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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 연옥, 천당에 대하여.. 617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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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05 ㅣ No.634

 

+ 찬미 예수님

 

얼마전에 저승(어두운 곳, Sheol(히브루어) or Hades(그리이스어)), 연옥(Purgatory), 지옥(Hell 혹은 Gehenna)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겠다 한 적이 있었는데, 이를 위하여 시간을 좀 내어 보았습니다.

 

게시자 주: 이들에 대한 구분의 근거로서, 사도신경(Apostle's Creed) 신앙고백문에 대한 "가톨릭 교회 교리서"의 해석과 가르침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이 글을 천천히 잘 읽어 보시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승에 내려가시어 친히 실시한 첫 사심판 (The first particular judgement)이 첫 사심판의 필연적 결과로서 유대교의 오래된 전통으로부터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되는 연옥(Purgatory) 교리에 대하여 좀 더 나은 이해를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1.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고난 끝에 죽임 당하시기 전까지 사후 세계는 천당(heaven, 하늘)과 저승(어두운 곳, Sheol) (= 지옥(Hell or Gehenna)) 뿐이었다.

 

유대인들에 의하여 유대교 내에서 기록된 모세 오경 (즉 Torah)에 의하면, 유대인들이 정복한 가나안(Canaan) 지역에는 그 이전부터 다신교(pagan)를 믿는 부족들이 살고 있었는데, 이들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구약시대의 유대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땅속 지역인 저승(Sheol)에 간다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구약시절에서의 저승(Sheol)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권능을 행사하기 이전의 지옥(Hell or Gehenna)" 입니다. 

 

[게시자 주: 다음의 도표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죽으면 땅에 매장을 하는 오랜 관습 때문인지, 유대인들은, 유대교를 믿지 않는 이방인들이 죽더라도 모두 다 저승(어두운 곳, Sheol)에 모여드는 곳으로 믿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자기네 부족은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백성들이므로, 유대인들의 경우에는 죽고 나서 일정기간 (좀 더 구체적으로 12달)이 경과하고 나면, 살아있는 동안에 아무리 악한 일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모두가 저승(Sheol)에서 천당(heaven, 하늘)으로 간다고 믿었던 모양입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예로서, 유대인들은 지금도 죽은 자를 위한 기도를 12달째가 아니고 장례를 지낸 후 11달째까지 바치는 것을 들 수 있겠습니다. 유대교인들의 전통에 의하면, 죽은 지 12달이 되면 (하느님의 의지에 의하여) 아무리 나쁜 죄를 저지른 유대인이라 하더라도 이 기간 동안에 정화(Purification)를 거친 다음 하느님의 품으로 되돌아 가게 되므로, (죽은 자가 가장 악인이 아님을 뜻하기 위하여인 듯) 죽은 지 12달이 되기 1달 전까지, 죽은 자를 용서하고 거두어 들이시는 하느님을 찬미하는 기도를 살아있는 자들이 함께 바침으로써 하느님께 감사와 자비를 구하는 예식(Mourner's Kaddish)을 거행하는 듯 합니다. 

 

여기를 클릭하면, 유대인들의 죽은 자들을 위한 기도문인 Mourner's Kaddish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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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자 주: 다음은 유대인들의 죽은 자를 위한 기도문인 Mourner's Kaddish에 대한 위 사이트의 내용을 발췌한 것입니다.

 

Kaddish

 

Kaddish is commonly known as a mourner's prayer, but in fact, variations on the Kaddish prayer are routinely recited at many other times, and the prayer itself has nothing to do with death or mourning. The prayer begins "May His great Name grow exalted and sanctified in the world that He created as He willed. May He give reign to His kingship in your lifetimes and in your days ..." and continues in much that vein. The real mourner's prayer is El Molai Rachamim, which is recited at grave sites and during funerals.

   

Why, then, is Kaddish recited by mourners?

 

After a great loss like the death of a parent, you might expect a person to lose faith in G-d, or to cry out against G-d's injustice. Instead, Judaism requires a mourner to stand up every day, publicly (i.e., in front of a minyan, a quorum of 10 adult men), and reaffirm faith in G-d despite this loss. To do so inures to the merit of the deceased in the eyes of G-d, because the deceased must have been a very good parent to raise a child who could express such faith in the face of personal loss.

 

Then why is Kaddish recited for only 11 months, when the mourning period is 12 months? According to Jewish tradition, the soul must spend some time purifying itself before it can enter the World to Come. The maximum time required for purification is 12 months, for the most evil person. To recite Kaddish for 12 months would imply that the parent was the type who needed 12 months of purification! To avoid this implication, the Sages decreed that a son should recite Kaddish for only eleven months.

 

A person is permitted to recite Kaddish for other close relatives as well as parents, but only if his parents are dead.

 

See Mourners' Kaddish for the full text of the Mourners' Kaddish.

 

이상, 유대인들의 죽은 자를 위한 기도문인 Mourner's Kaddish 에 대한 발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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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유대인들에게 저승(어두운 곳, Sheol)은, 

 

(i) 이방인들이 죽은 후에 머무르는 곳 - 즉 천당(heaven, 하늘)에 갈 수 없는 자들이 머무르는 곳 (The Unfaithful, 즉, 이방인들을 말하는, The unjust 이 머무르는 Gehenna), 과 

 

(ii) 유대인들이 죽은 후에 머무르는 곳 - 즉 죽고 나서 12달 후에 모두 천당(heaven, 하늘)으로 가는 자들이 머무르는 곳 (The faithful, 즉, 유다인들을 말하는, The Just이 머무르는 Abode of the Just (Abraham's Bosom)), 

 

두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는 것으로 이해하였던 모양입니다.

 

[사족이지만, 신약 세 공관 복음서에 기록된 소위 말하는 매해 8월 6일에 거행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삼위일체가 드러나는 "주님 거룩한 변모 축일", 즉 "Transfiguration of the Lord - Feast", Mark 9:2-10, Matthew 17:1-9, Luke 9:28-36 (클릭하세요)도, 위에 말씀드린 유대인들의 사후 세계관을 전제로 할 때에, 비로소 우리들이 그 의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지금까지의 유대교의 문헌에도, 비록 다양한 견해는 있으나, 내세에 대한 구체적 언급 혹은 학설은 아직은 없는 듯 하며, 또한 바로 이 점 때문에 유대인들은 "그들의 메시아" 즉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던 현실에서 자기네 부족을 해방시켜 주고, 더 나아가 지상 세계를 유대인들이 지배하게 해 줄 메시아"를 찾고 있었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배타적이지 아니한 진정한 의미의 "메시아", 즉 "우리 모두를 하느님의 품으로 되돌아가게 해 주시는 분", 으로 받아 들일 수가 없었던 듯 합니다.

 

또한 이 부분은, 유대인들이 자기 부족은 하느님의 택함을 받았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오래 전부터 저승(어두운 곳, Sheol)을, 소위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해하고 있는 지옥(Hell or Gehenna)가 아니라, 사실은 연옥(Purgatory)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고난 후 죽임 당하여 저승(어두운 곳, Sheol)에 친히 내려가시여, 그 곳에 머무르고 있는 유대인 및 이방인 죽은 자들 중에서 의로운 자들와 악한 자들을 구분하는 사심판(particular judgement)을 처음으로 행사하시기 전까지는, 사후 세계를 크게 대별하면 천당(heaven, 하늘)과 저승(어두운 곳, Sheol)뿐이었으며, 이러한 생각은 대체적으로 지구상 대부분 민족들의 전통적 사후 세계관과도 그리 다르지 않는 듯 합니다.

 

굿뉴스 성서 묻고 답하기 제 1752번 글 참고
굿뉴스 성서 묻고 답하기 제 1753번 글 댓글 참고
굿뉴스 성서 묻고 답하기 제 1735번 글 댓글 참고

 

2.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고난 끝에 죽임 당하시고 난 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저승(어두운 곳, Sheol)을, 기독교 신자 (가톨릭 및 개신교 포함)들이 이해하고 있는, 연옥(Purgatory)과 지옥(Hell or Gehenna)으로 구분하셨다.

 

이에 관한 내용은, 다음에 발췌한 가톨릭 교회 교리서 631-637 에 구체적으로 언급이 되고 있습니다. (클릭하세요) 즉,

 

631 Jesus "descended into the lower parts of the earth. He who descended is he who also ascended far above all the heavens."476 The Apostles' Creed confesses in the same article Christ's descent into hell and his Resurrection from the dead on the third day, because in his Passover it was precisely out of the depths of death that he made life spring forth:

 

Christ, that Morning Star, who came back from the dead,
and shed his peaceful light on all mankind,
your Son who lives and reigns for ever and ever. Amen.477

 

631 예수님께서는 “땅 아래의 세계에까지 내려가셨습니다.……그리고 내려가셨던 바로 그분께서……하늘 위로 올라 가셨습니다”(에페 4,9-10). 사도 신경은 그리스도께서 저승에 가심과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셨음을 같은 조항에서 고백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파스카 안에서, 바로 죽음에서 생명이 솟아나게 하셨기 때문이다.

 

무덤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
인류를 밝게 비추시는 샛별이여,
성자께서는 세세에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아멘.527)

 

632 The frequent New Testament affirmations that Jesus was "raised from the dead" presuppose that the crucified one sojourned in the realm of the dead prior to his resurrection.478 This was the first meaning given in the apostolic preaching to Christ's descent into hell: that Jesus, like all men, experienced death and in his soul joined the others in the realm of the dead. But he descended there as Savior, proclaiming the Good News to the spirits imprisoned there.479

 

632 예수님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다.”(1고린 15,20)고528) 하는 신약성서에 자주 나오는 이 표현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기 전에 죽은 자들의 거처에 머물러 계셨다는 사실을 전제 조건으로 한다.529) 이것은 사도적 설교가 예수님께서 저승에 가신 사실에 부여한 첫째 의미이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인간과 마찬가지로 죽음을 겪으셨고, 그 영혼은 죽은 이들의 거처에서 그들과 함께 계셨다. 그러나 그분은 그 곳에 묶여 있는 영혼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구원자로서 그 곳에 내려가신 것이다.530)

 

633 Scripture calls the abode of the dead, to which the dead Christ went down, "hell"—Sheol in Hebrew or Hades in Greek—because those who are there are deprived of the vision of God.480 Such is the case for all the dead, whether evil or righteous, while they await the redeemer: which does not mean that their lot is identical, as Jesus shows through the parable of the poor man Lazarus who was received into "Abraham's bosom":481 "It is precisely these holy souls, who awaited their Savior in Abraham's bosom, whom Christ the Lord delivered when he descended into hell."482 Jesus did not descend into hell to deliver the damned, nor to destroy the hell of damnation, but to free the just who had gone before him.483

 

633 돌아가신 그리스도께서 내려가신 죽은 자들의 거처를 성서는 저승이나 셔올(지옥)이라고 하는데,531) 이 곳에 있는 이들이 하느님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532) 사실 악인이건 의인이건 구세주를 기다리는 모든 죽은 이의 경우가 그렇듯이,533) 예수님께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 불쌍한 라자로의 비유에서 보여 주시듯이534) 그들의 운명이 모두 같다고는 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승에 가 구해 내신 것은 아브라함의 품에서 자신들의 해방자를 기다리던 거룩한 영혼들이었다.”535) 예수님께서는 지옥에 떨어진 이들을 구하거나536) 저주받은 지옥을 파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537) 당신보다 먼저 간 의인들을 해방시키고자 저승에 가신 것이다.538)

 

634 "The gospel was preached even to the dead."484 The descent into hell brings the Gospel message of salvation to complete fulfillment. This is the last phase of Jesus' messianic mission, a phase which is condensed in time but vast in its real significance: the spread of Christ's redemptive work to all men of all times and all places, for all who are saved have been made sharers in the redemption.

