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회심, 후회와 회개의 차이점 외 [성경용어_후회] [_회개] [교리용어_회심] [하느님의자비] [번역오류_고통] 788_ 1032_heart mercy conver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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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14 ㅣ No.1294


질문:

성경 본문 중에 "후회"와 "회개"라는 표현들이 사용되고 있는데, 이들의 의미에 있어서의 차이점이 무엇인지요?

--------------------

답변:

+ 찬미 예수님

1. 기초 자료 조사
1-1.
다음은 "표준국어대사전"에 주어진 "후회"라는 단어에 대한 설명입니다:

출처: http://124.137.201.223/

(발췌 시작)
후회(後悔)

이전의 잘못을 깨치고 뉘우침.
(이상, 발췌 끝).

질문 2: 그런데, 성경 본문에서 "하느님께서 후회하신다"고 할 때에, 위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까요?

질문 2에 대한 답변: 아래의 제2-2항에서 말씀드리고 있는 이유 때문에, 전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1-2. "새 번역 성경"의 본문에서 "후회"로 번역된 번역 용어에 해당하는 영어 표현은 RSVCE(Revised Standard Version Catholic Edition) 에서는 "sorry" 혹은 "regret", 그리고 NAB(New American Bible) 에서는 "regret" 로 파악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회개" 로 번역된 번역 용어에 해당하는 영어 성경들에서의 해당 표현은, 통상적으로"repentance" 로 알고 있습니다.

1-3. 다음의 파란색들을 클릭하면, NAB 본문 중에 사용되고 있는 "regret" 와 그 파생어들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괄호 안은 "새 번역 성경"의 해당 단어입니다:

   14 regret    
    1 regrets
    6 regretted

창세기 6,6 (하느님, 후회하다);
1사무엘 15,11(하느님, 후회하다);
1사무엘 15,35(하느님, 후회하다);
1사무엘 24,6(사람, 마음이 찔렸다);
2사무엘 24,10(사람, 양심에 가책을 느끼다);
2사무엘 24,16(하느님, 후회하다);
1마카베오 11,10(사람, 후회하다);
잠언서 20,25(없음);
지혜서 19,2(사람, 마음을 바꾸다);
집회서 12,12(없음);
집회서 13,6(없음);
집회서 30,5(사람, 슬퍼하다);
집회서 32,19(사람, 마음을 바꾸다);
예레미야서 42,10(하느님, 후회하다);
마태오 27,3(사람, 뉘우치다);
2코린토 7,8 (두 번 사용됨, 사람, 후회하다);
2코린토 7,10(사람, 후회하다);

이 용어 색인 정보로부터 우리는 "regret" 와 그 파생어들은 NAB 본문 중에서, 주석들 중에서 언급되는 경우를 제외하고, 총 11 + 1 + 6 = 18번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4. 여기를 클릭하면, "새 번역 성경"의 구약 본문에서 사용중인 "후회" 라는 번역 용어가 등장하는 절들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총 14개의 절들에서 사용 중입니다. 다음은 "새 번역 성경"의 구약 본문에서 하느님께서 후회하신다는 표현이 등장하는 절들이며, 괄호 안은 NAB(New American Bible)의 해당 단어입니다:

창세기 6,6(regretted);
창세기 6,7(sorry);
1사무엘 15,11(regret);
1사무엘 15,35(regretted);
2사무엘 24,16(regretted);
1역대기 21,15(없음);
시편 106,45(relented);
예레미야서 42,10(regret);
요엘서 2,13(relenting);
요엘서 2,14(relent)

1-5.  여기를 클릭하면, "새 번역 성경"의 신약 본문에서 사용중인 "후회" 라는 번역 용어가 등장하는 절들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총 2개의 절들에서 사용 중입니다. "새 번역 성경"의 신약 본문에서 하느님께서 후회하신다는 표현이 등장하는 절은 없으며, 괄호 안은 NAB(New American Bible)의 해당 단어입니다:

