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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03-02-12 ㅣ No.31

 

 

 

구약 역사서 사무엘 입문

 

 

-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구약성서 새번역'10, 정태현 역

 

 

 

    1. 책 이름

 

    사무엘서를 둘로 나눈 것은 요즈음의 일이다. 히브리말 본문은 1사무 28,24에 ‘책의 절반’이라고 표기하여, 이 구절이 사무엘서 전체의 중간임을 가리켜주었다. 그리스말 번역자들은 이 책을 두 개의 두루마리에 옮기면서 ‘제1 왕국기’와 ‘제2 왕국기’라는 이름을 붙였다(오늘날 우리가 열왕기 상권과 하권으로 부르는 책들은 칠십인역에서 각각 ‘제3 왕국기’와 ‘제4 왕국기’로 불린다). 불가타도 이 구분을 받아들이면서 이 책을 ‘제1 열왕기’와 ‘제2 열왕기’로 불렀다. 이 구분은 1517년 첫 번째 랍비 성서가 출간될 때, 처음으로 히브리말 성서에도 적용되었고 1524/1525년에 두 번째 랍비 성서에도 적용된 이래, 오늘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히브리말 본문과 그리스말 번역본 사이에는 여러 가지 중요한 차이점이 드러난다. 둘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원본에 가까운가? 칠십인역의 역자들이 스스로 오늘 우리에게 전해진 그리스말 본문과 히브리말 본문을 비교하는 가운데 확인할 수 있는 첨가와 삭제를 시도했으리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한편 부분적으로 이미 출간된 쿰란 수사본들의 히브리말 본문 단편들은 칠십인역이 대본으로 삼은 히브리말 본문과 매우 가깝다. 그러나 수사본이 아주 오래된 증언이라는 사실 자체만으로 진짜 원본을 제시할 수는 없다. 칠십인역 본문이나 그 히브리말 대본이 중복되거나 모순된 일부 내용을 빠뜨리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칠십인역 본문은 마소라 학자들이 우리에게 전해 준 히브리말 본문보다 덜 까다로워 후대에 수정하지 않았나 의심하게 한다. 어떻든 칠십인역 본문과 마소라 학자들의 본문의 서로 다른 본문이 초세기 시작 전에 이미 공존하고 있었던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다.

    사무엘서라는 책 제목은 이 책의 저자를 사무엘 예언자로 돌린 옛 랍비 전승을 반영한다(바바 바트라 14b). 후대의 랍비들은 1역대 29,29-30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 사무엘의 위업이 그가 죽은 다음에 나단 예언자와 가드 예언자를 통하여 지속되었다고 여겼다(바바 바트라 15a).

    그러나 ‘사무엘의 책’이라는 개념은 그것이 아무리 오래되었다 하더라도 다소 인위적이다. 특히 사무엘 하권에서 21 - 24장은 문체나 내용이 일관된 다윗 왕가의 이야기를 방해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사무엘서의 본 내용인 다윗 왕가의 이야기는 이 왕가의 급변하는 내부 사정을 다루는데 솔로몬의 즉위에 관한 보고로 끝을 맺는다. 이 구도에 따르면 열왕기 상권의 처음 두 장은 위의 2사무 21 - 24장으로 중단된 옛 다윗 왕가의 이야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다. 한편 중간에 삽입된 이 사무엘 하권의 네 장은 구원자 판관들의 이야기를 방해하는 판관 17 - 21장과 같은 기능을 지닌다. 판관기의 구원자 판관들 이야기는 사무엘서에 나오는 다윗 왕가 이야기처럼 판관 17-21장을 건너 뛰어 1사무 1장에 다시 이어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2. 사무엘서의 내용

 

    2사무 21 - 24장의 보충 자료를 제쳐두고 현재의 사무엘서를 있는 그대로 놓고 살펴보면, 연대순으로 이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제1부(1사무 1 - 7)는 사무엘이 태어날 때부터 예언자로 부르심을 받고 이스라엘의 구원자요 위대한 판관이 되기까지 그의 생애를 다룬다. 이야기의 배경은 실로에 있는 계약궤의 운명과 직결되는 불레셋인들과의 전투 상황이다.

