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덕동성당 게시판

산골공소의 선교사이야기(6/5)

인쇄

김영지 [JEJUBLUE] 쪽지 캡슐

2000-06-08 ㅣ No.864

++++++++++++++++++++++++++++++++++++++++++++++++++++++++++++++++++++++

 

산골 공소의 선교사 일기

 

제 52 호 / 2000. 6. 5 (월) / 맑음

 

----------------------------------------------------------------------

이 매거진은 강원도 산골의 천주교 공소에서 일하는

평신도 선교사의 이야기입니다.

++++++++++++++++++++++++++++++++++++++++++++++++++++++++++++++++++++++

 

 

          *          *          *

 

"현리 가는 사람 다 모여라"

 

●…주일을 앞두고 또 고민이 생겼다.

공소 미사도 없었으니 상남의 신자들을 실어 날라야 하는데….

미다리 남마리아 할머니, 문베드로 할아버지,

자포대 헬레나와 이냐시오, 고석평 루갈다 할머니,

상남의 바오로, 준환이, 용포다리의 안나 할머니,

그외 기타 변수.

8명을 태우려면 내차로는 4명이 넘친다.

’바쁜 일들이 생겨 좌석수에 딱 맞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다가는 하느님 한테 또 혼 날 것 같고.

상남슈퍼 앞에 앉아 맥없이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다가

좋은 생각이 났다.

’그래 진수씨야!’

 

상남에 몇대 없는 승합차를 갖고 있는 김진수씨에게

부탁을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수씨는 건설업을 하는 사장님이라 인부들을 실어나르기

위해 승합차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차를 남에게

빌려주는 것은 정말 싫을 것이다. 나도 그러니까.

더구나 진수씨는 컴퓨터 작업을 몇 번 부탁한 터라 괜히

그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는 것처럼 들릴까봐 내키지는 않았다.

 

정말 생각지도 않았던 기회였다.

그날따라 진수씨가 다 저녁때 상남수퍼에 들렀다.

그 문제의 승합차를 끌고…. 파라솔 밑에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던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얘기를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잠깐동안 망설였다.

"진수씨, 부탁이 있는데…."

"저한테요?"

진수씨의 반문에 약간 기가 죽었지만 8명의 신자들을

생각해서 용기를 내었다.

"하루만 차를 바꿔 탑시다!"

말을 던져 놓고도 그냥 빌려달라는 것도 아니고,

바꿔타자는 거니까하고 당당한 마음을 가졌다.

옆에 있던 골롬바 자매님이 거들었다.

"진수씨는 좋겠네. 승합차보다 더 좋은 차를 타보고…."

의외로 진수씨는 선선히 그러라고 했다.

 

주일날 아침 다른 날보다 훨씬 더 가벼운 마음으로

일찌감치 일어났다. 일꾼들을 실어나르던 차라 내부가 좀

지저분했다. 차창을 다 열고 쓸고 닦으며 좌석을 세어 보았다.

"하나, 둘, 셋… 모두 10개." 마음이 뿌듯했다.

막 시동을 하는데 전화가 왔다. 미다리의 남마리아 할머니였다.

오늘 남의 집 품앗이를 해야하기 때문에 미사에 못간다고

오지말라는 전화였다.

’오늘은 좌석이 충분한데….’

아쉬운 마음이었지만 남의 집 일이라 마음대로 날짜를

바꿀 수도 없을테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마리아 할머니에게 기도해 드리겠다고 말씀드리고 출발했다.

육중한 승합차의 무게가 핸들로 전해져 왔다.

 

자포대에서 헬레나와 이냐시오를 태웠다.

차창을 활짝 열고 맑은 냇물과 경주하듯 계곡을 달렸다.

미다리의 문 베드로 할아버지 댁에 갔더니 문이 잠겨있었다.

앞으로 태울 사람이 4명. 이정도면 내차 짐칸까지 활용하면

가능했는데 괜한 호들갑을 떤 것은 아닌지 걱정되었다.

고석평 루갈다 할머니는 텃밭에서 일하고 계시다가

차가 바뀌어 몰라 보았다며 어찌 된일이냐고 신기해 했다.

상남에서 바오로와 준환이를 태웠다. 지난주에 함께 갔던

채운병이는 약속 장소에 보이질 않았다. 경민이가 집으로

찾아 뛰어가니 오늘은 고기잡으로 가겠단다.

’이녀석, 내가 전업 고기잡인데….’

 

용포다리에서 안나 할머니를 태우니 모두 6명이었다.

내 차의 정원은 넘쳤지만, 승합차에는 겨우 반을 채워

좀 섭섭했다. 좀 가다보니 길가에서 왠 청년들이 손을 들었다.

"할머니 태우고 갈까요?"

"좌석도 많은데 그래야지요."

현리까지 가는 군인과 면회객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이차가 어떤 차인지 자랑하고 싶어졌다.

"저희는 천주교 신자들이고, 이차는 성당에 가는 차입니다.

가시는 곳까지 편안히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내가 말해 놓고도 마치 관광버스 운전기사같아 우스웠다.

 

그들은 현리 버스 터미널에서 내렸다. 이렇게 해서

모두 8명을 태워 승합차의 구실을 톡톡히 해내었다.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시는 주님-.

주님은 섭섭한 나의 마음을 그렇게 달래 주셨다.

 

다음주에는 또 어떻게 해야할지 지금은 알수 없지만

걱정하지 않고 주님께 맡기기로 했다.



10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