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계2동성당 자유게시판

부활절을 축하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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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아 [verona14] 쪽지 캡슐

2000-04-23 ㅣ No.352

책상 위에 부활절 계란이 있습니다.

미사가 끝난 후에 받은 것입니다.

조금 쌀쌀한 날씨였지만 계란을 주시는 분들의 얼굴을 보니

훈훈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부활절을 축하 드립니다.’

 

최인호님의 묵상집 중에서-

 

박목월(朴木月 1916~1978)은 경주에서 태어난 우리나라 대표적 서정시인입니다. 그는 조지훈, 박두진과 더불어 <청록집(靑鹿集)>을 간행하였는데 이 작품집에는 김소월의 <진달래꽃>과 더불어 널리 애송되고 있는 <나그네>란 시가 실려 있습니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2행씩 5연으로 되어 있는 짧은 단시지만 이 작품 속에는 구름이 갈라진 사이로 스쳐가는 달처럼 남도 삼백리의 외길을 걸어가고 있는 나그네의 모습이 꿈처럼 황홀하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달과 구름, 강과 저녁놀 그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고 흘러가는 나그네의 모습은 우리들의 인생이란 ’낯선 여인숙의 하룻밤’이라고 표현한 대(大) 테레사 수녀님의 말을 떠올리게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돌아가신 후 시체가 없어진 것을 발견한 사람들 중에 두 사람이 엠마오라는 동네로 가는 도중에 일어나는 일은 한 마디로 우리들의 인생을 압축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가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는 나그네가 되어 다가서서 나란히 걸어가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모습은 이처럼 눈이 열려 주님을 알아보기 전에는 너무나 평범하여 몰라보는 것이 당연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막달라 마리아에게는 동산지기처럼 보였으며(요한 20,15), 티베리아 호숫가에서 일곱 제자들 앞에 나타나셨을 때도 요한을 빼놓고는 그 누구도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요한 21,4).

엠마오로 가는 두 나그네 역시 하루종일 함께 주님과 걸었으면서도 바로 곁에 있는 그 분이 주님이심을 전혀 몰랐습니다. 끝임없이 주님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침통한 표정으로 주님에 관한 소문을 전하면서도 그 말을 듣고 있는 사람이 바로 주님이심을 미처 몰랐던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식탁에 앉아 빵을 들어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주실 때에야 비로소 눈이 열려 주님을 알아보았습니다. 주님의 이런 모습은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빵과 포도주를 나누어주시던 최후의 만찬(마태26, 26)을 떠올리게 합니다.

 

우리들의 인생이란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가는 두 나그네의 여정과 같습니다. 바로 우리 곁에 계신 주님의 현존을 우리는 까마득히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들 인생의 궁극적 목표는 부활하신 주님의 현존하신 모습을 발견하는 일입니다. 마음의 눈이 열려 주님의 현존을 발견할 때 우리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돌아간 사마리아 여인처럼(요한4,28), 찾아가던 동네를 버려 두고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간 두 제자처럼 변화될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길을 걷고, 이야기를 나누고, 낯선 여인숙에서 함께 묵고,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고 계십니다.

시인 박목월이 노래하였던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 구름에 달 가듯 남도 삼백리의 먼길을 가는 나그네는 우리들이 잠들어 있을 때도 우리보다 더 멀리 가시려는 지친 주님의 모습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를 찾아서, 우리의 인생에 나그네가 되어 오신 것입니다.

<루가 24,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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