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개할줄 아는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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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연 [xyz] 쪽지 캡슐

2000-01-16 ㅣ No.991

얼마전 뉴스를 보다가 가슴이 몹시 답답한적이 있었습니다.(뭐 이런 일이

한두번 있는건 아니지만). 북한의 탈북자 7명에 관한 장면이었습니다.

러시아로 중국으로, 그들의 자유 의사와는 관계없이 밖으로 떠돌게 만드는,

이리저리 덩치들의 눈치만 살피다가 끝내 핏덩이같은 동포 몇명도 거두지

못하는 이 나라는 xx같은 나라라고,목숨 건 탈출을 해서 귀환에 성공한 사람도 많은데 저기서 저러고 있다니 저 사람들은 재수 한번 더럽게 없다고,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져서 혼자 몹시 흥분을 했었습니다.누추하고 겁질린 표정으로

본인들도 원치 않았던 낯선 땅에서 카메라에 잡힌 그들의 모습중에 제 또래의 여자가 있어서 그녀를 유심히 보았었는데 다음날 신문을 보니 그녀의 이름 옆

( )안에 나온 숫자를 보고 나와 동갑임을 알게 되었습니다.남한으로 가지 못하고 이대로 북한으로 돌아가느니 차라리 죽는게 낫다고 말하던 나와 동갑의 그녀 앞에는 이제부터 어떤 삶이 펼쳐질까,여자로서의 제대로 된 권리를 생각할수 있을까..그런 생각이 떠오르면서

북한에 있을 제2,제3의 수많은 내 동갑내기들과 이곳의 내 모습이 오버랩이 되는 겁니다.

화는 나는데 정확히 무엇을 향해서 화가 나는건지 누구한테 열이 받는건지..

예민한 문제를 도마위에 올려놓고 어차피 끝이 없을 설왕설래를 하며 심각한척 누가 가장 애국자인지 토론하기는 싫습니다. 그런데 한창 여자로서 또 한 인간으로서의 중요한 일들을 세워나가야할 스물일곱의 그녀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 신경쓰이게 만듭니다.어쩌면 이 모든 기준이 등따습고 배부른 이곳에서 살고있는 나만의 소견일지도 모릅니다. 불과 반세기 전만해도 하나였는데 다시 합치기가 그렇게 멋적은 일인지.정말 용기를 가지고 그 어떤 일이 있더라도 우리가 다시 하나가 되길 바라는 내가 순진한건지..

?

영화 박하사탕을 보셨습니까.같이 봤던 친구는 영화가 끝난후 그러더군요.박하 사탕을 깨물어 먹은 것처럼 입안이 화~하다구요.그런데 전 입안이 아니라 머릿속이

박하 향으로 가득한 기분이었습니다.영화가 계속되는 중간의 장면장면마다 퍼뜩

떠오르는 얼굴도 많았습니다.어릴때 같이 살던,나 어떡해를 참 맛갈스럽게 부르시던 막내 삼촌,학생시위가 있을때면 꼭 마스크를 챙기시던 막내 이모(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그 시위들은 역사에 길이 남는 그런 필름이었더군요),현 정권을

원망하며 바꿔야 한다며 교단을 떠나시던,중학교 내내 같이 교지 편집을 하며

내 마음의 키를 많이 자라게 해주셨던 국어 선생님,국악을 좋아하셔서 토요일마다

학급임원들과 극립극장으로 향하며 많은 진실의 이야기들을 들려주시던,

내가 정말로 좋아하던 수학선생님..지금은 소위 386세대라 일컬어지는 그 분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유행가를 통해서,비판과 행동들을 통해서 어릴때의 난 세상을

바라본 겁니다.조용히 관찰하는 기분으로...그것이 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다 자라버린 지금, 가끔씩 아니 자주 그 그늘을 깨달을때가 있습니다.바로 그때의

노래나 박하사탕같은 영화,책을 접할때입니다.중간에 몇번, 옆사람을 의식하며 참을 새도 없이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려서 억지로 콧물을 삼켰습니다.

그런 영화입니다.급히 길을 떠나려고 정신없이 짐을 꾸리느라 상실한 많은 것들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다시 생각나게 만드는 영화.. 잘 통할것 같은 사람과

손을 잡고 다시 한번 보고 싶은 영화입니다.

나의 이런 이야기들이 지극히 주관적이어서,당장 눈앞의 결과물을 좇느라 다른 사람의 감정을 신경쓸수 없는 바쁜 당싱은 괜히 클릭했다고 혀를 찰지도 모르겠습니다.하지만 실패한 탈북인중의 한명인 그녀와 박하 사탕의 김영호는

먼 덴마크의 동화나라속의 인물이 아니라 이 시대 우리와 함께 이 땅위에서 살고

있는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시대가 낳은 비극을 본인의 아픔으로 갖고 살아야하는..

이런 일들에 조금이라도 분개할줄 아는,그러한 당신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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