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 화

2012년 3월 세나뚜스 지도신부님 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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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나뚜스 [senatushp] 쪽지 캡슐

2012-04-30 ㅣ No.161

‘성모 영보’ 축일을 맞이한 레지오 마리애 단원의 마음가짐

민병덕(비오) 지도 신부님

찬미 예수님!

오늘이 ‘성모 영보 대축일’이지만 주일이라 내일 대축일 지내게 됩니다. 다음 주는 성주간으로 지난 달 말씀 드린 것처럼 준비를 잘하여 준비한 만큼 부활의 기쁨을 맞으시기 바랍니다.

작년에 ‘아시아 여성대회’에 참가 하게 되었을 때 어떤 주교님께서 성모님과 관계된 8가지 묵상을 말씀을 하시는데 그 중 한 가지가 ‘성모영보’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성모 영보’에 대한 묵상은 우리가 함께 기도한 ‘까데나’의 내용과 같이 ‘주님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났다는 것에서부터 성모님께서 엘리사벳을 찾아보는데 까지’의 긴 여정을 말합니다. 우리가 ‘성모영보’를 통해 본 성모님은 참 대단한 분이셨다는 착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성모님의 인생을 보면 보통 여인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12~13세의 소녀에게 천사가 나타나 수태고지를 하면 어린 소녀는 아마 기절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 여러 가지 묵상이 가능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생각하지 않았던 전혀 다른 방향의 하느님의 손길을 묵상하게 됩니다. 소녀에게 수태고지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충격이며 그 충격을 어떻게 이겨 냈을까? 하는 것이 ‘성모영보’에 대한 묵상 중 또 하나의 관점이며, 그럼 성모님은 하느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계셨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 로마의 점령 하에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관계 표지 중 보이는 표지는 다 쓰러져가는 성전과 율법뿐이었을 것입니다. 성모님은 무슨 희망과 어떤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받아들여 당신 자신의 전 생애를 바치는 헌신을 하게 되었을까?, “주님의 종이오니 제게 당신 뜻이 이루어지길 바랍니다.”라고 말씀한 것은 우리가 깊이 묵상해야 될 부분인 것 같습니다. 또, 성모님께서 엘리사벳을 찾아가서 엘리사벳과 함께 있는 상황을 묵상해보면 성모님께서 하신 찬미가는 찬미가라 말하기기보다는 정말 그렇게 되기 바라는 ‘희망의 노래’라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가 아이가 없는 것이 창피해 아이를 낳게 해 달라고 기도한 끝에 사무엘을 임신하였을 때 주님께 드리는 찬송과 소녀로써 어쩔 수 없이 임신을 하게 된 성모님의 기도는 전혀 다른 환경으로 아주 대비됩니다. 성모님의 찬송은 주님의 전능하심, 주님의 변화 없으신 사랑, 여기에 대한 믿음과 희망, 사랑이 성모님께 드러내 보이시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성모영보’를 통해 ‘성모님은 참 대단하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는 묵상을 시작으로, 잃어버린 예수님을 성전에서 찾으셨을 때의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하는 예수님 말씀과,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라는 예수님 말씀과, 또 초대 교회에서 사람들이 먹보요, 술꾼이요, 미친 사람이라 말을 들었었을 예수님을 찾아온 성모님께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 심정. 그리고 마지막으로 십자가에서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성모님을 맡기시는 것을 묵상해 본다면 “성모님 일생의 의 긴 여정 속에서 성모님의 기쁨, 희망은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성모님 ‘찬미의 노래’를 보고 “성모님께서는 정말 노래의 내용대로 되셨나? 정말 풍요롭고 축복받은 삶으로 사셨나?”를 묵상해 보면 “성모님께서는 아마도 보통 여인하고 별다른 차이가 없지 않았겠나?”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한 평생이 그렇게 화려하게 풍요롭게 생활하신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최후는 비참한 최후였습니다. 그런 분을 주님으로 믿고 따르는 것이 그리스도 신앙이라 말씀드릴 수 있는데 그렇다면 성모님의 일생과 성모님의 삶 속에서 무엇이 큰 기쁨이었기에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며 나를 구하신 하느님께 내 마음 기뻐 뛰노나니”라는 말씀을 하셨을까하는 것이 성모 영보의 핵심입니다. 여러분이 각자 묵상을 많이 해 보아야 하겠지만, 성모님께서는 지례짐작하지 않으셨습니다. 성모님은 성경에 충실하셨고,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에 충실하셨고, 자신의 삶의 한계에 충실하셨던 것 같습니다. 자신의 한계에 충실한 것은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나머지 것을 포기해야하는 것과 그리고 남과 비교할 수 없는 고유한 삶이 라는 것과 삶이 주어졌다는 것”을 받아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 많은 인생부분 속에 하느님이 하시는 일과 내가 할 일을 구별하는 예지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으며 자신이 처해진 상황 속에서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성실하게 살아간다면 모든 의문이 풀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느 누구도 남자와 여자, 가문, 한국에서 태어난 것 등을 내 스스로 선택한 적은 없습니다. 그냥 주어진 삶을 살아갈 뿐입니다. 성모님의 일생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명백하게 구별할 수 있는 예지와 자기 본분을 다하신 것입니다.

지금은 교회력에서 대림시기가 새해라고하고 있는데, 예전의 신자들은 성모영보 축일이 새해라 생각했었습니다. 성모님의 삶을 통해서 교회가 온전한 모습이 보여 지게 되었다는 것과 성모님이 시작이었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잉태하신 성모님께서 교회의 원형이시고 교회의 반석이란 뜻이 담겨 있습니다.

성모님의 군대인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이 우리들의 일을 하고 살고 있을 때, “어느 것이 원칙이냐?”를 생각해보면 자기 본분을 아는 것 즉,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남이 할 수 있는 일을 구별할 줄 아는 예지력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 예지력이야말로 성모님을 닮은 우리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의 가장 으뜸가는 가는 덕목이 되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성모영보 축일을 기쁘게 지내며 우리도 성모님을 닮을 수 있도록 도움 청하는 기도를 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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