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하느님께 기도하는 방식과 자세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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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2 ㅣ No.1705

 

 

질문 1: 다음은 2016년 7월 24일 주일, 즉, 다해 연중 제17주일 제1독서(창세 18,20-32)복음 말씀(루카 11,1-13) 전문인데, 이들 사이의 내용 연결 고리의 역할을 하는 key word는 무엇인지요?:

 

질문 2: 하느님께 기도하는 방식과 자세는 어떠하여야 하는지요?

 

출처: http://info.catholic.or.kr/missa/default.asp?missaid=7454&gomonth=2016-07-24&missatype=DA

(발췌 시작)

[창세기 18,20-32]
그 무렵 20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원성이 너무나 크고, 그들의 죄악이 너무나 무겁구나. 21 이제 내가 내려가서, 저들 모두가 저지른 짓이 나에게 들려온 그 원성과 같은 것인지 아닌지를 알아보아야겠다.” 22 그 사람들은 거기에서 몸을 돌려 소돔으로 갔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주님 앞에 그대로 서 있었다. 23 아브라함이 다가서서 말씀드렸다.
“진정 의인을 죄인과 함께 쓸어버리시렵니까? 24 혹시 그 성읍 안에 의인이 쉰 명 있다면, 그래도 쓸어버리시렵니까? 그 안에 있는 의인 쉰 명 때문에라도 그곳을 용서하지 않으시렵니까?
25 의인을 죄인과 함께 죽이시어 의인이나 죄인이나 똑같이 되게 하시는 것, 그런 일은 당신께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런 일은 당신께 어울리지 않습니다. 온 세상의 심판자께서는 공정을 실천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26 그러자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소돔 성읍 안에서 내가 의인 쉰 명을 찾을 수만 있다면, 그들을 보아서 그곳 전체를 용서해 주겠다.”
27 아브라함이 다시 말씀드렸다. “저는 비록 먼지와 재에 지나지 않는 몸이지만, 주님께 감히 아룁니다. 28 혹시 의인 쉰 명에서 다섯이 모자란다면, 그 다섯 명 때문에 온 성읍을 파멸시키시렵니까?”
그러자 그분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그곳에서 마흔다섯 명을 찾을 수만 있다면 파멸시키지 않겠다.”
29 아브라함이 또다시 그분께 아뢰었다. “혹시 그곳에서 마흔 명을 찾을 수 있다면 …… ?” 그러자 그분께서 대답하셨다. “그 마흔 명을 보아서 내가 그 일을 실행하지 않겠다.”
30 그가 말씀드렸다. “제가 아뢴다고 주님께서는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혹시 그곳에서 서른 명을 찾을 수 있다면 …… ?”
그러자 그분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그곳에서 서른 명을 찾을 수만 있다면 그 일을 실행하지 않겠다.”
31 그가 말씀드렸다. “제가 주님께 감히 아룁니다. 혹시 그곳에서 스무 명을 찾을 수 있다면 …… ?”
그러자 그분께서 대답하셨다. “그 스무 명을 보아서 내가 파멸시키지 않겠다.”
32 그가 말씀드렸다. “제가 다시 한 번 아뢴다고 주님께서는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혹시 그곳에서 열 명을 찾을 수 있다면 …… ?”
그러자 그분께서 대답하셨다. “그 열 명을 보아서라도 내가 파멸시키지 않겠다.”
 

[루카 복음서 11,1-13]

1 예수님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고 계셨다. 그분께서 기도를 마치시자 제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여라.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3 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4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5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누가 벗이 있는데, 한밤중에 그 벗을 찾아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하자. ‘여보게, 빵 세 개만 꾸어 주게. 6 내 벗이 길을 가다가 나에게 들렀는데, 내놓을 것이 없네.’ 7 그러면 그 사람이 안에서, ‘나를 괴롭히지 말게. 벌써 문을 닫아걸고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네. 그러니 지금 일어나서 건네줄 수가 없네.’ 하고 대답할 것이다.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이 벗이라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서 빵을 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줄곧 졸라 대면 마침내 일어나서 그에게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다.

