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게시판

김수환 추기경님을 보내 드리며 (비안네 신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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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재 [vianne] 쪽지 캡슐

2009-02-19 ㅣ No.863

 
 
 

 내일이다...

 내일까지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래서 더 바쁘게 하루를 살았는데...

 뉴스를 보다가

 그 분 편히 누워 계신 관의 뚜껑이 닫힌 것을 보고서는...

 그만 엉엉 울어 버렸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인가...

 중림동 본당 사제관이 축성되던 날

 왠 검은 차에서 어른이 한 분 내리자

 그 때까지 성당에서 제일 높은 줄 알았던 주임 신부님이

 그 분께 고개 숙여 인사를 드린다.

 와~ 이 분은 누구신가?

 진짜 높은 분인가 보다...

 

 그 분이 쓰시던 이상하게 생긴 모자...

 내 역할은 미사 내내 그걸 들고 서 있는 일...

 가끔 모자를 쓰시려고

 내 쪽으로 향하실 때

 난 그 분의 콧털이

 엄청나게

 코 밖으로 삐죽 나온 걸 보고 말았다.

 아~ 높은 분은 저렇게 콧털이 나오나 부다 ^^

 

 난 한참 뒤...

 그 분이 김수환 추기경님이란 걸 알았고

 또 그 분이 우리 나라에서

 제일 높은 신부님이란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곤

 뉴스를 통해

 교회를 통해

 가끔 그 분을 기억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서른이 넘어 난 신학교에 입학했다.

 20여년의 시간이 흐른 후...

 난 그 분과 그렇게

 혜화동에서 함께 사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신학교에서 햇살이 좋던 날

 가끔 그 분을 뵐 수 있었다.

 목자의 길을 홀로 거니시던 모습.

 감히 말씀을 건낼 엄두도 나지 않아

 그저 멀리서 허리까지 깊숙이 숙여 인사를 드리면...

 

 인사를 올리면서도

 한참 후배인 신학생이 눈에나 드셨을까 싶었는데

 그래도 왠 놈이 인사를 올리니

 살짝 손을 들어 주신다.

 완전 감동...

 

 그런데...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휠체어에 앉은 채로

 누군가의 도움에 의해 산책을 나오신 그 분을 보게 되었다.

 따뜻한 봄 날씨인데도

 두꺼운 모포로 무릎을 덮으셨다.

 많이 추우신가 보다...

 얼굴도 많이 변하셨다...

 어쩌나...

 

 서품을 받기 전...

 신학교 최고 학년 부제로서

 추기경님과 사진을 찍었다.

 서품 준비 잘 하라는 말씀에

 큰 소리로 다같이 대답했다...

 아쉽지만

 서품식엔 오시지 못 했다...

 그리고

 새 신부가 되어서 찾아 뵙고 싶었지만...

  

 비서 수녀님 말씀으로는 건강이 많이 안 좋으시다고 한다.

 이제는 병원에 계신다.

 만나 뵙기 어렵겠다...

 

 그러다가 강남 성모 병원으로

 새 사제학교 실습을 나갔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실습 첫 날

 나는 추기경님의 병실을 찾았다.

  

 2008년 새 사제로서

 감히 그 분께 안수 강복을 드렸다.

 수척해진 얼굴

 치아가 불편하셔서 많이 바뀐

 그 분 얼굴을 바라보며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해 드렸다.

 건강하시라고...

 그저 건강하시라고...

 

 그 분의 선종 소식을 들었다.

 울지 않으려고

 진짜 울지 않으려고 했다.

 내일 그 분을 제일 가까이에서

 운구하면서...

 그 때 울려고...

 

 내일 안 울 자신이 없어서...

 그렇게 가까이에서

 당신이 떠남을 슬퍼하는

 새 사제가 있음을

 당신도 기억해 주시라고 청하면서...

 내일 울려고 나흘을 참는 중이었다.

 

 당신께 안수 축복해 드린

 사제들이 아마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 사제들 중에서도

 가장 막내인 새 신부가...

 

 내일 당신 가까이에서

 함께 걷게됨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또 오래도록 기억할 것임을...

 감히 말씀드리고 싶었다.

 

 또 앞으로 그런 기억 속에서

 감히 당신을 닮으며 살아 보겠노라고...

 약속하는 것.

 

 추기경님...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명동에서의 마지막 밤

 편히 주무세요.

 저두 일찍 자렵니다.

 내일 가뿐하게

 용인 함께 가야죠...

 

 편히 쉬십시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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