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곡동성당 게시판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한 가족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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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연 [marta71] 쪽지 캡슐

1999-12-29 ㅣ No.730

  관중석의 아버지

 

  아버지와 단둘이 살고 있는 소년이 있었다. 풋볼을 몹시 좋아한 소년은 키도 작고 몸도 여위었지만 중학교, 고등학교 모두 풋볼팀에 들었다.

  그러나 그는 늘 후보선수로 남아 한 번도 경기에 참여해보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는 언젠가는 주전선수로 경기장에 나갈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연습을 하였다.

  소년의 팀 경기가 있는 날이며 소년의 아버지는 어김없이 운동장으로 나와 관중석에서 소리를 지르며 응원을 하였다.

  대학에 들어간 소년은 또 다시 풋볼팀에 지원했다. 비록 체격은 왜소했지만 놀랄만한 투지를 높이 산 감독이 소년을 합격시켰다. 이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4년 동안 치러질 대학 풋볼 경기 입장권을 모두 사버렸다. 왜소한 몸집의 소년은 4년동안 한 번도 경기에 나가지 못했다. 하지만 경기가 있을 때마다 아버지는 여전히 관중석의 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졸업을 얼마 앞두고 마지막 시함이 있기 일주일 전. 소년의 아버지가 갑작스레 돌아가셨다.

  시합 당일. 경기는 소년이 속한 대학팀이 뒤지고 있었다.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 가는 감독 앞에서 소년은 제발 자신을 출전시켜달라고 빌었다. 감독은 단 한번도 경기 출전 경험이 없는 선수를 내보내는 것이 이 상황에서 무리라고 생각하여 거절했다.

  그러나 소년이 너무나 열성적으로 매달리자 결국 소년을 운동장에 내보냈다. 그런데 소년이 경기장에 나간 뒤부터 전세가 바뀌었다. 그는 그 누구보다 잘 뛰었고 공도 잘 잡았다. 마침내 동점이 되고 경기시간 1분을 남겨 놓고는 소년이 승리점을 올렸다..그것은 기적이었다.

  경기가 끝난 후 감독이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소년에게 어찌된 일이냐고 물었다. 소년이 울먹이며 말했다.

 

"우리 아버지는 앞을 보지 못하는 장님이셨습니다. 아버지는 모든 경기를 보러 오셨지만 내가 뛰지 못한 것을 모르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오늘 처음으로 제가 경기하는 모습을 하늘에서 보실 수 있었을 겁니다

아버지 사랑해요!"

 

2주만에 마주친 학생의 슬픔을 달래줄 할 말을 찾지못한 나는 그 당시 조선일보에 나온 광수생각의 윗글이 그림으로 된 부분을 오려서 주었다.

그 친구는 갑작스레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상황이었고, 나는  부모님이 건강하셨기에 달리 위로의 말을 할 줄 모르는 상황이었다.

 

1년 후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사무장님의 한 마디에 나는 많은 용기를 얻었다.

"아버지가 마지막 숨을 거두실 때 꼭 하느님 곁으로 가게 해달라고 계속 기도해요"

 

작은 관심과 격려의 말은 큰 힘을 주는것 같습니다.

지금은 저도 아버지께서 우리 가족의 모습을 빠짐없이 보고계실거라고 확신합니다.

그래서 좀더 공손하게 말하려하고 좀더 열심히 살려고 합니다.

빈자리가 아닌 살아계실때 보다도 더 꽉찬 아버지의 자리를 만들려고 노력중입니다.

내가 사는 모습이 아버지의 모습이라는 생각으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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