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사동성당 게시판

정미엄마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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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미 [ANNA0070] 쪽지 캡슐

2000-06-14 ㅣ No.3792

오뉴월이라 하지만 짧지만은 않은 밤을 자다 깨다 뒤숭숭하게 보낸건,

비단 남북한 정상회담의 역사적인 사건에 따른 북한 특선영화 시청때문만은 아니고,

원인모를 바이러스에 시달리고 있는 눈때문만도 아니고,

5번째인가 기억하기도 용량이 초과되어 버린 아빠의 교통사고 소식때문만도 아니고, 약정하지 않고, 믿었던 모기업의 강의료가 생각보다 적게 입금된 때문만도 아니고,

이례적으로 학교에서 강의료를 잘못 계산해서 입금한 때문만도 아니고,

회사 동료 한사람이 터무니없는 계략으로 마음에 상처를 주려한 때문만도 아니고,

그에 편승한 직속 부하직원 두명이 작은 반란을 하려한 때문만도 아니고,

상사들이 부적절한 조직의 움직임을 묵인하려한 비열함에 열받은 것만도 아니고,

친구 교수들이 논문을 빨리 많이 쓰라고 사랑의 스트레스를 주기 때문만도 아니고,

5개국어도 아닌 영어하나를 정복하지 못한 한심한 중압감때문만도 아니고,

7월에 2주간 떠날 유럽연수동안 회사와 가족과 밀린 논문등의 걱정때문만도 아니고,

집은 좁은데 재건축은 어떻게 되는건지 답답함 때문만도 아니고,

자꾸 가다가 삐지면 멈추려고 하는 꼬마자동차 ’붕붕’때문만도 아니고,

중풍과 당뇨로 고생하시는 친정부모님 때문만도 아니고,

왜 이토록 많은 일들을 혼자서만 해결해야 하는지 화가 나서도 아닌.....

 

사람은 한개의 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셀 수도 없이 많은 모습으로, 성격으로,

능력으로 변신해야만 한다.

때론 그 숙제들이 가볍게 스쳐가기도 하고, 터덜터덜 만신창이가 되게 하기도 한다.

사람은 마음도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쉬임없이 항해를 하면서 행복하게도 하고

세상의 온갖 불행이 데모대를 결성하여

 나에게 도전하듯이 밀려온걸로 생각하기도 한다.

공부를 한다는건 무엇인가?

대학을 가고자 하는건 무엇일까?

전공이란건 무엇일지...

소용돌이 치는 세상에서, 내맘대로 절대로 안되는 세상에서,

그렇게 원격 조정장치로 조절되어 움직여지는 세상에서

내 뜻대로 살겠다는 의지이다.

어떤 맘에 들지 않는 각본이 진행되어도 내가 행복해 할 수 있게

만들어 줄 수 있는 마음끌림이 전공이다.

 

 

나를 휘감고 있는 수많은 숙제중에서

’정미(한번도 이런 이름으로 불러 본적이 없지만)와 원배의 엄마’라는

숙제가 항상 나를 긴장하게도 하고 많은 상처들을 아물게 하는 치료제이다.

아니 치료이기보다는 사랑이 먼저이겠지.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느끼듯이 맹목적이거나, 특별하거나

참으로 살맛나는 세상이라고

울먹이게 되는 건 ’엄마’라는 숙제를 받을 수 있었던 거지.

 

대로를 질주하는 삶을 살리라 믿었는데 두아이의 엄마라는 선물을 받자마자

가로막은 절벽앞에서 더듬더듬 터널을 찾을 수 있었던 것도

꼬막만큼 작은 안나와 요한의 눈물겨운 기도였던거야.

끝없어 보이는 긴 터널을 다치지 않고 지나온 것도 온전하신 보살핌속에서

’엄마, 엄마’ 불러준 때문이었지.

이제 3호터널에 들어 와 있다.

정미 혼자도 아니고, 원배 혼자도 아니고, 엄마 혼자도 아니고, 아빠 혼자도 아닌...

우리 모두, 4명과 함께 그 분께서...

힘들다 넋두리하는 순간에 내 행복의 의지가 볼품없는 치장이었다고 느껴진다.

한번 할 때 그 만큼, 두번 할때 제곱으로 ... 급기야 세상에 행복은 없고 버려진 슬픔속에서 차츰 자조하는 일그러진 청춘이 손짓하게 된다.

 

지나보면 나이만큼 숙제가 많아진다는 그 평범한 진리가 새삼스러울 때가 온다.

우리는 말하곤 해.

지난것은 그리워진다고...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고...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내마음은 주님이 지어 놓은 작은 궁전...내 마음은 작은 우주...

그 우주의 주인공은 나.

우주를 주님으로 온전히 채울 수 있도록 손을 잡고 뛰는 거야.

그 날을 위해... 엄마 손을 잡고, 손을 내밀면 바로 잡을 수 있는

아빠와 정미와 원배가 같이 행진하는거야.

인생은 자신만의 마라톤이지만 함께 가 줄 사랑하는 사람을 손을 뻗어 잡으면

평화로이 완주할 수 있는 축복받은 선물인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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