2코린토 7,8 (두 번 사용됨, 사람, regret);
2코린토 7,10 (사람, regret)

1-6. (번역 오류) 가톨릭 교회 교리서 본문 중에서 "regret" 라는 용어와 그 파생어들은 거의 사용되고 있지 않으며, 다음의 파란색들을 클릭하면, 영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본문 중에 사용되고 있는 "sorrow" 와 그 파생어들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괄호 안우리말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의 해당 항에서의 번역 용어입니다. "sorrow"로 번역되는 표현을, 예를 들어, "후회"로 번역하는 대신에, "고통"으로 번역한 것은, 아래의 제3-1항에 발췌한 정의(definition)에 의하면용어 번역 오류라는 생각입니다. 

"후회" 어떤 "고통"이나, 그러나 일반적 "고통"이 항상 "후회"인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5 sorrow    
    1 sorrowful
    1 sorrows

영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제45항(고통);
제529항(고통);
제635항(고통);
제1451항(고통);
제1490항(고통, "abhorrance"로 번역되는 표현을, "혐오"로 번역하는 대신에, "후회"로 번역한 것도 용어 번역 오류일 것임);
제1769항(고통);
제2568항(탄식조로, 성경 본문에서처럼, "탄식조로" 대신에, 예를 들어, "후회하여"로 번역하는 것이 더 나은 직역 번역일 것임).

[내용 추가 일자: 2012년 11월 16일]

1-7. 사실, 우리말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본문에 대하여 "고통"이라는 단어로 검색을 해 보면, 총60개의 항들에서 이 단어를 사용 중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 중에 총 7개의 영어로 "sorrow" 및 그 파생어들로 번역되는 표현들이 또한 포함되어 있는데, 나머지 약 60-7 = 53개의 항들에서 대응하는 영어 단어들은 무엇일까요? "suffering" 및 이 단어의 파생어들일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이것을 확인하기 위하여 다음의 작업을 진행합니다.

1-7-1. 다음은, 영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본문 중에 등장하는 "suffering" 과 그 파생어들 전부입니다:

   26 suffer   
   18 suffered
   34 suffering
   15 sufferings
    6 suffers

26 + 17 + 34 + 15 + 6 = 98

1-7-2. 그리고 다음은 우리말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본문 중에서 "고통"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항들 전부입니다: 총72번이 총60개의 항들에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괄호 안은, 영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의 해당 항에서 사용 중인, 대응하는 영어 단어(들)입니다.

45(sorrow); 164(suffering); 272(suffering); 309(2번, painful, ?); 376(suffer); 385(2번, suffering, painful); 388(pathos); 405(suffering); 440(suffering); 468(sufferings); 516(sufferings); 518(suffered); 519(suffered); 529(sorrow); 608(suffering); 625(passible); 635(인용문, sorrow); 760(painful); 771(인용문, pain); 786(2번, suffering, suffering); 787(sufferings); 791(suffers(고통을 당하다), suffer(아파하다)); 806(suffering); 953(2번, suffers, suffer); 964(인용문, suffering); 1004(suffering); 1035(3번, suffer, punishments, punishment); 1057((punishment); 1173(suffered); 1264(suffering); 1368(sufferings); 1398(painful); 1420(suffering); 1431(pain); 1435(suffering); 1451(sorrow); 1473(sufferings); 1490(sorrow); 1500(suffering); 1502(2번, sickness, suffering); 1503(3번, suffer, the sick, suffer); 1505(3번, suffering, suffering, it); 1508(sufferings); 1511(tried); 1521(suffering); 1522(suffers); 1523(2번, suffer, ?); 1532(sufferings); 1607(2번, painfully, pain); 1609(pain); 1769(sorrows); 2277(인용문, suffering); 2279(sufferings); 2282(suffering); 2374(suffer); 2379(suffer); 2717(suffered); 2733(painful); 2829(sufferings);

게시자 주: 그러니까, 영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서 "sorrow" 그리고 "suffering" 등으로 구분하고 있는 용어들을 모두 "고통" 및 그 파생어들로 번역함으로써, 변별력의 상실이 우리말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의 번역 작업 과정에서 발생하였는데(번역 미숙/오류)특히 자국어로의 번역 과정에서 이러한 종류의 변별력의 상실이 발생하여서는 결코 아니 될 것입니다.

