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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1일 모든 성인의 날. 대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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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정 [wjyou57] 쪽지 캡슐

2002-10-31 ㅣ No.726

 

11월 1일

모든 성인의 날. 대축일

 

모든 성인들,

특히 교회력에 있어 축일로 지정되지 않은 성인들을 기념하기 위한 날입니다.

 

609년 교황 성 보니파시오 4세가 로마 판테온 신전을 교회에서 사용하기 위해 축성하고,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하면서 이 날을 제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5월 13일에 지켜졌는데, 교황 성 그레고리오 3세 (재위731-74년)가 성 베드로 대성당 안의 한 부속 성당을 특별히 모든 성인들을 위해 봉헌하면서 날짜가 변경되어 11월 1일로 바뀌었습니다.

 

이후 835년 교황 그레고리오 4세에 의해 전 교회에 보급되었습니다.

성인들이 그리스도를 충실히 본받아 또 다른 그리스도가 되었듯이 우리들 역시

성인들을 본받아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우리 자신들이 곧 성인이 되겠다는 각오로

거록한 삶을 살도록 결심하는 날입니다.

 

성인은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자녀는 그 어버이를 닮을 것이며,그리하여 우리는 모두 성인이 될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성교회에서는 1년을 통하여 성인들을 기념하고 있다.

그런데 이날은

천국의 있는 모든 성인들을 총합하여 기념하고 축하하는 날이다.

본래 성인이라면 교회에서 시성식을 하여 공식선포한 이들만이 아니고

천국의 들어간 영혼은 누구나 다 성인인 것이다.

 

그래서 모든 성인의 날에 그들을 총망라하여 기념하는데

그 의의가 있는 것이다.

이 축일은 우리로 하여금 천국을 묵상케 해준다.

성스러운 순교자들은 현세에서 무수한 고통을 당하였으나

지금은 천국에서 영복을 누리고 있다.

이날 수많은 사람들이 영명축일을 거행하기도 한다.

 

*아래의 글은 이기정신부님 홈에서 옮겼습니다.

(별이 태어나는 마을. http://akijaki.pe.kr)

 

★ 성인(聖人)

 

성인이란,

그분의 생존시에 신앙이 매우 두터웠고, 덕망도 높았으며, 삶이 모든 신자들의 모범이 되었으며 사후에는 하늘에 올라 하느님과 함께 영원한 행복을 누리고 있는 분을 말합니다. 이런 성인들은 교회가 그 권위로 확실히 천국에 계시다는 것을 판정하고 선언한 분들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세상에서 성인군자라 일컫는다해도 교회의 선언이 없이는 공적으로 성인이라는 칭호를 쓸 수 없습니다.

심판을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이태리 빠도바시 Scroveni 경당 내부 벽화

 

★ 성인의 기원과 역사

 

성인 공경의 기원은,

콘스탄틴 대제 때인 313 년 밀라노 칙령으로 종교의 자유가 용납된 이후 순교자들을 공경하기 시작하던 일로부터 유래되었습니다.

순교는 그리스도처럼 진리를 따라 목숨을 아끼지 않고 하느님을 증거하는 것이었으므로 그 존귀함을 크게 받들어 공경하는 것이었고, 주님의 이름으로 순교하는 것을 최대의 영광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10 세기 말에 이르러 교황청에서는 성인 품위를 정하게 되었고 세계에 그 성인들을 받들어 공경하도록 선포하는 시성식을 거행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당시 복자 시복은 지방 교회에서 하였으므로 복자는 그 지역에서만 공경하게 되었고, 성인은 로마에서 교황의 권한을 따라 시성되신 분으로 세계적으로 공경하는 성격을 띠었습니다. 그러다가 시복까지도 로마 교황청에서 관장하였고, 17세기에 들어와 복자, 성인의 시복 시성 문제를 교회법으로 분명하게 규정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 윤광 및 후광

 

성인의 초상에 전신 혹은 머리 부분에 광채를 그린 것은 옛날부터 내려오는 관습입니다. 이런 일은 그리스도교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불교에서도 부처나 보살의 초상에 후광을 그린 것등, 또는 영광과 권능 등의 표시로 일상 널리 쓰이는 상징입니다.

