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레지오

2006년 12월호 [함께해요]

인쇄

레지오마리애 [legio] 쪽지 캡슐

2006-11-29 ㅣ No.73

 

[ 사랑으로 충만한 우리들 ]

 

요즘 주위 분들이 제가 단장을 맡고 있는 소년 레지오에 대해 물으시면 저는 이렇게 대답하곤 합니다. 저희 쁘레시디움 아이들은 하느님과 예수님, 그리고 성모님을 진실로 진실로 사랑하는 아이들이라고요.


저희 소년 레지오는 신입 복사단으로, 저까지 남자 7명, 여자 3명으로 이루어졌고 쁘레시디움 이름은 ꡐ기쁨의 샘ꡑ입니다. 앞에서 소개한 것과 같이  주님과 성모님을 향한 사랑이 돋보이는 쁘레시디움입니다.

아마 제가 아이들과 두 번째 회합을 가졌던 날인 것 같습니다. 첫 주보다는 익숙해지고 친해진 탓인지 지난 주와는 달리 아이들이 부쩍 떠드는 것이었습니다. 묵주기도 5단을 바치는 내내 성모님을 바라보기보다는 창 밖을 많이 보며 몸을 비틀기 일쑤고, 회합에 잘 집중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아이들을 저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어린아이긴 하지만 복사단에 있기도 했고 고학년이니 기도드리는 시간만큼은 조용히 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또 주님과 성모님을 사랑해서 그분들을 위해 언제든 싸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 성모님의 군대인 아이들이 기도시간에 떠드는 것이 쉽게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저는 아이들에게 질책하는 투로 질문 하나를 던졌습니다.

ꡒ너희는 하느님과 예수님, 성모님을 믿니? 사랑하니? 성당에는 왜 오는 거니?ꡓ

아이들의 대답은,

ꡒ엄마가 가라고 해서요.ꡓ 

ꡒ안 가면 혼나요.ꡓ라는 저의 예상과는 달리

ꡒ하느님이랑 예수님이랑 성모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여기 왜 오겠어요?ꡓ

 ꡒ당연한 거 아니에요?ꡓ라는 대답이었습니다.

그 순간 말을 잇지 못하고 놀라 멈춰 서 있던 저의 모습이 기억납니다. 예상 밖의 대답이 나와서였기도 했지만 아이들의 그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더 놀랐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의 반짝이는 그 눈동자가 진심임을 제게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제 눈에는 아이들의 다른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제대를 꾸밀 때에 서로 성모상을 가져오려고 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사랑을 느꼈고, 까떼나와 아침․저녁 기도를 매일 바치는 아이들의 모습, 성경읽기를 좋아해 늘 성경을 가까이 하는 모습, 기도를 많이 하지는 않지만 빠짐없이 매주 먼저 나와 제대를 꾸미는 아이의 모습, 레지오 회합 때는 다소 말이 많지만 복사를 설 때면 그 어떤 아이보다 얌전하고 예쁘게 미사 한 시간을 봉헌하는 아이의 모습, 아주 쩌렁쩌렁한 큰 소리로 하늘까지 들리도록 기도하는 아이의 모습들….

아이들마다 표현은 다르지만 그 모든 것이 주님을 향한 사랑고백이라는 것을 저는 그때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아이들을 보는 것이 어느새 제가 토요일을 손꼽아 기다리는 이유, 일주일이 후딱 지나가버리는 이유가 되어버렸습니다.

저희 레지오 아이들의 그런 사랑의 모습은 위에 열거된 것 말고도 하나가 더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저를 변화시킨 것입니다.

저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힘이 든다는 이유로 주님을 멀리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청년 레지오 회합도 잘 가지 않게 되고 성체조배나 평일미사 참례 횟수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을 만나고 제가 더는 주님과 멀어질 수 없었습니다. 아이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주고 싶어 그날 복음과 복음의 뜻풀이를 해가기도 하고, 좋은 성경구절을 알게 되면 아이들에게 선물로 주기도 하고, 훈화를 준비하기 위해 서적과 인터넷을 찾게 되었습니다. 매일 아이들에게 들려줄 주님의 말씀과 성모님의 사랑을 생각하게 되니 자연스럽게 주님과 더욱 가까워지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제 겨우 주님을 알게 된 저에게 ꡐ기쁨의 샘ꡑ 단장으로서 아이들을 만나게 해주신 주님의 뜻은, 저의 부족함을 이 축복받은 아이들을 통해 채워주시기 위함인 것 같습니다.


저희 본당에서는 이제야 비로소 학수고대하던 성전을 짓기 위한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조금만 더 기다리면 생길 레지오 회합실을 설레임 속에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저희 레지오 회합실은 컨테이너였습니다. 이 컨테이너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을 하자면, 여름엔 너무 덥고, 겨울엔 너무 춥고, 오래 되어서 바닥은 푹푹 꺼지기 일쑤고, 창문 유리 한쪽은 깨져서 있지도 않습니다. 선풍기는 망도 없어서 아이들에게 떨어질까 두려워 틀지도 못합니다. 또한 회합도구들을 가지고 올라치면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릴 때는 마냥 비와 눈을 맞고 가져와야 합니다. 다른 본당은 어떤지 잘 모르지만 저희 본당 레지오 회합실은 이렇게 좋은 여건이 아닙니다.

아이들이 제일 안쓰러울 때는 여름철입니다. 겨울에는 옷이라도 두껍게 입으면 되지만 여름에 컨테이너 안은 찜통과 같습니다. 뜨거운 열기 안에서 땀을 흘리며 시큼한 냄새를 맡아가며 시작기도를 20분간 하는데, 움직이지 않아도 땀이 비가 되어 흘러내립니다.

피서다 뭐다 해서 회합을 아이들이 빠질 법도 한데 출석률도 좋고 기도소리도 다른 날과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 아이들이 너무 대견해서 저 또한 더워도 덥다는 말을 못하게 됩니다. 사실, 정말 더위를 참지 못하는 아이들은 투정을 부리기도 하고 음료수를 사달라고 조르기도 합니다. 그럴 때 제가 옛날 한국 순교자들에 대해 조금만 언급하면 아이들의 투정은 금세 가라앉습니다. 차디찬 동굴 안에서 불빛 하나 없이 목숨을 걸고 기도하신 옛 순교 성인을 생각하면 우리의 더위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아이들도 알고 있나 봅니다. 또 공복재를 지켜야 한다며, 레지오 회합 시간 전에 주는 것 말고는 먹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이렇게 예쁘니 제가 레지오 회합 시간을 기다리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저희 기쁨의 샘 아이들과 저는 나이도 어리고, 하느님을 아는 지식도 적고 어리기만 합니다. 그렇지만 누구에게나 자신 있게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우리들의 마음입니다.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모님을 향한 저희들의 사랑은 성모님의 군대로서 악을 물리쳐야 할 때마다 그 어떤 강한 칼과 방패보다도 강력한 무기가 되어줄 것입니다. 앞으로도 저희 ꡐ기쁨의 샘ꡑ 쁘레시디움은 성모님의 군대로서 또 그 이전에 주님의 아들딸로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해 나갈 것입니다. 아울러 주님의 은총 안에 아름다운 성전이 하루빨리 완공되길 바라며 그 안에서 저희 ꡐ기쁨의 샘ꡑ의 기도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져나가길 기원합니다

_이혜숙․율리아



966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