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 광장

친구 에게서 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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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선 [delltapose] 쪽지 캡슐

2009-05-10 ㅣ No.2047

나이가 먹을수록 어머니 생각이 왜? 더 날까
누군가 어머니를 그리며 쓴 글을 읽고
나를 위해 평생 희생하신 어머니를 그리며
친구에게 글을 보낸다네.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대형할인점에 장을 보러 갈 때면

나는 으레 한 가지 물건에 시선이 머뭅니다

그건 값비싼 가전제품도 자동차 용품도 아닌 빨간 고무장갑입니다

"여보 이것 좀 봐..."

"또 고무장갑? 제발 그만 좀 해요"

아내는 고무장갑만 보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지만

나는 할 수만 있다면 진열대의 산더미 같은 고무장갑을

몽땅이라도 사고 싶은 심정을 억누를 길이 없습니다

어린시절 물에 살짝 살얼음이 끼는 초겨울부터

어머니의 손은 검붉게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겨울이 깊어갈수록 거북이 등처럼 쩍쩍 갈라졌습니다

그 시절 우리집은 야채가게를 했는데

겨울장사 중 제일 잘 팔리는 것이 콩나물과 두부였습니다

콩나물과 두부를 얼지 않게 보관하려면

콩나물은 헌 옷가지를 여러 겹 두르면 되지만

두부는 큰 통에 물을 가득 붓고 그 속에 넣어둬야 했습니다

그렇게 해야 윗물은 꽁꽁 얼어도 밑은 얼지 않아서

두부을 오래두고 팔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얼음을 깨고

맨손으로 두부를 건져내야 했습니다

"으.. 시리다.. 시려.."

쩍쩍 갈라지는 상처 사이로 얼음물이 스며 쓰라리고 아팠을 어머니...

그때 고무장갑 한 켤레만 있었더라면

어머니의 손이 아내처럼 고왔을텐데...

30년이 지난 지금도 고무장갑만 보면

마음이 아파 견딜 수가 없는 못난 아들은

오늘도 아내 몰래 빨간 고무장갑 한 켤레를 쇼핑수레에 담고 말았습니다

"이이가, 기어이..."

이쯤되면 아내도 더는 말릴 수 없다는 듯 말합니다

"당신 이러다 고무장갑 가게 차리겠수"

고무장갑은 제게 가난한 시절 어머니에 사랑입니다



백년을 울어 피는 대나무 꽃 같은 당신

천년이 가도 변치 않을 자애로우신 사랑

유난히 화창한 봄날 아침 당신이 그립습니다

살얼음판 밟으시느라 손발이 부르트고 갈라져도

다섯 남매 잘되라시며 당신의 곱던 육신 다 내어주시고

등 굽어 휘청대는 발걸음에도

오직 한길 못난 자식들을 위한

하늘을 향한 발원 지극한 정성이십니다.

사각사각 대나무소리에 잠 못 이루시며

토닥토닥 등 두들겨 잠재우시던 날

불꽃같은 당신의 일생

희나리 되어 스러져 가는 화롯불에

밤 지새워 바느질하시며 손끝 녹이시던 세월

이젠 바늘귀조차 보이지 않은 노안이십니다.

일년에 두세 차례 당신 앞에 선보이는 귀한 자식 손자 손녀들 되어

마음놓고 어루만지고 안아보지 못한 시간들이

쓸쓸하니 자꾸만 멀어져간 당신의 세월 앞에 불효만 거듭됩니다.

그래도 말없이 지켜봐 주시는 내 어머니

당신은 지나는 낮선 바람결에도 자꾸만 문밖을 내다보시며

못난 자식 그리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여위어 지친 삶 툇마루에 기대시며

하늘 끝에 걸린 낙조 보다 더 붉은 대꽃을 피우시느라 가슴 졸이신 당신

유난히 화창한 봄날 아침 꽃 같은 내 어머니가 그립습니다.


꽃 같은 내 어머니 / 고선예

옮김/지병구

 

 

















 

 

 


♬ 강인엽 그리운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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