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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풍경] 서운동천주교회 서원국 사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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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광균 [rokmc7407] 쪽지 캡슐

2000-10-19 ㅣ No.178

 

[사람풍경] 서운동천주교회 서원국 사무장

 

 

모든 것이 불명확한 시대. 나를 지켜줄 든든한 동아줄 하나만 있다

면….

이런 면에서 ‘하느님을 백으로 둔 사나이’ 서원국씨(청주 서운동천

주교회 사무장 ☏043-252-6984)는 얼마나 행복할까.

서씨는 서운동 성당에서만 24년째 사무장을 맡아보고 있다. 한 성당에

서 근무한 사무장으로는 충북에서 가장 오래됐다. 12살때부터 나가기

시작한 성당에서 믿음을 쌓고, 그 믿음으로 성당을 관리하면서 청년기

를 보냈다.

하느님과 생활하는 사람에게 두려울 것이 무엇 있을까. 그러나 그는

“교회에서 이하면 원래 천당을 못간다”는 속설이 있다며 행복은 스

스로의 부단한 노력으로만 가능하다고 강변한다.

서씨가 모신 신부는 보좌신부까지 합쳐 모두 25명. 서운동 성당 역사

의 산증인이다. 이런 관록때문에 서씨는 서운동 성당이 또하나의 자랑

거리로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청주에서는 처음으로 세워진 서운동 성당(청주시 서운동 90-1)은 일제

강점기인 1932년 감곡성당에서 분가, 현 청주교구청(북문로) 자리에 설

립됐다.

1957년 내덕(주교좌)동·부강·오송 본당을 차례로 분가시키고 1960년

지금의 서운동 자리로 이전, 성당과 사제관을 축성했다. 그 후 청주의

중심부인 상당공원에서 사직고개 시계탑을 기준으로 청주의 동서남부

전역과 청원군 남일·낭성면과 남이면 일부를 관할로 해 효촌·병암·

내암·두산공소와 문동·화당·문의공소까지 선교의 터전으로 삼았다.

초대신부는 박일규 신부. 지학순 주교(인천교구장)이 보좌신부로 53년,

나길모 주교(인천교구장)가 57년 주임신부로 부임했다.

고 이한구 신부를 비롯해 경덕수 옥천주임신부, 김홍렬 성모병원장, 이

범수 용암동주임신부, 신성근 모충동 주임신부, 지금의 전명수 주임신

부까지 모두 17명의 주임신부가 이곳을 거쳐갔다.

가장 기억에 남는 신부는 몇 해 전 세상을 뜬 이한구 신부. 이 신부는

그가 성당 에서 사무장으로 일하게 이끌어줬다.

문의공소회장이었던 외삼촌의 영향으로 외가가 모두 천주교 신자였던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유아세례를 받고 아무런 의심없이 신앙을 키워

왔다.

고등학생때 지금은 사라진 충북도중·고생연합회의 회장을 맡아 활동

하는 등 열심히 일했던 그는 이때 이 신부를 만났다.

이 신부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대학 진학을 못하고 있는 그를 불러

“여기와서 일 좀 봐주며 공부를 계속 하라”며 아껴줬다. 76년 졸업

식을 하고 3일만에 출근했다. 성당 일을 봐준지 얼마안돼 사무장이 세

상을 뜨고 그는 스무살에 최연소 사무장이 된다.

얼떨결에 맡게 된 사무장 일은 만만치 않았다. 68년의 역사만큼 교구

행사와 지역대회, 교적정리 업무부터 성당 청소까지 크고 잡다한 일이

넘쳐났다. 나이는 어렸지만 책임감이 강하고 성실했던 그는 곧 능숙하

게 일을 배워나갔다.

특이한 것은 주임신부가 바뀌면 사무장도 바뀌는 것이 관례인데도 그

는 24년째 이곳에 있다는 사실이다. 주임신부가 부임하기전 미리 사표

를 쓰고 대기하고 있어도 신부들은 그를 원했고 신자들도 그가 성당을

관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그도 성당

의 한 부분이 되어버린 셈이다.

아침 8시30분부터 밤 10시 가까이 매일같이 일해야 하는 고된 업무를

24년간 한눈 팔지 않고 외곬으로 해온 것은 봉사정신 없이는 불가능했

다.

“우리 성당에서 보좌신부님이 30만원, 주임신부님이 55만원을 받으니,

그래도 제가 제일 많이 받는 셈이죠. 이처럼 재무관계가 투명하게 이

뤄지기 때문에 신자들도 신부님을 존경하고 봉사정신을 발휘할 수 있

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당 일 중 그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사람관리. 봉사정신을 갖고

일하지만 이곳도 사람사는 곳이라 원치않는 갈등이 생긴다는 것. 그럴

때면 필립비서 4장 13장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을 통해서 나는 무슨

일든지 할 수 있습니다”을 마음속으로 여러차례 되뇐다. 그러다보면

이상할만치 마음이 편안해지고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 다 해결되는

기적”을 경험했다.

성경책과 성물을 매만지는 일이 생활인 그는 의외로 성경책을 정독해

읽어본 적이 없다. “기도가 생활이 되다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먹

고 탐독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는 것. ‘기도가 곧 생활’인 그도 신

앙에 대한 갈등이 한 두차례 있었다.

“믿음이 확실했던 신자들이 간혹 중간에 냉담자가 되는 것을 목격하

는데, 한번 믿으면 끝까지 믿어야 합니다. 냉담자들도 언젠가는 다시

성당을 찾게 되는 것을 볼때가 보람을 느낍니다.”

일관된 신앙을 갖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또 신앙심을 가꿔나가는 것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주변사람들을 보면서 깨닫는다.

신앙생활을 위해 그가 권하는 방법은 ‘교리에 충실하라’. 사목자의

말을 충실히 따르고 교리를 철저히 따르면 믿음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 한달에 한번 고백성사를 통해 신앙심을 북돋는 계기를 마련하라는

것이다.

세례명 ‘다두(DADU)’. 예수의 12제자 중 한사람이었던 ‘다두’처

럼 살고, 다두처럼 최후를 맞이하고 싶어 한다.

 

<취재수첩:동양일보2000/10/19 09:00>

서운동 천주교회로 가는 길은 맑은 고을 청주의 가을하늘이 유난히도

푸르른 날이었다.

서운동 성당은 창세기 선악과 앞에서 아담과 이브를 유혹하는 사탄처

럼, 줄지어 서있는 석교동 술집들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왜 대부분의

성당은 술집들 속에 자리할까. 서씨는 “깨끗히 정화하라는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대답했다.

어두운 곳에 빛을 주고, 짐지고 수고로운 자들의 친구이고자했던 예수

사랑의 참 뜻이 있다.

태초에 하느님이 있듯 아주 조용하게,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서는 누

구라도 반기듯 따사로운 가을 햇살 속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글올린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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