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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하는 것이 두려운 이유(사순 2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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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지종 [sjjbernardo] 쪽지 캡슐

2001-03-13 ㅣ No.6541

 

 

2001, 3, 13  사순 제2주간 화요일 복음 묵상

 

 

마태오 23,1-12 (위선자에 대한 책망)

 

그 때에 예수께서 군중과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모세의 자리를 이어 율법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니 그들이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본받지 마라. 그들은 말만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무거운 짐을 꾸려 남의 어깨에 메워 주고 자기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이 하는 일은 모두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이마나 팔에 성구 넣는 갑을 크게 만들어 매달고 다니며 옷단에는 기다란 술을 달고 다닌다. 그리고 잔치에 가면 맨 윗자리에 앉으려 하고 회당에서는 제일 높은 자리를 찾으며 길에 나서면 인사받기를 좋아하고 사람들이 스승이라 불러 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너희는 스승 소리를 듣지 마라. 너희의 스승은 오직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들이다. 또 이 세상 누구를 보고도 아버지라 부르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한 분뿐이시다. 또 너희는 지도자라는 말도 듣지 마라. 너희의 지도자는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너희 중에 으뜸가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진다."

 

 

<묵상>

 

강론이 어려운 이유는 하느님의 말씀에 대해서 교우분들에게 전할 내용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듣기 좋은 표현이나 아름다운 문장을 만들어내지 못해서도 아닙니다. 요즈음 강론 자료로 훌륭한 많은 서적들이 나왔기에, 이 책 저 책, 이 자료 저 자료를 잘 사용하면 멋드러진 강론을 쓰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강론이 어려운 이유는 애써 준비한 강론이 교우분들에게 전달되기 전에 이미 제 가슴을 후비고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교우 여러분, 기도하십시오." 라고 강론을 하려 하면, 제 마음에는 "그렇다면 너는?"라는 자책의 쓴소리가 들려옵니다.

 

"서로 사랑하십시오." "그럼 너는 그렇게 하고 있냐?" "화해하십시오." "용서하십시오."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십시오." "믿음을 실천하십시오." "낮은 자리에 앉으십시오." "그럼 너는?" "그럼 너는?" "그럼 너는?" "그럼 너는?" "그럼 너는?".....

 

"완전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잖아." "진짜?" "글쎄?" 마음 안에서 저와 또 다른 저가 끊임없이 실랑이를 벌입니다. "그럼, 도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어?" "글쎄" 어느새 제 안에서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 나섭니다. "아무 말도 하지 말자. 그리고 몸으로 보여 주자. 물론 힘들겠지만, 어때 이젠 됐어?" "그래도, 강론은 해야 할 것 아니야?"

 

어찌보면 강론을 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습니다. 평소에 사제로서 신앙인으로 하고 싶은 말들, 나누고 싶은 것들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강론 시간은 기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갈수록 두렵습니다. 강론을 통해서 저에게서 나간 수많은 말들이 바로 제 자신에게 족쇄로 다가오기에 두렵습니다. 그렇습니다. 강론을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 두려운 일입니다.

 

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 제대로 자신있게 할 수 있는 말이 별로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론이나 훈화, 그리고 여러 자리에서 '한 말씀'을 해야하는 것이 바로 사제로서 제 입장입니다. 분명 교우들에게 '말을 해야 하는 사명'은 제게는 두렵고 과분하고 영광스러운 사명입니다. 입을 다물고 싶지만 다시금 입을 여는 것은 바로 이 사명 때문입니다.

 

부족한 저의 삶의 모습 때문에 위축되어 해야 할 말을 못하는 소극적이 모습이 아니라, 저에게서 나온 말들로 제 자신에게 짐을 지우고 이를 삶을 통해 증거하는 적극적인 모습을 지니고 싶습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주신 '복음 선포의 사명'을 가장 충실히 수행하는 삶일테니까 말이지요. 그리고 사제로서 저의 강론은 교우분들뿐만 아니라, 아니 그 전에 제 자신을 변화시키는 하느님의 힘있는 말씀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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