이것과 관련하여, Modern Catholic Dictionary에 주어진 "suffering" 이라는 가톨릭 그리스도교 신학적 용어에 대한 다음의 설명에 필히 주목하십시오:

출처 1: http://www.catholicreference.net/index.cfm?id=36690 [주: 옛 주소]
출처 2: http://www.therealpresence.org/dictionary/s/s526.htm [내용 추가 일자: 2022년 5월 8일]
(발췌 시작)
SUFFERING.

The disagreeable experience of soul that comes with the presence of evil or the privation of some good. Although commonly synonymous with pain, suffering is rather the reaction to pain, and in this sense suffering is a decisive factor in Christian spirituality. Absolutely speaking, suffering is possible because we are creatures, but in the present order of Providence suffering is the result of sin having entered the world. Its purpose, however, is not only to expiate wrongdoing, but to enable the believer to offer God a sacrifice of praise of his divine right over creatures, to unite oneself with Christ in his sufferings as an expression of love, and in the process to become more like Christ, who, having joy set before him, chose the Cross, and thus "to make up all that has still to be undergone by Christ for the sake of His body, the Church" (I Colossians 1:24). (Etym. Latin sufferre, to sustain, to bear up: sub-, up from under + ferre, to bear.)

고통 받음(suffering)

악(evil)의 현존 혹은 어떤 선(some good)의 박탈과 함께 오는 영혼의 동의하지 않는 경험(disagreeable experience)을 말합니다. 비록 아픔(pain)과 통상적으로 동의어이기는 하나, 고통 받음(suffering)은 [그 보다는] 오히려 아픔(pain)에 대한 반응(reaction)이며, 그리하여 바로 이러한 의미에 있어 고통 받음(suffering)은 그리스도인들의 영성(Christian spirituality)에 있어 한 개의 결정적인 요인(a decisive factor)입니다. 절대적으로 말하여, 왜냐하면 우리가 피조물들이기 때문에 고통 받음(suffering)은 가능하며, 그러나 하느님의 섭리(Providence)에 의한 현재의 질서 안에서 고통 받음(suffering)은, 이미 세상에 들어와 있는, 죄의 결과입니다. 그러나 그 목적은, 잘못한 행위(wrongdoing)를 보속할(expiate)뿐만이 아니라, 또한 믿는 이들이, 피조물들에 대한 당신의, 하느님의, 권한에 대한 찬양의 어떤 제물을 봉헌하는 것을, 사람의 어떤 표현으로서 당신의 고통 받음(sufferings)들 안으로 그리스도와 자기 자신을 결합하는(unite) 것을, 그리고 이러한 과정 안에서, 당신 앞에 기쁨(joy)을 제시하시면서, 십자가 수난(the Cross)을 선택하셨던 분이신 그리스도처럼 되는 것을, 그리하여 그 결과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을 내가 이렇게 그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내 육신으로 채우는" (1콜로새 1,24) 자가 되는 것을, 허락하는 데에 있습니다. [어원. Latin sufferre, to sustain, to bear up: sub-, up from under + ferre, to bear.]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이상, 내용 추가 끝]

