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북한관련

문제제기를 끝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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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숙 [rosapks] 쪽지 캡슐

2000-01-31 ㅣ No.491

 

그동안 관심갖고 지켜보아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부족한 것은 제자신이 누구보다도 잘 압니다.

그러나 여성으로서 교회안에서, 그리고 사회안에서의 직접경험과 간접경험을 통하여 나름대로 전하고자 한 것은 여성사제직의 거부를 필두로한 교회내 여성에 대한 차별이었습니다.

신앙을 가진 지는 16년이나 되었지만 저 역시 교회내의 여성에 대한 차별을 느끼며 부당하다고 생각한지는 4년여 밖에 안되었습니다.

그전에는 성서는 하느님의 말씀인데 또는, 교회가 틀릴 리가 없어 하며 그냥 지냈습니다.

젊은이는 현 사회에 대해 항상 더 나은 것을 향하여 비판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에 대해서도 비판의식을 갖고 예수님이 복음선포하시면서 말하시던 하느님나라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판에 의해 갈등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갈등이 항상 역기능을 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종교가 사회통합의 기능만을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종교는 사회개혁내지 혁신의 기능도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글은 1998년에 제가 <여성신학> 기말 리포트로 제출한 내용입니다.

제가 전하고 싶은 내용이 다 들어갔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참고 문헌은 생략하겠습니다.

 

 

1. 들어가는말

교회란 하느님의 삼위일체의 친교와 일치는 물론, 교회공동체와 세상, 그리고 세상과 하느님과의 일치를 목표로 하는 ’하느님의 백성’이다. 교회가 자기사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하느님 백성안에서 일치를 하고 친교를 나누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속의 불평등한 구조 속에서 그리고 남성 중심적 사고에서 또한 남성들에게서 차별받고 억압받는 이들 즉, 여성들이 해방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여러측면에서 여성을 억압하는 교회의 불의한 구조를 혁신하여 남성과 여성의 상이성과 평등성에 입각하여 상호존중하는 새로운 관계안에 공존하는 동역자이며 동반자가 되는 ’새하늘’, ’새땅’의 희망적 교회가 구축되어야 한다. 또한 교회의 성직제도, 교의 등을 재정립하여 아무도 제외시키지 않는 ’하느님나라’를 표상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2. 현 교회 내 여성의 위치

우리 교회는 여전히 성직자 중심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들은 교회안에서 성직자 중심과 남성중심의 구조에 의해 이중으로 소홀한 대접을 받고 있다.

더군다나 교회안에서의 이러한 소홀한 대접을 받는 생각은 여성들이 가정과 사회에서처럼 교회안에서 조차 변두리로 밀려나 있다는 생각은 현대사회에서 성의 역할과 위치를 새로 이해하고자 하는 사고와 맞물려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이는 단순히 교회 내의 여성의 위치와 역할에 대한 문제이기에 앞서 교회자체에 대한 이해의 문제이기도 하다.  

 

1) 신품성사의 거부라는 불평등

칠성사 중에서 신품성사인 사제서품이 허용되고 있지 않는 현실이다. 이는 여성이 교회 삶에 충만하게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이 상실된 여성 인권상의 억압이며 여성의 지도력을 무시하는 처사이다. 여성도 하느님의 모상을 본 따 지음을 받은 영혼, 정신을 가진 인간인데 다만 육체적 성의 차이만으로 여성에게 사제서품을 허용하지 않는 가톨릭교회는 남녀 차별을 비롯한 모든 차별을 없애고자 ’하느님나라’를 선포하던 예수님의 가르침을 역행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교회의 전통이 전적으로 가부장적 남성중심의 교계제도에 지배되어 온 것은 교회의 제도화에 따른 딜레마라 할 수 있지만, 지금 시대에 와서 이런 가부장적 남성중심의 사고가 하느님의 뜻에 어긋난다는 것을 깨닫고 겸손되이 잘못됨을 인정하고 고쳐야 한다.

이와 더불어 우리 가톨릭교회에서 신학대학은 폐쇄적이다. 사제를 지망하지 않는 모든 평신도(여성 포함)에게 배타적이다. 신학을 사제지망생에게만 독점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이제 신학은 여성을 비롯한 모든 평신도에게도 개방되어야 한다.

