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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사목과 마리아 공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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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준 [ksj2415] 쪽지 캡슐

2009-07-04 ㅣ No.179

본당사목과 마리아 공경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제시
성서적인 면에서의 마리아 공경
사목적인 면에서의 마리아 공경
결론

1.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제시
"신학자들과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은 성모의 고유한 품위를 존중하는 데에 있어서, 지나친 마음의 협소함과 마찬가지로, 온갖 거짓 주장도 함께 피하기를 간곡히 부탁하는 바이다.... 또한 말이나 행동으로 갈라진 형제나 다른 그 누구도 교회의 참된 교리에 대하여 오해를 품게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나 다 힘써 피할 것이다. 참된 신심은 결실없이 지나가는 일시적 감정이나 허황한 믿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참된 신앙에 있다는 것을 신자들은 알아야 한다. 참된 신앙이 있어야만 우리가 성모의 탁월성을 인정할 수 있고, 우리 어머니이신 성모께 자녀다운 사랑을 드리며, 그의 덕행을 본받을 수 있을 것이다"(교회헌장, 67항),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성모께 대한 공경을 간곡히 권장하면서도, 광신적, 미신적 혹은 우상화적, 여신숭배적 경향의 그릇된 공경에 대해서는 이를 절대적으로 시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사실 성모께 대한 신심이라는 말도 그렇게 달갑지 않은 말인 것 같다. 우리는 신심이라는 말을 너무나도 쉽게 어디에나 붙이는데, 신심이란 엄밀한 의미에서 천주님께만 해당되는 것이다. 성모신심, 성인신심(예: 임종주보 요셉 신심 등)을 말하는데, 공경이라고 일컫는 것이 옳은 것이다.
지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중에 특히 교회헌장에서는 성모께 관하여 특별한 한 '장'을 할애할 만큼, 그 공경의 중요성과 사목에 있어서의 절대 불가결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지나친 것은 오히려 모자란 것만 못하다는 옛말이 있듯이 가톨릭에 있어서의 성모 공경은 도에 지나친 것 같은 인상을 준다. 그것은 특히 미신성이 많은 나라에서, 역시 미신적 요소에 잘 현혹되는 사람들에 의해 자꾸만 조장되고 있는 실정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제시한 헌장의 일부를 전제했는데, 사실 너무나도 일부에서는 성모 공경을 협소한 마음으로 도외시하는가 하면, 그 반대로 지나친 거짓된 주장들이 많아서 "가톨릭교는 마리아교다" 혹은 "예수님께보다는 성모님께 기도하는 편이 더 쉽고, 더 잘 들어주신다"는 등의 말들이 나돌 정도로 알려지고 있다. 성모 공경을 아예 사목에서 도외시하는 이유는 그러한 극단에 대한 반발로 발생한 것으로서 이 또한 하나의 극단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교황 바오로 6세께서 사도적 권고로서의 '동정 마리아 공경'에 관한 문헌을 발표하셨는데, 그 문헌에 따라 마리아 공경의 올바른 방향과 그 사목적 가치를 고찰해 보고자 한다.
2. 성서적인 면에서의 마리아 공경
성모님은 우리 "믿음의 모범"이시다. "복되신 마리아는 믿으면서 낳으신 분을, 믿으면서 잉태하셨다"(성 아우구스티누스). 즉 가브리엘 대천사가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기뻐하소서. 주께서 함께 계십니다. ...이제 아기를 가져 아들을 낳을 터이니 이름을 예수라 하소서..."하고 전했을 때,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게 하소서" 하고 수락하심으로써 하느님의 성자께서 인간의 육신을 취하시어 우리에게 오실 수가 있으셨다(루가1,22-38참조).
이것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뜻이라면 어떠한 일이든 순종해야 하며, 또 순종은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위대한 일을 성취시킨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신 실례이다.
성모님을 공경하는 첫째 이유는 이와 같은 절대적인 신뢰로써 순종적 수용태도이다. 좋은 일들은 따르고 받아들이기 쉽지만, 언잖은 일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한 것이 인간인지라, 성모님의 모범을 따르는 우리는, 그러한 것까지도 수용하고, 그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발견해야 할 것이다.