 

성화를 그리는 화가가 성인의 초상에 후광으로 빛을 그리게 된 것은 5 세기경부터며 중세 이후로 점차 널리 보급되었습니다.

빛을 그리는 양식은 여러 방법이 있습니다.

후광은 초상의 전신에 빛으로 둘러싸여 있는 것을 의미하며, 윤광은 머리만 빛으로 두른 것입니다. 윤광은 원형 또는 타원형으로 그릴 때도 있으며, 또한 머리에 둘러 그린 것도 있고 머리 위에 조금 떨어지게 그린 경우도 있습니다.

이태리 13 세기 Duccio의 작품.

<장업한 성모 마리아>의 일부분

 

교회 안에서 성인이라는 소문이 있다하더라도 교회가 절차를 밟아 시복 시성하지 않은 사람의 초상에 후광이나 윤광을 그릴 수 없는데, 이런 결정은 교황 우르바노 8 세께서 결정한 것이고 오늘날까지 지켜오고 있습니다.

 

★ 한국 순교자 103위, 성인(聖人)품에 오르심!

1984년 5월 6일,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1925년 시복된 79 명의 순교자와 ,1968년에 시복된 24 명의 순교자들을 성인품에 올리셨습니다.

한국 순교성인 103 위는 올바른 믿음과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의 중계자였습니다.

우리는 이분들의 위대한 신앙 자세를 확인 할 수 있으며, 윤리와 도덕의 극치를 발견하게 됩니다. 다시 말하여 이분들은 진리와 정의와 자유를 사랑하는 모든 인류의 사표이십니다.

 

한국 103위 성인은

한국 교회와 민족의 기쁨인 동시에 세계 모든 크리스찬들의 기쁨이며 영광입니다.

지금까지 성인 반열에 오르신 분은 거의 유럽사람들이었습니다.

일본에는 26 위의 성인이 계십니다.

103위 순교 성인

(9월20일성김대건안드레아와 정하상바오로와 동료순교자대축일.게시판 649번참조)

 

1) 시성식을 추진함에 있어 가장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수 십년에서 수 백년) 기적심사에서 우리나라가 면제를 받은 이유는 ①우리나라에 가정 주치의가 없어 구비서류가 불가능하고,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이 기적으로 많이 구제되었으며, ②150년 전의 순교인데도 많은 신자들이 우리 순교 선조들을 공경하여 받들고 있다는 점과 현재 영세자가 급증하는 것을 윤리적 기적으로 볼 수 있으며, 사제성소자가 많다는 점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2) 기적 심사 면제의 역사적 의의는 로마 교황청이 한국 교회의 발전을 인정했고

103 위 시성 후보자의 덕행과 덕망의 위대함을 인정한데 있습니다.

"나를 따르려면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마태오 16, 24)."

 

★ 축일의 의미

 

성인의 축일은 대개 그 분들이 돌아가신 날로 정하였으며, 우리 신자들은 이 날을 기념합니다. 이는 초대교회에서 순교자들의 죽음은 바로 축복받은 새 생명으로 탄생한 것으로 여긴 데서 기인합니다.

 

신자들은, 성인들께 위대한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느님을 찬미하고, 그러한 은혜를 받으신 성인들께서 우리를 위한 기도를 해 주실 것을 청하며, 그분들의 생애를 모범으로 삼아 생활할 것을 바랍니다.

1947년 분도성인 100주년을 맞아

"유럽의 아버지"로 선포하시는 비오 12 세

 

★ 주보성인

 

가톨릭 신자들은 세례 때에 성인이나 성녀를 택하여 그분들의 이름을 자신의 세례명으로 정하고, 그 성인들께서 이 세상에 살아 계셨던 동안 실천하신 덕행을 본받아 살아갈 것을 다짐합니다.

