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암동성당 게시판

첫영성체로 거듭 태어나게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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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부용 [20autumn] 쪽지 캡슐

1999-10-21 ㅣ No.309

응암동 관계자 여러분들 안녕하셨습니까? 오랫만에 뵙습니다. 그동안 어떻게들 지내셨는지요? 요즘처럼 갑자기 날씨가 썰렁해질 때 건강에 각별히 유의 하시고 감기 조심하세요.

 

 저는 요즘 우리 초등학교 3학년 꼬맹이(?)들의 첫영성체 막바지 준비를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 어린이들은 올해 초부터 지금까지 첫영성체 교리를 배우고 기도문을 외우는 등등의 준비를 하였고 드디어 이번 주 토요일인 10월 23일에 주님의 자녀로 거듭 태어나게 됩니다.

 첫영성체.. 말만 들어도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저는 잠시 그날 느낄 기쁨과 보람을 미리 떠올려 짐작해 봅니다. 이루 말할 수 없을 그 감흥들을…

 

 하지만 그런 환희는 잠시 접고…

 제가 오늘 드릴 말씀은 그런 날들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의 시간들에 대한 얘기입니다.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은 "첫영성체 반"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1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첫영성체 준비를 합니다. 어린아이들에겐 그것이 미사시간에 신부님이 하나씩 나누어 주시는 희고 동그란 밀떡의 맛(?)을 볼 수 있으며 여자 어린이들은 희고 고운 미사보를 머리에 쓸 수 있는 기회로 다가오지요. 집에서 엄마, 아빠가 시키니까 그냥 시키는 대로 하는 어린이들도 적지 않게 있지만요.

 그렇게 1년을 시작하다 보니 그것이 어린이들에게 있어서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내다보는 첫경험(?)의 기회로 다가옴과 동시에 첫영성체라는 관문을 무사히 통과하여 밀떡을 받아모실 수 있는 신세계(?)로의 입성인 이른바 그들 최초의 입시지옥(?!)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큽니다. 시작부터 듣는 얘기는 1년간 3회 이상 교리에 빠질 경우 첫영성체를 받을 기회가 없어지며 그 이름도 처음듣는 기도문을 다 외워야만 첫영성체를 받을 수 있다는 것들입니다.   

 아이들은 그런 상태로 두 계절을 보내고 찬바람이 불 때 즈음 되면 정말 중요한(!) 한 달 집중교리를 받게 됩니다. 한 달 집중교리에는 첫영성체를 한 달 앞두고 일주일에 네 차례 성당에 나와서 그동안 배웠던 교리들을 요약·정리하고 또 첫고백 연습에서부터 세세하게는 성체를 영하는 방법과 당일 입장대열 연습까지. 그리고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기도문 암송 완주 코스가 있죠.

 한 달 집중교리는 정말 중요해서 아이들이 한 번이라도 빠지게 되면 "탈락"하게 되지요. 그것이 원칙입니다.(실제로 집중교리를 하면서 갑자기 교리 날짜가 앞당겨지는 변수가 있었고 그 내용의 전달이 충분하질 않았던 점을 감안하여 첫 날 하루는 전원을 출석 check 하지 않은 것으로 하는 유동사항은 있었습니다.. 그런 관용(?)은 이런 일에서는 어디서든 십중팔구 일어난다고 보면 됩니다.)   

 요즘 어린이들..참 바쁘지요. 수영, 태권도, 첼로, 성악.. 이 다음에 커서 훌륭한 재목으로 쓰이길 바라는 꿈도 꿈이지만 우리보다 다방면에서의 재능 아니 재주가 전반적으로 훨씬 업그레이드 된 세대가 될 것은 분명합니다.(너무 당근의 법칙을 들먹였나요..~) 모든 아이들이 다 그런건 물론 아니지만 전반적인 요즘 어린이 교육의 흐름이 그러하다 보니 무조건 그 부분에 대해서 부모들의 과욕으로 인한 어린이의 주입식 팔방미인 교육이라며 비판만 하는것도 자세가 아닌 것 같습니다. 이것도 하나의 사회의 변화로 받아들여야 하니까요.(지극한 사족(?) 하날 붙이자면 요즘 세상에 학원에 하나도 안다닌다고 당당히 말하는 어린이를 만나면 그 어린이가 그렇게 자유스러워 보이고 한 수 위인거 같아 보일 수 없습니다. 그 순간부터 그 아이가 달라보이죠.) 하지만 요즘 바쁜 어린이들을 보면 부모의 욕심과 능력에 따라 움직이는 어린이들이 대다수 이지만 그 어린이 자체가 욕심이 많아서 이것도 배우고 싶고 저것도 놓치고 싶지 않아 하는 경우도 꽤 있더랍니다.

