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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교황의 사목적 과제 (중) 여전히 남는 과제, 제2차 바티칸공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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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4-15 ㅣ No.92

[창간86주년 특별기획] 새 교황의 사목적 과제
- 신학자 100인 설문 바탕으로 (중) 여전히 남는 과제, 제2차 바티칸공의회

지역교회 자율성 확보, 교회 쇄신의 중요한 열쇠



새 교황의 사목적 과제를 살펴보는 첫 번째 키워드는 ‘안으로 향한 쇄신의 요청’이었다. 한국의 신학자 100인에게, 교회의 신자 대중보다는 보편교회의 지도부인 교황청, 교회 밖의 사람들보다는 교회 안에 머물러 있는 신자들, 더욱이 이들 ‘양떼’를 돌보는 책무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오히려 세상에 추문이 되었던 성직자들에 대한 쇄신의 요구가 새 교황의 사목적 과제에서 우선 순위에 올라 있다.

세상을 향해 활짝 문을 열었던 제2차 바티칸공의회. 내성(內省)을 통해 교회 쇄신의 필요성을 선언했던 이 역사적인 사건은 지금까지도 우리들에게 쇄신의 요청을 발하고 있다. 기실 앞서 누누이 강조된 내적 쇄신의 요청은 그 발원지를 따져 볼 때, 멀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이요 가까이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공의회 정신의 실현을 새 교황의 과제로 지적한 신학자는 모두 27명으로 집계됐다.


▨ 새로운 복음화는 공의회의 요청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새로운 복음화’를 표방하면서, ‘신앙의 해’를 그 첫 발걸음으로 삼았으나, 이 역시 그 근거는 공의회의 정신과 가르침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신학자 100인 설문조사는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는 새 교황의 과제로서 ‘세속주의와 상대주의에 대한 대처’와 함께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의 실현’을 꼽고 이렇게 말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는 지난해, 제2차 바티칸공의회 개막 50주년을 기념하며 ‘신앙의 해’를 선포하셨다. 교황께서는 자의교서 ‘믿음의 문’에서 ‘공의회는 오늘의 시대에 우리의 위치를 확인할 확실한 나침반’이라고 말씀하셨다.”

유흥식 주교(대전교구장) 역시 공의회가 “‘친교의 공동체’의 모습으로 세상과 대화하면서 세상 사람들을 구체적으로 사랑하고 위해 주면서 세상 사람들과 함께하는 교회를 건설하도록 가르침을 주었다”며 “공의회의 가르침을 실현하는 것은 아직도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큰 과제”라고 강조했다.

설문 응답자들 중 적지 않은 신학자들이 ‘새로운 복음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과 가르침은 교회의 쇄신이 요청되는 대부분의 영역과 주제들을 포괄함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총체적인 쇄신의 요청을 담고 있다고 말한다.

한영수 신부(대구대교구)는 공의회의 정신이 “대단히 혁신적이면서 총체적인 교회의 쇄신을 포함”하고 있으며 “새 교황은 총체적 쇄신의 의지를 충분히 드러내고, 바로 그것이 현 교회에 신선한 메시지로 전달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신부는 이어 “공의회 정신을 승계해 총체적 쇄신을 이루는 일은 교회가 가장 중점을 둬야 할 부분”이며, 왜냐하면 “공의회 정신을 통해 총체적으로 변하지 않으면 다른 쇄신의 시도들은 부분적이고 따라서 비효과적”이라고 단언했다.

평신도신학자인 박문수씨는 “공의회에 이미 주교단의 단체성, 평신도 사도직 문제 등 많은 것이 포함돼 있다”며 “주요한 주제와 과제들이 모두 공의회 정신의 실현이라는 큰 과제에 포함돼 있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엄재중(주교회의 한국사목연구소)씨는 설문에 포함된 대부분의 보기 문항들의 주제들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며, 특히 ‘새로운 복음화’가 제시하는 과제가 이 모든 쇄신의 영역들을 포함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15개의 보기 문항 중에서 어떤 것을 새 교황의 우선적인 과제로 꼽든 그것은 결국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의 실현’, 그리고 현재 교회가 추진하고 있는, 공의회의 가르침에서 발원하는 ‘새로운 복음화’의 긴급한 과제로 수렴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미진한 공의회 정신의 실현

그러면, 이미 공의회가 개최된지 50년을 훌쩍 넘긴 오늘날의 시점에서 과연 교회는 공의회의 성과를 얼마나 교회 생활 안에서 실제로 구현해왔다고 할 수 있을까? 신학자 100인은 이에 대해 부정적이다. 오히려 지금의 교회 안에서 공의회 정신은 후퇴하고 있다고 평가한다는 점은 충격적이 아닐 수 없다.

