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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독서 안내 - 창세기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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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원 [jbap] 쪽지 캡슐

2003-02-13 ㅣ No.956

오늘 전례 말씀 : http://www.catholic.or.kr/goodnews/today/view/default2.htm

 

인류가 타락하다 (3,1-24)

 

이 대목에서는 악의 기원을 설명하려고 노력한다.

이 문제의 핵심은 인간이 하느님처럼 되려고 하는 데, 자만하고 자족하려는, 즉 거짓 신이 되려는 욕심으로 하느님의 자리를 찬탈하는 데(5절) 있다. 자만심(교만)은 모든 악의 어미다. 모든 악은 교만의 결과에 불과하다. 오로지 하느님만이 절대적인 주님(주인)이시다. 하느님의 계획은 만민과 만백성으로 하여금 당신의 소유인 재화를 따뜻하게 골고루 나누면서 서로 위해 주면서 자유롭게 살게 하는 데 있다. 인간이 스스로 만족하는 교만에 빠질 대, 그는 하느님의 계획을 무시하고 자기 자신의 계획을 세우게 된다. 그런 사람은 자기 이익만 챙기려 하고 자기 자신만 자유롭게 살려고 한다. 그런데 온전히 자유롭게 사는 것은 모든 인간의 꿈이다. 따라서, 개인의 온전한 자유는 만민과 만백성의 온전한 자유 안에서만 가능하다. 자기만 자유스럽게 살려 하고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교만한 인간은 어떤 모양으로든 타인을 노예화하고 죽이게 되어 있다. 자기 만족만을 찾는 사람들로 말미암아 모든 인간이 서로를 한 혈육과 한 형제자매로 여기는 인간관계와 국제관계가 타인과 타국을 지배하고 억압하는 관계로 변형되고, 나눔의 관계가 착취의 관계로 변하며, 그로 말미암아 극소수 사람들과 나라들의 부(富)와 사치스런 소비를 위하여 절대다수 사람들과 나라들이 절대빈곤에 허덕인다. 그렇게 된 상태에서는 인간관계와 국제관계 및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가 왜곡되고 비인간적인 관계로 전락한다. 개인 이기주의와 국가 이기주의라는 죄악이 만연된 그 같은 분위기와 환경 속에서는 인류가 살 길이 아니라 죽을 길을 달리고 있는 것이다(22-24절). 그렇다면 절망해야 하는가? 아니다. 이기주의라는 죄악 앞에서 하느님은 인간과 인류로 하여금 그 죄악을 이겨내도록 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신다. 즉 당신 아들을 인류의 후손으로 보내신다. 이 후손은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과 더불어 온 인류가 하나로 되어 서로 위해 주고 섬기게 하려는 하느님의 계획의 실현을 위하여 몸바치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당신 몸으로 삼으신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런 하느님의 계획을 온전히 계시하고 실현하시는 분이시다.

 

인류가 타락하다 (3,1-24)

 

본문 해설(살트르 성바오로 수녀회 자료)

 

이 장은 모세오경 전체를 통하여 전개되는 하느님의 징벌과 구원의 역사를 암시하고 있다.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 즉 선과 악, 수치와 고통과 죽음의 기원, 인간의 자유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의 신학적 반성이다.

 

아담과 하와, 그들은 부족함이 없는 낙원의 생활을 선사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오직 한 가지 하느님이 금하신 그 생명나무에 호기심이 생겼다. 생명나무는 하느님의 영역의 상징이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우주 만물을 다 선물로 주셨지만, 우주 만물의 주인이 바뀐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우주 만물의 주인은 하느님이시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하느님 대신 자신들이 주인이 되고 싶어한다. (이를 성서는 선악과를 따 먹었다고 표현)

 

자유 의지라는 특은을 지닌 인간이 그 자유를 남용하여 하느님께 복종하지 않았으므로 곧 불행의 원인이 된다. 타락의 기회는 본래 타고 난 결점 때문이 아니라 외부에서 온 것, 즉 유혹자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하와는 자신에게 주어진 한계를 넘어서는 데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녀는 홀로 사건의 방향을 이끌다가 엄청난 실수로 죄를 저지르게 된다.

 

* 기도의 삶이란 하느님과 이웃에게 자신을 열어놓고 함께 사는 삶이다.

 

* 인간이 하느님처럼 되려고 한 데서, 즉 하느님처럼 자기의 생명을 존재케 하려는 데에서 인간의 비참과 타락이 시작되었다. 하느님을 등지고 자기들만의 세계를 만들려고 하는 인간, 이것이 죄의 시작이다. 죄는 하느님의 사랑의 초대에 대한 나의 거절이다.

 

하느님은 당신 현존에 죄스런 인간을 받아들이지 않으시고 인간은 영원한 분리로 들어간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선언하신 이 죄의 벌에 대해 인간은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다만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것이 인간의 무력함, 피조성이다.

 

* 하느님의 사랑의 빛 안에서 내 자신의 죄스러움을 볼 수 있는 은총을 구하자. 유혹에 응하는 하와의 마음, “나”에게도 이러한 면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원죄에 물든 나의 약한 모습을 볼 수 있는 은혜를 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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