 

634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해진 것입니다……”(1베드 4,6). 예수님께서 저승에 가심은 구원의 복음 선포의 충만한 완성이다. 이는 예수님의 메시아적 사명의 궁극적 단계이며 시간 안에 압축된 단계이지만, 구원된 모든 사람이 구속에 참여하게 되었기 때문에 구원 사업이 모든 시대, 모든 장소의 모든 사람에게 미친다는 실제적인 의미에서 무한히 방대한 단계이다.

 

635 Christ went down into the depths of death so that "the dead will hear the voice of the Son of God, and those who hear will live."485 Jesus, "the Author of life," by dying destroyed "him who has the power of death, that is, the devil, and [delivered] all those who through fear of death were subject to lifelong bondage."486 Henceforth the risen Christ holds "the keys of Death and Hades," so that "at the name of Jesus every knee should bow, in heaven and on earth and under the earth."487

 

Today a great silence reigns on earth, a great silence and a great stillness. A great silence because the King is asleep. The earth trembled and is still because God has fallen asleep in the flesh and he has raised up all who have slept ever since the world began. . . . He has gone to search for Adam, our first father, as for a lost sheep. Greatly desiring to visit those who live in darkness and in the shadow of death, he has gone to free from sorrow Adam in his bonds and Eve, captive with him—He who is both their God and the son of Eve. . . . "I am your God, who for your sake have become your son. . . . I order you, O sleeper, to awake. I did not create you to be a prisoner in hell. Rise from the dead, for I am the life of the dead."488

 

635 결국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이들이 하느님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 목소리를 듣는 이들을 살게”(요한 5,25) 하시고자 죽음의 심연으로 내려가셨다.539) “생명의 주관자”이신540) 예수님께서는 “죽으심으로써,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악마를 멸망시키시고 한평생 죽음의 공포에 싸여 살던 사람들을 해방시켜 주셨다”(히브 2,14-15). 이제부터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죽음과 지옥의 열쇠를 쥐고 계시며”(묵시 1,18),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모든 것이 예수님의 이름을 받들어 무릎을 꿇을 것이다”(필립 2,10).

 

오늘 깊은 침묵이 온 땅을 덮고 있습니다. 하나의 깊은 침묵이요 고독입니다. 임금님께서 주무시기에 깊은 침묵입니다. 하느님께서 육신을 지니고 잠드셨으며, 옛적부터 잠들어 있던 이들을 깨우러 가셨기에 땅은 떨며 말을 잃었습니다.……주님은 잃어버린 양인 원조 아담을 찾아가십니다. 주님은 죽음의 그늘 밑, 어두움 속에 앉아 있는 모든 이를 만나러 가고자 하십니다. 그들의 하느님이며 동시에 그들의 후손이신 그분은 아담과 함께 묶여 있는 하와를 고통에서 해방시키고자 찾아가십니다.……“나는 너의 하느님이지만 너를 위하여 너의 아들이 되었다.……잠자는 너는 잠에서 깨어나거라. 지옥의 사슬에 매여 있도록 너를 창조하지 않았다. 죽은 이들 가운데서 일어나 나오너라. 나는 죽은 자들의 ‘생명’이니라.”541)

 

IN BRIEF

 

636 By the expression "He descended into hell," the Apostles' Creed confesses that Jesus did really die and through his death for us conquered death and the devil "who has the power of death" (Heb 2:14).

636 “예수님께서 저승에 가셨다.”는 표현으로써 신경은 예수님이 참으로 죽으셨으며, 우리를 위하여 당신이 죽으시어 죽음과 “죽음의 세력을 잡은”(히브 2,14) 악마를 멸망시키셨다는 것을 고백한다.

 

637 In his human soul united to his divine person, the dead Christ went down to the realm of the dead. He opened heaven's gates for the just who had gone before him.

 

637 돌아가신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신적 위격과 결합된 영혼으로 죽은 이들의 거처로 내려가셨다. 그분은 당신보다 앞서 간 의인들에게 하늘의 문을 열어 주셨다.

 

3. 따라서, 여기까지의 내용을 잘 읽어 보면 우리들은 다음을 알 수 있습니다.

 

3-1. 사도신경(Apostle's Creed)에 기록된 바와 같이, 삼위일체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유대인들이 말하는 저승의 한 영역인 Abraham's bosom (아브라함의 품)을 포함한) 저승(어두운 곳, Sheol)에 친히 내려가시어, 저승(어두운 곳, Sheol)에 대한 심판으로서,

 

(1) 사심판(particular judgement)을 처음으로 행사하심과 함께, 

 

(2) (의로운 유대인뿐만이 아니라) 당신을 영생의 구원자로 믿다 죽은 자 모두 (즉 유대인이 아닌 모두)에게 (당신의 무한한 자비를 통하여 비로소 가능한) 영원한 생명을 주기 위하여 "유대인들 만의 아브라함의 품, 즉 고성소"를 "당신을 구세주로 믿는 모든 자 (즉 유대인과 이방인 포함)들을 위한 연옥(Purgatory) 즉, 연옥 교회"로  거듭나게 하셨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부터) 유대교 신앙 안에서 오래 전부터 존재해 왔던 - 그러나 유대교의 배타성 때문에 인류구원을 위하여서는 부족하였던 그리고 아담과 하와의 원죄 이후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 까지 천당(heaven, 하늘)의 문이 닫혀 있었기에) 사후 세계인 저승(어두운 곳, Sheol)에 존재한 - "유대인들만의 아브라함의 품(Abraham's bosom)"을, 전지전능하신 삼위일체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기독교 (가톨릭 및 개신교 포함) 신자들을 위한 아브라함의 품", 즉, 연옥(Purgatory)으로 거듭나게하신 것입니다. 

 

달리 말하여, 죄인들이 죽은 후에 "파스까의 신비"의 최후의 단계가 이루어지는 상태가 바로 "연옥"이기에, 연옥은 죄인들의 구원을 위한 필요조건이며, 연옥 영혼은 하느님을 뵙기 위하여 불로 정화 받는다고 알려진 단련과정을 마친 후에 모두가 천당(heaven, 하늘)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게시자 주: "죄인들에게 연옥은 구원의 필요조건입니다" 게시글로 바로가기 (클릭하여 꼭 읽어 보도록 하세요).

 

그런데, 16세기 초에 종교분리 획책을 시작한 마르틴 루터마저도 파문 당하기 전에는 이러한 연옥교리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였으나 (주: 당시 95개조항으로 이루어진 마르틴 루터의 대자보 그 자체가 연옥이 존재함을 대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이단적 주장 때문에 교황청으로 부터 파문을 당하게 되자, 자신을 파문한 교황성하의 수위권을 거부하기 위한 보복 조치으로서, "연옥은 없다"라는 이단적 주장을 만들어 개신교 지지자 (즉, 교황성하의 권능을 부인하는 자)들에게 퍼뜨리기까지, 연옥교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으로써 가톨릭 교회를 세우신 이후 마르틴 루터가 나타날 때까지 약 1500여년 동안 가톨릭 교회의 핵심 믿음 중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게시자 주: 오래전에 파문당한 마르틴 루터는 과연 복권될 수 있을까? 제목의 게시글로 바로가기 (클릭하여 꼭 읽어 보도록 하세요)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삼위일체 교리와 마찬가지로, 연옥교리 또한 하느님께서 당신의 거룩한 의지(Divine Will)을 행사하시어 스스로 밝히신 계시교리로 이해하여야 할 것입니다.

 

일단 여기까지 이해를 하고 나면, 다음의 사심판, 천당, 연옥, 지옥에 대한 가톨릭 교회 교리서의 설명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1020 The Christian who unites his own death to that of Jesus views it as a step towards him and an entrance into everlasting life. When the Church for the last time speaks Christ's words of pardon and absolution over the dying Christian, seals him for the last time with a strengthening anointing, and gives him Christ in viaticum as nourishment for the journey, she speaks with gentle assurance:

 

Go forth, Christian soul, from this world
in the name of God the almighty Father,
who created you,
in the name of Jesus Christ, the Son of the living God,
who suffered for you,
in the name of the Holy Spirit,
who was poured out upon you.
Go forth, faithful Christian!

May you live in peace this day,
may your home be with God in Zion,
with Mary, the virgin Mother of God,
with Joseph, and all the angels and saints. . . .

May you return to [your Creator]
who formed you from the dust of the earth.
May holy Mary, the angels, and all the saints
come to meet you as you go forth from this life. . . .
May you see your Redeemer face to face. . . .591

 

1020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죽음을 예수님의 죽음과 연결지으며, 죽음을 예수께 돌아가는 것으로,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여긴다. 교회는 죽음을 앞둔 그리스도인에게 죄를 용서해 주시는 그리스도의 사죄 말씀을 마지막으로 들려 주고, 힘을 북돋우는 도유(塗油)로 날인하며, 여행을 위한 양식인 노자성체로 그리스도를 모시게 하며, 다음과 같이 평안을 빌어 준다.

 

하느님, 그리스도를 믿는 이 영혼이 이제 세상을 떠나려 하나이다.
이 영혼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천주 성부님, 이 영혼을 받아들이소서.
이 영혼을 위하여 수난하신 천주 성자 예수 그리스도님, 이 영혼을 받아들이소서.
이 영혼을 찾아오신 천주 성령님, 이 영혼을 받아들이소서.
오늘 이 영혼에게 평화를 주시고,
거룩한 시온에서 주님을 우러러 뵈오며 길이 살게 하소서.
천주의 성모 동정 마리아와 성 요셉과 모든 천사와 성인과 함께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일찍이 흙으로 만드신 이 교우를 주님께 돌아가게 하소서.
성모 마리아와 모든 천사와 성인들이
세상을 떠나 주님께로 돌아가는 이 교우를
즐거이 맞아들이게 하소서.……
구세주이신 주님을 뵈오며
영원히 하느님을 직접 뵈옵게 하소서.605)


I. The Particular Judgement (사심판)

 

1021 Death puts an end to human life as the time open to either accepting or rejecting the divine grace manifested in Christ.592 The New Testament speaks of judgment primarily in its aspect of the final encounter with Christ in his second coming, but also repeatedly affirms that each will be rewarded immediately after death in accordance with his works and faith. The parable of the poor man Lazarus and the words of Christ on the cross to the good thief, as well as other New Testament texts speak of a final destiny of the soul—a destiny which can be different for some and for others.593

 

1021 죽음은 그리스도 안에 드러난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수 있는 시간인 인생에 끝을 맺는다.606) 신약성서는 심판을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그분과의 마지막 만남이라고 하는 관점에서 주로 이야기하지만, 각자가 죽은 뒤 곧바로 자신의 행실과 믿음에 따라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도 반복하여 천명한다. 불쌍한 라자로의 비유,607) 십자가 위에서 회개한 도둑에게 하신 말씀,608) 그 밖에 다른 여러 대목들은609) 사람에 따라 서로 다를 수 있는 영혼의 궁극적 운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610)

