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4동성당

[연중 제27주일] 한 몸 (마르 1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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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업 [rlawhddjq] 쪽지 캡슐

2018-10-07 ㅣ No.128

 

 

[연중 제27주일] 한 몸  (마르 10,2-16)

 

주님께서는 사람에게서 빼내신 갈빗대로 여자를 지으셨다.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 (창세 2,18-24)
18 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만들어 주겠다.”
19 그래서 주 하느님께서는  흙으로 들의 온갖 짐승과 하늘의 온갖 새를 빚으신 다음, 사람에게 데려가시어 그가 그것들을 무엇이라 부르는지 보셨다. 사람이 생물 하나하나를 부르는 그대로 그 이름이 되었다.
20 이렇게 사람은 모든 집짐승과 하늘의 새와 모든 들짐승에게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러나 그는 사람인 자기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찾지 못하였다.
21 그래서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 위로 깊은 잠이 쏟아지게 하시어 그를 잠들게 하신 다음, 그의 갈빗대 하나를 빼내시고 그 자리를 살로 메우셨다.
22 주 하느님께서 사람에게서 빼내신 갈빗대로 여자를 지으시고, 그를 사람에게 데려오시자,
23 사람이 이렇게 부르짖었다. “이야말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 불리리라.”
24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사람들을 거룩하게 해 주시는 분이나 거룩하게 되는 사람들이나 모두 한 분이신 하느님에게서 나왔다고 한다. (히브 2,9-11)
형제 여러분, 9 우리는 “천사들보다 잠깐 낮아지셨다가” 죽음의 고난을 통하여 “영광과 존귀의 관을 쓰신”예수님을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겪으셔야 했습니다.
10 만물은 하느님을 위하여 또 그분을 통하여 존재합니다.
이러한 하느님께서 많은 자녀들을 영광으로 이끌어 들이시면서, 그들을 위한 구원의 영도자를  고난으로 완전하게 만드신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11 사람들을 거룩하게 해 주시는 분이나 거룩하게 되는 사람들이나  모두 한 분에게서 나왔습니다.
그러한 까닭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형제라고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남편과 아내는 한 몸이니,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고 하신다. (마르 10,2-16)
그때에 2 바리사이들이 와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하고 물었다.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모세는 너희에게 어떻게 하라고 명령하였느냐?” 하고 되물으시니,
4 그들이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을  모세는 허락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5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너희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모세가 그런 계명을 기록하여 너희에게 남긴 것이다.
6 창조 때부터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7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8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9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10 집에 들어갔을 때에 제자들이 그 일에 관하여 다시 묻자,
1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혼인하면, 그 아내를 두고 간음하는 것이다.
12 또한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혼인하여도 간음하는 것이다.”
13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들을 쓰다듬어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제자들이 사람들을 꾸짖었다.
14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보시고 언짢아하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냥 놓아두어라. 사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
16 그러고 나서 어린이들을 끌어안으시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 축복해 주셨다. 

 

 

 

 연중 제27주일 제1독서 (창세2,18-24)

 

"그래서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 위로 깊은 잠이 쏟아지게 하시어 그를 잠들게 하신 다음, 그의 갈빗대 하나를 빼내시고 그 자리를 살로 메우셨다."  (21)

 

'깊이 잠이 들게하다' 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타르떼마'(thardemah)는 단순히 '잠자다'(잠언10,5 ; 요나1,5.6)는 의미뿐 아니라,'정신을 잃다'(시편76,6 ; 다니8,18 ;10,9)란

뜻도 지니는 '라담'(radam)에서 유래하였다.

이것은 아담이 자연적인 수면 상태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주도적인 역사로 말미암아 초자연적인 깊은 수면 빠졌음을 말한다.(창세15,12 ; 욥기4,13)

 

한편 '하시어' 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얍펠'(yapphel)은 '빠지다'(탈출21,33), '떨어지다'(레위11,38)등의 뜻이 있는 '나팔'(naphal)의 사역형이다. 이런 표현 역시 당시 아담이 자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주도적인 역사에 의해서 깊은 잠에 빠지게 되었음을 강조하는 말이다.

