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천사와의 레슬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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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연 [aldus119] 쪽지 캡슐

2005-09-01 ㅣ No.470

천사와의 레슬링


매우 고통스러운 상처를 입었을 때 우리는 진정한 삶과 첫 대면하는 순간을 만난다. 우리는 그 순간 삶이 어떤 힘을 지니고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펼쳐지는가를 성찰하게 된다. 상처를 입은 바로 그 순간 우리는 삶을 제대로 살 수 있는 지혜를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전혀 기대하지 않은 방법으로 우리가 누구인지 삶이 어떤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외할아버지가 내게 들려준 마지막 이야기는 야곱이 강둑에서 혼자 자고 있을 때 누군가에게 공격을 받은 이야기였다. 여행 중인 야곱은 안전한 곳을 찾아 음식도 준비하고 잠자리도 마련하려고 가던 길을 멈추었다. 야곱은 잠이 들었다가 깨어났을 때 자기가 무쇠 같은 팔을 지닌 자에게 붙잡혀서 뒹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야곱은 그가 누구인지 볼 수는 없었지만 상대가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온 힘을 다해 상대의 손아귀에서 빠져 나오려고 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한 나는 외할아버지께 여쭈었다.

“그것은 무서운 꿈이었어요? 외할아버지?”

그 때 어린 나는 자주 악몽에 시달리곤 했다. 그래서 늘 불을 켜 놓은 채 잠을 잤다. 나는 외할아버지께로 다가가 손을 잡았다.

“아니란다, 네쉬메레야. 그것은 꿈이 아닌 실제였지. 야곱은 상대가 숨을 몰아쉬는 소리를 들었단다. 그가 입은 옷의 촉감도 느낄 수 있었고 냄새를 맡을 수 있었지. 야곱은 아주 힘이 센 사람이었지만 아무리 용트림을 써도 그자의 손아귀에서 빠져 나올 수도 거꾸러뜨릴 수도 없었단다. 두 사람은 정말 잘 어울리는 맞수로 밤새 뒹굴며 싸움을 해도 판가름이 나지 않았단다.”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물었다.

“외할아버지, 얼마나 오랫동안 싸웠는데요?”

“아주 오랫동안 싸웠단다. 동이 터 오고 날이 밝아지자 야곱은 자신이 천사와 싸움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나는 놀라서 물었다.

“외할아버지, 날개를 가진 진짜 천사 말이에요?”

“네쉬메레야, 그가 날개를 지녔는지는 잘 모르지만 진짜 천사임에는 틀림이 없었단다. 날이 밝아오자 천사가 야곱을 놓아주고 떠나려고 했지. 그러나 야곱은 재빨리 그를 붙잡았단다. 천사는 날이 밝아오고 있으니 놓아 달라고 말했지. 야곱은 저를 축복해 주기 전에는 결코 놓아 드릴 수가 없습니다, 라고 했단다. 이번에는 천사가 그의 손아귀를 벗어나려고 애썼지만 야곱은 더욱 단단히 붙잡았지. 결국 천사는 야곱에게 축복을 빌어주고야 떠났지.”

나는 안도의 쉼을 쉬고 물었다.

“그래서 천사가 떠났어요? 그게 끝이에요?”

외할아버지가 대답했다.

“그래. 그런데 야곱이 천사와 레슬링을 하는 중에 다리를 다쳐 상처를 입었지. 천사는 떠나기 전에 상처를 입은 곳을 어루만져 주었단다.”

내가 다쳤을 때 엄마가 그렇게 해 주시기 때문에 나는 곧 이해하고 자신 있게 말했다.

“상처를 낫게 하려고 그렇게 한 것이지요? 외할아버지.”

그러나 외할아버지는 고개를 가로 저으면서 말씀하셨다.

“네쉬메레야, 할아버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단다. 천사는 야곱에게 상처가 그곳에 있다는 것을 알려 주려고 어루만져 주었단다. 야곱은 남은 생애 동안 늘 그 상처를 지니고 살았지. 천사를 만난 기억을 상기시켜 주는 잊지 못할 상처였지.”

 

나는 그 이야기를 다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천사를 적과 혼동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외할아버지는 이러한 사건은 우리에게 항상 일어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그것이 이 이야기의 중요한 점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이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점은 모든 것 안에 그 나름대로의 축복이 있다는 사실이란다.”

 

외할아버지는 당신이 돌아가시던 그 해에 내게 이 이야기를 여러 번 해 주셨다. 그 후 팔 구 년이 흐른 후에 전혀 예기치 않은 병이 찾아왔다. 나는 복부에 심한 출혈이 있어서 의식불명의 상태로 응급실로 실려 갔다. 나는 여러 달 동안 병원에 입원해야 했고 절망 속에서 병마와 여러 해 동안 투쟁해야 했다. 그때부터 45년 동안 나는 병을 지니고 살아왔다. 

지금 이 모든 것을 되돌아볼 때 나는 외할아버지께서 죽음에 임박해 이 이야기를 들려주신 것은 내 삶의 나침반이 되도록 배려하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 이야기는 이해하기 힘든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이다. 적이 있는가하면, 거기 또한 축복이 있는 이야기이다. 적을 가게 하거나 내가 적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유혹을 물리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우리는 얼마나 적과의 싸움을 끝내버리고 평화로운 삶으로 돌아오고 싶은가! 

 

삶이 그렇게 간단하다면 좋으련만 언제나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마도 우리는 적을 만났을 때 그곳에 감추어져 있는 축복을 발견할 때까지 용기 있게 붙잡고 싸움을 계속할 때만이 진정한 삶을 사는 지혜를 얻게 될 것이다.

글/ 류해욱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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