 그런 어린이들이 한 달동안 첫영성체 교리를 위하여 성당에 나오려면 성당 나오는 날엔 학원 시간을 뒤로 밀고 앞으로 당기고 해서 밥도 못먹고 성당에 오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취미로 피아노 하나 배워도 매일 학원에 가는데 (대다수) 평생가는 신앙을 위해 그까짓 한 달이야 시간을 못낸다면 그건 정말 첫영성체 받을 마음의 자세가 안된거죠.

 그럼 그 한 달이라는 시간동안.. 어린이들은 그간 외우다가 남은 기도문을 다 외워야 합니다. 그것은 남들과 같은 양으로 자기에게 떨어진 몫이니까 끝날까지 최선을 다해서 외워야합니다. 암기력, 성실도에 따른 개인차가 분명히 나게 마련입니다.  어느 일을 하건 언제나 그런 현상은 있죠.

 

 제가 지금까지 말씀드린 첫영성체를 받는 과정, 시스템 자체에 대해서는 특별히 거론하고 비판하고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방법에 있어서든 다 장단이 있기 마련이니까.(한 달만 집중교리 하고 첫영성체를 주든, 1년내내 준비하고 첫영성체를 주든)

 

 문제는 그 과정에 있어서의 병패를 만드는 우리들의 좋지 않은 모습들입니다.

 어른중에서도 한 사회에선 1등이 있고 꼴등이 있듯이(별로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쩝.) 어린이들 사이에서도 1등으로 성실한 아이가 있고 1등으로 암기력이 대빵 좋은 아이가 있습니다. 1등으로 뺀질대는 아이가 있을 수 있고 1등으로 머리가 단단한 아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아이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몫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점은 찬성합니다.(세상은 냉정하다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 명목좋은 형평성, 공정성을 위해서 더욱 정확한, 가능한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기도문을 암송하기를 바라며 저녁 8시도 좋고 9시도 좋죠.  "넌 미리 왜 안 왜우고 막판에 그러니..", "틀렸어, 다시 외워와." 그래, 아이들은 강하게 키워야 된다?! 아, 그래야 신앙 깊은 그리스도인이 되는가봐요.  아니, 그런 신앙인이 되는 하나의 길이 되겠지요. [천상 모후의 관을 씌우심을.., 찬미와 감사와 흠숭을 영원히.., 주님께 받은 몸과 마음을 오롯이 도로 바쳐..,영생의 즐거움을 얻게 하소서.., 간음하지 말라..,계시하신 진리를 교회가 가르치는대로 굳게 믿나이다..?] …뭔 소리여.. 외우라고 하니까 외우긴 해야하고.. 아, 머리에 안들어 간다.. 뭐였더라..아, 모르겠다, 생각나는 대로 또!박! 또!박!.. "천사 모순에 간을 씨우심을..(원래는 ’천상모후의 관을 씌우심을’임)", "뭐? 다시 외워와." * *; 웃지못할 우스운 얘기죠.

 나머지 공부(?)하는 아이들을 저녁 늦게까지 붙들어 놓고 기도문 체크하는 교사들은 교사들대로 고생입니다. 녹초 한 무대기들이 되죠. 남아있는 애들이라고 성격이 매 한가지겠습니까? 고분고분 외는 애, 노력은 하지만 안외워져서 머리를 뜯고 있는 애,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서 종이를 주먹에 한웅큼 쥐고 마구 구기며 인상도 같이 구겨지는 애. 다 그러면서 크는거야, 애들이 그럴 수도 있지.. 그래, 애들은 그러다가도 사탕 하나만 주면 그냥 다 잊어요. 똑똑하건 덜하건. 짜장면 한 그릇에 굳었던 얼굴이 그냥 눈녹듯 다 녹아버리고 생글거리는 어린이들을 보며 대단하다고 생각했죠. 그래요. 하지만 애들이 다 잊는다고 어른이 아이들에게 정신적인 괴로움을 주었던 사실 자체가 날아가 버리진 않습니다. 그렇다고 기도문을 외우게 하지 말라고? 그럴 순 없죠. 저도 어릴 때 첫영성체 받으면서 외웠던 기도문이 Base가 되고 반복되는 미사시간, 피정, 식사시간, 아침.저녁 기도 등을 통해서 머릿속에 기도문을 야금 야금 집어넣었죠. 그래! 그겁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냥 아이들이 기도문을 외울 때 머릿속에 전달되는 의미, 어휘는 어려워서 ’간음하지 말라’는 말을 설령 ’가능하지 말라’로 외울지언정 그 의미를 전달 시킨다면, 그 어린이가 계속 미사를 드리고 교리를 배우고 하면서(소위 말하는 반복학습!!) 자연스럽게 외워지는 것이 기도문 아닙니까?(자신의 모습을 한 번 되돌아 본다면 충분히 공감하시리라 생각됩니다.) 저녁도 못먹고 남아서 머리 쥐어짜며 기도문 외는 아이들에게 그냥 토씨하나 어휘하나 틀렸다고 "끝까지 다 외우고 가~(교사들끼리 눈 마주치며 웃어보기..)" 불현듯 넘버 3의 송강호의 한마디가 생각 나는군요.

