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북한관련

조선일보 기자 때리면 10만원 준다는 시위대

인쇄

양대동 [ynin] 쪽지 캡슐

2008-07-11 ㅣ No.6228

 
 
사회부 기동팀 기자들의 촛불시위 취재기
조선일보 기자 때리면 10만원 준다는 시위대
그 틈에 신분도 제대로 못 밝히고 취재 민주주의 외치면서 신문사 입 막는 이유는…
 
 
 
 


사회부 기동팀은 사건 현장에서 직접 몸을 부딪치며 취재를 하는 젊은 기자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촛불시위 시작 이후 수많은 밤을 새워가며 취재를 했던 현장기자들입니다. 기동팀 기자들이 이번 촛불시위를 무얼 느끼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를 다시 정리해 보았습니다.
  •  

혼돈과 질서 사이

시내 한 복판 대로를 막고 행진하는 시위대에 막혀 멈춰 버린 버스에 타고 있던 승객들은 시위대를 향해 "집에 가서 잠이나 자라"고 야유합니다. 반면 그 옆에 외제 스포츠카를 타고 가던 사람은 시위대에 경적을 울리며 "힘내라"고 응원합니다.익명을 요구한 한 법조인은 "명박산성은 왜 쌓냐"며 "시위대가 청와대까지 진격하는 것을 보여줘야 여론이 바뀔 것"이라고 합니다.


한 경찰서 경찰들은 자기들끼리 담배를 피우며 "어청수 오래갈까"를 말합니다. 서울광장 시위참가자는 "여의도까지는 걸어가야지 재밌는데, 광화문까지만 갔다 오니 재미가 없다"고 하고 전·의경들은 자기들끼리 욕을 섞으며 "××, 비나 많이 왔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핑크색 염색머리에 코스프레 복장으로 집회에 참가한 소녀는 한 편의점에 들어가 "왜 여긴 외국산 담배는 안 파냐"고 따져 묻습니다. 세종로 사거리에서 무리를 지어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흩어져서 행진하는 시위대를 바라보며 어떤 무리를 따라 취재를 할까가 가장 큰 고민이었습니다.


촛불과 폭력 사이

촛불집회 첫날 본 청계천 광장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경찰이 300명 정도 모일 것이라고 예상한 집회 현장에는 1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초를 들고 서 있었습니다. 그 중 절반 가까이는 여자 중·고생들이었습니다. "무엇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거리로 불러냈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촛불시위가 점차 미국산 쇠고기 문제를 넘어 반정부 투쟁으로 변질됨에 따라 시위 양상도 변하는 듯합니다. 종종 시위대로부터 "조선일보 기자 사라져라"는 위협도 받고, 반대로 경찰들에게 팔 꺾이고 아스팔트에 넘어졌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시위 참가자들의 심정을 조금은 알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아직 정답은 찾지 못했습니다. PD수첩, 연예인 팬카페, 아고라, 아프리카TV, 반미, 친노, 고유가, 청년실업, 신빈곤층…. 촛불을 들고 나온 사람 숫자만큼 다양한 동인(動因)을 발견했지만, 행진하다가 사거리가 나오면 멈춰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지 논쟁하는 시위대를 한 마디로 규정하기란 힘들었습니다.


진실과 괴담 사이

"아 그놈(미국인)들은 글쎄 광우병으로 죽은 소를 도축해서 그걸 갈아서 다시 소들에게 먹인다잖아. 그러니 광우병이 안 걸리겠어?" 새벽 1시. 모처럼 '일찍' 시위가 끝났습니다. '조중동 쓰레기'라는 구호 속에서 수첩도 꺼내지 못하고 취재하던 후배들과 목이나 축이자고 광화문 인근의 한 호프집에 들렀을 때 40대로 보이는 아줌마들이 광우병에 대한 저마다의 지식을 늘어놓고 있었습니다. '그게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만사가 귀찮았습니다. 누가 이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입력시켰을까요. 역설적이게도 그 시각 수백명의 시위대는 '공영방송을 사수하자'며 잘못된 정보 입력의 한 진원지를 향해 여의도로 몰려가고 있었습니다.


