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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 해설: 예수 그리스도 -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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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10-18 ㅣ No.30

[사도신경 해설 19] “예수 그리스도” (삶 1) - 탄생

최영철 알폰소 신부


‘예수 그리스도’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다. 이는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다’ 곧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세상의 구세주’라는 고백이다. 분리된 두 이름이 신앙에 의해 합쳐진 복합 이름이다. ‘예수’는 ‘하느님께서 구원하신다’는 히브리어 본명이며, 탄생 전에 천사에 의해서 예고되었다.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마태 1,21) ‘그리스도’라는 직함은 그분 안에서 구원이 이루어졌다는 신앙고백이다. ‘기름부음을 받은 이’를 뜻하는 히브리어 ‘메시아’와 동의어다.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위해 봉헌된 사람들, 왕과 사제 및 예언자는 기름부음을 받았다. 그분은 성령의 기름을 받아 왕과 사제 및 예언자로서 파견되신 그리스도(메시아)이시다. 예수님은 이를 깨닫고 공적 사명을 개시할 즈음에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루카 4,18)고 주장하셨다. 그리스도 예수님은 구원의 결정적 성취를 위하여 하느님에게서 성령의 기름으로 도유되어 세 가지 메시아 직분을 수행하셨다. 그분은 그리스도라는 자의식을 지니고 구원의 말씀과 행적을 펼치셨지만 생전에 그 칭호로 불리기를 꺼리셨다. 정치적이나 현세적인 메시아로 사람들에게서 오해받을 수도 있었기 때문에 이 칭호에 대해 신중하였고 때로는 함구령을 내리셨다.

“베드로가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에 관하여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셨다.”(마르 8,30) 그분은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심으로써 그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했던 모습과는 다른 메시아의 모습을 보이기를 원하셨음을 드러내신다. “많은 고난을 겪고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게 되는” 메시아이기를 원하셨다. 겸손, 순종, 고난의 길을 통해 하느님과 인간을 섬기는 데에 자신을 온전히 희생시키는 메시아이셨다. 그래서 그 같은 메시아를 거부하려는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사탄아, 너는 하느님의 일이 아니라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라며 호되게 꾸짖으셨다.

예수님은 죄로 인해 비참과 멸망의 처지에 처한 인간과 하나 됨으로써 구원하고자 하셨다. 하느님은 죽음에 갇힌 인간과 함께 계시며, 그와 결합됨으로써 구원하기 위해 아들을 인간으로 태어나게 하셨다. 태어나자마자 아드님은 ‘임마누엘’ 곧 ‘우리와 함께 계신 하느님’이라는 별명을 얻으셨다. “동정녀가 잉태하여 낳을 아들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마태 1,24)

예수 탄생을 ‘강생’ 또는 ‘육화’라 한다. ‘육화’란 “말씀이 살(사람)이 되셨다.”(요한 1,14)는 구절에서 따왔고 ‘육신을 취하다’는 뜻이다. ‘강생’은 ‘(하늘에서) 내려와 (땅 위에) 태어나다’는 뜻이다. 예수 탄생은 하늘의 하느님 외아드님이 자신을 낮추어 땅의 비천한 인간과 결합되어가는 인간화 과정의 출발이다. 지존하신 하느님이 비천한 인간과 하나 되기 위해서는 아래로 내려오셔야 했다. 이는 위대한 겸손이고 자아포기이다. 자신을 낮추고 배워야만 비천한 인간과 사랑을 나눌 수가 있을 것이다. “그분께서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필립 2,6-7)

‘강생’의 목적은 ‘교환’이다.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경탄스러운 교환이다. 성자의 겸손과 비움으로 감행된 ‘상호 주고 받음’이다. 하느님이 당신의 부유한 신성을 인간에게 주기 위하여 초라한 인성을 받아들이셨다. ‘말씀’(하느님)이 ‘살’(사람)이 되심은 살이 말씀이 되게 하기 위해서다. “그분께서는 부유하시면서도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 여러분이 그 가난으로 부유하게 되도록 하셨다.”(2코린 8,9) [2008년 9월 14일 연중 제24주일(성 십자가 현양 축일) 가톨릭마산 8면]


[사도신경 해설 20] “예수 그리스도” (삶 2) - 나자렛 생활


신경의 절반(총 12항목들 중 6항목)이 예수와 관련된 부분이다. 둘째부터 일곱째 항목까지 예수님이 누구신지, 그 정체와 삶을 다룬다. 그분의 탄생, 수난, 죽음, 묻힘, 부활과 승천을 언급하며 재림에 대한 고백으로 끝난다. 아쉽게도 신경이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라는 표현으로써 예수님 삶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그에 대한 언급이 없다.

