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연중 제 15주일 - 성 원귀임 마리아 순교기념 천상탄신 경축미사 ’18, 0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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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18-07-14 ㅣ No.3594

연중 제 15주일 성 원귀임 마리아 순교기념 천상탄신 경축미사 ’18, 07, 15

수색 예수 성심 성당 박재성 시몬 부제님 강론

1독서 : 지혜 3,1-9 / 2독서 : 로마 8,31-39/ 복음 : 루카 9,23-26

 

찬미 예수님, 이번 한 주간 주님의 사랑 안에 행복한 한 주간되시기 바랍니다.

 

우리 서울 신학교 신학원생 중에 코쟁이 미국 신학생이 있습니다. 머리가 노란 미국 사람입니다. 우연한 기회에 어떻게 한국에 오게 되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친구는 한국 성인전을 읽다가 내가 있어야 할 곳은 한국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한국으로 왔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저보다 한국 성인들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한국 성인들에 대한 공부를 더욱 더 하게되었습니다. 오늘은 성 원귀임 마리아에 대하여 간략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성녀 원귀임 마리아(1819-1839)1818년 고양군 용대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9살 되던 해에 아버지까지 돌아가셔서 고아가 됩니다. 고아가 된 원귀임은 열심한 교우인 고모뻘 되는 원 루치아의 집에서 삯바느질을 하면서 생활하게 되었고, 원 루치아로부터 요리문답과 경문을 배웠다고 합니다. 원귀임 마리아는 15세의 나이에 세례를 받고, 얼마 안 있어 동정을 지키기로 서원하고 이듬해에 머리를 올려 시집간 여자 머리를 하였다고 합니다. 성녀는 비록 가난하게 살았지만 누구보다도 신앙이 깊어 복음을 실천하려고 애썼으며, 박해중임에도 불구하고 이웃에게 예수님을 전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6년 후 기해박해가 일어납니다. 원귀임 마리아도 포졸들에게 잡혀 심문과 배교 유혹, 고문을 5개월간 받았습니다. 심문을 받으며 포도대장과 나눈 대화가 제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포도대장이 묻습니다. “네가 천주교인이냐?” “말씀하시는 바와 같이 저는 천주교인입니다.” “배교하라. 그러면 살려주마.” “저는 천주를 공경하고 제 영혼을 구하고자 합니다. 제 결심은 단단해서 죽어야만 한다면 죽겠습니다. 그저 무엇보다도 제 영혼을 구하는 것이 제일입니다. 배교하면 영혼을 잃게 됩니다.”

 

그렇게 성녀께서는 720, 22세의 꽃다운 나이로 서소문밖 형장에서 순교하셨습니다. 성녀에 대하여 보면서 저는 곧바로 순교에 대한 열망이나 나도 순교해야지 하는 생각까지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포도대장과 성녀의 대화 속에서 배교하면 영혼을 잃게 됩니다.’라는 문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배교가 무엇입니까. ‘하느님은 없다. 나는 하느님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죠. 배교하면 영혼을 잃게 되는데 그럼 반대로 영혼을 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느님을 증거해야 합니다. ‘하느님은 계시다. 나는 하느님을 믿는다.’고 말해야 합니다. 영혼을 구하는 일은 나만 하느님을 만나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난 하느님을 모든 이에게 전하는 것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신앙은 밖으로 나아가야 하고, 모르는 이에게 전해져야 한다는 것은 우리가 드리고 있는 미사에서도 드러납니다. 사실 미사라는 단어는 라틴어 missa를 음역한 것이죠. missa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보냄, 파견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제가 미사가 끝날 때 뭐라고 외치죠.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 바로 이 파견 때 외치는 이 문장에서 미사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라는 말에서 미사라는 단어가 나왔다는 것은 초기 교회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했는가 우리는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초기 교회 때 뿐만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복음을 전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선교 교령에서는 교회는 본성상 선교적이다”(2)라고 말함으로써 교회의 존재이유와 선교를 일치시키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증거하는 것이 선교이며, 교회에서 선교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선교라고 했을 때, 제일먼저 떠오르는 것은 해외 선교입니다. 이태석 신부님같이 복음이 아직 전달되지 않은 곳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일, 성당 건설하기, 세례를 주는 것이 떠오릅니다. 그럼 성당이 온 동네마다 있는 한국, 특히 서울에서는 선교할 일이 없는가. 아니 있습니다. 오늘날 선교의 가장 큰 특징은 신자와 비신자를 가리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1975년을 기점으로 선교를 재해석하여 복음화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는 신자와 비신자를 가리지 않는 새로운 선교방향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일차적으로는 그리스도를 모르는 지역에 그리스도를 전함으로써 교회를 확장하는 것을 말함과 동시에 성당 밖 가정이나 직장, 학교에서 복음적인 생활을 실천하는 것, 이것이 바로 선교입니다. 내가 살아가는 사회, 생활하는 문화, 생각하는 의식구조 등을 복음의 가치가 살아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 선교는 성당 안의 이미 신자가 된 이들에게는 신앙생활을 강화하는 것이고, 성당 밖으로는 믿지 않는 사람에게 그리스도를 알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복음화는 성당 안팎의 사람들 모두에게 필요합니다.