정의와 불법 사이

장관고시를 하루 앞두고 격렬한 충돌이 벌어졌던 지난달 25일. 전·의경들이 앉아서 '몸으로 버티고 있는' 경찰버스에 밧줄을 묶어 끌어내고, 성인 머리통만한 돌이 날아 다녔습니다. 시위대가 탈취한 경찰버스에서 방패·점퍼·헬멧 등을 꺼냈습니다. 전리품처럼 방패를 쌓아놓고 그 위에 올라가 있는 20대 여성, 'POLICE'라 쓰여 있는 점퍼를 입고 헬멧을 쓰고 돌아다니는 중고생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성난 군중들에게 끌려 나온 전·의경들을 짓밟는 군중들은 이성을 잃은 것 같았습니다. "얘들이 무슨 죄냐"며 뜯어 말리는 사람들도 덩달아 프락치로 몰려 험담을 들어야 했습니다. 군중들에게 짓밟히면서도 전경은 "아저씨, 제발 저 방패 돌려주세요. 저 그거 없으면 영창 가요"라며 애원하더군요. "아니, 이 자식이, 그 방패로 또 누굴 찍으려고!" 당장 고성과 함께 사방에서 주먹이 날아왔습니다.


소통과 단절 사이

"너 조선일보 기자 XX아니야? 신분증 내놔봐"

지난달 26일 밤 광화문 코리아나 호텔 부근에서 시위대 10여명이 저를 둘러싸고 신분증을 요구했습니다. 주민등록증을 보여주니 시위대는 "조백건? 들어본 이름 같은데…"라며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더군요. 금방이라도 멱살을 잡을 듯 달려드는 시위대에게 "조선일보 조백건 기자"란 말은 끝내 하지 못했습니다.

기자는 취재를 시작하기 전 항상 "조선일보 조백건"이란 말을 먼저 합니다. 하지만 촛불 시위를 취재한 지난 두 달 간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조선일보 기자를 때리면 10만원 준다"고 공공연히 외치고 다니는 시위대들 속에서 저는 저의 신분을 밝힐 수 없었습니다. 시위대들은 연일 광화문으로 뛰쳐나와 독재 타도와 민주주의를 외칩니다. 하지만 "조선일보에 광고 주지 말라"며 광고주를 협박하고, "조선일보 폐간"을 외치며 신문사 제호를 망치로 두드려 떼어냅니다. 조선일보 취재를 거부할 뿐 아니라 기자에게 폭력을 행사하기까지 합니다.


바리케이드 이쪽과 저쪽

지난 주말 TV 토론 프로그램에 참여한 한 민변 소속 변호사는 "광화문 일대 편의점이나 상가들은 시위가 있을 때면 문을 평상시보다 일찍 닫는다. 장사가 안 돼서가 아니라 물건이 일찍 동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경찰추산 5만여명(주최측 주장 50만명)의 시위대가 모인 지난 6일 서울시청 인근 편의점엔 음료수와 먹거리를 사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쳤습니다. 편의점 냉장고엔 찬 맥주가 바닥나고, 컵라면을 먹을 뜨거운 물도 떨어졌죠.


시위대는 밤새도록 태평로를 점거하고 앉아 술을 마시거나 아예 돗자리나 신문지를 깔고 잠을 청합니다. 태평로 인근 골목마다 들어선 포장마차는 밤새 북적댔습니다. 하지만 전경버스 바리케이드 너머 광화문 일대의 상가는 일찌감치 불을 끄고 셔터를 내렸습니다. 종로 피맛골의 한 선술집 주인 아주머니는 "요샌 단골도 다 끊겼어. 예전엔 퇴근 길에 한잔 하고 갔는데 요즘은 차 끊긴다고 다들 일찍 들어가"라며 한숨을 내쉽니다.



235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