 

 "무대포 정신! 그게 필요하다."

 

 이런 날들이 며칠째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남은 아이들과 교사들과의 끈적한, 암기력 좋고 성실한 어린이는 알 수 없을 유대 관계가 생기긴 합니다. 어젠 빵도 나눠먹으며 기도문을 외웠죠. Man to man으로 말이죠.( "얘들아, 내일은 내가 떡볶이 사줄게.", "야~ 신난다! 선생님, 그럼 내일 내가 빵 가져올게요, 우리집 빵집해요~") 하지만 시간이 워낙 길어지다 보니 친해질 기회가 느는 건 당연하죠.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 지난 주에 있었습니다.

 

 그 날은 아이들이 기도문을 다 외우기로 정해진 날의 하루 전날이었습니다.(지금은 입대 하신 모 교사의 송별회가 있던..) 그 날 아이들에게 각자 남은 기도의 반을 해치우지 않는다면 그 다음날엔 정말 기도문 못외운 아이들 모두 집에 못가고 9시, 10시.. 교사는 완전히 넉다운하는 대란이 벌어질게 뻔하니까 현명하게(?) 하루 전날부터 나누어서 부담을 안았죠.(애들은 집에서 외워오란 기도문을 끈질기게 안 외워오고 성당에 와서 남아서 외려고만 합니다. 웬수같은 것들..) 부담을 반으로 덜어서 미리 해치우는 것인데도 교사들이랑 애들은 모두 힘이 주~욱 빠졌죠. 하마터면 모 교사의 송별회에 가지 못하겠다는 결정을 내릴 뻔했다니까요.(지하실(?)에서 애들이랑 기도문 씨름하다 보니 교사들의 판단력이 혼미해져 있었던 것으로 생각하고 싶습니다.)  

 애들 그냥 기도문 대충 외운거 같으면 유드리 있게(?) 체크 해주자고 해서 그나마 상황이 좀더 빠르게 진척되고 있었죠. 드디어 한 어린이의 학부형께서 찾아 오셨습니다. 흥분하신 학부형님. 성당에 열심히 다니시고 봉사도 열심히 하시는 그 분. 아이가 밤 10시가 되어서야 스케줄이 끝나던 어제 기도문이 적힌 교리책을 부여잡고 "나 이거 4개 못외우면 첫영성체 못 받는댔어요" 잠은 못자고 꾸벅꾸벅 졸고 있고, 암기 능력이 생각만큼 잘 되주지도 못하고.. 결국 성당 가기 싫다고 떼쓰던 아이를 그 학부형은 속상하지만 때려서라도 보내야지 하고 애를 결국 억지로 때려서 성당에 보내놨는데..밤 9시 30분이 넘도록 연락도 없고 저녁도 안먹은 애를.. 아침 7시에 나간 애를..(아침 일찍 나간 이유는 개인적인 취미활동내지는 시케줄 관계로..)  도대체 부활 삼종기도 외워서 1년에 몇 번이나 써먹는다고..그 학부형의 큰 아이는 첫영성체까지 다 받았는데(성실하게) 재미도 없고 성당에 나가질 않는다고 그런답니다. 워낙 화가 나신지라 아이들과 함께 있던 교리실에 거의 처들어오다시피 하셔서 하시는 말씀을 들어보니.. 너무 하신 것 같기도 하지만 그 마음이 이해가 가게 마련이죠. 도대체 첫영성체가 뭐길래. 화난 교사들 曰 "그럼 진작에 시간 많을 때 외우게 하셨어야죠. 누구누구가 지금 제일 못외었어요!" 순간 그 학부형의 눈에서 용솟음 치는 눈물..순간 저는 그 학부형님의 마음속에 대못이 쿵하고 박히는 소리를 듣는듯 했습니다. 지금 여기가 도대체 어디야? 아니, 절에선 중들 싸움에 소림사가 되었었는데 여긴 좀 난 것 같긴 하군. 카톨릭 만세?

