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북한관련

정의로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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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 [peace-maker] 쪽지 캡슐

2008-10-26 ㅣ No.8686

 
 

문규현 신부님 블로그에서 옮겨왔습니다. http://blog.daum.net/paulmun21/7318665

 

정의로운 사랑

2008년 10월 26일 연중 제30주일



탈출기 22,20-26

테살로니카 1서 1,5ㄴ-10

마태복음 22,34-40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하고 율사가 물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응답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그분은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고 답하셨다.


예수님의 응답은 법을 다루는 이들을 위한 토론거리도, 영적 고찰용 주제도 아니다. 성경 곳곳에서 무수히 드러나는 예수님의 행적과 말씀을 통 털어보면, 이는 다른 이들을 돌보고 사랑하는 ‘행동’을 촉구하는 가르침이다. 행동과 실천 여부야말로 자신이 얼마나 하느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가를 보여주는 잣대이다.


첫 독서와 마태복음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사랑이 과연 무엇인지를 말한다. 이스라엘 선조들은 사랑이신 하느님과 계약관계를 맺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그 사랑이신 하느님을 어떻게 보다 구체적으로 세상에 알리고 구현할 것인지 고민해야 했다.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하느님께 선택받은 민족으로서 그것이 얼마나 관대한 것이든 간에 일시적인 자선행위로는 하느님께서 자신들에게 부과하신 책무를 다할 순 없는 것이었다. 대신에 하느님의 사람이 된다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정의에 부합하는 삶을 사는 것을 의미했다. 하느님과 계약에 대한 충실함은 행동으로 나타나야 했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 하느님이 사랑하시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 하느님이 창조하신 모든 존재와 우주에 대한 사랑을 행동으로 표현해야 했던 것이다.


탈출기 저자와 예수님은 단연코 이 사랑이 실천적이어야 한다고 여겼다. 이 사랑은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 대한 사랑을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느님께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고 말하고 행할 기회를 갖게 된다. 우리는 또한 진실한 사랑의 실천을 통해 다른 이들의 삶의 변화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사랑은 정의이다. 누구도 업신여김을 당해선 안 된다. 하느님께서는 “너희 곁에 사는 가난한 이에게 돈을 꾸어 주었으면, 그에게 채권자처럼 행세해서도 안 되고, 이자를 물려서도 안 된다. 너희가 이웃의 겉옷을 담보로 잡았으면, 해가 지기 전에 돌려주어야 한다. 그가 덮을 것이라고는 그것뿐이고, 몸을 가릴 것이라고는 그 겉옷뿐인데, 무엇을 덮고 자겠느냐?”고 탄식하고 걱정하신다.


탈출기 저자는 고아와 과부, 가난한 이들 외에도 이방인들의 보호 또한 특별히 언급하고 있다. 외국인 체류자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등장하고 있는 이 시기에, 이 말씀은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와 가야할 방향을 제시해준다. 하느님께서는 “너희는 이방인을 억압하거나 학대해서는 안 된다.”고 하신다. 그러므로 그 고통 받는 이들이 “나에게 부르짖으면 나는 들어줄 것이다. 나는 자비하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나도 그렇고 이웃도 그렇고 이방인도 모두 하느님께는 소중한 존재이다.


사랑이라는 정의, 정의로운 사랑은 우리가 난관에 처한 이주민들, 외로운 이들, 손길이 필요한 이들, 따뜻한 정이 그리운 사람들을 향해 나아가라고 말한다. 성경의 정의는 환대와 돌봄이다. 필요할 때는 권리와 보호를 옹호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느님의 은총이 우리를 통해서 실현된다.


                                         
                                              문규현 바오로 신부

하느님은 사랑입니다.

기도...평화의 길, 생명의 길, 사람의 길을 찾아서
오체투지 순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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