 

2) 교회의 정책결정에서의 소외

본당의 70%이상이 여성이다. 그러나 이들 여성 중에서 교회의 정책결정에 참여하는 수는 지극히 적다. 특히 반장과 구역장의 95%는 여성들이 맡고 있는데 사목회의에의 여성의 참여는 소수이다.

한편 여성들이 교회안에서 행하고 있는 일들에는 교회청소, 주방일, 안내등이 있다.

전통적으로 행해지는 여성들의 교회활동에 대한 불만족의 정도는 당연히 교육받은 여성에게서 높아지게 마련이다. 그리하여 교회안에서 지위나 영향력을 높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여성들이 교회의 중요한 일에는 종사하지 못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능력을 가진 여성들은 교회일에 대해 무관심하게 되면서 교회의 필수적인 기능과 관련된 중요한 일들은 남성이 행하고 보조적이고 덜 중요한 일은 여성들이 행하는, 교회활동의 성차별적 분화가 연속적으로 재생산되어 왔다.

이는 사회에서의 성차별을 교회내에서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2000년전 예수가 이 세상에 온 것은 하느님나라를 이땅위에 세우고자 하신것인데,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이 없는 하느님나라, 온갖 차별이 없는 나라, 모두의 구원을 말씀하셨는데, 예수운동이 제도화되어 그리스도교가 되면서 가부장주의의 성차별을 극복하지 못한 채 지금까지도 교회내에서 여전히 성차별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3. 교회내의 성차별을 극복할 수 있게 하는 대안들

교회는 변화에 상응하는 대안을 창출하여야 한다. 지금 교회밖의 사회에서는 사회에 존재하는 성차별의 부당함을 논하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많은 노력들이 전개되고 있다. 페미니스트 문학가들은 문학을 통해서 여성의 의식을 높이고자 하며 또한 의식있는 남성들의 참여를 촉구하고 있다. 또한 국가에서는 복지국가를 이상으로 하여 복지사회를 실현하고자 여성을 위한 여러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이러한 세상의 추세속에서 교회는 한층 긴장하여 교회가 무엇인지, 교회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잘못된 것은 겸손되이 인정하고 빨리 행동을 취하여야 한다.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실천해야 한다. 너무 전통에 매달려 시대가 요구하는 것에 뒤떨어져서는 교회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다.

 

1) 사제직에의 여성허용

가톨릭교회에서는 여성의 사제직을 반대하며 그 근거로 교회전통과 예수가 사도들을 모두 남성으로 부르셨음과 그리스도가 남성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교회전통이라도 시대에 맞춰 새롭게 해석되어야 하는 부분이 생기는 것이 당연하며 이에 대하여 여성 사제직도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둘째로 사도들이 남성이라는데 중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12라는 숫자의 상징성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즉, 모든 이스라엘 백성을  부르셨다는 것에 의미를 두어야 한다.

셋째, 갈라 3,26-29에서 보면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신앙으로 말미암아 하나가 된다고 하였는데, 이는 세례를 받으면 같은 하느님 백성이라는 것인데, 성사적으로 그리고  교회의 직무에서 가시적이어야함을 깨닫는다면 사제직에 여성을 허용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예수가 선포한 ’하느님 나라’는 이 세상의 가치가 통용되지 않는 새로운 질서라 할 수 있는데 오늘날 우리의 교회는 왜 아직도 ’세상의 가치’를 고집하고 있는 것인가?

교회는 이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되고자 하지 않는 것일까?

교회는 이제라도 ’하느님 나라’라는 새로운 질서에 맞춰 여성사제직을 허용해야 한다.

 

2) 신학교의 개방과 교과개혁

우리 가톨릭 교회의 신학교는 폐쇄적이다. 신학교는 오직 사제직을 지망하는 젊은 남자에게만 열려있는 배타적이고 폐쇄적 공간이다.

신학은 모든 평신도(여성 포함)에게도 개방되어야 한다.

