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북한관련

슬픈 386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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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일수 [paulk] 쪽지 캡슐

2000-05-30 ㅣ No.791

386세대인 저로서는 최근 386 국회의원 당선자들의 술자리 사건을 보고 씁쓸함을 감추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와 관련한 글입니다.생각해봐야 할 글인듯하여 옮깁니다.

 

원문은 한겨레신문에서 퍼왔습니다.http://www.hani.co.kr/section-014001000/2000/014001000200005291654034.html

 

 

똥 묻은 개, 재 묻은 개 나무라기

 

<어느 슬픈386의 글1.>

 

이른바 386 정치인의 술판 파동이 있었다. 그리고 온 정치권과 언론에서 동네 북인 듯이 386정치인들을 유행처럼 욕해댔다. 나는 가장 먼저 임수경씨가 쓴 글을 (임씨에 따르면)과대포장했다는 ’슬픈386’이라는 익명의 ID로 된 글을 청와대 게시판에서 찾았다. 그 글을 읽으면 과연 과장된 것인지 아닌지 느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글은 무척 길었는데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링크된 이 글 전문을 읽어보시길.. 그 글중 일부를 소개한다.

 

 

"대다수 여러분의 동료, 선배들은 여러분들에게 적지 않은 실망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유는 여러분이 대외적으로는 ’국가와 민족’이라는 대의를 앞세우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자신들 출세에 너무 집착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술집에서 여자를 끼고 술을 마신 것을 탓하는게 아닙니다. 누구나 다 그럴 수 있지요. 그러나, 그 날만은 정말로 그 날만은 그럴 수 없습니다. 아니 이런 당신들은 가장 엄혹한 역사의 칼날로 단죄 받아 마땅합니다...

 

언론계 종사하시는 분들. 모두가 알고 있는 일입니다. 현장을 조사하려할 때 이들의 서슬퍼런 권력이 무서워 현장을 거부할 술집 주인이나 당시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말하길 꺼려 한다 해도 이미 모두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전해주십시오. 그리고 총선 연대 여러 선배님들, 당신들이 이러한 위선에 칼을 댈 수 없다고 한다면 누구를 믿고 이 나라의 정치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제발 이러한 상황을 직시해 주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당신들에게 그다지 기대가 크지 않았었습니다. 또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커다란 실망을 안겨 주지 말고 386 정치인 여러분 "위선의 탈을 벗어 버리십시오!""

 

 

 

 

나는 솔직히 이 글을 모두 읽고 나서 누군가에 의해 조작되기는 힘든 글이고 임수경씨의 글을 그대로 옮겨놓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이유는 위의 글에서 보이는 것처럼 가식으로 쓰기에는 너무도 진솔할 뿐 아니라, 임수경 자신이 갖고 있는 한계까지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수경이 썼든 안썼든 위 글은 이번 사태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실마리가 되는데 다음과 같은 점 때문이다.

 

1. 위 글은 386당선자들을 "자신들 출세에 너무 집착해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이것은 현재 386 당선자들에게 기대를 갖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분명히 새겨들어야 할 말이며 아직도 김대중정권에게 기대를 갖고 있는 사람들도 귀담아 들어야 할 말이다. 보수정치판에 기어들어간 자들에게 기대를 거는 것 자체가 이미 똥묻은 자들과 함께 뒹구는 것이다. 김대중정권이고 386이고 이회창이고 간에 그들은 "출세에 집착"해 있는 자들일 뿐 민중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 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자들이다. 그들은 민중의 압력이 있을 때에만 행동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따라서 그들을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고자 한다면 밑으로부터의 압력을 조직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2. 위글은 "저는 여러분이 술집에서 여자를 끼고 술을 마신 것을 탓하는게 아닙니다. 누구나 다 그럴 수 있지요."라고 하면서 "그러나, 그 날만은 정말로 그 날만은 그럴 수 없습니다. 아니 이런 당신들은 가장 엄혹한 역사의 칼날로 단죄 받아 마땅합니다..."라고 말한다. 여자를 끼고 술을 마시는 문화가 얼마나 남성들의 생활에 뿌리깊이 박혀있는 것인가! 이 대목에서 글쓴이는 "여자를 끼고" 술 마신 것을 탓하게 되면 대부분의 남성들을 비난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그것을 시도하지는 않는다. 대신 그러나 그 날만은 경건해져야 했다고 그런 날에 경건하지 못한 당신들은 단죄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왜 386술판 사건이 사회에 만연한 접대부 술문화에 대한 비판으로 발전해가고 있는가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차마 글쓴이는 대다수 남성을 비난할 수는 없었지만 글쓴이의 의도와는 반대로 의식있는 여성들이 감히(?) 대다수 남성들이 누리는 접대부문화를 비난하고 나선 것이다. 이 부분은 과장에 의해 확대된 것이 아니라 당연히 여성들이 해야 할 목소리를 낸 것이다. 물론 대다수 남성은 누구나 여자를 끼고 술을 마신다. 그게 현실이다. 하지만 남들이 다 하는 짓을 했다고 해서 동정받을 수는 없다. 하필이면 그 날 그래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서도 당연히 비난받아야 한다. 모든 남성들을 대표해서 (왕성한 활동력을 가진 30대를 대표한다는 국회의원 나리들이 아닌가!) 비난받을 만한 가치가 있으며 그 자체로도 반성해야 하지 않는가?

