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성당 게시판
꽃이 피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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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라는 사람 요즘 많이 황막해져 있었답니다. 바쁘기도 했고, 또 마음이 산란했었어요. 우리집 베란다에 게중 큰 나무 한 그루하고, 자잘한 화초가 몇 개 놓여있는데, 주인을 잘못 만나서 그 중의 어떤 놈은 지난 겨울에 고사해버렸습니다. 그래도 제게 참 위안이 되어주는 나무 두 그루가 있는데요, 한 놈은 우리 큰 아이가 아기였을 때 큰 맘 먹구 산 이쁜 벤자민이구요, 또 한 놈은 우리 작은 아이가 세상에 나오던 날 시누님이 병원으로 사들고 온 레인보우(??) 라는 화초입니다. 그 두 녀석들은 제가 잘 가꾸고 흠뻑 사랑을 쏟지 않는데도 언제나 건강하게 잘 자라주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집에 10년넘게 기둥처럼 서 있던 벤자민이 지난 겨울, 제가 성당일로 바뻐서 오락가락 하는 사이에 그리고 유난히도 매서웠던 추위때문에 그 잎을 모두 떨구고 노랗게 시들어 갔었답니다. 드디어 이놈이 제 명을 다하는 건가 하는 안쓰러움에 여러날동안 한 번도 그래주지 못했던 애정을 퍼부었었답니다. 가는 듯 가는 듯 하다가 다시 여린 새순이 돋고.... 참 나무라는 놈 이렇게 작은 정성에 고개를 들어 주는 것이 감사했었습니다. 그리고 또.... 저의 무관심으로 베란다의 화초들은 아마도 저의 흉을 많이도 보았을 겁니다. 그 중에 2년전쯤에 저희집에 왔던 동양란이, 아마도 제 생명이 이대로 다하나 보다 싶었는지...... 오늘 아침 (거의 일주일 만에 베란다에 나갔었는데) 환한 향기를 내뿜으며 피어 있었지요! 일 주일전에 화초에 물주는 일을 건성으로 하다가, 그 녀석을 뺴먹었었거든요. ’ 이대로 죽나보다 이대로 죽나보다’ 하면서 안간힘을 다해 나온 꽃이었기 때문이었을까요? 그 향기아래 지칠대로 메말라 있는 조그마한 땅이 꼭 저의 영혼처럼 느껴졌었답니다. 아주 오랜만에 흠뻑 물을 부어주면서 이쁘지도 않은 꽃 세송이의 청초함에 가슴이 싸아해졌습니다.
저도 나이가 들어가는 탓인지 젊은 날 꽃이란 단어가 그렇게도 싫더니 오늘엔 그 꽃에 취해 한참을 넋을 잃고 있었답니다. 돌보아 주는 이 없이 힘겹게 피어났을 仙人 같은 自然!! 나의 황막한 정신에도 이런 꽃이 피어날 수 있을까?
어린 날,, 화초를 너무나 좋아하시던 엄마떄문에 저는 의식적인 반항으로 그것들을 거뜰떠도 보지 않았었습니다. 화려하지 않기에 처연하게 아름다운 蘭꽃 네송이에 마음이 가뜩 달아있는 저를 보면 우리 엄마 기분이 어떠실런지요. 제 나이가 사십이 되고 눈이 가물가물해진다고 하니 울 엄마 가슴에 찬 바람이 드는 듯 하다고 하셨습니다. 넋놓고 꽃을 바라보는 못되먹었던 딸래미를 보시는 엄마의 얼굴이 꼭 그 꽃처럼 떠오릅니다.
우리 집에 생명의 꽃이, 남몰래 소리없이 피었답니다. 제 영혼에도 화려하지 않지만 나를 다시 일꺠워주는 생명의 꽃이 피어나겠지요. 주님이 주시는 시련안에서요.........
배나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