 

가톨릭 신자로 태어날 때에 세례명을 정해 받는 것은 13 세기부터였고,

현대에는 필수적으로 되었으며 교회법(1917년에 공포된 현행법전 761조)에서도 이를 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각 신심단체들도 주보 성인을 모시는데, 예를 들면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강론자의 주보성인, 성녀 데레사와 프란치스꼬 성인은 전교의 주보성인 등입니다.로욜라의 성이냐시오는 피정과 영성수련의 수호자이시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축일 : 9월 13일.게시판 637번

☆성녀 소화데레사 축일 : 10월 1일.게시판 673번

☆성 프란치스코 축일 : 10월 4일.게시판 676번

☆성 이냐시오 축일 : 7월 31일.게시판 586번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의 강론에서(축일: 8월 20일.게시판 598번)

(Sermo 2: Opera omnia, Edit. Cisterc. 5 [1968], 364-368)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형제들에게로 서둘러 나아갑시다.

 

우리가 바치는 칭송과 찬양 그리고 오늘 지내고 있는 이 축일 자체마저 성인들께는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아드님의 진실한 약속에 따라 하늘의 아버지에 의해 영광에로 올림받은 이들에게 우리가 바치는 지상적 영예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그들의 영광을 널리 전한다고 해서 그들에게 보탬되는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성인들은 우리가 바치는 영예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공경심으로 그들에게 바칠 것이란 조금도 없습니다. 그분들을 기억하며 존경심을 바치는 것은 우리 편의 유익이지 그분들의 유익이 아닙니다.

 

내 느낌을 솔직히 말한다면 내가 그들을 기억할 때 마음속에 열렬한 욕망으로 불타 오름을 느낍니다. 성인들에 대한 기억이 우리 안에 일으키거나 자극시켜 주는 첫 소망은 그들과 동반자가 되고 복된 영들과 더불어 동료 시민, 같은 가족 성원이 되며, 성조들의 집회와 예언자들의 지위, 사도들의 모임과 무수한 순교자들의 군단, 증거자들의 무리와 동정녀들의 합창단에 한 자리를 얻어, 마침내 모든 성도들의 통교에 하나가 되어 그들의 기쁨을 함께 누리는 것입니다. 과거에 뽑힌 이들의 교회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는 이에 무관심합니다.

 

성인들은 우리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의인들은 우리를 고대하고 있는데 우리는 모르는 체 합니다.

형제들이여, 우리의 게으름을 떨쳐 버리고 일어나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여 위의 것을 찾고 그것을 향유하도록 합시다. 우리를 고대하고 있는 이들을 우리도 고대하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이들에게로 서둘러 나아가며 우리를 만나기를 원하는 이들과 마음의 열망으로 함께하도록 합시다. 그들과 함께 있는 것만 바라지 말고 열의와 뜻을 다해 그들이 현존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성인들의 행복과 영광을 함께 누리는 것을 염원합시다. 그들의 영광을 염원하고 열망하는 것은 결코 위험한 것도, 해로움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성인들을 기념할 때 우리 안에 일어나는 소망이 또 하나 있습니다.

우리의 생명인 그리스도께서 성인들에게 드러내시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드러내시고 우리도 그분과 함께 영광 중에 드러나기를 바라는 그런 소망입니다. 우리의 머리이신 분은 아직도 실제 그대로 드러나시지 않으며 우리를 위해 사람이 되실 때의 그대로만 즉 영광의 관을 쓰지 않으신 채 우리 죄의 가시로 둘러싸여 드러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머리께서는 가시관을 쓰고 계신데 그 머리의 지체인 우리가 호의호식한다면 부끄러워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화려한 옷은 그분께는 영예가 되지 않고 오히려 조롱 거리가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날 즉 그분의 죽으심이 더 이상 전파되지 않을 때가

올 것입니다. 그때에 우리 역시 죽어서 우리 생명이 그분과 함께 하느님 안에 감추어져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머리께서는 영광 중에 나타나시고 당신과 함께 영광을 입은 당신의 지체들도 빛날 것입니다. 그때에 그분은 우리의 비천한 몸을 변모시키시어 머리이신 당신처럼 영광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열성을 다하여 이 영광을 희망합시다. 그러나 이 비할 수 없는 행복에 대한 소망이 성취되고자 한다면 성인들의 전구를 간절히 청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신속히 그것을 청합시다.

이렇게 하여 우리 힘만으로써는 얻기 불가능한 것을 그분들의 전구로써 얻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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