 

3. 가장 마지막에 언론에 호소한 부분에서 글쓴이가 갖고 있는 결정적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언론계 종사하시는 분들. 모두가 알고 있는 일입니다. 현장을 조사하려할 때 이들의 서슬퍼런 권력이 무서워 현장을 거부할 술집 주인이나 당시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말하길 꺼려 한다 해도 이미 모두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전해주십시오."

 

이 글과 실제를 비교해보자. "현장을 조사하려 할 때 서슬퍼런 권력이 무서워 현장을 거부할 술집 주인"은 권력을 무서워하기는커녕 "일행은 국산양주 4~5병을 마셨고, 술과 안주값 1백여만원은 술집 주인이 부담했다" 면서 "당시 방에는 마담 한명과 심부름하는 여자 2명이 있었다"(5/26일 중앙일보)고 한 술 더 떠서 술집 주인이 술값을 부담한 사실까지 폭로해버린다.

 

 

서슬퍼런 권력을 무서워하는 술집주인이 이렇게 국회의원들을 가볍게 밟아버릴 수 있는 것인가? 술집주인은 새파란 정치초년생들보다 언론이 더 무서운 시대란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가 그 새파란 정치초년생들이 어떻게 되든 말든 자신의 술집이름은 사진과 함께 졸지에 유명해지지 않겠는가?

 

 

언론계 종사하시는 분들에게 "사실을 사실대로 전해주십시오"라고 호소하지 않아도 비만언론들은 이 정치 초년생 386들을 언제나 짓밟아버릴까 하고 기회를 찾고 있던 참이었을 것이다. 요즘 언론들이 국회의원, 그것도 초선의원 몇 명 따위를 두려워한다던가? 옳다꾸나 하고 마구 밟아대기 시작할 줄을 이 글을 쓴이는 정말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이 글이 미칠 영향을 진정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아직도 이글을 쓴이는 언론이 총칼에 의해 지배받았던 1980년대에 살고 있는 것 같다. 그 때의 느낌으로 이 글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90년대를 넘어선 2000년이다. 더군다나 김대중정권의 시대다. 김영삼 정권이후 총칼로 지배하던 언론길들이기는 언론달래기로 바뀐 시대이다. 비대언론이 정필이 아닌 악필을 마구 휘둘러대도 대통령도 그에 대해 말하지 못하고 아부해야 하는 시대이다. 그런데 그런 언론에게 부탁까지 하다니...

 

2000년대를 살아가는 사람이 여전히 80년대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 그것이 글쓴이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그토록 파장이 커지게 된 이유이다. 글쓴이는 단지 "386 정치인 여러분 "위선의 탈을 벗어 버리십시오!" 라고 호소하는 선에서 그쳐버리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실제로는 글쓴이가 부탁한대로 언론은 유감없이 그들을 짓밟고 있다. 하지만

 

그 비대언론들!(여기서 비대언론이란 조선, 동아, 중앙일보를 말하며 오동명기자의 개념이다.), 광주항쟁을 폭도들의 반란이라고 매도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던, 말 그대로 학살자의 개였던 그들이, 그러고도 공식적인 반성 한마디 하지 않았던 그들이 , "출세에 집착"해 있는 386들의 유아적 술판을 나무랄 자격이 있는가?

 

칼럼니스트 안철환 magican@hani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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