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 화

상급 평의회[Con.] 2012년 3월 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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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나뚜스 [senatushp] 쪽지 캡슐

2012-05-07 ㅣ No.162

Allocutio – March, 2012
비드 맥그리거 신부-꼰칠리움 영적지도신부
세계 성체 대회와   레지오(3)
말씀의전례
 
지난 달에 우리는 모든 성체 대회의 핵심과 참으로 성체에 대한 교도권의 풍부하고 다채로운 가르침의 중점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 안에 실제로 존재하시는 것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강조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신비체인 교회 안에 머무르십니다. 그분께서는 교회와 절대로 분리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예수님의 신비체인 교회와 일치하지 않고서는 그분과 일치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체 안에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현존하심은 교회의 생명력이고 선교의 원천이자 원동력이며 전적으로 복음화의 모든 것입니다. “내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라고 하신 주님의 약속은 성체 안에서 가장 구체적으로 확인됩니다. 그분은 성체, 성혈, 인성과 신성으로 언제나 완전하게 우리에게 계십니다. 사도 성 요한이 성체의 의미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했듯이 그분은 우리를 위해 완전히 봉사하십니다. 우리는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이 사도들의 발을 씻어주시는 놀라운 모습을 봅니다. 예수님의 무한하신 겸손은 우리가 교회의 선교 사명과 모든 형태의 사도직 활동에 어떻게 참여해야만 되는지에 대해 예시해 주고 있습니다.
 
성체에 대해 다룬 교본의 여러 절(節)에서 위에서 생각해보았던 것보다 더 많은 내용을 찾을 수 있습니다. 지난 달에 우리는 미사 성제의 희생에 관한 제8장 1절을 깊이 생각해보았습니다. 우리는 갈바리아에서의 희생과 미사의 동일성에 대해 교회에서 규정한 가르침을 강조하였고, 교본에서 설명하듯이 미사의 무한한 가치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였습니다. 오늘은 말씀의 전례에 관한 제8장 2절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교본은 미사 경본의 총지침을 인용하며 시작합니다. “성당에서 성서가 봉독될 때는, 하느님 자신이 당신 백성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며, 말씀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께서 복음을 선포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 말씀을 봉독하는 것은 전례의 가장 중요한 요소에 속하며, 참석한 모든 사람들은 경외심을 가지고 그 말씀을 경청해야 한다.” 이 서술의 기본적인 개념은 성경이 그리스도 성심의 성사라는
 교부학(고대 그리스도 교회에서 교회의 정통교리를 저술로써 설명하고, 성스러운 생활을 함으로써 신도의 모범이 된 사람들인 교부들의 철학·사상 등을 주된 연구 대상으로 삼는 학문)적인 신념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서기 50년 이전)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와 같이 복음 안에서도 피난처를 얻습니다.” 먼 훗날에 성 요한 에우데스(St. John Eudes)도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오, 내 가장 사랑하는 예수 성심이시여, 저는 이 책에 쓰인 모든 말씀의 근원이신 당신을 사랑합니다.”
 
우리에게 성경에서의 주님의 실제 현존에 대해 심오한 통찰력을 갖게 해주는 아를의 성 체사리오(St. Caesarius of Aries)의 교회 회의 문서 중의 하나를 다음과 같이 인용하겠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하느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몸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답을 잘 하시고 싶다면 의문의 여지 없이 하느님의 말씀이나 그리스도의 몸이나 똑같이 중요하다고 말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성체를 받을 때 우리 손에서 바닥으로 전혀 떨어뜨리지 않도록 매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면, 우리가 다른 것을 생각하는 경우에 생길 수 있는 무엇인가가 우리를 분심시키지 않도록, 우리에게 주어지고 제공되는 하느님의 말씀에 똑 같은 정도의 주의를 기울여야만 되지 않겠습니까? 하느님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듣는 것이 그리스도의 성체를 바닥에 떨어뜨리는 것보다 덜 비난 받을 수 있는 일은 아닌 것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에 예수님께서 현존하심에 대해 말하면서 이 가르침을 아주 돋보이게 표현하였습니다. 우리는 말씀의 식탁과 성체의 식탁 둘 다로부터 양식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단지 정보인 경우보다는 말이 더 전달이 잘  된다는 점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말이란 사람들의 상호 관계를 이어주는 매개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교회에서 봉독되는 당신의 말씀을 직접 하시고 그 말씀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님의 경우라면, 성찬례를 세우신 그 말씀은 얼마나 더 많이 전달이 되겠습니까!
 
우리는 성경 말씀이 성자들의 삶을 얼마나 근본적으로 변형시켰는지를 봅니다. 예를 들어 사막의 성 안토니오(St. Anthony of the desert)는 모든 재산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르라는 초대를 받은 부유한 젊은이에 대한 복음(마태 19,16-26; 마르 10,17-27; 루카 18,18-27)을 들었습니다. 그 젊은 이는 재산이 많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안토니오는 그 이야기에 깊은 감동을 받아 모든 재산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복음에 의한 그의 새로운 삶의 형성으로 인해 교회 안에 거대한 수도자 운동이 갑자기 생겨났고 교회는 명상을 중시하는 매우 많은 엄청난 수도원 및 수녀원으로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또는 우리의 창설자인 프랭크 더프를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그가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에 가입했을 때 마태오 복음 25장의 다음 구절에 특히 친숙해졌습니다. ‘너희가 내 형제자매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참조) 그는 그리스도 신비체 교리를 이해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생활하였으며, 그 교리는 그가 만나는 모든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변형시켰습니다. 그 교리는 사람에 대한 그의 온화하고 보편적인 예의와 존경의 배경이 된 동기였고, 전 세계를 통틀어 전체 레지오 사도직의 정신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의 성사나 성체 성사 안에서 주님을 만납니다. 그분은 비록 다른 방법이지만 이 두 개의 성사 안에 실제로 현존하십니다. 레지오 단원은 그 자신의 영성적인 삶과 사도직 활동을 위해 이 두 가지 성사에 전념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이 두 가지 성사가 없이는 그리스도인 생활이나 사도직 활동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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