    사무엘이 늙어가자 외부의 위협으로 불안해진 백성은 그에게 임금을 요구한다. 백성의 왕정 도입 운동은 신정제도를 옹호하는 이 예언자의 반대에 부딪친다. 그런데도 사무엘은 이스라엘 원로들의 요구에 양보하여 사울을 임금으로 내세운다. 일단 임금을 내세운 다음, 사무엘은 뒤로 물러난다. 왕정에 대한 논란과 사울과 얽힌 이야기들은 1사무 8 - 12장, 곧 제2부를 차지한다.

    제3부(1사무 13 - 15)는 사울이 불레셋인들과 아말렉족과 벌인 여러 싸움을 다룬다. 사울은 싸움에서는 이기지만 어두운 그림자가 이미 그의 생애에 드리워지기 시작한다. 사울은 하느님께 두 가지 불순종을 저지르는데, 이 때문에 그가 왕위에서 쫓겨나고 대신 다윗이 왕위를 차지할 것이라는 사실을 사무엘이 암시적인 말로 그에게 알린다.

    사울 앞에 모습을 드러낸 때부터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성별될 때까지의 다윗의 생애는 ‘다윗의 왕위 등극 설화’(1사무 16 - 2사무 5)라 불리는 이야기에 나온다. 이 대목이 제4부의 내용이다. 사무엘서 저자는 다윗의 이야기를 다윗이 왕위에 등극하기까지와 등극한 이후로 나누어 이부작처럼 소개하는데, 이 “다윗의 왕위 등극 설화”는 이 이부작의 전반부에 해당한다. 다윗은 소년 시절에 사무엘에게서 성별을 받고 사울을 섬기게 되는데, 불레셋의 거인 장수를 쓰러뜨리면서 주목을 받는다. 그는 곧 위대한 장군이 되고 사울의 아들 요나단을 비롯하여 모든 이의 호감과 애정을 얻는다. 그러나 그의 성공은 사울에게 병적인 시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사울은 여러 차례 경쟁자 다윗을 없애려고 하지만 그때마다 실패로 끝난다. 다윗은 자신을 해치려는 사울을 피하여 방랑생활을 시작한다. 사울에게 쫓기는 동안 다윗은 불레셋인들을 섬기게 되지만 군대를 이끌고 자기 동족을 치는 일은 하지 않는다. 사울과 요나단이 길보아 전투에서 불레셋인들에게 패하여 죽은 다음, 다윗은 사울의 추종자들과 계속해서 싸움을 벌이고 승리에 승리를 거듭한다. 반면에 사울의 집안은 점점 약해진다.

    제5부(2사무 6 - 8)는 사무엘서에서 다윗의 이야기를 다루는 이부작의 연결 부분이다. 다윗은 예루살렘에 실로의 계약궤를 안치시킴으로써 자신이 정복한 이 성읍을 왕국의 수도로 성별한다. 나단의 예언은 다윗 왕조에게 호의를 보이며 이 왕조를 왕정 계승의 핵으로 확고히 다진다. 8장의 전쟁 기록은 예루살렘의 왕정 창시자가 실제 왕국의 정복자였음을 증언한다.

    이부작의 후반부는 2사무 9 - 20장의 내용인데 1열왕 1 - 2장에 이어진다. 여기에는 여러 사건들이 나오는데 끝에 가서는 모두 솔로몬의 등극에 귀결된다. 솔로몬의 탄생에 얽힌 이야기와, 솔로몬의 왕위 계승에 장애가 되는 다윗의 두 아들, 암논과 압살롬(그리고 아도니야)이 제거되는 이야기가 이 후반부에 속한다.

    다윗의 계승 설화 중간에서 잠깐 한숨 돌리는 사이를 이용하여 2사무 21 - 24장이 소개된다. 이 대목의 내용은 두 개의 서사시와 여러 인물들에 관한 기록, 그리고 두 가지 자연 재해와 그 액땜 사이의 관계를 중심으로 엮어진다. 마지막 내용인 자연 재해와 액땜 사이의 관계는 역사적·종교적으로 중요한데도 앞 장들에서 찾아볼 수 없다.