성모 공경의 둘째 이유는 성모님께 "기도의 모범"이시기 때문이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미하며, 내 구세주 하느님을 생각하는 기쁨에 이 마음이 설레입니다..."(마니피캇, 루가 1,46-55). 이 마리아의 노래는 "사실상 모든 시대, 모든 교회의 기도가 되었다"(동정 마리아 공경, 18항). 그리고 마리아의 기도는 언제나 주께서 가납(嘉納)하신다는 점에서, 우리는 성모님의 전구를 간청하는 것이다. "마리아는 가나에서도 기도하는 동정녀로 나타나신다. 현세적 필요를 조심스럽게 아들에게 간청하셨을 때, 초성적 은혜의 효과마저 얻으셨다"(상동). 또한 주님께서 승천하신 후 사도들은 동족인 유다인들이 무서워서 한데 모여 기도할 때, 마리아는 사도들이 의지할 지주였으며, 항상 함께 기도하셨다(요한20,19;1,14 참조), 이렇게 우리는 성모님의 모범에 따라 찬미와 감사 기도와 사랑 중에 살아야 할 것이며, 특히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성모님께 전구함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신으로 두려움 없이 나아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성모 공경의 세 번째 이유는 "마리아는 어머니시다"는 점이다. 이 성모님의 모성은 남자와의 접촉에 의해서가 아니라, 성령의 힘만으로 이루셨다. 이 기적스러운 모성은 하느님이 세우신 동정녀 교회의 다산성의 유형이자 모델이다. 교회 역시 "어머니가 되어 설교와 세례성사로 자녀들을 다시 낳을 때, 성령의 힘을 얻어 잉태하여 새로운 불멸의 생명에로 하느님께로부터 탄생시킨다". 그러므로 성모님을 공경하는 우리는 무엇보다도 성모님의 모범에 따라 전구에 힘쓸 것이다. 그것은 곧 성모님처럼 교회의 자녀들을 생산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넷째로 마리아는 "온전히 당신을 봉헌하셨다"는 점이다. 우선 성모님은 율법(출애13,11-16참조)에 따라, 첫 아들을 하느님께 봉헌하시었다(루가2,22-35참조).
그리고 당신 자신도 역시 정화의 규정(레위 12,6-8 참조)에 따라, 정결례를 행하셨으며, 아드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함께 그 고통을 감당하셨고, 그 아드님의 시신을 가슴에 안으셨다. 오직 아버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아드님과 함께 자신을 온전히 바치신 것이다. 성모님을 공경하는 우리의 절대적인 모범이 여기에 있다.

우리는 성모님처럼 온전히 주님과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 자신을 봉헌해야
한다. 사실 마리아는 십자가의 처절한 고통과 다를 바 없는 모성적 아픔을 겪으셨다. "당신의 외아들과 함께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시며 어머니의 마음으로 아들의 희생 제사를 함께 바치신 곳이니, 친아들이신 희생자의 봉헌을 사랑으로 동의하셨고, 스스로 이를 영원하신 아버지께 드리신 곳이다". 이와 같이 마리아는 자신의 삶 자체가 하느님께 드리는 봉헌물이 되셨으니, 마리아를 공경하는 우리가 어찌 그 모델을 따르지 않겠는가. 또한 '동정 마리아 공경'의 문헌 중에서는, 성모 공경의 성서적 권고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과 온순한 수용(루가1,26-38;1,45;11,27-28;요한2,5), 관대한 순명(루가1,38), 솔직한 겸손(루가1,48),근면한 사랑(루가1,39-56), 깊은 지혜(루가1,29.34;2,19,33,51), 종교적 의무의 충실한 이행(루가2,21.22-40.41),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루가1,46-49), 성전에서의 봉헌(루가2,22-24), 사도 공동체에서의 기도(사도1,12-14),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효심(마태2,13-23), 유배지와 고통 중에서의 굳셈(루가2,34-38.49;요한19,25), 하느님께 신뢰하는 품위있는 가난(루가1,48;2,24), 가난한 말구유에서부터 치욕적인 십자가에 이르기까지의 계속적인 돌보심(루가2,1-7; 요한19,25-27), 미리 보살펴주시는 섬세함(요한2,1-11), 동정적 순결(마태1,18-25;루가1,26-38)등이다.

3. 사목적인 면에서의 마리아 공경
우리나라에서는 레지오 마리에, 푸른군대 등 성모님께 대한 공경을 주제로 하는 신심단체가 절대적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모 공경은 본당사목에 있어서 크나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레지오 마리에는 어느 신심단체도 따를 수 없는 절대적인 숫자이다.

한편 푸른군대도, 해마다 그 인원이 증가 일로의 추세에 있다. 1953년에 한국에 도입된 푸른군대도 해마다 그 서약자의 수가 증가일로에 있다. 이밖에 다른 신심단체들도 많다.

