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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요세피나 바키타 성녀 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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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홍 [clemenskim] 쪽지 캡슐

2017-02-08 ㅣ No.7970

 

 


   성녀 요세피나 바키타(Josephina Bakhita)는 1869년 아프리카 수단(Sudan)의 다르푸르(Darfur)에서 부유한 가정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9살쯤 아랍 노예상인에게 납치되어 고통스런 청소년기를 보냈다. ‘바키타’라는 이름도 노예상인들이 지어준 것으로 ‘행운’이란 뜻이다. 이름과는 달리 그녀는 수단 중부 엘오베이드(El Obeid)와 현 수도(首都)인 카르툼(Khartoum)의 노예시장에서 팔리고 또 팔리는 신세가 되어 모진 고생을 했다.

   그러다가 1883년 이탈리아 공사(公使) 칼리스토 레냐니(Callisto Legnani)에게 팔리면서 그녀의 운명도 바뀌게 되었다. 처음으로 욕설이나 매질이 아닌 인간적인 대접을 받은 그녀는 그 후 공사의 친구인 아우구스토 미치엘리(Augusto Michieli) 가족에게 보내졌고, 1885년 미치엘리 가족과 함께 이탈리아로 가서 그 가족의 유모로서 일하게 되었다. 그녀는 이탈리아에서 좋은 대우를 받으며 그 나라를 사랑하게 되었다.

   미치엘리가 근무지를 옮기면서 자신의 큰딸과 유모인 성녀 바키타를 베네치아(Venezia)에 있는 카노사의 성녀 막달레나 수녀원에 맡겼는데, 그곳에서 그녀는 세상의 참된 주인이신 하느님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녀는 교리를 배워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고, 1890년 1월 9일 세례를 받으면서 자신의 새로운 인생의 상징으로 요세피나라는 세례명을 정했다. 그리고 1893년 카노사의 성녀 막달레나 수녀원에 입회하여 3년 뒤인 1896년 12월 8일 첫 서원을 했다. 그 후 남은 50년의 생애를 이탈리아 북부 비첸차(Vicenza)에 있는 시호(Schio)라는 곳에서 카노사(Canossa)의 수녀로서 또 하느님의 겸손한 딸로서 살았다.

   그녀는 온화하고 따뜻한 성품을 지녔고, 어떠한 천한 일도 마다하지 않고 행하며, 가난하고 곤경에 처한 이들을 돕는데 온힘을 다 쏟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녀를 ‘작은 흑인 어머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말년에 병고에 시달리면서도 온화한 미소를 잃지 않았던 그녀는 1947년 2월 8일 선종하였다. 그녀가 선종하자 그녀의 덕행을 기억하는 수많은 추모객들이 몰려왔다고 한다. 그녀의 겸손과 높은 덕행으로 인해 선종 12년 후부터 시복시성 절차가 시작되었고, 1978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 역시 그녀의 영웅적인 덕행을 인정했다. 그녀는 1992년 5월 17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0년 10월 1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같은 교황으로부터 성인품을 받았다. 그녀에 대한 아프리카 교회의 현양 열기와 사랑은 매우 특별하다. 그래서 그녀는 ‘아프리카의 꽃’으로 불리고 있으며 수단의 수호성녀로서 존경받고 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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