 

1022 Each man receives his eternal retribution in his immortal soul at the very moment of his death, in a particular judgment that refers his life to Christ: either entrance into the blessedness of heaven—through a purification594 or immediately,595—or immediate and everlasting damnation.596

At the evening of life, we shall be judged on our love.597

 

1022 각 사람은 죽자마자 자신의 삶을 그리스도께 셈바치는 사심판으로 그 불멸의 영혼 안에서 영원한 갚음을 받게 된다. 이러한 대가는 정화를 거치거나,611) 곧바로 하늘의 행복으로 들어가거나,612) 곧바로 영원한 벌을 받는 것이다.613)

 

우리의 삶이 저물었을 때 우리는 사랑에 대하여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614)


II. Heaven (천당)

 

1023 Those who die in God's grace and friendship and are perfectly purified live for ever with Christ. They are like God for ever, for they "see him as he is," face to face:598

By virtue of our apostolic authority, we define the following: According to the general disposition of God, the souls of all the saints . . . and other faithful who died after receiving Christ's holy Baptism (provided they were not in need of purification when they died, . . . or, if they then did need or will need some purification, when they have been purified after death, . . .) already before they take up their bodies again and before the general judgment—and this since the Ascension of our Lord and Savior Jesus Christ into heaven—have been, are and will be in heaven, in the heavenly Kingdom and celestial paradise with Christ, joined to the company of the holy angels. Since the Passion and death of our Lord Jesus Christ, these souls have seen and do see the divine essence with an intuitive vision, and even face to face, without the mediation of any creature.599

 

1023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을 간직하고 죽은 사람들과 완전히 정화된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살게 된다. 그들은 하느님의 “참 모습을”(1요한 3,2) “얼굴을 맞대고”(1고린 13,12)615) 보기 때문에 영원히 하느님을 닮게 될 것이다.
 
사도들에게서 이어받은 권위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정의를 내린다. 곧, 하느님의 보편적인 안배에 따라 모든 성인의 영혼과……다른 모든 죽은 신자들, 그리스도의 거룩한 세례를 받고 죽은 사람들로서 그들이 죽을 때 더 이상 정화할 것이 없었거나……나아가 정화해야 할 것이 과거에 있었거나 정화할 것을 지닌 채 죽었어도 죽은 후에 온전히 정화된 영혼들은……그들의 육체 안에서 부활하기 전에 그리고 공심판 전에, 그리고 우리 주님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부터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 하늘 나라, 하늘 낙원에서 거룩한 천사들의 모임에 받아들여졌으며, 받아들여지고 있고, 받아들여질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이후로 이 영혼들은 어떠한 피조물도 거치지 않고 지복직관으로, 얼굴을 맞대고 신적 본질을 보았고, 보고 있다.616)

 

1024 This perfect life with the Most Holy Trinity—this communion of life and love with the Trinity, with the Virgin Mary, the angels and all the blessed—is called "heaven." Heaven is the ultimate end and fulfillment of the deepest human longings, the state of supreme, definitive happiness.

 

1024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하느님과 함께하는 이 완전한 삶, 곧 성삼위와 동정 마리아와 천사들과 모든 복되신 분들과 함께하는 생명과 사랑의 이 친교를 ‘천당(heaven)’이라고 부른다. 천당(heaven)은 인간의 궁극적 목적이며, 가장 간절한 열망의 실현이고, 가장 행복한 결정적 상태이다.

 

1025 To live in heaven is "to be with Christ." The elect live "in Christ,"600 but they retain, or rather find, their true identity, their own name.601

 

For life is to be with Christ; where Christ is, there is life, there is the kingdom.602

 

1025 천당(heaven, 하늘)에서 사는 것은 “그리스도와 같이 있는 것”이다.617) 뽑힌 이들은 ‘그리스도 안에’ 살지만 그들이 그 곳에서 자신들의 참된 신원과 자신들 본래의 이름을 간직하며, 간직한다기보다는 오히려 발견한다고 할 수 있다.618)

 

산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계신 곳에 생명이 있고 하늘 나라가 있습니다.619)

 

1026 By his death and Resurrection, Jesus Christ has "opened" heaven to us. The life of the blessed consists in the full and perfect possession of the fruits of the redemption accomplished by Christ. He makes partners in his heavenly glorification those who have believed in him and remained faithful to his will. Heaven is the blessed community of all who are perfectly incorporated into Christ.

 

1026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우리에게 천당(heaven)을 ‘열어’ 주셨다. 천당(heaven, 하늘)의 복된 사람들의 삶은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의 결과를 완전히 차지하는 데 있으니,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믿고 당신의 뜻을 끝까지 충실하게 지켜 온 사람들을 하늘의 당신 영광에 참여시키신다. 천당(heaven, 하늘)은 그리스도와 온전히 한 몸이 된 모든 사람의 복된 공동체이다.

 

1027 This mystery of blessed communion with God and all who are in Christ is beyond all understanding and description. Scripture speaks of it in images: life, light, peace, wedding feast, wine of the kingdom, the Father's house, the heavenly Jerusalem, paradise: "no eye has seen, nor ear heard, nor the heart of man conceived, what God has prepared for those who love him."603

 

1027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과 하느님 사이에 이루어지는 복된 친교의 이 신비는 모든 이해와 표현을 초월한다. 성서는 이를 생명, 빛, 평화, 혼인 잔치, 하늘 나라의 포도주, 아버지의 집, 천상 예루살렘, 낙원 등 비유적인 표상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해 준다. “눈으로 본 적이 없고 귀로 들은 적이 없으며 아무도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마련해 두셨다”(1고린 2,9).

 

1028 Because of his transcendence, God cannot be seen as he is, unless he himself opens up his mystery to man's immediate contemplation and gives him the capacity for it. The Church calls this contemplation of God in his heavenly glory "the beatific vision":

 

How great will your glory and happiness be, to be allowed to see God, to be honored with sharing the joy of salvation and eternal light with Christ your Lord and God, . . . to delight in the joy of immortality in the Kingdom of heaven with the righteous and God's friends.604

 

1028 하느님께서는 초월적인 분이시기 때문에, 당신 스스로 인간이 직접 볼 수 있도록 당신의 신비를 드러내 보이시거나 인간에게 그러한 능력을 주실 때에만 그 참 모습이 보이는 것이다. 이처럼 천상 영광 안의 하느님을 뵙는 것을 교회는 지복직관’(至福直觀)이라고 부른다.

 

하느님을 뵙고, 당신의 하느님 주 그리스도와 함께 구원과 영원한 빛의 기쁨에 참여하는 영예를 누리며……하늘 나라에서 의인들과 하느님의 벗들과 함께 불멸의 기쁨을 얻어 누리는 것이 어찌 영광과 행복이 아닐 수 있겠습니까?620)

 

1029 In the glory of heaven the blessed continue joyfully to fulfill God's will in relation to other men and to all creation. Already they reign with Christ; with him "they shall reign for ever and ever."605

 

1029 지복을 누리는 사람들은 하늘의 영광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 피조물 전체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기쁘게 계속 수행한다. 그들은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고 있으며,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무궁토록 다스릴 것이다”(묵시 22,5).621)


III. The Final Purification, or Purgatory (연옥)

 

1030 All who die in God's grace and friendship, but still imperfectly purified, are indeed assured of their eternal salvation; but after death they undergo purification, so as to achieve the holiness necessary to enter the joy of heaven.

 

1030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서 죽었으나 완전히 정화되지 않은 사람들은 영원한 구원이 보장되기는 하지만, 하늘의 기쁨으로 들어가기에 필요한 거룩함을 얻으려면 죽은 다음에 정화를 거쳐야 한다.

 

1031 The Church gives the name Purgatory to this final purification of the elect, which is entirely different from the punishment of the damned.606 The Church formulated her doctrine of faith on Purgatory especially at the Councils of Florence and Trent. The tradition of the Church, by reference to certain texts of Scripture, speaks of a cleansing fire:607

 

As for certain lesser faults, we must believe that, before the Final Judgment, there is a purifying fire. He who is truth says that whoever utters blasphemy against the Holy Spirit will be pardoned neither in this age nor in the age to come. From this sentence we understand that certain offenses can be forgiven in this age, but certain others in the age to come.608

 

1031 교회는 선택된 이들이 거치는 이러한 정화를 연옥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단죄받은 이들이 받는 벌과는 전혀 다르다. 교회는 연옥에 관한 신앙 교리를 특히 피렌체 공의회와622) 트리엔트 공의회에서623) 확정하였다. 교회의 전승은 성서의 어떤 대목들을624) 참고하여 정화하는 불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떤 사람이 성령을 거슬러 모독하는 말을 한다면 그 사람은 현세에서도 내세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것(마태 12,32)이라고 진리이신 분께서 말씀하신 것으로 보아, 가벼운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을 심판하기 전에 정화하는 불이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 구절에서 우리는, 어떤 죄들은 현세에서 용서받을 수 있지만 다른 어떤 죄들은 내세에서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625)

 

1032 This teaching is also based on the practice of prayer for the dead, already mentioned in Sacred Scripture: "Therefore [Judas Maccabeus] made atonement for the dead, that they might be delivered from their sin."609 From the beginning the Church has honored the memory of the dead and offered prayers in suffrage for them, above all the Eucharistic sacrifice, so that, thus purified, they may attain the beatific vision of God.610 The Church also commends almsgiving, indulgences, and works of penance undertaken on behalf of the dead:

 

Let us help and commemorate them. If Job's sons were purified by their father's sacrifice, why would we doubt that our offerings for the dead bring them some consolation? Let us not hesitate to help those who have died and to offer our prayers for them.611

 

1032 이러한 가르침은 성서에서 이미 말하고 있는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의 관습에도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유다 마카베오가) 죽은 자들을 위해서 속죄의 제물을 바친 것은 그 죽은 자들이 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2마카 12,45). 교회는 초기부터 죽은 이들을 존중하고 기념하였으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특히 미사 성제를 드렸다.626) 그것은 그들이 정화되어 지복직관에 다다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또 교회는 죽은 이들을 위한 자선과 대사(大赦)와 보속도 권한다.

 

그들을 도와 주고, 그들을 기억합시다. 욥의 아들들이 아버지의 번제로 정화되었다면,627) 죽은 이들을 위한 우리의 봉헌 제물이 그들에게 위로를 준다는 것을 왜 의심하겠습니까? 주저하지 말고 세상을 떠난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그들을 위해 기도드립시다.628)


IV. Hell (지옥)

 

1033 We cannot be united with God unless we freely choose to love him. But we cannot love God if we sin gravely against him, against our neighbor or against ourselves: "He who does not love remains in death. Anyone who hates his brother is a murderer, and you know that no murderer has eternal life abiding in him."612 Our Lord warns us that we shall be separated from him if we fail to meet the serious needs of the poor and the little ones who are his brethren.613 To die in mortal sin without repenting and accepting God's merciful love means remaining separated from him for ever by our own free choice. This state of definitive self-exclusion from communion with God and the blessed is called "hell."