 

    3. 사무엘서와 이스라엘의 역사

 

    사무엘서는 이스라엘 역사의 오랜 기간을 다루지만 적어도 그 끝은 명확하다. 이 책은 기원전 970년 솔로몬이 출현하기 직전 다윗의 노년기까지 우리를 끌고 간다. 연대로 보아 판관기 역사와 같은 흐름을 지닌 초기 일화들을 정확하게 규정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초기 역사에 속하는 사무엘서의 몇몇 전승 사료들은 의심할 여지 없이 실제 역사에 바탕을 둔다. 불레셋의 지배에 관한 정보, 특히 그들이 쇠 다루는 일을 독점했다는 정보(1사무 13,19-21), 세밀하고 정확하게 장소를 표기하면서 여러 가지 싸움을 묘사하는 이야기들(1사무 13; 17; 31), 도망자 다윗의 파란만장한 편력기 등이 이런 전승 요소들이다. 다윗과 사울 집안 사이에 얽힌 이야기와 압살롬이 반역하는 이야기 안에서 드러난 이스라엘과 유다 사이의 긴장관계는 또 하나의 순도높은 전승 사료이다. 2사무 8장이 전하는 다윗의 전투 이야기도 그 외적 증거가 없다 할지라도 거짓일 수 없다. 에집트와 아시리아가 방어태세를 취하던 시절인 기원전 천년기 초기의 다윗 제국에 대한 정보는 솔로몬의 전성기 통치를 잘 설명해 준다. 그의 통치력은 지중해와 홍해에까지 미쳤다. 다윗 신하들의 직책에 관한 기록(2사무 8,15-18; 20,23-26)과 2사무 24장에 언급된 인구조사는 통치구역의 조직을 확정지으려는 의지를 잘 드러낸다. 또한 이 인구조사는 왕홀이나 궁궐도 없이 한평생 전사로 살다가 죽은 사울의 시대 이래 중대한 변화를 가리켜주는 사건이기도 하다.

    반면에 사무엘서에서 왕정제도의 발상에 관한 확실한 정보를 얻어낼 수는 없다. 불레셋의 위협이 사무엘에게 임금을 요구하러 온 이스라엘 원로들의 원초적 의도를 설명해 주기는 하지만, 언제 어디에서 이런 왕정 도입 운동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다. 사울을 암몬인들의 정복자요 야베스-길르앗의 구원자로 제시하는 1사무 11장의 전승은 깊이있는 연구로 그 진정성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이 전승은 그의 왕위 등극에 관련된 다른 이야기들과 조화될 수 있는가? 사울은 어디에서 왕위에 오르는가? 라마인가, 미스바인가, 길갈인가, 아니면 이 모든 장소에서 거듭 왕위에 올랐는가? 사울 왕국의 연대는 완전히 알려지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다. 1사무 13,1의 기록은 그런 연대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3. 편집 요소들

 