2.
2-1.
성경 본문 중에 등장하는 표현들은,

(i) 하느님과 성에 속하는(holy, sacred) 것들에 그리고 속에 속하는(profane) 사람들에게 다 사용되는 것들과,

(ii) 속에 속하는 사람들에게만 사용되는 것들로,

논리적으로 크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개신교측 및 가톨릭측을 포함하여 현재까지) 우리말로 번역된 성경들이 아닌 성경들에서, 예를 들어, 영어 성경들에서, "jealousy(시기)" 라는 표현은 하느님께 그리고 속에 속하는 사람들에게 모두 사용되고 있으나, 그러나,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서 "anger(분노)"와 함께 원죄(original sin)의 결과라고 명기하여 가르치고 있는, "envy(질투)" 라는 표현은 속에 속하는 사람들에게만 사용되고 있는 표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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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자 주:
"질투(嫉妬, envy)""시기(猜忌, jealousy)"의 차이점에 대한 글은 다음에 있으며 필독을 권고한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036.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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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찬가지로, 성경 본문에서 "회개(repentance)"는 분명히 속에 속하는 사람들에게만 사용되고 있으나, "후회(regret 혹은 sorry)"는 하느님과 사람들에게 다 사용되고 있습니다.
 
2-2. 다른 한편으로, 아무런 결함(defect)도 없으시고, 무한한 선함(goodness) 그 자체이고, 아무런 변함도, 아무런 움직임도 없으신, 전능하신(omnipotent), 제1 원리(the first principle)이신 하느님(God)은, 가톨릭 보편 교회가 수용한 죄(sin)의 정의(definition)에 의거하여 고찰할 때에, 어떠한 죄(sin)도 지을 리가 없고, 또 아무런 잘못(fault)도 하실 리가 없으므로, "회개"를 할 이유도 전혀 없고 또, 위의 제1-1항에서 살펴 본 "표준국어대사전"에 주어진 의미의"후회"를 할 이유도 전혀 없는 분이심이 자명함에도 불구하고, 구약 성경의 본문 중에서 하느님께서 "후회"하신다는 번역 용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 본문에서 사용되고 있는 "후회"라는 번역 용어의 의미는, 위의 제1-1항에 발췌한 "표준국어대사전"에 주어진 설명, 즉 "이전의 잘못을 깨치고 뉘우침"과 동일할 수가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 본문에서 사용되고 있는 표현들인 "후회"와 "회개"의 차이점을 고찰할 때에, 우선적으로 바로 지금 지적한 바에 대하여 분명하게 이해하여야 할 것입니다.

2-2-1. 다음은 1사무엘 15,11에 대한 NAB 주석 전문입니다:

출처: http://old.usccb.org/nab/bible/1samuel/1samuel15.htm

(발췌 시작)
[11] I regret: God manifests "regret" when, offended by men, he takes away his benefits, graces and favors. It is not God, but men, who change, to their own detriment.

[11] 내가 후회한다(I regret):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에 의한 침범을 당하여(offended), 당신의 유익(benefits)들, 은총들 그리고 총애(favors)들을 당신께서 거두어들이실 때에, "후회(regret)"를 표명하신다(manifests). 자신들 고유의 상해(detriment, 손상)를 향하여 변하는(change) 것은, 하느님이 아니라, 사람들이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2-2-2. 다음은, "새 번역 성경" 창세기 6,6에서 사용되고 있는 표현인 "하느님의 후회"에 대한 "주석 성경"의 주석 전문입니다:

(발췌 시작)
같은 표현이 1사무 15,11에도 나온다. 성경 저자는 하느님을 마치 인간과 같은 존재로 묘사함으로써 인간의 자유 앞에서 하느님께서 겪으시는 어려움을 표현하려 한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선을 위하여 악을 겨냥해서 당신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는 분임을 강조한다(요나 3,10 참조 <--- 또한 클릭하여 꼭 참조하라).
(이상, 발췌 끝)

이상 고찰한 바로부터, 다음의 결론을 귀납적으로 추론합니다(inductively reason):

(중간 결론 1)
"하느님께서 후회하신다"는 표현은, 예를 들어, 사람들에 의하여 야기되는 바 때문에, 하느님께서 악을 겨냥해서 당신의 생각/마음을 바꾼다/달리한다는 의미이지, "표준국어대사전"에 주어진 "후회"의 의미처럼, 하느님께서 무슨 잘못을 행하셨음을 하느님 스스로 인정한다는 의미가 결코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의 경우에도, 유비에 의하여(by analogy), "후회" 라는 단어가, 자신의 그동안의 처신 혹은 향후 처신 등에 있어, 어떠한 방향으로, 자신의 "생각/마음을 바꿈/달리함"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상, 중간 결론 1 끝).