이상으로 미루어 마리아 공경이 사목에 미치는 영향을 얼마나 큰지를 직감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성모 공경을 주제로 하는 신심단체를 효과있게 운영한다는 것은 참으로 본당사목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요인도 될 것이다. 그러나 사목일선에 나선 사제들 중에는 레지오 마리에나 푸른군대에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거나 혹은 냉대나 거부까지 보이는 일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근시안적인 태도라 하겠다. 오늘날 세계적 정세로 보아, 성모 공경의 올바른 자세 확립은 절대로 필요한 것으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나자렛의 동정녀를 감싸신 지극히 높으신 분의 그 힘이(루가1,35) 오늘날의 교회 일치운동에서 일하시고, 또 열매를 맺게 하시는 까닭에, 전능하신 분이 큰 일을 베푸신(루가1,49) 주님의 겸손한 여종에 대한 공경은, 서서히나마 모든 신자들이 그리스도 안에 하나가 되게 하는, 방해물이 아닌 수단이요 만남점이 되리라는 것을 우리는 믿는다"(동정 마리아 공경, 33항).

우리는 나약한 인간이기에 가끔 오류에 빠진다. 그러므로 성모 공경에 있어서도 그런 점이 없을 수 없다. 따라서 그러한 점을 시정해 나가면서, 복음이 요구하는 인류구원의 대성읍을 완수해 나가야만 할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마리아의 교의를 왜곡시키는 내용상 형태상의 과장 혹은 마리아의 모습과 사명을 흐리게 하는 조잡성, 또는 성실한 내적 사실 없이 외적인 어떤 신심 행업에만 매달리는 헛된 믿음, 또는 성실한 내적 사실 없이 외적인 어떤 신심행업에만 매달리는 헛된 믿음, 또는 꾸준히 구체적인 행위를 요하는 복음양식과는 먼, 그저 불모의 일시적 기분일 뿐인 공경상의 탈선 등을 경고했었다. ...이는 가톨릭 신앙에 어긋나는 형태이므로 가톨릭 공경 안에 들어서는 안된다. ...늘 새로운 것이나, 이상한 사건만 쫓는 일을 억누를 것이고, 역사적 객관성을 띤 공경이 되면서 터무니없는 전설적인 모든 허위가 제거될 것이다". 즉 오류와 탈선을 잘 막아내고, 복음이 요구하는 바를 성모님의 모범이 제시한 대로 생활할 것을 권함은, 신자들에게 참으로 유익한 일이 될 것이다.

4. 결론
현대와 같이 고도로 발달된 문화사회에서, 오히려 인간은 주체성을 상실하기 쉽고, 신심에 있어서도 현대적 특징인 피상적, 감각적 경박성을 지니기 쉽다. 그러므로 성모님께 대한 공경은 그러한 모든 약점들을 제거해 줄 것이며, 그 모범에 따라 삶으로써 언제나 그러했듯이 현대의 생활도 승리로 이끌어주실 것이다. "동정녀의 모성적 사명은 자녀다운 신뢰로 당신께 나아가도록 하느님 백성을 재촉한다. 실로 마리아는 언제나 서슴없이 어머니의 사랑으로 들어주시면서, 도움이신 분으로서의 힘있는 원조를 베푸신다. ...마리아를 고통받는 이의 위안, 병든이의 나음, 죄인의 피난처로 부르면서 괴로울 때 위안을, 아플 때 새기운을, 죄에서의 해방의 힘을 찾는다. ...죄악에서의 해방은 신자생활의 모든 쇄신의 필수 전제인 것이다".

사실 마리아는 무엇이나 당신 뜻대로 하신 일이 없으시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에게 "그분이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 2,5)는 말씀을 계속 되풀이하고 계신다. 마리아의 손가락은 항상 주님을 가리키고 있으시다. 그런데 가끔 우리는 그분의 손가락만 보고 있는 어리석음을 범한다. 이 점에 유의하면서 진정으로, 마리아에게 우리의 심신을 의탁하고, 그분의 모범에 따라 생활할 때, 그분이 그러하셨듯이 우리는 항상 주님과 함께 생활하는 자가 될 것이다.

그 때 우리는 사도 바오로께서 외치신 것처럼 "전능하신 분이 나와 함께 하시는데 나는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필립 4,13)고 외칠 수 있게 될 것이다. 실로 성모님께 대한 공경은 우리의 삶을 주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정확하게 이끌어주실 것이며, 또한 승리로 인도하실 것이다. 다시 한 번 깊이 성모 공경의 올바른 자세를 가다듬고, 자녀다운 효성으로 그분의 모범을 따르자
김몽은(신부)
사목 105호,86년5월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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