    사무엘서는 사건들을 연대순으로 엮어놓은 기록이 아니다. 이 책은 서로 다른 자료들을 한데 모은 문학 작품이다. 그 자료들 가운데 어떤 것들은 아주 오래되었다. 이 작품은 사울과 다윗 시대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구두 전승들을 결합시키지만 지금 우리가 대하는 이 책의 기록 뒤에 원초적인 사료가 어떤 형태로 그 바탕을 제공하였는지 밝히기 어렵다. 이 책은 아마도 솔로몬의 치세 아래 편집되고, 587년 왕국이 무너진 다음 “신명기 계열”(여호수아/ 판관기/ 사무엘서/ 열왕기)이라 불리는 역사학파의 손에서 수정과 보충을 거쳐 재편집되었을 것이다. 신명기계 역사학파의 문체와 어구는 쉽게 눈에 뜨인다. 이렇게 장구한 세월에 걸쳐 편집된 사무엘서에서 배경 사료의 원초적 형태를 읽어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주석가들은 “다윗의 왕위 계승 설화”(2사무 9 - 20과 1열왕 1 - 2)가 비교적 일관된 내용의 이야기로 이루어졌으며, 그 안에서 인간의 창조(창세 2)로 시작되는 이스라엘의 옛 민족사를 전해 주는 모세 오경의 야훼계 전승과 매우 비슷한 문학적 특성을 엿볼 수 있다는 데 동의한다. 풍부한 세부 묘사와 더불어 현장감있게 전개되는 압살롬의 반역 이야기는 사건을 직접 목격한 증인의 기록으로서 후대의 편집을 거치지 않은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 이야기는 솔로몬의 탄생 이야기(2사무 9 - 12)를 서론으로, 아도니야의 패배 이야기(1열왕 1 - 2)를 결론으로 삼으면서 “왕위 계승 설화”의 핵심을 이룬다. 솔로몬의 탄생 이야기와 아도니야의 패배 이야기를 다루는 2사무 9 - 12장과 1열왕 1 - 2장을 “솔로몬의 왕위 계승 설화”라고 부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설화가 그 자체로 객관적 분위기를 드러낸다 할지라도 저자의 편집 경향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나단의 예언(2사무 7)과 계약궤 이야기(2사무 6) 가운데 몇몇 오래된 요소들을 거기에 연결시켜야 하는, 다윗의 왕위 계승 설화 이전의 기록(1사무 16 - 2사무 5)은 그 기원을 밟아 올라가기가 매우 어렵다. ‘다윗의 왕위 등극 설화’ 또는 간단히 ‘왕위 등극 설화’라 불리는 이 기록은 생각보다 매끈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 설화의 작성자와 편집자들이 이야기를 조화있게 꾸미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그럴지라도 이야기가 중복되어 나오는 예들은 매우 예외적이다. 다윗이 사울을 섬기러 입궐하고,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하나 번번이 실패하며, 요나단이 다윗을 위하여 중재에 나서고, 다윗이 불레셋인들에게 망명하는 이야기, 지브 주민들이 다윗의 피신처를 밀고하고 다윗이 사울의 목숨을 살려주는 이야기들은 모두 중복되어 나온다. 이 때문에 많은 주석가들이 이 대목들을 두고, 원래 모세 오경을 구성한 문헌들을 확장시킨 것으로 믿었다.

    이와 관련하여 대부분 우리가 할 일은 서로 다른 전승들, 곧 이미 고정된 구두 전승이나 기록 전승들을 밝히는 데 주력하는 것이다. 이야기의 저자들이나 편집자들은 서로 다른 전승들을 보존하면서 고정된 정식(定式)이나 틀을 유지시키고 각 대목마다 열쇠말을 이용하여 주요 주제들을 강조하고자 하였다. 이런 중복에도 불구하고 다윗의 왕위 등극 설화는 왕위 계승 설화와 비슷한 점들이 아주 많다. 그래서 주석가들은 이 두 설화의 저자들이 같은 분위기로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간다고 당연히 생각하게 될 것이다. 예루살렘 궁정의 묘사는 이미 다윗 임금을 찬양하는 방향으로 굳어진 구두 전승에서 그 내용을 뽑고 그 꼴을 갖추었다. 이 대목에서 볼 수 있는 다윗 임금의 이상화(理想化) 과정은 후대의 편집에까지 연장된다.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주는 이야기를 전하는 1사무 16장은 이 두 번째 임금을 첫 번째 임금과 같은 틀 속에 넣고자 하는 의도를 분명히 드러낸다. 그러면서 이 장은 의심할 여지 없이 후대의 것으로 보이는 15장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사울의 여러 전쟁을 다루는 장들은 여러 사료를 한데 모은 것이다. 여기에서는 사울시대에 불레셋인들과 치른 전쟁들에 관한 옛 전승들이 발견된다. 이 전승들에서 다윗의 친구 요나단은 참다운 영웅이다. 그리고 그 경향은 대체로 사울에게 적대적이다(1사무 13 - 14). 아말렉과의 싸움 이야기(1사무 15)는 옛 전승에 확실한 뿌리를 내린다고 볼 수 없다. 이 이야기는 하느님의 명령을 위반한 탓으로 사울 왕조가 몰락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려고 문학 기법으로 처리된 서두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사울의 폐위는 그를 직접 계승한 다윗의 이야기에 꼭 필요한 서막이다.

