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당 게시판

땅끝에 서다....

인쇄

김요셉피나 [xone2] 쪽지 캡슐

2002-11-12 ㅣ No.4092

 

2002년 11월의 사건이라고나 할까요..

 

평생 아니 눈감는 날까지 잊지 못할 지옥 같은 일을 11월 3일

 

(교통사고)과 6(수능)일 연거퍼 당하고 보니 제 정신이 아닌 듯 싶었습니다.

 

어떤 모습이 나인가.. 나일까?

 

하지만 시간이 약이었고 약이 되었습니다.

 

평소 인자한 성품이 드러나는 백  신부님께선 위로의 말로

 

그냥 평상시 되로 가던 길을

 

걸 어가며 그 분의 뜻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위로를 해주시더군요

 

불행했던 그 주일 9일 땅 끝 마을을 찾아갔지요

 

아침 6시에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아래로, 아래로 달려갔습니다.

 

서산을 지나 김제평야를 보며 줄포, 고창, 영광, 함평...

 

목포까지...

 

그런데 고속도로길의 앞길은 참 단순하고 좀 재미가 없어요

 

토말,, 땅끝 마을 가는 길엔 배추가 봄의 초록을 대신 해주었

 

고 밭에서 형용색색의 원색옷을 입은 아낙들의 당근 작업도

 

한층 평화로움을 더 했습니다.

 

5시간 여를 달려 땅 끝에 도착하여 전망대에 오르니 남해 바다

 

가 한눈에 펼쳐졌습니다.

 

올라갈때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했지만 내려오는 길은 계단을

 

이용했는데 벽에 붙인 타이루에는 각자의 기념할 사진과 문구들

 

이 붙여져 있었서 우리 성당의 담벽을 장식할 "생명의 길"이 생각났습니다

 

땅끝에서 차와 함께 배를 타고 보길도 행으로 이어졌습니다.

 

보길도엔 한국 정원으로 으뜸으로 꼽는 고산 윤선도님의 정원

 

과 여타 유적이 있다기에 한번가보고 싶은 곳 중에 하나 였습니다.

 

정원 세연정.. 기름을 칠해 놓은 듯한 동백 잎과 노송나무..

 

그리고 어부 사시사가 눈길을 끌었답니다.

 

집터인 낙서재로 가는 길에는 성질 급한 동백인지 어느새 피었

 

다 낙화가 되어버린 동백꽃이 바닥에 즐비했습니다.

 

 

낙서재란 뜻은 학문이나 글을 하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라는

 

뜻이라던군요.

 

국수당. 동천 석실......

 

돌아오면서 자갈길로 유명한 예송리 해수욕장엘 들렀습니다

 

입구엔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나는 대학생이 보낸 자연 보호 글이 눈에 띄어 읽어

 

보게 되었습니다.

 

학생 동생이 예송리 해수욕장엘 갔다 기념으로 돌을 가지고

 

왔는데 조그만 돌도 제자리에있어야 할 것 같아 동생을 설득하

 

여 다시 보내니 이 돌들을 바다 근처 제 자리에 뿌려달라고 쓴

 

편지를 게시판에 적어 놓았는데 어느 자연 보호 캠페인 문구

 

보다 더 정감있게 보여졌습니다.

 

바다가 보이며 우암 송시열 님의 여든 세 살 에 썼다는 글씨

 

가 씌여진 벼랑 끝엘 가보았고 관광 안내 지도에 씌여진 곳을

 

다 돌았다며 보길도에서의 마침표를 찍고 다시 배에 올라탄게

 

4시 40분 이였습니다.

 

갈때는 바다 구경을 한다고 차에서 내려 갑판에서 서서 망망대

 

해를 보며 윤심덕과 일전에 바다에 몸을 던지 이름 가물가물한

 

시인도 떠올리면 갔는데 돌아오는 길엔 배에 있는 차안에서

 

노을지는 바다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왜 항상 배를 타면 흘러 나오는 노랜 현철이나 이미자

 

남진 노래만 나오지 해바라기나 김광석의 노래는 안나오는 것일

 

까 하는 의아심도 들었습니다.

 

아직도 관광배의 선장은 세대교체가 안된것인지....

 

여행은 말을 아끼게 하고 나와 인연이 없었지만 많은 사람들

 

을 생각하게 합니다.

 

땅 끝에 가는 길에 시인 김남주 생가며 고정희 님의 생가를

 

지나치며 그들의 시며.