그런데 문제는, 사람의 "후회" 당시의 "바로 이 방향"이, 당사자의 자유 의지(free-will)의 개입과 함께,

(1) 하느님을 향하여 나아가는 방향일 수도 있고,

(2) 하느님과 여전히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방향일 수도 있고, 그리고

(3)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는 방향일 수도 있을 것임에

있다는 생각입니다.

2-2-3. 이들 (1), (2), 그리고 (3) 중에서, 비록 과거에 그리스도교 세례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현재 불신자/회의자(unbelievers)들, 거부자(disbelievers)들, 무신론자들은, (2) 혹은 (3)에 해당할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부터는

(i) "후회"의 당사자가 하느님이 아닌 사람일 경우에, 그리고

(ii)
 위의 (1)의 경우에 한하여,
 
이 글의 촛점을 맞추도록 하겠습니다.

3.
다른 한편으로,

3-1. 다음은 Modern Catholic Dictionary에 주어진 "sorrow(후회)" 라는 신학적 용어에 대한 설명입니다. 첫 번째 문장이 이 용어의 정의(definition) 입니다:

출처 1: http://www.catholicreference.net/index.cfm?id=36565 [주: 옛 주소]
출처 2: http://www.therealpresence.org/dictionary/s/s399.htm [내용 추가 일자: 2022년 5월 8일]
(발췌 시작)
SORROW

The pain or distress experienced because of some adversity that is felt personally. The sorrow may be over a loss or misfortune for which a person feels guilty, as in the case of sin; or the sorrow may be totally vicarious, out of compassion for someone else. Essential to the notion of sorrow is that it refers to what has already happened and its painful effects are still experienced. (Etym. Middle English sorge, sorrow; Old English sorh, sorg, anxiety, sorrow.)
 
후회/뉘우침(sorrow, 아쉬움/유감)

개별적으로 느껴지는 어떤 역경(adversity) 때문에 경험하게 되는 아픔(pain) 혹은 고통/고민(distress)을 말합니다. 후회/뉘우침(sorrow)는, 죄의 경우에 있어서처럼, 한 인격(a person)이 죄가 있음을 느끼는, 어떤 상실 혹은 불행에 관하여서일 수도 있거나, 혹은 후회는, 다른 이를 위한 동정심(compassion)에 기인하는, 전적으로 대신하여 받는(vicarious) 것일 수도 있습니다. 후회/뉘우침이라는 개념에 있어 본질적인(essential) 것은 이미 발생하였던 바와 그것의 아픈 결과들이 여전히 느껴지고 있음(is experienced)을 이 개념이 언급함에 있습니다. [어원. Middle English sorge, sorrow; Old English sorh, sorg, anxiety, sorrow.]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3-2. 다음은 Modern Catholic Dictionary에 주어진 "repentance(회개)" 라는 신학적 용어에 대한 설명입니다.

출처 1: http://www.catholicreference.net/index.cfm?id=36048 [주: 옛 주소]
출처 2: http://www.therealpresence.org/dictionary/r/r098.htm [내용 추가 일자: 2022년 5월 8일]
(발췌 시작)
REPENTANCE

Voluntary sorrow because it offends God, for having done something wrong, together with the resolve to amend one's conduct by taking the necessary means to avoid the occasions of sin. To repent is to be sorry for sin with self-condemnation. (Etym. Latin repoenitere, to be very sorry, regret intensely.)