평신도신학자 경동현씨는 매우 비판적이다. 그는 “두 분의 전임 교황(요한 바오로 2세, 베네딕토 16세)은 다른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공의회의 정신을 현실 교회로 육화하는 일에서는 성과를 발견하기 어렵거나 오히려 공의회 이전으로 후퇴시킨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김진화 신부(전주교구)는 “열린 교회를 지향했던 공의회가 그 후 교황님들의 보수적 정책에 의해 아직도 선언문에 그치고 있다는 비판에 귀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송용민 신부(인천교구)는 “공의회가 혁명과도 같은 새로운 사목방향을 제시했다면 오늘날 그 근본 정신이 퇴색하거나 보수화되는 경향을 피할 수 없다”며 “신자들이 교회를 떠나는 것은 교회가 진정한 복음적 정신을 강조한 공의회의 취지와 관심을 지역교회에서 실천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유희석 신부(수원교구)는 “공의회 정신이 어느새 사라져가는 과거사가 된 느낌”이라고 말했고, 신호철 신부(부산교구)는 “공의회 개막 5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한국교회에는 어떤 점이 개혁됐는지 소개조차 되지 않고 있는 충격적이고 수치스러운 현실”을 지적했다.


▨ 교회 권위의 분산, 주교단의 단체성과 자율적 지역교회

이미 지적된 바대로, 공의회의 쇄신 요청은 설문 조사의 보기 문항들에 포함된 대부분의 주제들을 포함한다. 하지만 이러한 과제들 중에서도 응답자들이 가장 빈번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주교단의 단체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이에 긴밀하게 연결되는 ‘지역교회의 자율성 확보’이고, 다른 한 가지는 ‘교회 안에서의 여성의 역할’을 포함한 ‘평신도의 소명과 역할’에 대한 문제이다.

첫 번째 주제는 과도한 중앙집권적 권위 구조를 지니고 있는 교회 상층부의 권위가 지역교회와 주교들에게 분산되어야 한다는 요청이다. 두 가지 보기 문항에 대해 100명 중 8명이 새 교황의 주요 과제로 꼽았다.

익명을 요청한 한 신학자는 공의회가 “미래 교회를 이끌어가는(다스리는) 핵심 구조로 ‘주교단의 단체성’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단체성이 “세계주교대의원회의를 통해 실현되고 있지만, 좀 더 새로운 이해와 역동성을 지니고 효과적으로 구현돼야 한다”며 그 이유는 “교황 개인을 넘어 주교단의 단체성이 교회 쇄신과 개혁의 중요한 주체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정우 신부(대구대교구)는 “지역교회의 자율성 확보가 무엇보다 시급하며 특히 한국교회의 대로마 의존도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한국 주교단의 주체성 확립과 능력 배양을 위한 노력”을 촉구했다.

김진화 신부(전주교구)는 “보편교회는 지역교회의 합(合)이 아니며, 지역교회는 하나의 온전한 교회이고 충만하다”며 “지역교회들이 다양성 속에 일치를 실현해 하나의 교회로 드러나는 것이 보편교회”라고 말했다. 그는 나아가 지역교회의 중심인 교구장 주교를 비롯한 주교들의 임명 과정에 교구 사제들과 교구민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 친교의 교회와 평신도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친교의 교회론’과 관련해, ‘평신도의 소명 및 역할’이 크게 강조되고 있다. 전체 응답자 중 14명이 이를 새 교황의 주요 과제로 지적했다. 특히 대부분의 응답자들이 공의회 정신과 평신도의 소명과 역할 확대를 동시에 선택한 점은 뜻 깊다.

조성문 신부(부산교구)는 명확하게 이를 지적한다. 그는 “공의회 정신의 핵심인 ‘친교의 교회론’에 의거, 공의회 이후 평신도에 대한 신학적 접근은 놀라울 정도”였지만 일련의 공의회 후속 작업 이후 이러한 인식은 제자리에 머물러 있음에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오경환 신부(인천교구)는 특별히 “본당 운영에 있어서 평신도의 역할, 본당 사목위원들의 역할이 강화되어 사목정책과 과제를 선정하는데 있어서 상당한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며 “길어야 5년간 머무는 본당 신부에 의해 사목방향이 하루아침에 뒤집혀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지성용 신부(인천교구)는 “직무사제직과 여성사제직, 종신부제직에 대한 철저한 신학적 고민과 연구를 통해 여성과 평신도들이 교회 운영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하며, 이를 통해 성직이 갖는 폐쇄성과 편협함을 극복하고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선태 신부(전주교구)는 평신도 위상 제고를 제안하며 “교회는 성직자들만의 교회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교회에서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평신도의 소명과 역할이 새롭게 부각되지 않고서는 교회는 고립될 것”이라며 “교회는 평신도에게 더욱 폭넓은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평신도신학자 김항섭씨는 “교회의 활력과 건전성은 평신도들이 얼마나 뚜렷한 자기 의식을 갖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며 “교회의 역동성을 회복하려면 신자들이 자신들의 종교적 욕구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다양한 기회나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평신도신학자 주원준씨는 “평신도 역할 증진은 사제의 감소와 질적 저하를 보완하는 방법의 일환이라는 인식이 있다”며 “하지만 평신도의 소명과 역할은 특정 시대 특정 문제의 해결 방법을 넘어 교회의 본질과 미래를 위해 중심에 놓고 성찰해야 하는 주제”라고 말했다.



- 한 신학자는 미래 교회를 이끄는 핵심 구조로 ‘주교단의 단체성’을 꼽으며, 교회 쇄신·개혁의 중요한 주체임을 강조했다. 사진은 2011년 대구대교구 설정 100주년 감사미사에서 한국 주교단이 장엄 축복을 하는 모습.

[가톨릭신문, 2013년 4월 14일, 박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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