 

1033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기로 자유로이 선택하지 않는 한 우리는 그분과 결합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하느님이나 이웃이나 우리 자신에 대해 중한 죄를 짓는다면 하느님을 사랑할 수 없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죽음 속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누구나 다 살인자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살인자는 결코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없습니다”(1요한 3,14-15). 우리 주님께서는 만일 우리가 그분의 형제들인 가난한 사람들과 보잘것없는 사람들에게 절박하게 필요한 것들을 도와 주기를 소홀히 한다면 당신과 갈라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신다.629) 죽을 죄를 뉘우치지 않고 하느님의 자비로우신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은 채 죽는 것은 곧 영원히 하느님과 헤어져 있겠다고 우리 자신이 자유로이 선택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지옥’이라는 말은 이처럼 하느님과 또 복된 이들과 이루는 친교를 결정적으로 ‘스스로 거부한’ 상태를 일컫는다.

 

1034 Jesus often speaks of "Gehenna," of "the unquenchable fire" reserved for those who to the end of their lives refuse to believe and be converted, where both soul and body can be lost.614 Jesus solemnly proclaims that he "will send his angels, and they will gather . . . all evil doers, and throw them into the furnace of fire,"615 and that he will pronounce the condemnation: "Depart from me, you cursed, into the eternal fire!"616

 

1034 예수님께서는 믿고 회개하기를 끝까지 거부하는 사람들이 가게 되는 꺼지지 않는 불이630) 타고 있는 ‘지옥’(Gehenna)에 대해 자주 말씀하신다. 그 곳에서는 영혼과 육신이 함께 멸망하게 된다.631)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자기 천사들을 보낼 터인데 그들은……악행을 일삼는 자들을 모조리 자기 나라에서 추려 내어 불구덩이에 처넣을 것이다.”(마태 13,41-42) 하고 엄숙히 선언하시며,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영원한 불 속에 들어가라!”(마태 25,41) 하고 단죄하실 것이다.

 

1035 The teaching of the Church affirms the existence of hell and its eternity. Immediately after death the souls of those who die in a state of mortal sin descend into hell, where they suffer the punishments of hell, "eternal fire."617 The chief punishment of hell is eternal separation from God, in whom alone man can possess the life and happiness for which he was created and for which he longs.

 

1035 교회는 지옥의 존재와 그 영원함을 가르친다. 죽을 죄의 상태에서 죽는 사람들의 영혼은 죽은 다음 곧바로 지옥으로 내려가며, 그 곳에서 지옥의 고통, 곧 “영원한 불”의632) 고통을 겪는다. 지옥의 주된 고통은, 인간이 창조된 목적이며 인간이 갈망하는 생명과 행복을 주시는 유일한 분이신 하느님과 영원히 단절되는 것이다.

 

1036 The affirmations of Sacred Scripture and the teachings of the Church on the subject of hell are a call to the responsibility incumbent upon man to make use of his freedom in view of his eternal destiny. They are at the same time an urgent call to conversion: "Enter by the narrow gate; for the gate is wide and the way is easy, that leads to destruction, and those who enter by it are many. For the gate is narrow and the way is hard, that leads to life, and those who find it are few."618

 

Since we know neither the day nor the hour, we should follow the advice of the Lord and watch constantly so that, when the single course of our earthly life is completed, we may merit to enter with him into the marriage feast and be numbered among the blessed, and not, like the wicked and slothful servants, be ordered to depart into the eternal fire, into the outer darkness where "men will weep and gnash their teeth."619

 

1036 지옥에 대한 성서의 단언과 교회의 가르침은, 인간 자신의 영원한 운명을 위하여 책임감을 가지고 자신의 자유를 사용하라는 호소이다. 그리고 동시에 그것은 회개하라는 절박한 호소이기도 하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거라. 멸망에 이르는 문은 크고 또 그 길이 넓어서 그리로 가는 사람이 많지만 생명에 이르는 문은 좁고 또 그 길이 험해서 그리로 찾아드는 사람이 적다”(마태 7,13-14).

 

주님의 경고대로 우리는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므로 언제나 깨어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단 한 번뿐인 우리 지상 생활의 여정을 마친 다음에 주님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 축복받은 이들과 함께 헤아려질 수 있을 것이며, 악하고 게으른 종들처럼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거나 바깥 어둠 속에 내쫓아 거기에서 절치 통곡하게 하라는 명령을 듣지 않을 것이다.633)

 

1037 God predestines no one to go to hell;620 for this, a willful turning away from God (a mortal sin) is necessary, and persistence in it until the end. In the Eucharistic liturgy and in the daily prayers of her faithful, the Church implores the mercy of God, who does not want "any to perish, but all to come to repentance":621

 

Father, accept this offering
from your whole family.
Grant us your peace in this life,
save us from final damnation,
and count us among those you have chosen.622

 

1037 하느님께서는 아무도 지옥에 가도록 예정하지 않으신다.634) 자유 의사로 하느님께 반항하고(죽을 죄를 짓고) 끝까지 그것을 고집함으로써 지옥에 가게 되는 것이다. 미사 전례와 신자들의 일상 기도를 통하여 교회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게 되기를”(2베드 3,9) 바라시는 하느님의 자비를 빈다.

 

주님, 저희 봉사자들과 온 가족이 바치는
이 예물을 기꺼이 받아들이소서.
저희를 한평생 평화롭게 하시며
영원한 벌을 면하고 뽑힌 이들의 무리에 들게 하소서.635)

 

3-2.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사흘 동안 저승에 머무르면서 저승(어두운 곳, Sheol)을 평정하신 후에, "파스카의 신비"를 완성시키기 위하여 또한 이 세상으로 스스로 부활하시어, "유대인들만의 구원을 위한 회당(Synagogue)"을, "기독교 (가톨릭 및 개신교) 신자 - 즉 당신을 영생의 구원자로 믿는 모든 자 - 들의 회당, 즉 지상 교회(The Established Church = Catholic Church)"거듭나게하셨다.

 

게시자 주: 여기를 클릭하여 해당 내용인 가톨릭 교회 교리서 638-667 내용을 꼭 읽어 보도록 하세요.

 

3-3. 신약성경에 기록되어 있듯이, 삼위일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상 교회를 세우신 후 40일 동안 12 제자들을 가르친 후에 천상 교회(Heavenly Church)로 올라 가셨으며, 그 이후로, 다시 이 세상에 당신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각 개인의 몸(Body)이 죽자 마자 몸과 분리되는 영혼(Soul)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심판(particular judgement, 개별 심판)을 직접 주관하시어, 상선벌악 판결을 하신다.

 

게시자 주: "영(Spirit)과 영혼 혹은 혼(Soul)과 몸(Body)에 대하여" 제목의 게시글로 바로가기 (클릭하여 꼭 읽어 보도록 하세요)

 

3-4. 이 상선벌악 판결에 따라, 죽은 자의 영혼은

 

(i) 천당(Heaven,  하늘, 천상 교회),

 

(ii) 연옥(Purgatory, 연옥 교회), 혹은

 

(iii) 지옥(Gehenna, Hell),

 

으로 가게 된다.

 

그리고 연옥에 간 영혼은, 천주를 뵙기 위한 성화(Sanctification)의 마지막 단계인 마지막 정화(Final Purification)를 마친 후에 모두 천당(heaven, 하늘)으로 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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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자 주:  다음은 2006년 6월 28일자로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 출판을 인준하신 "가톨릭 교회 교리서 요약" 125-131 및 207-216 을 발췌한 것입니다. (여기를 클릭하여 더 자세한 안내를 읽어 보도록 하세요)

 

번호가 붙은 각 제목의 바로 아래의 번호는 (예를 들어, 125. What is .. 바로 아래의 번호 632-637), 가톨릭 교회 교리서 중의 해당 내용 632-637 을 그 다음에 있는 문장으로 요약하였음을 나타냅니다.

 

“Jesus Christ descended into hell;
on the third day He rose again from the dead.”

 

125. What is the “hell” into which Jesus descended?

632-637

This “hell” was different from the hell of the damned. It was the state of all those, righteous and evil, who died before Christ. With his soul united to his divine Person Jesus went down to the just in hell who were awaiting their Redeemer so they could enter at last into the vision of God. When he had conquered by his death both death and the devil “who has the power of death” (Hebrews 2:14), he freed the just who looked forward to the Redeemer and opened for them the gates of heaven.

 

126. What place does the Resurrection of Christ occupy in our faith?

631, 638

The Resurrection of Jesus is the crowning truth of our faith in Christ and represents along with his cross an essential part of the Paschal Mystery.

 

127. What are the signs that bear witness to the Resurrection of Jesus?

639-644 
656-657

Along with the essential sign of the empty tomb, the Resurrection of Jesus is witnessed to by the women who first encountered Christ and proclaimed him to the apostles. Jesus then “appeared to Cephas (Peter) and then to the Twelve. Following that he appeared to more than five hundred of the brethren at one time” (1 Corinthians 15:5-6) and to others as well. The apostles could not have invented the story of the resurrection since it seemed impossible to them. As a matter of fact, Jesus himself upbraided them for their unbelief.

 

128. Why is the Resurrection at the same time a transcendent occurrence?

647
656-657

While being an historical event, verifiable and attested by signs and testimonies, the Resurrection, insofar as it is the entrance of Christ's humanity into the glory of God, transcends and surpasses history as a mystery of faith. For this reason the risen Christ did not manifest himself to the world but to his disciples, making them his witnesses to the people.

 

129. What is the condition of the risen body of Jesus?

645-646

The Resurrection of Christ was not a return to earthly life. His risen body is that which was crucified and bears the marks of his passion. However it also participates in the divine life, with the characteristics of a glorified body. Because of this the risen Jesus was utterly free to appear to his disciples how and where he wished and under various aspects.

 

130. How is the Resurrection the work of the Most Holy Trinity?

648-650

The Resurrection of Christ is a transcendent work of God. The three Persons act together according to what is proper to them: the Father manifests his power; the Son “takes again” the life which he freely offered (John 10:17), reuniting his soul and his body which the Spirit brings to life and glorifies.

 

131. What is the saving meaning of the Resurrection?

651-655
658

The Resurrection is the climax of the Incarnation. It confirms the divinity of Christ and all the things which he did and taught. It fulfills all the divine promises made for us. Furthermore the risen Christ, the conqueror of sin and death, is the principle of our justification and our Resurrection. It procures for us now the grace of filial adoption which is a real share in the life of the only begotten Son. At the end of time he will raise up our bodies.

 

.........

 

“I BELIEVE IN LIFE EVERLASTING”

 

207. What is life everlasting?

1020 
1051

Eternal life is that life which begins immediately after death. It will have no end. It will be preceded for each person by a particular judgment at the hands of Christ who is the Judge of the living and the dead. This particular judgement will be confirmed in the final judgment.

 

208. What is the particular judgment?

1021-1022
1051

It is the judgment of immediate retribution which each one after death will receive from God in his immortal soul in accord with his faith and his works. This retribution consists in entrance into the happiness of heaven, immediately or after an appropriate purification, or entry into the eternal damnation of hell.

 

209. What is meant by the term “heaven”?

1023-1026
1053

By “heaven” is meant the state of supreme and definitive happiness. Those who die in the grace of God and have no need of further purification are gathered around Jesus and Mary, the angels and the saints. They thus form the Church of heaven, where they see God “face to face” (1 Corinthians 13:12). They live in a communion of love with the Most Blessed Trinity and they intercede for us.

