부인은 아기를 바깥에서 낳아야겠구나.」

  주인은 포기하고 돌아섰단다.

 「잠깐만, 잠깐만요! 왜 그렇게 서둘러요?」

  당나귀 스토니가 주인에게 소리쳤단다.

  늙은 당나귀는 숨을 헐떡이며 다리를 세우고 일어났단다.

 「이리 와서 마구간 문을 열어요.」

  닭은 깜짝 놀라 눈을 휘둥그래 뜨고 목을 길게 뽑아서 돌아보았단다. 암소도 놀라서 씹던 지푸라기를 입에서 떨어뜨리고 놀란 눈으로 당나귀를 돌아보았지. 돼지는 진흙에 처박고 있던 머리를 들고 눈을 말똥말똥 굴리며 주위를 살폈단다. 동물들은 모두 놀란 눈으로 늙은  스토니가 따뜻한 마구간에서 추운 바깥으로 나가는 것을 지켜보았지. 하늘엔 별이 유난히도 총총하던 밤이었단다.

  잠시 후 턱수염이 난 남자가 남산만한 배를 한 부인을 조심스럽게 부축하고 마구간 안으로 들어왔어. 부인은 임신을 하고 있었던 거야. 동물들은 자신들이 너무 이기심에 가득 차서 편안한 잠자리를 양보하지 못했던 것이 부끄러웠단다. 그래서 마른 짚을 깔아 놓은 따뜻한 당나귀의 잠자리에 부인이 눕자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 동물들은 추운 바깥에서 떨고 있은 늙은 스토니를 생각하며 별로 마음이 편치 않은 잠속으로

  새벽녘이었지. 갑자기 아기의 울음소리가 이른 아침의 적막을 깨뜨렸단다. 암소는 커다란 갈색 눈을 번쩍 떴지. 돼지는 깜짝 놀라 펄쩍 뛰었다가 다시 진창 속으로 굴러 떨어졌단다. 닭도 놀라서 날개를 퍼덕이며 주위를 돌아보았지. 동물들은 스토니의 마구간에서 새로 태어난 아기를 안고 있는 젊은 부부를 보았단다. 아기는 낡은 담요에 싸여 있었지.

  바로 그때 마구간 문이 열리며 여인숙 주인이 새로 태어난 아기 당나귀를 안고 들어왔어. 아기 당나귀는 추워서 발발 떨고 있었단다.

 「이리로 데려오세요. 여긴 따뜻해요.」

  나그네의 부인이 여인숙 주인에게 말했지. 주인은 아기 당나귀를 부인의 아기 옆자리에다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단다.

 「아기들의 이름이 뭐예요?」

  돼지가 물었단다.

  그러자 갑자기 눈부신 빛에 싸인 아름다운 천사가 마구간 안에 나타나서 말했단다.

 「아기의 이름은 <예수>이고, 아기 당나귀의 이름은 <영광>이라 불리리라. 이 두 아기는 나중에 성장하여 예루살렘 밖에서 다시 만나게 되리니, 수많은 사람들이 이들을 환영하여 그 거대한 도시 안으로 인도할 것이니라.」

 「그런데 스토니는 어디에 있죠?」

 암소가 마구간을 둘러보며 물었단다.

여인숙 주인은 아주 슬픈 얼굴로 대답했지.

「스토니는 잘 견디지 못했어.」

 천사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모두를 위로하며 말했단다.

「스토니는 남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바쳤느니라. 이제 스토니의 영혼은 나와 함께 하늘 나라로 가리라. 너희들도 스토니를 기억하며 그녀처럼 살아야만 할 것이니라.」

  그리고는 눈 깜짝할 사이에 천사는 사라졌단다.

 

  모두들 스토니와 천사를 생각하며 무거운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지. 그때 갑자기 아기 예수가 울음을 터뜨렸고, 놀란 아기 당나귀는 그 꼬챙이 같은 다리로 비틀거리며 일어섰다가는 다시 짚더미 위에 털썩 주저앉았단다. 스토니 때문에 다들 슬픈 마음이었지만, 아기들의 그런 행동 때문에 그들은 모두 웃지 않을 수 없었지. 이처럼 새로운 생명은 언제나 우리의 주의를 죽음으로부터 이끌어 내는 법이란다.

  마침내 아침 햇살이 낡은 판자 벽을 뚫고 안으로 들어왔을 때, 동물들은 몸을 덥히기 위해 잠자리에서 일어나 마구간 주위를 웅성대며 움직이기 시작했단다. 아기 예수는 자기를 바라  보는 이상한 얼굴들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지. 아기 당나귀 <영광>은 예수의 곁에 앉아서 꺼칠꺼칠한 혀로 예수의 뺨을 핥았어. 그건 아기 당나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예수님께 이 영광을 드려요.>라고 말한 거란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성탄절이오면 <예수께 영광을>이라고 말하는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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