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아동(구 미아3동)성당 게시판

누군가를 잊지 못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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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연 [vivianlee] 쪽지 캡슐

2000-12-03 ㅣ No.5611

 

화석 속에 웅크린 시조새의 날개처럼 그에겐 비밀스러움이 있었다. 정민과 만나는 자리에서도 그는 누군가에게 자주 전화를 걸었다. 그런 그의 모습은 정민을 몹시 힘들게 했다.

 

"오빠는 나 만날 때 마다 누구한테 전화를 해?"

 

"어? 친구한테 하는 거야."

 

"오빠 친구도 같이 만나면 되잖아?"

 

"아니, 그런 건 아니구."

 

그는 몹시 당황해했다. 그 태도는 마치 정민의 상상을 고스란히 인정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화창한 아침 햇살을 받으며 그들은 춘천행 기차를 탔다. 바람 맑은 소양강변에서 오후를 보내고 다시 서울로 오기 위해 춘천역에 도착했다. 역사 밖, 화단에는 오래된 전설을 간직한 채 마른 꽃들이 노랗게 누워 있었다.

 

 

 

잿빛 하늘에선 겨울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는 정민을 데리고 공중전화 부스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어딘가에 전화를 걸더니 갑자기 정민에게 수화기를 내밀었다.

 

"누군데?"

 

"받아보면 알아."

 

당황하는 정민을 두고 그는 봄비 속으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얼떨결에 받은 수화기에선 가느다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은 잠시 외출 중이오니 전화 거시는 분의 성함이나 연락처를 남겨주시면 돌아오는 대로 연락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삐-이’ 하는 신호음이 들리더니 이번엔 굵직한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민아, 나야. 우리 엄마 목소리 예쁘지? 엄마

 

가 작년 봄에 녹음한 거야.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시지만, 엄마 목소릴 들을 때마다 엄마가

 

늘 내 곁에 있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엄마가 그리울 때면 집으로 전화를 했던 거야."

 

정민은 화단 앞에 앉아 비를 맞고 있는 그에게로 갔다.

 

"오빠, 왜 말해주지 않았어?"

 

"정민아, 난 아직 철이 덜 들었나 봐. 잠시 외

 

출 후에 돌아온다는 우리 엄마의 말을 아직까

 

지 믿고 있거든."

 

그의 눈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그리고 몰아쉬는 깊은 숨 사이로 그리움이 새떼처럼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 수필집 "연탄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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