 

회개(repentance)

잘못인 어떤 일이 하느님을 침범하기(offends) 때문에, 죄의 기회들을 피하기 위한 필요한 방도(方道, means)를 취함으로써 자신의 처신을 바로 잡고자 하는 결심과 함께, 그러한 일을 행한 것에 대한 자발적인 후회(voluntary sorrow)를 말합니다.
회개함이란 자책(自責, self-condemnation)과 함께 죄에 대하여 후회하는(sorry) 것을 말합니다. [어원. Latin repoenitere, to be very sorry (대단히 후회함), regret intensely(강렬하게 후회함).]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3-3. 다음은 Modern Catholic Dictionary에 주어진 "conversion(회심)" 라는 신학적 용어에 대한 설명입니다.

출처 1: http://www.catholicreference.net/index.cfm?id=32806 [옛 주소]
출처 2: http://www.therealpresence.org/dictionary/c/c547.htm [내용 추가 일자: 2022년 5월 8일]
(발췌 시작)
CONVERSION

Any turning or changing from a state of sin to repentance, from a lax to a fervent way of life, from unbelief to faith, and from a non-Christian religion to Christianity. Since the Second Vatican Council the term is not used to describe a non-Catholic Christian becoming a Catholic. The preferred term is "entering into full communion with the Church." (Etym. Latin conversio, a turning, overturning, turning around; turning point; change.) 
 

 

회심/귀의(conversion)

죄(sin)의 한 상태로부터 회개(repentance) 쪽으로, 삶에 있어서의 느슨한 방식으로부터 열렬한 방식 쪽으로, 불신/회의(懷疑)(unbelief)(*)로부터 믿음(faith) 쪽으로, 그리고 비그리스도교 신앙으로부터 그리스도교 쪽으로, 임의의(any) 방향 전환(turning) 혹은 변화(changing)를 말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부터 이 용어는 비가톨릭 그리스도교 신가가 가톨릭 신자가 됨을 설명하기 위하여 사용되지 않습니다. 선호하는 용어는 "교회와의 충만한 하나 됨(communion, 통공) 안쪽으로 들어옴" 입니다. [어원. Latin conversio, a turning, overturning, turning around; turning point (돌아섬/방향 전환, 전복/뒤집음, 방향을 바꿈; 반환점); change (변화).]

-----
(*) 번역자 주: "불신/회의(unbelief)" 라는 신학적 용어의 정의(definition)는 다음의 글에 있으니 필독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73.htm
-----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내용 추가 일자: 2015년 7월 16일]

게시자 주 3-3: 다음은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 홈페이지 제공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 용어집"에 주어진 "회심(conversion)" 이라는 용어에 대한 설명이며, 괄호 한의 번호들은 가톨릭 교회 교리서의 해당 항들의 번호들입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cc_glossary.htm

(발췌 시작)

CONVERSION: A radical reorientation of the whole life away from sin and evil, and toward God. This change of heart or conversion is a central element of Christ's preaching, of the Church's ministry of evangelization, and of the Sacrament of Penance and Reconciliation (1427, 1431, 1423; cf. 821).

 

회심(conversion)

 

죄(sin)와 악(evil)로부터 멀어지는, 그리하여 하느님을 향하는, 전체 삶에 있어서의 어떤 근본적인 뱡향의 재정립(reorientation, 再定向)을 말합니다. 바로 이러한 심장의 변화(change of heart) 혹은 회심(conversion)은 그리스도의 설교의, 복음화(evangelization)에 대한 교회의 사역(ministry)의, 그리고 참회와 화해의 성사(즉, 고해성사)의, 한 개의 중심적 요소입니다(CCC 1427, 1431, 1423; cf. CCC 821).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이상, 2015년 7월 16일자 내용 추가 끝]

3-4. 다음은 Modern Catholic Dictionary에 주어진 "convert(회심자)" 라는 신학적 용어에 대한 설명입니다.

출처 1: http://www.catholicreference.net/index.cfm?id=32807 [주: 옛 주소]
출처 2: http://www.therealpresence.org/dictionary/c/c548.htm [내용 추가 일자: 2022년 5월 8일]
(발췌 시작)
CONVERT

 

One who with the help of divine grace undergoes a significant spiritual change for the better. In all cases the change must be deeply interior and represent a change of mind and heart (metanoia) to qualify as a true conversion.

