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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학남 [obbji] 쪽지 캡슐

2005-09-15 ㅣ No.4176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9월15일)



오늘은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평생을 예수님의 곁에서 수난과 고통을 함께 하신 성모님의 고난을 기념하는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입니다.

사도들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수난에 직면하자 모조리 떨어져 나갔습니다. 비록 멀찌이서나마 자리를 지킨 것은 요한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더 이상 군중의 환호를 받지 못하자 신앙을 지탱하던 인간의 의지가 자취를 감추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종교계와 국가의 권위가 그분을 배척하자 사도들은 그만 꺽여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들의 신앙은 인간적인 버팀목에 의존하고 있다가 그것이 사라지자 그들 역시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십자가 곁에 머물렀습니다. 그분의 믿음은 결코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사도들은 예수를 메시아로 여겼지만 그분의 신성을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 점에 있어서 수정처럼 투명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들이 그리스도의 파멸로 만사가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예수를 단순한 메시아가 아니라 하느님으로 우러러 보던 마리아는 어떤 기분이셨을지 생각해 봅시다.

말하자면 마리아에게는 하느님이 죽어가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하느님의 죽음은 마리아에게 더없이 비통한 인간적인 체험이었습니다. 그것은 그분의 심장을 도려내는 칼날과 같았습니다. 마리아는 단순히 메시아인 당신 아들 때문에 비탄에 잠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하느님 때문에 비통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가 십자가의 심오한 그 신비를, 이른바 둔감하고 배은망덕한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서 당신자신을 내던지시는 하느님의 신비를 간파한 사람은 오직 마리아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며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사람들의 본보기가 됩니다. 그분의 동정심은 하느님께서 품고 계시는 우리에 대한 사랑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죽음을 앞두고 당신 어머니 마리아를 모든 그리스도인의 어머니로 선포하심으로써 우리에게 혈연관계를 뛰어넘어 예수님 중심의 새로운 관계를 물려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모님을 우리의 어머니로 모시면서 공경하게 되고 내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머니. 그 이름처럼 다정하고 감미롭고 자애로운 이름이 이 세상 어디에 또 있겠습니까?

사람들은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이 생기면 맨 먼저 어머니에게 알리고자 합니다. 어려운 시험에 합격한 사람, 애타게 기다리던 취직 통지를 받은 사람, 피땀 흘려 싸워서 승리의 월계관을 쓴 운동선수. 그들에게 마이크를 갖다 대면 한결같이 그 기쁨을 맨 먼저 어머니에게 알리고 싶다고 합니다. 앓아 누웠을 때는 어떻습니까? 어머니가 손만 잡아주어도, 아니 머리맡에 앉아 계시기만 해도 견딜 수 있었지요. 그분은 분명 우리들의 어머니이시니 좋은 일이 있을 땐 기뻐해 주시라고, 슬픈 일이 있을 땐 위로해 주시라고 응석을 떨곤 합니다. 영원한 젊음을 지니고 저희를 지켜주시는 성모님은 분명 우리의 어머니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십자가에 가장 가까이 계셨던 성모님은 우리의 온갖 시련의 동반자요, 지주이십니다.

성모님께서는 예수님의 어머니로서 일생동안 예수님을 위해 기도하고 또 예수님께서 인류구원을 위해 당하시는 고통을 몸소 체험하신 분입니다.
우리의 격언에도 "위대한 인물 뒤에는 위대한 어머니가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만, 역사상 위대한 인물 뒤에는 그 위인을 가르치고 길러주신 어머니가 있었던 것입니다. 성모님은 예수님께서 인류구원을 위해 당하신 모든 기쁨과 고통을 함께 나누시고 예수님을 위해 기도하시고 또 우리들의 구원을 위해서도 기도해 주시는 어머니이십니다.
모든 사람이 어머니의 따스하고 정다운 품을 그리워하듯이, 죄인들인 우리들도 어머니의 인자하심에 매달리고 우리를 위해 빌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모든 어머니의 마음이 자식들이 훌륭하게 성장하기를 바라듯이, 성모님께서는 우리들이 죄에 빠지지 않고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어머니가 되신 성모님께서는 물론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에서도 고통을 받으셨지만, 지금도 우리들이 범죄할 때마다, 성모님의 마음은 예리한 칼에 찔리듯 고통을 당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성모님께서 예수님의 수난과 고통에 동참하신 것을 기념하면서 우리는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위대하고 자비로우신 어머니가 계심을 감사하면서 성모님께 더욱더 자녀다운 효성을 드립시다.
아멘

- 김웅태 신부 -



성모님의 고통-성모칠고

1. 우리들의 삶은 피하고 싶은 고통의 연속입니다.

언뜻 너무나 행복해 보이는 사람도 그 속내를 들여야 보면 나름대로의 고통 속에 살아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고통은 인간에게 피할 수 없는 멍에입니다. 고통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경중(輕重)의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누구에게나 고통은 있고, 자신의 고통이 다른 누구의 고통보다도 크고 무겁게 느껴지기 마련입니다.

2. 성모님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계속되는 고통의 삶을 사셨습니다.
성모님이라 해서 삶의 고단함으로부터 예외인 존재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성서에도 예수님으로 인해 받았던 성모님의 고통이 여러 장면 등장하는데, 이중 일곱 가지 장면을 모아 성모칠고(聖母七苦)라 부르고 있습니다.

① 에집트로 피신하심(마태2,14) - 그 밤으로... 에집트로 가서... 거기서 살았다.
② 시메온의 예언(루가2,35) - 당신의 마음은 예리한 칼에 찔리듯 아플 것입니다.
③ 성전에서 삼일 동안 예수를 잃으심(루가2,48) - 왜 이렇게 우리를 애태우느냐?
④ 예수, 골고타 갈바리아로 오르심(요한19,17) - 십자가의 길에서 예수와 만나심
⑤ 예수,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죽으심(요한19,25) - 십자가 밑에는 그 어머니가 서 있었다.
⑥ 예수, 십자가에서 내리심(요한19,40)
⑦ 예수, 무덤에 묻히심(요한19,42)

3. 그런데 성모님의 고통이 우리에게는 희망이 됩니다.
당신이 겪으셨기에 우리를 위로해 주리라 희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아들 예수가 죽는 모습까지도 지켜보신 분입니다.
불효중의 불효는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일이고, 고통중의 고통은 자신보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야 하는 부모의 고통입니다.
그런데 성모님은 아들의 손과 발에 못이 박히는 처참한 광경을 눈앞에서 지켜보셨고, 마지막 숨을 거두실 때까지 십자가 아래에서 함께 고통스러워하셨습니다.
성모님이 이 같은 고통을 겪으셨기에 우리가 겪는 어떤 고통도 모두 이해해주실 수 있습니다.
성모님이 이 모든 고통을 이겨 내셨기에 우리의 고통도 이겨내도록 도와주십니다.

4. 그러니 삶에서 고통을 느낄 때 성모님께 기도하십시오.
당신께서 겪으셨던 그 고통을 이제 나도 겪고 있으니 도와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당신께서도 이미 겪으셨으니 제발 나를 위로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당신의 따뜻한 사랑으로 나를 이 고통의 폭풍 속에서 건져달라고 애원하십시오. 어머니께서는 간구하는 우리의 기도를 외면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마리아동산에서 http://www.maria21.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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