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10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11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청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겠느냐? 12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이상, 발췌 끝)

 

1. 들어가면서 (질문 1 및 질문 2에 대한 답변 시작)

1-1. 우선적으로, 루카 복음서 11,1-4에는, 마태오 복음서 6,9-13에 있는, 우리가 미사 중에 함께 바치는 소리 기도(염경 기도)인 "주님의 기도"에 비교하여, 짧은 "주님의 기도"가 제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제1독서인 창세기 18,20-32는 모세가 주님과 대화 [혹은 전구의 기도(prayer of intercession)]를 하고 있으므로, 루카 복음서 11,1-4창세기 18,20-32 본문들 안에서 연결 고리를 찾고자 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1-2. 그래서 루카 복음서 11,5-13창세기 18,20-32 본문들 안에서 연결 고리를 찾기 위하여 묵상하여야(meditate) 할 것인데, 그런데 위에 발췌된 성경 본문들만들 들여다보면,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한 개의 단어가 눈에 잘 보이는지요???

 

비록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직후인1969년에, 이 공의회의 요청에 의하여, 현재 사용 중인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이 확정되어 공표되기 전에 이 전례력이 준비되는 과정에서, 이 주일의 복음 말씀으로서 루카 복음서 11,1-13가 우선적으로 선정되고 나서, 그 다음에 이 복음 말씀에 가장 적합한 구약 성경 본문으로서 창세기 18,20-32가 이 주일의 제1독서로 선정되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생각에, 오로지 위에 제시된 우리말본 성경 본문들만을 들여다 보아서는, 아마도 이들 두 독서들 사이의 연결 고리 역할을 하는 한 개의 단어를 그리 쉽게 찾아내지 못할 것입니다.

 

1-3. 그렇다면, 1970년에 초판 발행된, NAB (New American Bible)의 경우에 창세기 18,20-32의 본문과 루카 복음서 11,1-13의 본문 사이에, 보통 수준의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미사 중 말씀 전례에서 봉독되는 이들 독서들을 귀로 들었을 때에 그리 어렵지 않게 바로 식별할 수 있는, 가청(可聽)적이고 또한 가시(可視)적인 연결 고리의 역할을 하는 단어가 전혀 없을까요? 그렇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2.

2-1. 바로 위의 제1-3항에서 말씀드린 바를 확인하기 위하여, 곧바로, 다음에 발췌된 NAB (New American Bible)에서 발췌된 창세기 18,20-32 및 루카 복음서 11,1-13 을 들여다 보도록 합시다:

 

출처: http://www.vatican.va/archive/ENG0839/__PK.HTM

(NAB 창세기 18,20-32 발췌 시작)

20 Then the LORD said: "The outcry against Sodom and Gomorrah is so great, and their sin so grave,

22 While the two men walked on farther toward Sodom, the LORD remained standing before Abraham.

23 Then Abraham drew nearer to him and said: "Will you sweep away the innocent with the guilty?

24 Suppose there were fifty innocent people in the city; would you wipe out the place, rather than spare it for the sake of the fifty innocent people within it?

25 Far be it from you to do such a thing, to make the innocent die with the guilty, so that the innocent and the guilty would be treated alike! Should not the judge of all the world act with justice?"

26 The LORD replied, "If I find fifty innocent people in the city of Sodom, I will spare the whole place for their sake."

27 Abraham spoke up again: "See how I am presuming to speak to my Lord, though I am but dust and ashes!

28 What if there are five less than fifty innocent people? Will you destroy the whole city because of those five?" "I will not destroy it," he answered, "if I find forty-five there."

29 But Abraham persisted, saying, "What if only forty are found there?" He replied, "I will forebear doing it for the sake of the forty."

30 Then he said, "Let not my Lord grow impatient if I go on. What if only thirty are found there?" He replied, "I will forebear doing it if I can find but thirty there."

31 Still he went on, "Since I have thus dared to speak to my Lord, what if there are no more than twenty?" "I will not destroy it," he answered, "for the sake of the twenty."

32 But he still persisted: "Please, let not my Lord grow angry if I speak up this last time. What if there are at least ten there?" "For the sake of those ten," he replied, "I will not destroy it."
(이상, 발췌 끝)

 

출처: http://www.vatican.va/archive/ENG0839/__PWU.HTM

(NAB 루카 복음서 11,1-13 발췌 시작)

1 He was praying in a certain place, and when he had finished, one of his disciples said to him, "Lord, teach us to pray just as John taught his disciples."
2 He said to them, "When you pray, say: Father, hallowed be your name, your kingdom come.