“True and subsistent life consists in this: the Father, through the Son and in the Holy Spirit, pouring out his heavenly gifts on all things without exception. Thanks to his mercy, we too, men that we are, have received the inalienable promise of eternal life.” (Saint Cyril of Jerusalem)

210. What is purgatory?

1030-1031
1054

Purgatory is the state of those who die in God’s friendship, assured of their eternal salvation, but who still have need of purification to enter into the happiness of heaven.

 

211. How can we help the souls being purified in purgatory?

1032

Because of the communion of saints, the faithful who are still pilgrims on earth are able to help the souls in purgatory by offering prayers in suffrage for them, especially the Eucharistic sacrifice. They also help them by almsgiving, indulgences, and works of penance.

 

212. In what does hell consist?

1033-1035 
1056-1057

Hell consists in the eternal damnation of those who die in mortal sin through their own free choice. The principal suffering of hell is eternal separation from God in whom alone we can have the life and happiness for which we were created and for which we long. Christ proclaimed this reality with the words, “Depart from me, you cursed, into the eternal fire” (Matthew 25:41).

 

213. How can one reconcile the existence of hell with the infinite goodness of God?

1036-1037

God, while desiring “all to come to repentance” (2 Peter 3:9), nevertheless has created the human person to be free and responsible; and he respects our decisions. Therefore, it is the human person who freely excludes himself from communion with God if at the moment of death he persists in mortal sin and refuses the merciful love of God.

 

214. In what does the final judgment consist?

1038-1041 
1058-1059

The final or universal judgment consists in a sentence of happiness or eternal condemnation, which the Lord Jesus will issue in regard to the “just and the unjust” (Acts 24:15) when he returns as the Judge of the living and the dead. After the last judgment, the resurrected body will share in the retribution which the soul received at the particular judgment.

 

215. When will this judgment occur?

1040

This judgment will come at the end of the world and only God knows the day and the hour.

 

216. What is the hope of the new heavens and the new earth?

1042-1050
1060

After the final judgment the universe itself, freed from its bondage to decay, will share in the glory of Christ with the beginning of “the new heavens” and a “new earth” (2 Peter 3:13). Thus, the fullness of the Kingdom of God will come about, that is to say, the definitive realization of the salvific plan of God to “unite all things in Christ, things in heaven and things on earth” (Ephesians 1:10). God will then be “all in all” (1 Corinthians 15:28) in eternal life.

 

이상, "가톨릭 교회 교리서 요약"으로 부터의 발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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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통공 교리)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세우신 지상 교회(The Established Church = Catholic Church)와 연옥 교회(Purgatory)는, 태생적 속성상 이들 두 교회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는 천상 교회(Heavenly Church)와 영(Spirit)적으로 결합되어 있으며(United),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한 자비의 빛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영적으로 연결되어 있고(Connected), 또 이 영적 연결 (Spiritual Connection) 속에서 인류 구원이라는 천주의 거룩한 의지(Divine Will)가 작동(Act)하신다:

 

4-1. 지상 교회의 경우, 살아 있는 피조물인 우리들이 출입하는 문인 입구가 있고 미사성제 중에 강림하여 우리들의 죄를 사하여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출입하시는 문인 출구가 있어, 영성체 예식 중에, 내 영혼과 육신이 천주께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i) 우리들이 함께 바치는 기도는, 입구를 통하여, 위로 나를 들어 올리는 (사도신경에서 성인들의 통공으로 불리는) 영적 연결(Spiritual Connection)이고,

 

(ii) 천상 교회에 계신 성인,성녀들의 전구는, 출구를 통하여, 위에서 나를 끌어 올리는 (사도신경에서 성인들의 통공으로 불리는) 영적 연결이다.

 

(iii) 이 모습은, 인류 구원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지상에 구현된 천상 교회", 즉 "지상 교회의 참 모습"으로서, 천상 교회에서 내려와 지상 교회의 미사성제 중에 불려지는 성음악(Sacred Music)은, 우리들과 천주와의 영적 결합(Spiritual Union)을 더욱 더 긴밀하게 해 준다. 

 

4-2. 저승 (어두운 곳, Sheol)에 위치한 연옥 교회의 경우, 죽은 자의 영혼(Soul)이 들어가는 입구가 있고 영원한 사제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상 교회에서 뿜어내시는 구원의 길인 자비의 빛이 들어가는 출구가 있는데, 어두운 곳에 있기에 어둠의 세력에 꽁꽁 묶인 연옥 영혼이, 그러나 영성체(성체성사)의 효력으로 죽은 후에도 하느님과의 영적 연결이 끊어진 것은 아닌 연옥 영혼이, 영생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의 빛을 향하여 나아 갈 수 있도록, 즉 천당(heaven, 하늘)으로 들어 올려질 수 있도록,

 

(i) 지상 교회의 우리들이 함께 바치는 기도는,  입구를 통하여, 연옥 영혼(Soul in Purgatory)을 위로 밀어 올리는 (사도신경에서 성인들의 통공으로 불리는) 영적 연결(Spiritual Connection)이며,

 

(ii) 천상 교회에 계신 성인,성녀들의 전구는, 출구를 통하여, 위에서 연옥 영혼을 당겨 올리는 (사도신경에서 성인들의 통공으로 불리는) 영적 연결이다.

 

(iii) 이 모습은, 인류 구원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연옥에 구현된 천상 교회", 즉 "연옥 교회의 참 모습"으로서, 천상 교회에서 내려와 지상 교회의 미사성제 중에 불려지는 성음악(Sacred Music)은 연옥 영혼과 천주와의 영적 결합(Spiritual Union)을 더욱 더 긴밀하게 해 준다.

 

4-3. 우리들 모두를 온전히 하느님께로 이끄는 성화(Sanctification)를 담당하고 있는 교회의 역할, 즉 일곱 성사(Sacramentum)로 구체화 되어 세례(Justification)을 그 시작으로 하고 연옥 단련을 그 마지막으로 하는 성화와 관련된 이러한 교회(지상 교회 및 연옥 교회)의 역할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이들 두 교회를 저승(음부, Sheol)과 지상에 세우신 후에, 신약성경에 기록되어 있듯이, 말씀으로써 직접 명하신 가톨릭 보편 교회의 권능에 기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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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자 주:  다음은 영성체(성체성사)의 효력에 대한 "가톨릭 교회 교리서" 내용입니다.

 

1371 The Eucharistic sacrifice is also offered for the faithful departed who "have died in Christ but are not yet wholly purified,"193 so that they may be able to enter into the light and peace of Christ:

    Put this body anywhere! Don't trouble yourselves about it! I simply ask you to remember me at the Lord's altar wherever you are.194

    Then, we pray [in the anaphora] for the holy fathers and bishops who have fallen asleep, and in general for all who have fallen asleep before us, in the belief that it is a great benefit to the souls on whose behalf the supplication is offered, while the holy and tremendous Victim is present. . . . By offering to God our supplications for those who have fallen asleep, if they have sinned, we . . . offer Christ sacrificed for the sins of all, and so render favorable, for them and for us, the God who loves man.195

1371 성찬의 제사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지만 아직 완전히 정화되지 못한”196) 죽은 신자들을 위해서, 그들이 그리스도의 빛과 평화를 얻을 수 있도록 바치는 것이기도 하다.

이 몸을 아무 곳에나 묻어 다오. 이 몸 때문에 조금도 걱정하지 마라. 내가 너희에게 부탁하는 것은 오직 너희가 있을 그 곳의 주님의 제단에서 나를 기억해 달라는 것이다.197)

우리는 [감사기도에서] 잠든 거룩한 교부들과 주교들, 그리고 우리보다 앞서 잠든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거룩하고 경외스러운 희생 제물이 여기 계시므로, 그들을 위해 바치는 간절한 기도가 영혼들에게 매우 큰 유익이 되리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죄인이라고 해도, 죽은 이들을 위해서 하느님께 간구할 때, 우리는……우리 죄 때문에 희생되신 그리스도를 바치는 것입니다. 이로써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 그들도, 우리들도 너그럽게 대해 주시도록 청합니다.198)

1524
In addition to the Anointing of the Sick, the Church offers those who are about to leave this life the Eucharist as viaticum. Communion in the body and blood of Christ, received at this moment of "passing over" to the Father, has a particular significance and importance. It is the seed of eternal life and the power of resurrection, according to the words of the Lord: "He who eats my flesh and drinks my blood has eternal life, and I will raise him up at the last day."141 The sacrament of Christ once dead and now risen, the Eucharist is here the sacrament of passing over from death to life, from this world to the Father.142

1524 교회는 임종을 앞둔 사람들에게 병자의 도유 외에도 노자(路資)로 성체를 준다. 아버지께로 건너갈 때에 모시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는 특별한 의미와 중요성을 지닌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며 내가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요한 6,54) 하신 주님의 말씀과 같이, 이 성체는 영원한 생명의 씨앗이며 부활의 힘이다. 죽었다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성사인 성체성사가 여기에서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이 세상에서 하느님 아버지께로 건너가는 성사가 된다.137)

 

1525  Thus, just as the sacraments of Baptism, Confirmation, and the Eucharist form a unity called "the sacraments of Christian initiation," so too it can be said that Penance, the Anointing of the Sick and the Eucharist as viaticum constitute at the end of Christian life "the sacraments that prepare for our heavenly homeland" or the sacraments that complete the earthly pilgrimage.

 

1525 따라서 세례성사와 견진성사, 성체성사가 ‘그리스도교 입문 성사’라는 단일성을 가지듯이 고해성사와 병자성사, 그리고 노자로 모시는 성체성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종말에 이르렀을 때 ‘천상 고향에 갈 준비를 갖추는 성사’ 또는 나그넷길을 마무리하기 위한 성사들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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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자 주: 또 다음은 병자성사 및 노자성체에 대한 "가톨릭 교회 교리서" 내용입니다.

 

제5절 병자성사(病者聖事)

 

1499 “병자들의 거룩한 도유와 사제들의 기도로 온 교회는 수난하시고 영광을 받으신 주님께 병자들을 맡겨 드리며, 그들의 병고를 덜어 주시고 낫게 하여 주시도록 간청하는 한편, 병자들도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에 자유로이 결합시켜 하느님 백성의 선익에 기여하도록 권고한다.”96)

 

   I. 구원 경륜 안에서 본 병자성사의 근거들

 

   인생과 질병

1500 인생을 가장 괴롭혀 온 문제들 중에는 늘 질병과 고통이 들어 있다. 질병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무능과 한계, 유한성을 체험한다. 모든 질병은 죽음을 예감하게 한다.

 

1501 질병은 우리를 번뇌로 이끌기도 하고, 자신 안에 도피하는 사람으로 만들기도 하며, 때로는 하느님께 대한 실망과 반항으로까지 이끌 수도 있다. 반면에 질병은 사람을 더욱 성숙하게 할 수도 있고, 그의 삶에서 중요하지 않은 것을 분별하여 본질적인 것을 향해 나아가도록 도와 줄 수도 있다. 많은 경우에, 질병은 하느님을 찾고 하느님께 돌아오게 한다.

