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덕동성당 게시판

혼자 본 영화...(싱글들에게)

인쇄

박승필 [sunfeel] 쪽지 캡슐

1999-11-12 ㅣ No.1084

혼자 영화를 봤다. "나라야마 부시코"

1983년 작이라는게 믿기지 않는다. 감동적이다.

또한 변태적이다. 하지만 더럽지가 않다.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본능을

깔끔하게 그렸다. 첨에 영화를 보기전엔 일본x 들의 변태성은 정말 못말려~~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게 아니더군.....비디오 나오거든 꼭 한번들 보시길...

혼자보러 가서 더 감동적이었나??

 

혼자이기에 좋은건 아무 영화나 볼 수 있다는 거다.

같이 보러갔다간 욕먹기 딱 좋은 "증오"나 "검으나 땅에 희나 백성"같은

진짜 졸리운 영화를 봐도 무방하다는거지.

돈도 절반 밖에 안든다. 이동도 자유롭다...

라고 말하고선 씁씁히 웃는다...후후후

 

싱글들이여.... 혹은 커플들이여....

 

믿었던 사람의 등을 보거나

사랑하는 이의 무관심에 다친 마음 펴지지 않을때

섭섭함 버리고 이 말을 생각해 보라.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혼자

            조경희

혼자가 된다는건 구차하기 그지 없다

혼자 밥 먹어야 되고

혼자 영화보러 가야하며

혼자 동물원에 가야한다

혼자 영화보고 나서 그 영화에 대해

혼자 따져봐야 한다

혼자 김치국물을 흘리면서

혼자 자기 옷에 묻은 김치국물 자국에 대해

혼자 흉을 봐야 한다

혼자 동물원에 가면

동물원의 동물들 보다 오히려

내 자신이 동물이 되어버린 것 같아

타조라던가 원숭이에게 줄 먹이 조차

내가 다 먹고 나온다

그럴땐 정말 동물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뭔가가 뒤바뀐 것 같다

동물들은 무리지어 다니고 혼자인 나를 오히려

무리지어 다니는 동물들이 바라보고 있을때

내가 동물원이고 그들이 관람객이다

나는 그래서 그 이후로 절대 혼자 다니지 아니 한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지 않으면 절대로

혼자 밥 먹지 않고

혼자 영화보러가지 않으며

혼자 동물원에 가지 아니 한다

그 이후로 나는 줄곧

밥 먹지 아니 하며

단 한편의 영화도 보지 아니 한다

혹 보고 싶은 영화가 생기면

반드시 시나리오를 구해서만 읽고

동물들은 동물원에 가지 않고

골방에 쳐박혀 머릿 속으로만 그려본다

코리끼는 다리가 넷

염소는 뿔이 두개

하마는 벌린 입이 2미터

 

 

혼자가 된다는 건 정말로 자기 혼자서도

무엇하나 해 볼 수 없는 <자기부재>에

다름 아니다

내가 죽고난 후라도 그 혼자인 나는

나의 장례식에 찾아와서

혼자 울고 갈 것이다

이제 너무 지겹다

이제 너무 배가 고프고

이제 너무 영화가 보고 싶으며

이제 너무 동물원에 가고 싶다

아아 어쩌다가 나는

내게서도 나와 함께 하지 않는

혼자가 된 것일까

그러다가 혼자 문득 내가 나를

부둥켜 안고 걸레 짜듯이

눈물 흘리고 있다

봄비 촉촉히 내리는 3월

비록 나는 혼자 울고 있지만

나는 그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내면서

그 눈물의 뜨듯함에 대하여

눈물에 담긴 온기에 대하여

불에라도 데인듯 소스라치며

아직도 나에게 물컹거리며 짚이는

너희들이 아직 온전하게

나를 보살피고 있구나

나는 아직 혼자가 아니구나

내게 아직 건재한 그 뜨거운

그리움들을 닦아내면서

잠자리에 눕는다

내일은 누구가를 불러내 기필코

밥을 같이 먹거나

영화 보러가거나

동물원에 가보아야 겠다

하마의 입이 정말 2미터씩이나 찢어지는지

줄자를 준비해서 직접 가 재보아야 겠다

 

 



66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