3 Give us each day our daily bread

4 and forgive us our sins for we ourselves forgive everyone in debt to us, and do not subject us to the final test."

5 And he said to them, "Suppose one of you has a friend to whom he goes at midnight and says, 'Friend, lend me three loaves of bread,

6 for a friend of mine has arrived at my house from a journey and I have nothing to offer him,'

7 and he says in reply from within, 'Do not bother me; the door has already been locked and my children and I are already in bed. I cannot get up to give you anything.'

 

8 I tell you, if he does not get up to give him the loaves because of their friendship, he will get up to give him whatever he needs because of his persistence.

 

8. (졸번역)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 사이의 우의(友誼, friendship) 때문에 그자에게 빵들을 제공하기 위하여 그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대의 성가신 졸라댐(persistence) 때문에 그자가 필요로 하는 것 무엇이든지간에 그대에게 제공하기 위하여 그는 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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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다들 잘 알고 계시겠지만, 나의 벗의 벗이 항상 나의 벗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따라서, 그와 그대 사이의 우의(友誼, friendship) 때문에, 제3자인 그자에게 빵들을 제공하기 위하여 그가 일어날 것이라는 것은 기대하기 힘듦에 주목하라. 그러나, 예를 들어, 루카 복음서 18,4-5에서처럼, 그대의 성가신 졸라댐(persistence)으로부터의 해방이 장차 가져다 줄 자신의 편안함 때문에, 제3자인 그자가 필요로 하는 것 무엇이든지간에 그대에게 제공하기 위하여 그가 일어날 것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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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And I tell you, ask and you will receive; seek and you will find; knock and the door will be opened to you.

10 For everyone who asks, receives; and the one who seeks, finds; and to the one who knocks, the door will be opened.

11 What father among you would hand his son a snake when he asks for a fish?

12 Or hand him a scorpion when he asks for an egg?

 

13 If you then, who are wicked, know how to give good gifts to your children, how much more will the Father in heaven give the holy Spirit to those who ask him?"

 

13 (졸번역) 그러니까, 사악한 너희마저도 자신들의 자녀들에게 선한 선물들을 어떻게 주는지 알고 있다면, 하늘에 계신 성부께서는 당신께 청하는 자들에게 거룩한 영[의 선물들]을 얼마나 더 잘 주시려고 할 것이겠느냐?

(이상, 발췌 및 일부 문장들의 우리말 번역 끝)

 

(질문 1에 대한 답변)

위의 두 본문들에 있어 공통인 단어가 한 개 있는데, 바로 "persistence(성가신 졸라댐)"입니다. 그리고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생각에, 바로 단어가 이 주일의 제1독서와 복음 말씀을 연결하는 연결 고리의 역할을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제2-2항제2-3항은 이것이 합리적인 추정임을 뒷받침합니다.

 

2-2. 다른 한편으로, 다음은, 2003년 교황청 경신성사성 제공의 "미사 전례 성경 총지침서", 표 III 에 제시된 다해 연중 제17주일 복음 말씀의 소제목으로부터 발췌한 것입니다:

 

출처 1: https://www.ewtn.com/library/CURIA/CDWLECT.HTM [주: Table들 쪽으로 접속 불가]

출처 2: http://www.liturgyoffice.org.uk/Resources/Rites/Lectionary.pdf

(출처 2로부터 발췌 시작)

SUNDAY 17      *The importunate friend      Lk 11:1-13

 

제17주일          *성가시게 조르는 벗          루카 11,1-13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2-3. 또 다른 한편으로, 다음은, 2014년 교황청 경신성사성 제공의 "강론 지침서"의 부록으로서 제공되고 있는, 다해 연중 제17주일 복음 말씀을 위한 가톨릭 교회 교리서 항들과 이날 복음 말씀의 주제들에 대한 정보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특히 "persistence(성가신 졸라댐)"라는 용어가 제시되어 있음에 주목하십시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CCC4주일및대축일_전례력.htm 

(발췌 시작)