 

   하느님 앞의 병자

1502 구약성서의 인간은 하느님 앞에서 병으로 고통당한다. 하느님께 자신의 병에 대해 하소연을 늘어놓고,97) 삶과 죽음을 주관하시는 하느님께 치유를 애원한다.98) 질병은 회개의 길이 되고,99) 하느님의 용서는 치유의 시발이 된다.100) 이스라엘은, 병이 신비하게 죄와 악과 관련되어 있으며, 율법에 따라 하느님께 충실하면 생명을 돌려 받는다는 것을 체험한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나는 주님, 너희를 치료하는 의사이다”(출애 15,26). 예언자는 고통이 타인의 죄를 구속하는 의미도 가질 수 있음을 깨닫는다.101) 마침내 이사야는 하느님께서 시온을 위해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모든 병을 고쳐 주실 때가 오리라고 예고한다.102)

 

   의사이신 그리스도

1503 그리스도께서 병자들을 동정하시고, 여러 가지 병을 고쳐 주셨다는 것은103)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고104)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명백한 표징이다. 예수님께서는 치유의 능력뿐 아니라 죄를 용서하는 권한도 가지셨다.105)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영혼과 육신을 모두 고쳐 주려고 오셨다. 그분께서는 병자들에게 필요한 의사이시다.106) 그분께서는 고통당하는 모든 사람에 대한 연민으로 자신을 그들과 동일시하기까지 하셨다. “내가 병들었을 때에 너희가 나를 돌보아 주었다”(마태 25,36). 병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특별한 사랑은, 영혼과 육체의 고통을 겪는 모든 사람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매우 각별한 관심을 오랜 세월 동안 불러일으켜 왔다. 이러한 특별한 관심은 고통받는 이들의 아픔을 덜어 주고자 하는 지칠 줄 모르는 노력의 근원이다.

 

1504 예수님께서는 자주 병자들에게 믿음을 요구하셨다.107) 예수님께서는 침을 바르고 안수하시며,108) 진흙을 바르고 물로 씻는109) 표징들을 사용하여 병을 고치신다. 병자들은 “예수에게서 힘이 나와 누구든지 다 낫는 것을 보고”(루가 6,19) 모두 예수님을 만지려고 하였다.110) 이처럼 성사 안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치유하시려고 끊임없이 우리를 ‘만지신다.’

 

1505 이렇게 많은 고통에 마음이 움직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병자들이 당신을 만지도록 허락하실 뿐 아니라, 그들의 불행을 당신의 불행으로 여기신다. “그분은 몸소 우리의 허약함을 맡아 주시고 우리의 병고를 짊어지셨다”(마태 8,17).111) 예수님께서 모든 병자를 다 고쳐 주신 것은 아니다. 예수님의 치유 행위는 하느님 나라가 도래했다는 징표들이었고, 더 근본적인 치유, 곧 당신 파스카를 통한 죄와 죽음에 대한 승리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악의 모든 무거운 짐을 짊어지셨고,112) “세상의 죄”(요한 1,29)를 치워 없애셨다. 병은 단지 세상의 죄의 결과일 뿐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수난과 십자가 위의 죽음으로 고통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고통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닮고, 구속을 위한 그분의 수난에 결합될 수 있다.

 

   “병자들을 고쳐 주어라!”

1506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르라고 권고하신다.113)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름으로써 병과 병자를 새롭게 이해하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당신의 가난하고 봉사하는 삶에 함께하도록 하며, 연민과 치유의 직무에 참여시키신다. “열두 제자는 나가서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가르치며, 마귀들을 많이 쫓아 내고, 수많은 병자들에게 기름을 발라 병을 고쳐 주었다”(마르 6,12-13).

 

1507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이 파견을 새롭게 하신다. (“내 이름으로……병자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 마르 16,17-18). 그리고 주님께서는 교회가 당신의 이름으로 행하는 표징들을 통하여 이 파견을 확인해 주신다.114) 그 표징들은 예수님께서 참으로 “구원하시는 하느님”이시라는115) 것을 특별하게 나타낸다.

 

1508 성령께서는 어떤 이들에게 특별한 치유의 은사를 주시어,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이 지닌 힘을 나타내신다.116)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기도해도 모든 병이 다 치유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바오로 사도는 주님께 “너는 이미 내 은총을 충분히 받았다. 내 권능은 약한 자 안에서 완전히 드러난다.”(2고린 12,9)는 것을 배워야 했고, 또 고통을 견뎌 내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몸으로 채우고 있다.”(골로 1,24)는 의미가 있음을 배워야 했다.

 

1509 “앓는 사람은 고쳐 주어라”(마태 10,8). 주님께 이러한 사명을 받은 교회는 병자들을 보살피고 아울러 그들을 위해 전구의 기도를 드림으로써 이 사명을 수행하고자 노력한다. 교회는 영혼과 육체의 의사이신 그리스도의 생명을 주는 현존을 믿는다. 이 현존은 특별히 성사들 안에서 작용하며, 영원한 생명을 주는 빵인117) 성체성사 안에서는 특별한 방식으로 효과를 낸다. 바오로 사도는 성체와 육체적 건강의 관계를 암시하고 있다.118)

 

1510 사도 시대의 교회에는 병자들을 위한 특별한 예식이 있었다. 야고보 사도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여러분 가운데 앓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교회의 원로들을 청하십시오. 원로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고 그를 위하여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믿고 구하는 기도는 앓는 사람을 낫게 할 것이며, 주님께서 그를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또 그가 지은 죄가 있으면 그 죄도 용서를 받을 것입니다”(야고 5,14-15). 성전(聖傳)은 이 예식을 교회의 일곱 가지 성사 중의 하나로 인정하였다.119)

 

   병자성사

1511 교회는 일곱 성사 중에 특별히 병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힘을 주기 위한 성사가 있음을 믿고 고백한다. 병자성사가 그것이다.

병자의 거룩한 도유는 진실되고 엄밀한 의미에서 우리 주 그리스도께서 신약의 성사로 세우신 것이라고 마르코 복음서에 암시되고 있으며,120) 주님의 사도이며 형제인 야고보가 신자들에게 권고하고 선포한 것이다.121)

1512 서방에서와 마찬가지로 동방에서도 전례 전승에는 예로부터 축성한 기름을 병자들에게 발라 주는 관습이 있었다는 증거들이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병자의 도유는 점차 죽을 위험이 더 큰 사람에게만 베풀어지게 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도유를 ‘마지막 도유’(종부성사)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도, 만일 그것이 병자의 구원을 위해 좋은 일이라면, 건강을 회복하도록 주님께 기도하는 것을 전례에서 배제한 적이 전혀 없다.122)

 

1513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따라,123) 교황령 “병자의 도유”(Sacram Unctionem Infirmorum, 1972년 11월 30일자)는 로마 예법에서 다음 사항을 준수하도록 규정하였다.

병자성사는 위독한 병자들에게 베푸는 것인데, 정식으로 축성한 올리브 기름이나 때에 따라 다른 식물성 기름을 병자의 이마와 양손에 바르며, 다음과 같은 기도문을 한 번만 외운다. “주님께서는 주님의 자비로우신 사랑과 기름 바르는 이 거룩한 예식으로 성령의 은총을 베푸시어 이 병자를 도와 주소서. 또한 이 병자를 죄에서 해방시키시고 구원해 주시며 자비로이 그 병고도 가볍게 해 주소서.”124)

   II. 누가 이 성사를 받으며, 누가 집전하는가?

 

   병이 중한 경우에

1514 병자성사는 “생명이 위급한 지경에 놓인 사람들만을 위한 성사가 아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질병이나 노쇠로 죽을 위험이 엿보이면 이미 이 성사를 받기에 적절한 시기가 된 것이다.”125)

 

1515 병자성사를 받은 병자가 건강을 회복했다가 다시 중병에 걸리게 되면 이 성사를 다시 받을 수 있다. 같은 병으로 앓다가 병이 더 중해지는 경우에도 이 성사를 다시 받을 수 있다. 중한 수술을 받기 전에 병자성사를 받는 것은 합당한 일이다. 급격히 쇠약해지는 노인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교회의 원로들을 청하십시오”

1516 사제들(주교와 신부들)만이 병자성사를 거행한다.126) 신자들에게 이 성사의 선익에 대해 가르치는 것은 사목자들의 의무이다. 신자들은 이 성사를 받기 위해 사제를 청하도록 병자들을 격려해야 한다. 병자들은 그들의 목자와 온 교회 공동체의 도움을 받아 올바른 마음가짐으로 이 성사를 받도록 준비하여야 한다. 교회 공동체 전체는 병자들을 특별히 기도와 형제적인 사랑으로 감싸 주어야 한다.

 

   III. 병자성사는 어떻게 거행되는가?

1517 다른 모든 성사와 마찬가지로 병자성사도 가정에서 거행하든 병원이나 성당에서 거행하든, 한 사람의 병자를 위해 거행하든 여러 병자들을 위해 거행하든, 전례적이고 공동체적인 것이다.127) 이 성사는 주님의 파스카를 기념하는 미사 중에 거행하는 것이 매우 합당하다. 상황이 허락하면, 고해성사를 먼저 베풀고, 병자성사 뒤에 성체성사를 줄 수도 있다. 그리스도의 파스카 성사로서 성체는 언제나 지상 순례길의 마지막 성사, 영원한 생명으로 ‘건너가기’ 위한 ‘노자’(路資) 성사가 되어야 한다.

 

1518 말씀과 성사는 불가분의 전체를 이룬다. 참회 기도에 이은 말씀 전례로 성사 거행이 시작된다. 그리스도의 말씀과 사도들의 증언은 병자와 공동체의 신앙을 일깨워 주님께 성령의 권능을 청하게 한다.

 

1519 성사의 거행에는 주로 다음과 같은 요소들이 포함된다. “교회의 사제들”은128) ─ 침묵 중에 ─ 병자에게 손을 얹는다. 그리고 교회의 신앙 안에서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129) 이것이 이 성사의 고유한 성령 청원 기도이다. 이 때 가능하면 주교가 축성한 기름을 발라 준다.
이러한 전례적 행위들은 이 성사가 병자들에게 어떤 은총을 주는지를 가리킨다.

 

   IV. 병자성사의 효과

1520 성령의 특별한 선물. 병자성사의 근본적인 은총은 중병이나 노쇠 상태의 어려움들을 이겨 내는 데에 필요한 위로와 평화와 용기의 은총이다. 이 은총은 하느님께 대한 신뢰와 믿음을 새롭게 하고, 마귀의 유혹, 곧 죽음 앞에서 번뇌와 좌절에 빠지는 유혹에 흔들리지 않게 해 주시는 성령의 선물이다.130) 성령의 힘을 통해 주시는 주님의 이러한 도움은 병자들의 영혼을 치유하기 위한 것이지만, 하느님께서 원하신다면, 육체도 치유한다.131) 그뿐 아니라, “그가 지은 죄가 있으면 그 죄도 용서를 받을 것이다”(야고 5,15).132)

 

1521 그리스도의 수난에 결합됨. 이 성사의 은총으로 병자는 자신을 그리스도의 수난에 더욱 가까이 결합시키는 힘과 은혜를 받는다. 어떤 의미에서 병자는 구세주의 구속하시는 수난을 닮음으로써 열매를 맺도록 축성되는 것이다. 원죄의 결과인 고통에 새로운 의미가 부여된다. 곧 고통은 예수님의 구원 사업에 참여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1522 교회의 은총. 이 성사를 받은 “병자들도 스스로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에 자유로이 결합하여, 하느님 백성의 선익에 기여”133)한다. 교회는 이 성사를 거행함으로써 성인들의 통공 안에서 병자들의 선익을 위해 전구한다. 또 병자도 나름대로 이 성사의 은총을 통해서 교회의 성화와 모든 이의 선익에 이바지한다. 교회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고통을 당하며,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을 하느님 아버지께 봉헌하는 것이다.