    왕정제도의 기원을 다루는 1사무 8 - 12장도 꽤 복잡한 이야기에 바탕을 둔다. 이 대목에는 다양한 기원에서 나온 요소들이 모아져 있다. 어떤 것들은 덧붙여진 요소들인데도 오래된 전승에 바탕을 둔다. 베냐민 지파의 전설에서 나온 것임에 틀림없는 암나귀 이야기(9,1 - 10,16), 미스바에서 나온, 제비로 임금을 뽑는 전승(10,17-27), 원수 나라 암몬을 쳐부순 영도력있는 판관으로 사울을 그리는 11장의 이야기는 그 좋은 예들이다. 8장은 왕정제도 자체가 일으킨 신학적 문제를 즉시 보여준다. 이 장은 비록 주님께서 이 제도를 허용하신다 하더라도 임금을 요구하는 백성의 원의를 단죄한다. 사무엘이 이스라엘 동족에게 경고한 “임금의 소행들”은 이스라엘 임금들의 악습을 미리 단죄한 것이라기보다 기원전 2천년대 말기에 “다른 민족들 가운데서 찾아볼 수 있었던” 임금들의 관행을 지적한 것이라고 하겠다. 8장의 배경은 생각보다 훨씬 오래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장에 나오는 사무엘의 담화는 사무엘서의 다른 담화들처럼 신명기계 학파의 손길을 거쳤다. 담화는 이야기의 내용을 부연하는 데 가장 알맞은 문학유형이다. 12장에 나오는 사무엘의 고별 설교도 신명기계 학파에게 돌려야 딱 들어맞는다. 이 설교에서 사울은 좋다 나쁘다 판단되지 않는다. 그는 주님께서 뽑으신 사람이라는 사실이 다양한 방식으로 제시될 뿐이다. 왕권을 손에 넣은 사람보다 왕정제도 자체에 더 관심이 많다.

    사무엘서의 첫 부분(1사무 1 - 7)은 사무엘이라는 인물을 소개하는 데 역점을 둔다. 이 인물의 됨됨이는 신심깊은 사람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으로 드러난다. 그는 성소(聖所)와 연결되면서 예언적 사명을 받는다. 이 부분의 저자는 사무엘 안에서 그 시대를 위한 구원자의 참모습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 모습을 사울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다. 저자는 사무엘의 선택을 강조한다. 두 임금을 성별한 사무엘은 주님의 마음에 드는 심부름꾼이었다. 1 - 7장의 다른 요소들은 사무엘서 전체의 주요 관심사들을 감안해야 그 의미가 드러난다. 계약궤와 얽힌 이야기들이 자세하게 나오는 이유는 그 이야기들이, 다윗이 새 도읍 예루살렘의 수호신으로 삼은, 이 궤를 영광스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충직한 사제”(2,27-36)의 언급은 솔로몬시대의 사독 가문 사제직에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필요하다. 2,7에서 간결한 문체로 나타낸 들어높임과 내침의 반명제는 엘리와 그 아들들에 대한 사무엘의 관계를 반영하지만, 동시에 사울과 그의 집안에 대한 다윗의 관계를 드러내기도 한다. 이렇듯 사무엘 이야기는 이어지는 이야기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1 - 6장을 구성하는 옛 전승들의 수집은 왕정 지지파에 돌릴 수 있다. 7장에는 신명기계 역사가의 관심사와 문체가 나오는데, 이 역사가가 판관들의 역사를 매듭지으려는 뜻에서 7장을 재편집하였을 것이다.

 

    4. 왕정에 관한 가르침

 

    이야기 저자들의 정치적·종교적 경향을 밝히는 일은 사무엘서의 집필과 관련된 몇 가지 가설을 가능하게 한다. 사실 사무엘서는 이스라엘 옛 역사의 한 부분이 가르쳐주는 것보다 중요한 가르침을 우리에게 남겨준다. 그 가르침 가운데 몇 가지 중요한 점을 밝힐 필요가 있다.