CCCC 554: CCC 2634-2636: 전구의 기도 (prayer of intercession)
CCCC
535: CCC 2566-2567: 기도하라는 보편적 부름 (universal call to prayer)
CCCC
579-581: CCC 2761-2772: 복음의 한 통합으로서 주님의 기도 (the Lord’s Prayer as a synthesis of Gospel)
CCCC
544, 582-583: CCC 2609-2610, 2613, 2777-2785: 성가신 졸라댐 및 자식으로서의 신뢰와 함께 하느님 쪽으로 돌아섬 (turning to God with persistence and filial trust)
CCCC
558: CCC 2654: 거룩한 독서 (lectio divina)
CCCC
105, 124, 205, 255: CCC 537, 628, 1002, 1227: 세례에서 땅에 묻히고 그리고 일어나게 됨 (buried and risen in baptism)

(이상, 발췌 끝)

 

(질문 2에 대한 답변)

따라서, 하느님께 기도할 때에, 그 의로움을 인정받는 올바른 자세와 방식은, (i) 마태오 복음서 6,5-8에 서술된 바, 그리고 (ii) "성가신 졸라댐 및 자식으로서의 신뢰와 함께 하느님 쪽으로 돌아섬"임을 알 수 있습니다.


2-4. 거룩한 미사 성제가 시작될 때에, 집전 사제와 함께 우리가 무엇으로써 시작하는지요? 바로 "성호경" 기도로써 시작합니다. 그리고 또한 "본기도(Collect)"는 무엇으로써 시작하는지요? 바로 "기도합시다"로써 시작합니다.

 

따라서, 하느님께 기도할 때에, 그 의로움을 인정받는 올바른 자세와 방식으로서 제시되고 있는 "성가신 졸라댐 및 자식으로서의 신뢰와 함께 하느님 쪽으로 돌아섬"은, 사실, 한 개의 실천적 원리(a practical principle)로서,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우리에게 제시되고 있음에 주목하십시오.


왜냐하면, 세례를 통하여 하느님의 입양된 자녀들로 성별된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경우에


"성가신 졸라댐 및 자식으로서의 신뢰와 함께 하느님 쪽으로 돌아섬"을 실천하는 자들 중에서만 오로지 회개(repentence)하는 자들이 있을 수 있고,


그리고 


회개(repentence)하는 자들 중에서만 오로지, 한 윤리적 기적(a moral miracle)인, 윤리적 변화/회심/귀의/의탁(conversion)하게 되는 자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

3.

3-1. 위의 제1항제2항에서, 소리 기도를 그 한 예(example)로 택하여, "하느님께 기도하는 방식과 자세"에 대하여 함께 고찰하였는데, 일반적으로, 기도에는 소리 기도/염경 기도(vocal prayer), 묵상(默想, meditation), 그리고 관상 기도(contemplative prayer), 이렇게 세 가지 종류들이 있습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699항). 이에 대하여서는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을 읽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88.htm <----- 필독 권고

 

3-2. 다른 한편으로, "기도하다(pray)"라는 용어의 자구적(literal) 의미(sense)/정의에 의하여(by definition), 기도는 반드시 그리고 오로지 하느님께만 바치는 것이 아닙니다. 이에 대하여서는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을 읽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016.htm <----- 필독 권고

 

특히, 국내의 개신교 신자들께서는 바로 위의 주소에 있는 글을 꼭 읽도록 하십시오.

 

3-3. "전구(求, intercession)""간구(懇求, invocation)"의 차이점에 대한 글은 다음에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20.htm <----- 필독 권고

 

[내용 추가 일자: 2018년 12월 26일]

게시자 주 3-3: 1583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퍄견된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들이 "intercession"에 대응하는 번역 용어로서 사용한 용어는 "求"이지, "求"아니었음이 본글에서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되어, 오늘 날짜로,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글의 제목과 본문 중에서 괄호 안에 병기하면서 잘못 표기된 "傳求"를 모두 "轉求"로 교체합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70.htm <----- 필독 권고

[제목: 기도(祈禱), 기구(祈求), 전기(轉祈), 전구(轉求), 간구(懇求), 간기(懇祈) 등의 번역 용어들의 출처와 기원에 대하여; 게시일자: 2018년 11월 24일]

[이상, 2018년 12월 26일자 내용 추가 끝]

 

3-4. 끝으로, 그리 바쁘지 않은 분들로서 영어가 가능한 분들께서는, 교황청 소속의 성직자들을 위한 홈페이지 제공의, 다해 연중 제17주일 강론인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을 읽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clerus/homilies/c_ot_17.htm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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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작업에 소요된 시간: 약 4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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