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당동성당 게시판

예사롭지 않은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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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경 [lucy3] 쪽지 캡슐

2000-08-21 ㅣ No.1431

집에 돌아오는 길에 예사롭지 않은 바람이 불었습니다...

모두들 느끼셨겠지만...

하루종일 비가 내리시더니 가을이 성큼 다가온 듯 합니다...

아파트 화단에서는 귀뚤이 소리도 들렸습니다...

 

비설겆이라고 아시나요?

우리는 보통 밥을 먹은 뒤에 이 설겆이라는 것을 하지만, 비설겆이는 비가

내리기 전에 해야 한답니다...

어릴적(~30)에, 지금처럼 비가 오든말든 신경 전혀 안써도 되는

아파트에 살기 이전의 집에서는 이 비설겆이라는 것을 해야  했습니다...

비가 오실 것 같으면...

장독 뚜껑도 닫고, 창고 지붕위에 얹어둔 누룽지 말리던 것, 고추 말리던 것,

빨아 널은 운동화와 빨래들을 걷어 들이고...

기타 등등...

이런것이 바로 비설겆이랍니다...

어쩌다 비라도 많이 올라치면, 빗자루를 대기 시켜놓고 마당의 하수구를

뚫어주는 일도 해야했습니다...

대추나무 잎사귀들이 하수도 구멍을 막아 마당에 물이 고이는 것을 막아야

했기 때문이죠...

그때는 엄마가 집에 안계실때만, 그러니까 어쩌다가 한 번 하게 되는 일인데도

너무너무 하기가 싫었습니다...

빨리 이사갔으면 좋겠다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행당동 그 언덕배기의 집이

너무도 그립습니다...

강아지(방실이, 뽀삐, 뚱이, 복구...)도 키우고,  

여름에는 깻잎, 고추, 호박도 키우고...

(그곳에서는 쳐다도 안보던 호박잎을 여기서는 돈 주고 사먹었습니다.)

겨울에는 그곳에 김장 항아리를 묻고... 김치 냉장고가 왜 나왔는지 아세요?

다 이 맛을 재현하려고 나왔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다 엄마가 하셨는데 꼭 제가 한 것인양 얘기하고 있네요.)

 

집에 오면서 들은 귀뚜라미 소리에 옛날일을 생각하며 걸어 왔습니다...

그 집에서는 이 귀뚜라미 소리도 늘창 들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위~잉 하는 귀뚜라미 소리만 들립니다...

귀뚜라미 보일러 소리... 푸하하하...

 

하루하루가 소중합니다...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는 ’그때도 참 좋았어...’ 할 수 있게끔 좋은 일들로

가득가득 채워 가시기 바랍니다...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pc앞에 앉아 있는데

예사롭지 않은 바람이 한기가 느껴질 정도입니다...

창문 닫으러 갑니다...

환절기에 감기 조심하시구요... 좋은 꿈 꾸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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