 

회심자(convert)

신성적 은총(divine grace)의 도움과 함께 더 선한 쪽으로(for the better) 어떤 괄목할만한 영적 변화를 경험하는 자를 말합니다.
모든 경우들에 있어 이 변화는 깊숙히 내면적이야만 하며 그리고 한 개의 참된 회심(a true conversion)으로서의 특징(quality)을 향한 마음(mind)심장(heart)에 있어서의 어떤 변화(메타노이아, metanoia)를 나타내어야만 합니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3-5. 다음은 Modern Catholic Dictionary에 주어진 "metanoia(회개/참회)" 라는 신학적 용어에 대한 설명입니다.

출처 1: http://www.catholicreference.net/index.cfm?id=34855 [주: 옛 주소]
출처 2: http://www.therealpresence.org/dictionary/m/m177.htm [내용 추가 일자: 2022년 5월 8일]
(발췌 시작)
METANOIA

Literally repentance or penance. The term is regularly used in the Greek New Testament, especially in the Gospels and the preaching of the Apostles. Repentance is shown by faith, baptism, confession of sins, and producing fruits worthy of penance. It means a change of heart from sin to the practice of virtue. As conversion, it is fundamental to the teaching of Christ, was the first thing demanded by Peter on Pentecost, and is considered essential to the pursuit of Christian perfection. (Etym. Greek metanoein, to change one's mind, repent, be converted, from meta- + noein, to perceive, thing, akin to Greek noos, nous, mind.)

 

메타노이아(metanoia)

글자 그대로 회개(repentance) 혹은 참회(penance)를 말합니다. 이 용어는 그리스어본 신약 성경에서, 특별히 복음서들에서 그리고 사도들의 가르침에서, 통상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회개(repentance)는 믿음(faith), 세례(baptism), 죄들에 대한 고백(confession), 그리고 참회(penance)할 만한 가치가 있는 열매(fruits)들을 산출함으로써 나타내어집니다. 이것은 죄(sin)로부터 덕(virtue)의 실천 쪽으로 심장의 어떤 변화[a change of heart, 즉, 회심(conversion)]를 뜻합니다. 회심(conversion, 즉, 심장의 어떤 변화)으로서, 이것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있어 근본이며, 성령 강림일에 베드로(Peter)에 의하여 요구되었던 바로 그 첫 번째 일이었으며,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의 완미(完美)(Christian perfection)(*)의 추구에 있어 본질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어원. Greek metanoein, to change one's mind, repent, be converted (자신의 마음을 바꾸다, 회개하다, 회심하게 되다, 즉, 심장(heart)이 변화하게 되다), from meta- + noein, to perceive, thing, akin to Greek noos, nous, m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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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대단히 중요한 개념인 "완미(完美, perfection)"에 대한 글은 다음에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094.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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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3-6. 그리고 다음은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490항의 가르침입니다.

출처: http://www.vatican.va/archive/ENG0015/__P4I.HTM 

(발췌 시작)
CCC 1490 The movement of return to God, called conversion and repentance, entails sorrow for and abhorrence of sins committed, and the firm purpose of sinning no more in the future. Conversion touches the past and the future and is nourished by hope in God's mercy.

 

CCC 1490 회심(conversion) 그리하여 회개(repentance)라고 불리는, 하느님께로 되돌아가는 움직임은, 범하였던 죄들에 대한 후회(sorrow)와 혐오(abhorrence)를, 그리하여 미래에 더 이상 죄를 짓지 않겠다는 확고한 결심(purpose)을, 수반합니다(entails). 회심은 과거와 미래를 손가락들로 만져봄으로써 고찰하며(examine) 그리고 하느님의 자비(God's mercy)에 대한 희망(hope)에 의하여 자라게 됩니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따라서,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제1490항은,

(중간 결론 2)
"후회하지 않는 자는 회개하지 않는다" 라는 명제가 참(true)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달리 말하여,
 
"회개는 후회이나, 그 역은 아닐 수 있다" 라는 명제가 참(true)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달리 말하여,
 
"오로지 후회하는 자들 중에서만 회개하는 자들이 있을 수 있다" 라는 명제가 참(true)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상, 중간 결론 2 끝).