 

성당 안에 있는 우리들은 성당 밖으로 계속해서 나아가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복음의 기쁨 49항에서 자기 안위만을 신경쓰고 폐쇄적이며 건강하지 못한 교회보다는 거리로 나와 다치고 상처받고 더럽혀진 교회를 저는 더 좋아합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말로 전하는 것이든, 행동과 생활로 전하는 것이든, 전하고 표현함으로써 영혼을 구하고, 하느님과 함께 있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먹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믿음도 그렇습니다. 내가 믿는 바를 기도와 행동으로 표현하고, 기도한 바를 살아가야 믿음은 굳세어 지고, 하느님은 점점 가깝게 느껴집니다.

오늘날 복음을 전하는 것이 반대에 부딪히기도 합니다. 때로는 그리스도의 선행을 보고 감동을 받아서 따라와야지, 내가 말한다고 따라오나? 나만 부끄럽지!’ 라는 생각이 들 때어 망설일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종교인들이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란 단어를 외치며 선교할 때 거부감이 들었던 때가 떠올라, ‘내가 성당에 가자고 말하면 오히려 역효과 나지 않을까?’하는 우려로 주저할 때도 있습니다. 또 가족들도 엄마나 가시죠.” 라고 말하거나, “신앙의 자유가 있다.” 라고 말하면 뭐라 답해야 할지 참으로 당황스럽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고 난감하지 그지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선교에 나설 용기가 없습니다. ‘내 삶이 부족한데 누구에게 믿음을 전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듭니다. ‘나도 잘 모르는데!’ ‘말이나 잘하는 사람이 전해야하지 내가 하면 누가 듣기나 할까?’ 하는 우려도 듭니다.

 

그런데 과연 이 세상에 정말 모든 것을 다 알고, 삶도 거룩하고 완벽하게 사는 사람이 있을까요? 또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왜 제자들을 선택하실 때,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들이나 사두가이를 뽑으시지지 않았겠습니까? 하지만 예수님은 사람들이 다 존중해주지 않고 귀 기울이지 않는 어부들과 죄인으로 취급받던 세리들을 제자들로 뽑으셨습니다. 그들을 사도로 변화시켜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사실 하느님께서 부르셔서 신자가 되었고, 또 이렇게 주님 앞에 서서 선교의 대열에 서도록 불림을 받은 것입니다.

또 다른 시각으로 볼 때, 우리 주변에는 종교가 없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주위에는 힘없고, 가난한 이들이 무시당하고 억울한 상황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들에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절망의 씨앗이 아닌, 생명과 희망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지난 금요일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마태 10,19-20)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저 선교하고자 하는 마음만을 간직하고 나서지만, 실제로 우리의 입을 열어 주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고 우리를 통해 사람들에게 주 하느님을 알리시는 분은 내가 아니라 주 하느님이십니다. 단지 우리는 주 하느님께서 우리를 통해 활동하시도록 우리를 도구로 맡겨드릴 뿐입니다. 사실 복음 선포는 하느님의 일이기에 하느님의 힘이 필요합니다.

 

오늘 성녀 원귀임 마리아의 기념 미사를 드리며, 성녀의 순교 정신이 우리 안에 깃들어 있음을, 내가 순교자의 후손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번 한 주간 우리가 순교자의 후손인 우리가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하시면서 나와 함께하시겠다는 주님의 말씀에 용기와 힘을 얻고 성령의 이끄심에 나를 맡깁시다. 우리가 믿는 신앙은 어디서 생겼습니까? 우리의 신앙은 우리 선조 순교자들을 통해 전해 받은 신앙입니다. 이번 한 주간 내가 전해 받은 신앙을 내가 살고 있는 가정과 사회와 동네에 용감히 전할 수 있도록 성령께 의탁하며 선교하며 순교정신을 살기로 합시다.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루카 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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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5주일 성 원귀임 마리아 순교기념 천상탄신 경축미사 꽃꽂이

http://bbs.catholic.or.kr/home/bbs_view.asp?num=1&id=170651&menu=frpeterspds2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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