 아무리 봐도 첫영성체 주는 자리는 벼슬 자린거 같애요. 형평성을 위해서 출결사항을 공정하게 해서 "탈락" 시킬 땐 "탈락" 시켜야죠. 얘는 "탈락" 시키고 쟤는 "탈락" 안시켜? 공정해야 하는데~ 학부모님들께선 자신의 아이가 출석이 달랑 달랑하다 싶으면, 혹은 "탈락"당할 위기다 싶으면 첫영성체 주는 사람들을 찾아 가시죠. "이번에 받게 해주세요. 부탁 드려요" 마음이 약해지는 사람들.. 생각 끝에 "정말 원칙으론 형평성을 생각해서 안되지만 앞으로 절대 빠지지 않게 하시고 대신 숙제로 이렇게 이렇게 해 주세요. 한 번 더 이런 일이 있으면 그땐 진짜 안됩니다." 그래, 형평성을 생각 해서 그러면 안되지… 근데 형평성이 도대체 뭐꼬? 먹는기가?  

 첫영성체를 받으면 주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고 우리는 그분의 몸을 먹고 피를 마시며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들 합니다. 그렇게 믿습니다. 그것은 중요한 권리죠. 그래, 첫영성체를 그냥 쉽게 받고 나서 헌 신짝 버리듯 성당이랑 발길을 끊는 경우가 생길 수 있어요.  냉담을 말처럼 쉽게 해버리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그런데 그건 첫영성체를 받은 후 당장이 될지도 모르고 한참 후가 될지도 모르며, 그런일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없길 기도 해야겠지요.) 첫영성체를 받은 영혼이 주님을 거부하는 것이 두려워서 아무나 첫영성체를 주지 않는건가요? 하지만 그렇게 노력하는 모습이라면 조금은 부족하더라도 주님의 품안으로 함께 하게끔 초대하는 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들간의 자세가 아닐런지요? 도대체 첫영성체를 주면서 어떻게 새파란 사람이 할머니의 버릇(!)을 뜯어 고쳐놓겠다는 망발을 하는 건지.(누워서 침뱉기 하는 제가 영 찜찜하군요..) 제가 살고 있는 동방무례지국의 형평성으로 가득한 이 곳에서 제가 유치부였을 때(옛날?) 선생님 하셨던 모 구교사께서 즐겨 부르시던 노래가 하나를 떠올려 봅니다.

 

[나는 구원 열차 올라 타고서 하늘나라 가지요

                      지옥역 벗어나 올라 타다가 다신 내리지 않죠

차표 필요없어요 주님 함께 계시니 아무 염려 없어요

                      나는 구원 열차 올라타고서 하늘나라 가지요]

 

 어느 일을 하고, 어떤 경험을 접하든지 간에 그 길에 있어서의 기대치와 실망감이 있기 마련이죠. 매 년 같은 일을 반복해도 그 때마다 상황이 다를 수도 있으니까.

 한창 뛰어놀아야 할 어린 나이서부터 큰 스트레스를 받으며(더욱이 받지 말아야 할 곳에서 받으며) 그래도 성당에 나와야만 하는 어린이와, 자식은 애물단지라며 마음고생 하시며 동시에 한 분만을 믿고 있는 우리의 이 공간에서 조금씩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나실지도 모를 학부모님과, 최선을 다해보지만 왠지 그럴수록 마음의 상처만 더 많아지는 것 같은 교사들의 모습이 Over lap 되는 순간 왠지 서글퍼집니다. 같은 상황에서라도 마음의 여유가 조금 더 있다면 이런 일은 없을거라고 감히 추측해봅니다.

 

 돌아오는 토요일을 계기로 우리모두 다시 태어나는듯한 기쁨을 느낄 수 있겠죠. 우리를 평화와 기쁨이 넘치게 해주시는 참다운 한분은 주님뿐이라는 생각이 절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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