 

1523 마지막 길의 준비. 병자성사가 병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과 중대한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 모두를 위한 것이라면, 이는 특히 “생명이 떠나려는 순간에 처한 이들”134)에게 베풀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성사를 “떠나는 이들의 성사”135)라고도 불렀다. 병자성사는 세례로 시작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동화하는 일치를 완성한다. 이 성사는 그리스도인의 일생 동안 이루어지는 거룩한 도유들을 완결짓는다. 세례 때의 도유는 우리 안에 새 생명을 새겨 주었고, 견진의 도유는 이 생명의 싸움을 위하여 우리를 굳건하게 해 주었다. 병자성사의 마지막 도유는 하느님 아버지의 집에 들어가기 전에 있을 마지막 싸움에 대비하여 우리 지상 생활의 마지막에 튼튼한 방패를 마련해 준다.136)

 

   V. 그리스도인의 마지막 성사인 노자성체

1524 교회는 임종을 앞둔 사람들에게 병자의 도유 외에도 노자(路資)로 성체를 준다. 아버지께로 건너갈 때에 모시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는 특별한 의미와 중요성을 지닌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며 내가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요한 6,54) 하신 주님의 말씀과 같이, 이 성체는 영원한 생명의 씨앗이며 부활의 힘이다. 죽었다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성사인 성체성사가 여기에서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이 세상에서 하느님 아버지께로 건너가는 성사가 된다.137)

 

1525 따라서 세례성사와 견진성사, 성체성사가 ‘그리스도교 입문 성사’라는 단일성을 가지듯이 고해성사와 병자성사, 그리고 노자로 모시는 성체성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종말에 이르렀을 때 ‘천상 고향에 갈 준비를 갖추는 성사’ 또는 나그넷길을 마무리하기 위한 성사들이라고 할 수 있다.

 

   간추림

1526 “여러분 가운데 앓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교회의 원로들을 청하십시오. 원로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고 그를 위하여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믿고 구하는 기도는 앓는 사람을 낫게 할 것이며, 주님께서 그를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또 그가 지은 죄가 있으면 그 죄도 용서를 받을 것입니다”(야고 5,14-15).

 

1527 병자성사의 목적은 중병이나 노쇠에 따르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그리스도인에게 특별한 은혜를 베푸는 것이다.

 

1528 신자가 병이나 노쇠로 죽을 위험을 맞기 시작하면 병자성사를 받을 적절한 때가 온 것이다.

 

1529 그리스도인은 중병이 들었을 때마다 병자성사를 받을 수 있으며, 이 성사를 받은 이후 병이 악화되었을 경우에도 받을 수 있다.

 

1530 사제들(주교와 신부들)만이 병자성사를 베풀 수 있다. 그들은 이 성사를 위해 주교가 축성한 기름을 사용하며, 필요한 경우에는 성사를 거행하는 사제가 축성해서 쓰기도 한다.

 

1531 이 성사 거행의 핵심은 병자의 이마와 양손(로마 예법) 또는 몸의 다른 부위(동방 예법)에 기름을 바르는 것이다. 주례 사제는 기름을 바르면서 이 성사의 특별한 은총을 청하는 전례 기도를 드린다.

 

1532 병자성사가 이루어 주는 특별한 은총은 다음과 같다.
- 병자가 자신과 온 교회의 선익을 위해 그리스도의 수난과 결합됨
- 병이나 노쇠의 고통을 그리스도인답게 견디는 데 필요한 위안과 평화와 용기
- 병자가 고해성사로 죄의 용서를 받지 못한 경우 죄의 용서
- 영적인 구원에 적합한 경우 건강의 회복
- 영원한 생명으로 건너가는 준비

 

이상, 영성체(성체성사), 병자성사 및 노자성체(살아서 모시는 마지막 영성체)에 대한 "가톨릭 교회 교리서" 내용 발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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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개신교 측은 그 태생적 속성상, 연옥교리와 연옥교리의 원천인 사심판을 거부하기 위하여 가톨릭 교회의 전통적 기도문들을 거의 모두 다 버리고 떠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삼위일체(Trinitas, Trinity) 교리는 도대체 버릴 수가 없었기에, 개신교 측에서도 가톨릭 교회 내에서 형성된 사도신경 (Apostle's Creed) - 삼위일체 교리를 담고 있는 사도신경을 - 어쩔 수 없이 외울 교리로 신앙 고백하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게시자 주: 기도문으로서 현재 가톨릭 신자와 개신교 신자가 함께 외우는 것은 "주님의 기도"와 "사도신경" 둘뿐인 줄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비록 같은 사도신경을 고백하나, 사도신경 기도문 중에 분명하게 언급되고 있는 내용, 즉 전지전능하신 삼위일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형벌 후에 죽임당하신 후에 땅에 묻히셨다는 내용, 즉 저승(어두운 곳, Sheol)에 내려 가셨다는 내용, 그리고 부활하셨다는 내용, 그 결과 위의 제 3항 및 제 4항의 내용이 사도신경 기도문 내용 중에 담겨 있음을 - 주후 1500 여년 동안 진실한 그리스도(Christ)교 신자라면 아무도 부인하지 않았던 기독교(주: Christ 단어의 중국식 발음을 한자로 표기한 단어) 신앙의 핵심 내용을 - 심지어 일부 단어의 정의를 바꾸면서까지, 부인하는 일부 개신교 측 주장은, 위에서 언급한 내용 모두를 부인하는 것이기에, 이에 대하여 추가적으로 한 두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죽은 후에 즉시 삼위일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사심판이 있음을 고백하지 않는 개신교 신자들은, 언제 있을 지 모르는 삼위일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공심판의 그날까지, 천당(heaven, 하늘)에 들 수도 없고 또 연옥에 머무를 수가 없으머, 또 이들은 유대인들이 아니기에 아브라함의 품(Abraham's bosom 즉 고성소)에 들어 갈 수도 없어, 개신교 신자들의 경우에 있어, 죽은 후에 저승(Sheol)의 어디에 있게 되는지부터가 사실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 보시기에 의인이 아닌 개신교 신자"들은 죽은 다음에, 마지막 공심판이 있을 그 날까지, 어디엔가 머물러 있어야 할텐데, 죄와 죄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기에 천당(heaven, 하늘)에는 들어갈 수 없을 것이므로, 이들이 과연 어디에 머물게 될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 개신교가 가톨릭 교회로부터 떨어져 나간지 거의 500여년이 되었으나, (개신교 신자들의 구원과 관련하여) 개신교 신자들이 죽은 다음에 머물게 되는 곳이 저승(Sheol)의 어느 구역인지에 대한 이야기는 개신교 측으로부터 여태까지 들어 본 적이 없는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개신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말씀으로써 세우셨고 또 12사도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그리스트교(기독교)의 전통적 구원관을 가르치는 가톨릭 교회(Catholic Church = The Established Church)를 이탈한 이후로 지금에 이르는 동안, 사실은 유대교보다 신앙적으로 퇴화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듭니다.

 

하긴 일부 개신교 분파에서는 사도신경에 구체적으로 언급된 인류구원과 관련한 사후 즉시 있게 되는 사심판과 연옥을 부인하였을 때에 발생하는 이런 신앙적 근본 문제점을 알고 있는 듯,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생의 구원자로 받아들이는 순간에, 즉 의화 혹은 칭화 (Justification)의 순간에, "과거에 지은 죄와 현재, 그리고 더 나아가 미래에 지을 죄마저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두 용서해 주셨다"는  매우 지나친 억지주장을 간혹 펼칩니다만, 그러나 이런 말을 하는 순간 그 즉시 "자신이 바로 하느님"이라는 신성 모독적 주장을 사실을 하고 있음을 모르는 듯 하여 참으로 안타까울 뿐입니다.

 

만에 하나라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현재와 미래에 지을 죄(Sin)마저도 개신교 신자들에게 다 용서해 주셨다" 고 교만하게 주장하고 또 이에 따라 처신한다면, 이는 개신교 신자들의 경우에 있어서는 특별히 의화 혹은 칭화(Justification)의 순간부터 (천주의 거룩한 의지(Divine Will)를 훔쳐 행사하는) 죄(Sin)를 각자 자의적으로 마음대로 범하여도 된다는 이야기로서, 이것은 "선택받은 민족"이라면서 유대인들이 살아생전에 이 세상에서 누리려고 하는 잘못된 선민 특권보다도 더 잘못된 억지 주장이 아닐 수 없으므로, 참으로 정의로우신 그리고 두려운 하느님께서 이런 억지 주장과 또 이 주장에 동조하는 자들을 어찌 그냥 두고 보실까? 하는 두려움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는, "두려워 하지 말라"는 말씀보다 더 두려운 말씀이 사실은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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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자 주: 다음의 인터넷 주소를 클릭하면, 사도신경(사도신조 혹은 종도신경)이 우리말로 번역이 될 때에, 특히 국내 개신교 측에서 의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승에 내려갔다"는 구절을 빼 버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저승(Sheol)에 대한 구약,신약 성경 시절의 의미를 제대로 몰라서 또 연옥 혹은 연옥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처음으로 저승에 세워졌음을 감추기 위함인 듯 합니다.

 

출처: http://sgti.kehc.org/myhome/lecture/creed/01.htm (클릭하여 꼭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이 글의 마지막 부분의 발췌입니다:

 

  8. 예수의 음부행이 왜 빠졌을까?

라틴어 본문에 있는 "그는 음부에 내려가셨다"(descendit ad infernas)라는 문장이 유독 현재의 한국 개신교회의 사도신조에서는 빠진 이유가 무엇일까? 위의 도표에서 볼 수 있듯이, 1894년의 찬미가에 실린 최초의 사도신조에는 "지옥에 내리사"가 들어 있었는데, 1897년의 감리교 찬미가에서는 이 문장이 빠져 버렸으며, 1905년의 장로교 찬셩가에는 다시 "음부에 내리셨더니"가 삽입되었다. 그런데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회가 합동해서 만든 찬숑가에서는 이 문장이 다시 빠져 버렸다. 그 이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추측컨대, 사도신조를 최초로 우리말로 번역한 카톨릭 교회가 믿는 "연옥설"에 반대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빼버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마도 예수가 죽은 후에 악인이 들어가는 지옥(음부)에 내려갔다는 점을 받아들이기가 꺼림직하였는지도 모른다. 나중에 이 본문을 해석할 때, 더 상세히 거론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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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자 주: 다음은 경향잡지 2001년 12월호에 게재된 "성서의 세계" 란에 실린 내용입니다. 위의 글에서 사용되고 있는 지옥, 고성소, 저승 등의 한자어로 번역된 Sheol 혹은 Hades 단어의 의미에 대하여, 가나안 지역의 역사적 배경과 함께, 이해를 하는 데에 도움이 될 듯 싶습니다.