    가장 주목할 주제는 왕정에 관한 내용이다. 사무엘서 저자는 이 제도의 모호함을 굳이 숨기려 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주님을 임금으로 모신다. 그러니 인간적 통치자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데 이 왕정 문제는 주님과 그분의 중재자인 사무엘이 사울의 선택을 주도하였기 때문에 왕정제도에 호의적인 방향으로 풀려 나갔다. 그러나 이 제도를 요구하는 백성의 주장은 단호하게 단죄를 받았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아마도 인간의 왕정 자체가 인간의 뜻에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권위에서 나온다는 사실과, 이스라엘의 군주제도는 민주적이거나 전제적인 것이 아니라 신정(神政)에 예속된 채 남아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볼 때 사울은 백성의 요구로 희생양이 된 인물이다. 그의 이름 자체가 ‘요구하다’라는 동사에서 나왔다. 사무엘이라는 위대한 인물을 기리는 전설담은 하느님의 뜻을 전달하는 한 종교인의 최상 권위를 드러낸다. 사무엘서에는 사울의 몰락을 가져오게 했던 잘못들의 종교적 성격이 강조되고 있는데, 이는 임금이라고 해서 자기에게 속하지 않은 영역을 침범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이다. 나아가 사무엘서의 관심사는 예배의 대상과 관습과 인물에 연관된다. 만져서는 안될 계약궤(2사무 6,7)와 예루살렘의 제단(2사무 24)에 관한 언급은 그 좋은 예들이다.

    사무엘서는 다윗을 가장 훌륭한 임금으로 내세운다. 특히 그는 이스라엘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는 시기에 이상적 영웅으로 묘사된다. 그는 여러 차례 뛰어난 전공을 세우고 사람들의 호감과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관대함과 겸손을 잃지 않는다. 저자는 다윗이 군인으로서 성공한 생애를 보냈음을 감추려 하지 않는다. 사무엘서에서 우리는 이 이상적 임금이 주님께 보인 순종의 태도, 그의 탄원, 그리고 역경 가운데 하느님의 뜻을 물어보려 한 사실 등을 놓쳐서는 안된다. 다윗은 간음과 살인을 저지르고 나서 나단 예언자의 충고와 질책을 받아들였다. 나단은 이스라엘에서 임금이라 할지라도 율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을 다윗에게 일깨워 주었다. 한편 사울과는 달리 다윗의 후손은, 죄악의 씨앗(바쎄바에게서 난 첫아들)만 죽을 뿐, 벌을 받지 않는다. 다윗은 자신의 아들 가운데 하나가 자기 자리를 물려받아 이스라엘을 통치하리라는 보장을 받는다. 이 아들은 솔로몬이다. 솔로몬은 태어나면서부터 하느님의 사랑을 받으며 서서히 부상한다. 사무엘서는 결국 이스라엘 왕국을 정당화하고 옹호하는 기록이다. 나단의 예언에 따라(2사무 7), 다윗 집안은 몇몇 임금들이 잘못을 저질렀으나 예루살렘의 왕좌를 영원히 차지해야 한다. 이 예언의 골자는 신명기계 역사가의 편집에서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이스라엘의 군주제도가 오래도록 지속되리라고 믿었던 시기에 나왔을 이 종교적 이념은 사무엘서를 구원의 역사 가운데 자리잡게 하는 특별한 행운을 낳았다. 그러나 미래의 어느 날 이스라엘의 임금들은 큰 잘못을 저질러 왕국 전체가 벌을 받게 될 것이다. 기원전 587년 바빌론에 패하고 왕족을 비롯하여 사회 각계 지도층 인사들이 바빌론으로 끌려갈 사건이 바로 이를 결정적으로 증명할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다윗 집안에 허락하신 영원한 보증을 계속 믿으면서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약속된 인물이 나오기를 고대한다. 그분이 바로 이상적 임금인 메시아인데, 인성으로 볼 때 그분은 기원전 천년 경에 이미 주님께서 뽑으신 이의 후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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