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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요한 신학생이 성장해 가는 이야기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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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향 [akiyana] 쪽지 캡슐

2000-01-31 ㅣ No.1310

 

제가 중2때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날은 혜화동에 있는 청소년 회관 --빨간 건물인데 정확한 명칭을 모르겠네요. 동성고등학교

옆건물인데.. -- 에 볼일이 있어서 들렀다 집에 갈려고 버스를 기다리던 때였습니다.

 

그날은 비가 왔습니다.

 

주머니 안에 있던 전 재산 450원을 만지작 거리며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제 옆에 비를 맞으며 쪼그려 앉아 계신 할머니를 보았습니다.

 

보따리 하나 옆에 두고 버스가 오는 쪽만 바라보면서, 굽은 등과 백발이 된 머리에 비를 계속 맞고 계셨습니다.

 

주위에 사람들이 제법 있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이 할머니에게 우산을 씌워 드려야 하긴 해야 되는데 그랬다가 남들에게 너무 튀는 행동을 하는게 아닐까?  또 괜히 간섭했다가 뭔일 생기면 골치 아픈데... 어떻게 하지?'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다 내린 결론은 자연스레 다가가서 슬쩍 우산을 같이 쓰는 것!  

 

우산이 작은 건지 우리의 사이가 넓었던 건지 할머니의 왼쪽은 계속 젖었고 저의 오른쪽도 차차 젖어들고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저를 쳐다봤습니다.

 

저는 눈을 마주쳤다가 멋적어서 이내 버스 오는 쪽을 쳐다 봤습니다.

 

할머니는 아무 말씀 없으셨습니다.

 

둘은 잠시 버스 오는 쪽만을 바라봤습니다.

 

그러다 제가 할머니 몇번 타시냐고 물어봤습니다.  

 

할머니는 저와 같은 버스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드디어 버스가 왔고 먼저 제가 버스 운전자님께 할머니는 그냥 타셔도 되는게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그 당시엔 어르신들이 '경로 우대증'을 제시하면 그냥 타셔도 되는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할머니는 제 우산을 벗어나 버스안으로 들어가 제가 먼저 실은 보따리를 쥐고  자연스레 빈 자리로 가시는데 버스 운전자님은 대답을 망설이기만 했습니다.

 

원치 않으신 표정이었습니다.

 

순간 머리가 빨리 돌아가더니 제 손에서 맴돌던 450원은 요금통안에 들어갔고 제 입에선 "할머니께서 가시는 데까지 데려다 주세요."라고 말하며 발을 버스에서 떼었습니다.

 

곧 문이 닫히고 저도 우산을 바짝 당겨 쓰며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냥 걸어가자,

 

_떠나는 버스 소리를 들으며 자신을 위안했습니다._  

 

  사실 걸어가도 되는 거리였으니깐.'

 

요즘 저는 108세 되신 할아버지를 관장해 드립니다.

 

할아버지께선

"아이고 아프다. 아무것도 없어. 아이고 하지 말라니깐."

하시지만 저는 제 임무가 있기에 열심히 제 손으로 변을 꺼내드리고 있습니다.

 

아니, 이젠 당분간 안합니다.  

 

제 자신 좀 만나야 되거든요.  

 

곧 다시 만날건데요.

 

마치도 108세가 될때까지 그분이 제가 관장을 해드릴거라고 꿈에나 생각 못했어도 그런 날이 있었듯이 말입니다.

 

저도 이제 26살입니다.  

 

제게도 멋쩍게 우산을 나눠쓰던 때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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