4.
이상 고찰한 바로부터 우리는 다음을 알 수 있습니다.

4-1. 후회(regret, sorrow)개별적으로 느껴지는 어떤 역경(adversity) 때문에 경험하게 되는 아픔(pain) 혹은 고통/고민(distress)을 말한다.

4-1-1. "후회"어떤 "아픔(pain)" 혹은 "고통/고민(distress)"이나, 그러나 일반적 "고통"이 항상 "후회"인 것은 아니다. (고통과 후회의 관계)

4-1-2. 어떤 "아픔(pain)" 혹은 "고통/고민(distress)"을 느끼지/겪지 않는 자는 "후회"하지 않는다. (고통과 후회의 관계)

4-1-3. 오로지 어떤 "아픔(pain)" 혹은 "고통/고민(distress)"을 느끼는 자들 중에서만 "후회"하는 자들이 있을 수 있다. (고통과 후회의 관계)

4-2. "생각/마음을 바꿈/달리함"을 수반하는 후회의 중심은 후회하는 당사자의 의지이다.

4-3. 그러나 회개(repentance)의 중심은 돌아오도록 기다리고 계시는 하느님의 의지(will)이다.

4-4. 후회하는 자가, 하느님의 특별한 도움인 하느님의 은총(grace) 덕택으로, 하느님을 향하여 돌아섬이 곧 회심(conversion)이다.

4-5. 하느님의 특별한 도움인 하느님의 은총(grace) 덕택으로 회심(conversion)을 하게 되면, 하느님의 사랑(아가페, 애덕)에 의하여, 회개한다(repent).

 

[내용 추가 일자: 2015년 7월 16일]

다음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431항을 읽도록 하라:
http://www.vatican.va/archive/ccc_css/archive/catechism/p2s2c2a4.htm#1431
[이상, 2015년 7월 16일자 내용 추가 끝]


4-6. 그러나 후회하지 않는 자는 회개하지 않는다. (후회와 회개의 관계)

4-7. 오로지 후회하는 자들 중에서만 회개하는 자들이 있을 수 있다. (후회와 회개의 관계)

(이 글의 결론)

대부분의 세속의 사람들은 후회를 하므로, 하느님의 은총(grace)이라는 특별한 도움 덕택으로 사람들이 회심(conversion)을 하도록 독려/인도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데, 이는 일단 사람들이 회심을 하여, 그리하여 하느님의 자비(God's mercy)를 받아들이면, 드디어 하느님의 사랑(아가페, 애덕)이 그들의 심장(heart)에 작용하여[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제1848항], 비로소 그들이 회개(repentance)를 하게 되기 떄문이다.


회심하여 하느님의 자비를 받아들이도록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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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가톨릭 교회 교리서 요약편(CCCC) 제391항의 가르침입니다:
 

CCCC 391. 하느님의 자비를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뜻합니까?
CCC
1846-1848, 1870

하느님의 자비(mercy)를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잘못들을 시인하고 우리의 죄들에 대하여 회개하는 것을 뜻합니다(implique). 하느님 스스로 당신의 거룩하신 말씀과 당신의 성령으로써 우리의 죄들에 대하여 털어놓게 하시며(lays bare) 그리하여 양심의 진실성(truth of conscience)과 용서의 가망성(hope of forgiveness)을 우리에게 제공하십니다(엮은이 번역).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a_heart_c1846.htm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b_ot_9_c1846.htm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내용적으로 이 글에 이어지는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15.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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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작성에 소요된 시간: 약 8시간 (자료 조사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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