지금의 신학교의 학생들은 너무 폐쇄적이다. 교회의 사목은 교회내 평신도와 교회 밖의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인데 신학교육을 신학교 내에서 그들끼리만 지내며 7년이상 공부시킨다는 것은 문제있다고 본다.

 

일반 대학생들과 교류하면서 일반 대학생들이 무엇을 고민하는 지를 알고 또 그들과 이 시대의 고민을 함께 나누며 그들이 영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 ’빛’으로서, ’소금’으로서의 교회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런 교회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사제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신학교를 개방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편 인류의 절반이 여성이다. 즉 사목대상의 절반이 여성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현실에 맞지 않게 신학교에서의 여성에 대한 교육부분이 소홀하다고 생각한다.

 

3) 주교회의 산하에 여성사목국 설치

주교회의 산하에 여성사목국이나 여성사목위원회가 설치되고 그리하여 교구별, 본당별로 파급되어 여성들의 요구가 수렴되도록 해야 한다. 즉 여성과 관련된 교회법이나 제도의 현실화, 자질향상을 위한 교육들을 맡도록 해야 한다.

 

4) 본당사목회의에 ’여성할당제’ 도입

정부에서도 고용에서의 성차별을 개선하기 위해 공무원 채용시 여성고용할당제를 적용하여 30%를 여성으로 정하고 있다. 사회에서도 이처럼 노력하고 있는데 교회에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여서의 ’자질’이야기는 그 이후의 논의의 대상이다.

 

5) 포괄적이 언어 사용

역사적으로 볼 때 교회의 언어는 이스라엘의 가부장적인 구조의 맥락에서 발생하였고 2천년에 가까운 서양전통의 남성중심적인 세계상의 인간상의 맥락에서 규정되었다.

그리하여 하느님에 대한 이야기가 남성적 이미지를 남기는 단어들(아버지, 주님,  임금님 등)로 비유되어 사용되어 왔다.

그런데 실재 하느님은 성을 초월하신 분인데 인간의 언어는 한계가 있기에 인간의 남성중심적 언어는 하느님을 왜곡되어 생각하게 하여 많은 문제를 왜곡하게 하였다.

이러한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남성중심적 언어를 배제하고 포괄적인 인간중심의 언어를 찾아 사용해야 한다.

 

4. 나가는 말

현대사회의 가장 중요한 이슈 중의 하나는 ’여성문제’이다.

교회의 사목대상의 절반이 여성임을 감안할 때 교회는 더 이상 교회내의 여러 여성문제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비록 여성신학자를 비롯한 소수의 여성들이 교회내의 여성차별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회현상과 맞물려 있는 이 시점에서 교회는 변화하여야 한다.

아래로부터의 변화와 위로부터의 변화, 둘 다 필요한 시점이다.

 

교회내 먼저 깨달은 여성들은 이제 자신들의 위치를 올바른 위치에 서 있기를 원하기에 그들의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다수의 여성들의 의식을 확장시키고자 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주교회의 산하에 여성사목국을 두어 여성들의 지속적 의식화 프로그램에 의한 교육들이 이루어져야 함의 필요성을 말하고 있다.

또한 세계는 변화하고 있다.

이제 남성과 여성의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은 시정되어야 함을 남성들도 알고 있다.

의식있는 남성들, 깨어있는 참된 그리스도교인이라 할 수 있는 남성들이 앞장서 교회내에서 성차별을 극복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편 위로부터의 변화에는 사제들의 변화와 주교들의 변화가 있겠다.

주교들의 변화로 우선 여성사제직의 허용과 교회에서의 남성중심적언어 대신 포괄적 언어사용을 명시함이 있겠다.

또한 본당사목회에’여성할당제’라는 정책도입이 있겠고 신학교의 개방과 교과개혁도 요청된다.

이러한 신학교의 개혁은 교회가 한층 더 빛을 발할 수 있게 하는 훌륭한 사제 양성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일선 본당에서의 많은 사제들의 의식변화로 그들이 앞장서 교회내 성차별을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을 보였을 때 교회내의 성차별은 물론 사회(직장, 학교, 가정)에서의 성차별 극복에 큰 효과가 있겠다고 본다.

하느님나라는 이미 와 있지만 그러나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 모두 하느님나라를 완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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