 

출처: http://222.109.34.30/pds/period/kh/k2001/12/bible.htm

 

 

저 승

   지옥 - 고성소 - 저승
   주일과 대축일에 우리는 더러 사도신경으로 믿음을 고백한다. 그 가운데에 이런 말이 있다.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저승에 가시어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 부활하시고.” 지금은 이렇게 “저승에 가시어”라고 하지만, 1997년 이전에는 “고성소에 내리시어”라고 하였고, 1967년까지는 또 이 말마디가 “지옥에 내리시어”라고 되어있었다.
   ‘지옥 - 고성소 - 저승’은 서로 다른 곳이 아니라 한 장소이다. 본디 사도신경의 표현은 ‘천당과 연옥과 지옥’의 교리가 확립되지 않았던 때에 사후 세계 또는 죽음의 세계를 가리키던 성서의 용어이다.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에서는 이 세계를 가리키는 대표적인 말이 있다. 곧 구약성서의 히브리 말에서는 ‘셔올’이고, 신약성서의 그리스 말에서는 ‘하데스’이다. 그래서 지옥 → 고성소 → 저승으로 바뀐 것은 한국·중국·일본에서 이루어진 번역의 문제이다. 성서 용어를 한자말 또는 우리말로 적절히 표현할 수 있는 낱말을 찾거나 만들다가 결국 ‘저승’으로 귀결된 것이다.
   ‘지옥(地獄)’은 말 그대로 지하 감옥으로, 생전에 큰 죄를 지은 사람들이 영원한 벌을 받는 곳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러한 ‘지옥’으로 내려가셨다 함은 조리에 맞지 않는다. 그래서 중국과 한국과 일본에서는 한때, 라틴 말 limbus(우리말에서는 두음법칙에 따라 ‘임보’)를 ‘고성소(古聖所)’라고 번역하여 사용하였다. 이는 말 그대로 ‘옛 성인들이 머무르는 곳’, 곧 예수님 부활 이전의 성인들과 의인들이 그분의 구원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하는 곳이다.
   이러한 의미의 지옥이나 고성소는 사도신경의 뜻에 들어맞지 않는다. 사도신경이 성서의 용어로 가리키는 장소는 의인이나 죄인의 구분 없이 죽은 이면 모두 가는 곳이다. 성서가 말하는 이러한 죽음의 세계를 표현하는 데에 ‘저승’이라는 말이 그 중 낫다고 판단하여 “저승에 가시어”로 바꾼 것이다. 다만, 성서에서는 죽음의 세계가 당시 사람들의 우주관에 따라 지하에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에 따라 지옥/고성소에 “내리시어”라고 번역하였다. 그런데 ‘저승’은 흔히 수평적으로, ‘이승’ 너머 어떤 곳으로 생각한다(라틴 말의 ‘임보’도 본디 ‘세상 끝’을 뜻한다). 이에 따라 우리말 표현도 저승에 “가시어”로 바꾼 것이다.

   죽음의 세계
   그렇다면 성서의 사람들은 죽음의 세계를 어떻게 생각하였는가? 여기에서 먼저 유념해야 할 사항은 성서가 어떤 가르침을 체계적으로 제시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또한 많은 경우에 교리로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당시 대중의 사고와 표현 방식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서 여기저기에 나오는 사후 세계에 관한 말을 모아 정리한다고 해서, 죽은 이들의 운명이라든가 죽음 이후에 관한 교리가 그대로 나오지는 않는다. 사후 세계를 이를테면 대중적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에, 그에 대한 성서의 용어나 표현은 문화적 교류가 활발하였던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와 많은 공통점을 지닌다. 다만, 이 두 문명권의 문학에서는 사후 세계에 관하여 상당히 자세하게 서술하는 반면에, 성서에서는 자제하는 경향을 보인다.
   성서의 사람들은 우주가 크게 세 개의 층으로 되어있다고 생각하였다. 곧 천상과 지상과 지하이다. 지상 곧 땅 밑으로는 거대한 물이 있고 그 아래로 큰 강에 둘러싸인 ‘셔올(하데스)’이 자리잡고 있다.
   해가 지는 서쪽에 사후 세계가 있다는 견해도 나타나기는 하지만(외경인 「에녹서」 22,1-5), 이 셔올은 일차적으로 지하에 있는 세계라고 생각하였다(민수 16,30). 지하에서도 가장 깊은 곳이다(신명 32,22; 이사 7,11; 에제 31,14; 마태 11,23; 루가 10,15). 그래서 운문에서는 그곳이 “산의 뿌리” 밑에 있다고 표현하기도 한다(요나 2,6). 또 땅 밑으로 내려간 곳에 있다 하여, “깊은 구렁”이나 “구덩이”라고 부르기도 한다(시편 16,10; 28,1; 이사 38,17 등). 땅 밑에는 지하의 대양(大洋)이 흐른다. 그에 따라 셔올은 여러 가지 위협적인 물의 표상으로 서술되기도 한다(시편 42,8; 69,2-3.15-16; 요나 2,3-4).
   지하에는 천체의 빛이 미치지 못한다. 어둠이 바로 셔올의 근본적인 특성이다. 그래서 이곳은 “어둠”이나 “암흑”으로도 부른다(시편 88,7.13; 욥 17,13). 어둠은 침묵으로 이어진다. 셔올은 곧 “침묵의 땅”이기도 하다(시편 94,17; 115,17). 암흑과 침묵은 멸망의 상태와도 같다. 그래서 아예 셔올을 “멸망의 나라”라고 부르기도 한다(욥 26,6; 시편 88,11; 잠언 15,11 등).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죽음은 곧,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라는 창세기의 말씀을 생각하게 한다(3,16). 그래서 죽음의 세계는 또 먼지가 특징을 이루기도 한다(욥 17,16; 21,26; 시편 7,6). 죽음의 세계를 장소적으로 이해하였기 때문에, 그곳에는 대문과(욥 38,10; 시편 9,14 등) 빗장도(욥 17,16) 있다고 생각하였다.
   저승에 문이 있다는 표상은 단순한 입구의 의미를 넘어, 죽은 이들이 한번 들어가면 죽음이 그들을 가두어버려 다시는 나오지 못한다는 셔올의 성격과 죽음이 죽은 이들에 대해 행사하는 세력을 드러낸다(특히 마태 16,18). 사실 성서의 사람들은 죽음과 함께 셔올도 곧잘 의인화하여 생각하곤 하였다. 그들에게 셔올은 만족할 줄 모르고 목구멍을 계속해서 벌린 채 사람들을 산 채로 집어삼켜 버리는 괴물과도 같다(잠언 1,12; 20,20; 이사 5,14; 하바 2,5).

   죽은 이들의 세계
   이러한 셔올로 내려가는 이들은 아무런 기쁨도 아픔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전반적인 생각이었다(집회 14,16). 욥이 “그곳은 악인들이 소란을 멈추는 곳/힘 다한 이들이 안식을 누리는 곳”이라고 하는데(욥 3,17), 이는 암흑과 침묵 속에 아무런 생기 없이 지속되는 생존 방식을 시적으로 묘사한 것으로 이해된다. 하느님의 권능이 미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셔올에 내려가면 사람들에게서는 물론 하느님에게서조차 멀어지고 잊혀진다. 그래서 그곳을 아예 “망각의 나라”라고 부르기도 한다(시편 88,13). 그곳에서는 사람들을 돌보시는 하느님의 선하신 손길이 닿지 않기에, 그분 현존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기에, 그분께 감사를 드릴 일도, 그분을 찬양할 일도 없게 된다(시편 6,6; 30,10; 88,11-13; 115,17; 이사 38,18; 집회 17,27-28).
   하느님과의 생생하고 활발한 관계가 끊긴다는 것이야말로, 성서의 사람들이 죽음이나 저승과 관련하여 느끼는 가장 큰 아픔이었다. 결국 이러한 셔올에 갇혀있는 이들은 “그림자”라고 불린다(시편 88,11; 이사 14,9). 죽었다고 해서, 셔올로 내려갔다고 해서, 생존이 완전히 끝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어둠과 침묵과 망각과 멸망의 이 나라에서는 마치 그림자와 같은 생존이 지속될 뿐이다. 셔올이 죽음 이후의 세계이기는 하지만, 거기에는 아무런 희망이 없기 때문에 본 의미의 내세는 아니었던 것이다.
   어떠한 사람들이 셔올로 내려가 이렇게 최소한으로 약화된 삶을 사는가? 우선, 죽으면 악인이나 선인이나 아무 구분 없이 모두 죽음의 세계로 내려간다. 이러한 생각은 근본적으로 신약성서에까지 이어진다(사도 2,27.31). 그러나 선악에 대한 보상, 영혼의 불사불멸, 육신의 부활에 관한 새로운 사상이 대두되면서, 죽음의 세계도 여러 가지로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유다교의 생각을 신약성서의 저자들도 그대로 이어받는다. 그래서 선인이 행복을 누리는 곳과 악인이 불행을 겪는 곳으로 죽음의 세계가 세분되기도 하고(루가 16,23), 셔올 곧 하데스도 부활 때까지만 죽은 이들이 갇혀있는 곳으로 묘사되기도 한다(묵시 20,13). 그리고 선인들이 부활을 기다리는 “낙원”도 나오고(루가 23,43. 여기에 2고린 5,8; 필립 1,23; 히브 12,22; 묵시 7,9 등도 보탤 수 있다), 악인들이 벌을 받는 “지옥”도 나온다(마태 5,22; 25,41 등).
그러나 지옥에 관한 본격적인 교리는 성서 이후 교회 시대에 가서야 확립된다.

   죽음의 장벽을 부수시고
   사도신경은 성서의 용어를 빌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뒤에 저승에 가셨다고 표현한다(1베드 3,19; 2베드 4,6 참조). 말은 내용이라는 몸을 표현하는 옷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저승 또는 저승에 가셨다는 것 역시 의복과 같은 것이다. 우리는 그 의복 너머의 실체를 알아들어야 한다. 우선 장소적인 이해를 넘어서야 한다.
   사도신경의 이 표현은 예수님께서 완전히 돌아가셨음을 말한다. 참 인간이 되신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마침내 죽음의 세계 밑바닥까지 내려가시어, 산 사람들만이 아니라 이미 죽은 이들과도 운명을 같이하신다. 그리고 부활하심으로써, 돌아오는 길 없는 죽음의 세계에 생명의 길을 여신다. 희망 없이 그림자와 같은 생존을 지속하던 이들에게 당신의 운명에 동참할 수 있는 길을 터놓으신다.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맏이”로(골로 1,18) 부활하심으로써, 나머지 죽은 이들도 당신의 부활에 참여할 수 있게 해주신 것이다.
   사도신경의 말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께서 산 이와 죽은 이의 구분 없이 모든 인간의 완전한 구원자이심을 고백하는 표현이다. 그분의 죽음과 부활로 이제 죽음은 더 이상 “멸망의 나라”로 들어가는 대문이 아니라, 부활 곧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는 과정일 따름이다.

임승필 요셉/신부·주교회의 성서위원회 번역담당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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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자 주: 위에 언급한 내용 중에서 좋은 내용은 모두 천주께서 가르쳐 주신 것이고, 미흡한 내용은 부족한 저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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