예수님이 말년에 수난하고 죽고 부활하셨으므로 구세주 되신 것은 아니다. 파스카 사건이 없었더라도 그분은 구세주이실 터다. 신성과 인성을 겸비하신 그분의 인격 자체 또한 그러한 그분의 삶 자체가 구원적 가치를 지닌다. 구세주로서의 면모 그리고 그분이 이룩하신 구원의 독특한 가치가 십자가 사건과 부활에 의해 부각되었다. 탄생부터 수난과 죽음에 이르기까지 예수의 삶 전체가 구원의 신비이다. 구원을 결정적으로 성취시킨 십자가 사건은 그분 삶의 결과일 뿐이다. 그분은 그 인격과 삶 전체로 인하여 구세주이시다. 그렇다면 그분의 역사, 삶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다. 그래서 최근 묵주기도에 ‘빛의 신비’가 삽입되었다. 예수께서 세례 받으심, 기적을 행하심,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심, 거룩하게 변모되심 또 성체성사를 세우신 삶의 신비들이 첨가됨으로써 묵주기도가 더욱 복음적 기도가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십자가 사건까지의 삶은 파스카 사건의 숨은 가치를 드러내고 구원의 길에서 우리가 반드시 실행해야 할 본보기를 보여준다. 그것은 성부께 대한, 아울러 성자 자신에 관한 계시이다. 복음서는 나자렛 생활에 관해 “예수님은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 지혜와 키가 자랐고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도 더하여 갔다.”(루카 2,51-52)고 기술한다. 나자렛 생활은 순종과 효도, 신체적 · 정신적 성장, 그리고 하느님과 사람들로부터의 인정과 사랑으로 특징 지워진다. 가정 내에서 부모께 효도하는 자녀로서 순종의 미덕을 쌓았고, 공적 임무 수행을 위하여 몸과 정신을 연마하였으며, 하느님과 이웃들로부터 사랑을 담뿍 받으며 성장하였다. 공생활을 개시하기 전에 극기와 수련으로 자신을 철저히 준비시키는 은둔 및 수련 시기였다. 평범한 일상과 고요, 침묵과 대화, 학습과 명성, 순종 등으로 일관된 삶이다. 사명수행을 위하여 대중들 앞에 나서기 전에 가정 안에서 엄격히 또 조용히 자기 자신을 훈련시키며 극기와 학습, 효도와 직업에 충실하였다. 3년 여 간의 짧은 공적 임무수행 기간에 비해 10배에 해당되는 30년의 긴 세월을 수련과 준비에 투자하셨다.

열두 살 예수님은 부모와 함께 예루살렘 성전 참배의 순례를 하던 도중 귀가 길에 서로 모르고 헤어졌다가 부모에 의해 성전에서 발견되신 일화가 있다(루카 2,21-50 참조). 사흘 뒤에 성전에서 상봉 때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으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라는 부모의 말에 예수님은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2,49)고 대꾸하셨다. 이 발언은 어른으로서 곧 자신이 걸어야 할 길을 천명하신 것이다. 마리아와 요셉에게 순종하며 효도하는 ‘사람의 아들’이기는 하지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일을 완수하기 위해 그 뜻에 복종해야 할 ‘하느님의 아들’로서의 자의식을 드러내셨다. 이 일화는 공생활 동안 예수님이 또 구원사업을 위해 절대 필요한 순종을 암시한다. 그런데 묘하게도 ‘아버지의 천상 집’에 있어야 한다고 선언하신 예수님은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고 성경은 적고 있다. [2008년 9월 21일 연중 제25주일 ·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 경축 이동 가톨릭마산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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