 

김남주가 남자고 김남조가 여자 시인이라는 이야길 곁에 있는

 

요셉에게 묻지 않은 말도 하게 되고 지리산에 갔다 폭우에

 

쓸려 죽은 고정희 시인에 대해서 말도 하게 됩니다.

 

역시 전라도는 예술인의 땅이며 예술적인 감각의 기가 흐르는

 

곳인가보다라고 혼자 단정도 짓어 보며 그들이 생전에 생각만

 

하고 쓰지 못하고 간 그 영감을 나한데?

 

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허절없는 생각으로 혼자 웃었습니다.

 

배를 한 시간 타고 다시 토말에 6시40분 도착!

 

좀 과하다 싶은 저녁을 먹고 우린 다시 국도 20번 도로를 타고

 

지리산 자락 중산리 쪽으로 5시간을 달려왔습니다.

 

보성 차밭도 암흙에 묻쳤고 그리 재미있게 읽고 전라도 사람들

 

과 공산주의에 대해서 깊게 생각을 하게 해준 조정례씨의 태백

 

산맥 무대로 암흙에 가려 보이지 않았습니다.

 

빽 밀러 뒤엔 암흑만이 뒤 따라 왔고 길 가운데 중앙 분리대

 

며 가로수를 옆에 낀 야광 불빛은 마치길에 거리에 촛불을 켜

 

놓은 것처럼 빛났습니다.

 

세상 태어나 하루에 이리 운전을 많이 해 본 적이 없노라며

 

그 이유가 다 "니 뇬 하나 호강 시켜 줄려고 내가 이 짓 한다고

 

하니......"

 

열두시에 도착한 지리산 자락엔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로 인해

 

잘 곳이 없었습니다.

 

해마다 11월 15일이 되면 입산 금지가 내려지니 그것을 아는

 

사람들이 마지막 휴일을 찾아 산을 찾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이십분 정도를 달려 그리도 궁금했던 가보고 싶었

 

던? 텔텔텔 장장장.

 

러브호텔 비스므레 한곳을 들렀지 뭡니까.

 

 

호기심이였던 곳을 막상 가보니 전에 갔던 설악 호텔이 무척 좋

 

은 곳이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별것도 아닌곳을 그리 궁금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실망과

 

시시, 불결한곳이라고 생각이 든다고 했더니 잠자는 곳이

 

뭐 별 다르겠냐며 어느새 둘은 꿈도 잊은채 잠에 빠졌습니다.

 

 

다시 새벽.

 

젊어 설악! 늙어 지리산이란 말이 떠올랐고

 

우린 천왕봉을 향해 -

 

지리산 청왕봉을 거져 먹으려 했느냐는 말이 마음에 떠오르며

 

 

정말 힘들게 힘들게 산에 올랐습니다.

 

 

정상? 한 발 한발 걸어가는 거야......... 하면서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있다는 법계사를 지나 두 번째는

 

아마 설악의 봉정암이라지요.

 

로터리 대피소에서 차 한잔을 마시며 앞의 지형을 보니 정말

 

빨지산이 은둔하며 생활하기 좋게 산이 수묵화의 그림처럼 펼쳐

 

져 있었습니다.

 

차를 마시며 가만 손을 들여다보니 서울에서는 한시간만

 

지나도 손을 씻고 싶을 정도로 더러운데

 

 

이곳에선 몇시간이 지났는데도 참 깨끗하구나 하며 깨끗한 내

 

손에 감탄도 했습니다.

 

 

산은 많은 생각을 해주게 합니다.

 

눈으로 덮힌 정상.

 

 

지리산에서의 나름대로의 깨달음을 안고 정상에 오른 것은 등반

 

한지 5시간 반 만인 것 같습니다.

 

무척이나 바람 쎈 정상에서 눈꽃으로 뒤덮힌 나무를 바라보며

 

춘하추동을 이틀 사이 다 본 것 같아 마음이 허연했습니다.

 

다시 네시간 정도의 하산길.........

 

 

4시 반에 중산리에 도착하여 다시 장도의 서울 행.

 

 

꽂감을 만드느냐고 걸어 놓은 감들의 질서 정연한 모습과 빛이

 

고와 보였습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은 9시간 반이 걸려 새벽 한시 반에 집에

 

돌.아. 왔..습.니.다...........

 

 여행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줍니다.

 

 여행은 참 많은 사람을 떠오르게 합니다.

 

 

 

 

 

 

 



98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