 

"주 하느님께서 사람에게서 빼내신 갈빗대로 여자를 지으시고,  그를 사람에게 데려오시자, 사람이 이렇게 부르짖었다." (22)

 

'사람에게서 빼내신 갈빗대로' 에서 '갈빗대'(tsella ;첼라) 앞에 정관사 '하'(ha)가 연결된 것은 여자를 만든 갈빗대가 앞절에서 밝힌 아담에게서 취한 바로 그 갈빗대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처럼 여자와 남자가 본래 분리할 수 없는 한몸이었지만, 하느님께서 그 일부를 취하여 여자를 만드심으로서 비로소 남녀 양성(兩性)이 생겨난 것이다.

이러한 창조 방법은 다른 동물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독특한 것이다.

즉 하느님께서 다른 동물은 암수함께 여러 쌍을 동시에 창조하셨으나, 사람만큼은 한 남자 아담을 먼저 창조하시고  그 갈빗대를 취하여 한 여자 하와를 창조하셔서 그 배필이 되게 하신 것이다.(1티모2,13)

 

그러므로 동물은 그 특성에 따라 수컷 한 마리가 여러 암컷을  거느릴 수도 있고, 때로 짝짓기 대상을 바꾸며 교미가 끝나면 암수 각자 살아가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한 남자가 꼭 한 여자만을 배필로 삼아야 하며, 본래 한 몸으로 죽음이 갈라 놓기까지 결코 헤어져서는 안되는 것이다.(마르코10,9) 이처럼 혼인제도는 인간의 창조와 동시에 주어진 것이다.

 

'그를 사람에게 데려오시어' 에 해당하는 '와예비에하'(wayebieha)는 직역하면, '그러자 그분이 그녀를 인도하셨다' 이다. 여기서 '그러자' 혹은 '그후에'로 번역할 수 있는 계속적 '와우'(wau)가 사용된 것은 하느님께서 하와를 창조하신 것이 아담에게 데려가기 위함이며, 하와가 창조된 후 즉시 그녀를 아담에게로 데리고 오셨음을  암시한다.

또한 본문은 '인도하다'(민수14,8 ; 신명9,4),'출가하다'(여호15,18 ; 판관1,14) 란 뜻도 지니는 '뽀'(bo)의 사역형이 사용되어, 하와를 창조하신 하느님께서 그녀를 친히 아담에게 인도하셨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맺어지는 것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시고 친히 결합시키셨다. 이 시대에도 혼인은 단순히 인간의 일생에 있어서 중요한 일로 취급될 정도가 아니라 실로 하느님의 섭리에 따라  삼위일체와 천국의 모형이라고 할 수 있으며, 사회의 가장 기초적인 세포 단위요, 작은 교회인 가정의 초석을 놓는 신성한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야말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 불리리라." (23)

 

원어 성경에는 '이것을'(이야말로)로 번역되는 지시 대명사 '조트'(zoth) 3번 반복된다. 본문에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을 가리키는 '이는' 과 '남자에게서 나왔으니'에 결합된 '이것을', 그리고 '여자가 불리리라'와 결합된 '이것을' 이 있다.

이 3개의 단어는 모두 여성형 단수 지시 대명사인데, 이처럼 동일한 단어가 3번이나 반복된 것은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한 여성 하와를 보는 아담의 기쁨이 너무나 컸음을 잘 보여준다.

 

한편, '뼈'(에쳄; etsem)'살'(빠사르; basar)몸 전체 대표하는 단어이다. 따라서 '뼈'(에쳄)도 '몸'(애가4,7)으로 번역된 적이 있고,'살'(빠사르) 역시 '몸'(창세2,24; 탈출30,32; 레위14,9)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이처럼 몸을 가리키는 두 단어를 동시에 사용할 뿐만 아니라 또한 각 단어를 반복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은 자신을 향해 나아오고 있는 하와를 본 당시 아담의 기쁘고 감격적인 심정을 매우 잘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반복은 히브리어에서 자주 사용되는 중언법(重言法)으로, 이것은 독자들로 하여금 생동감을 느끼며, 마치 현장에서 이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한다.

 

또한 '뼈중의 뼈', '살중의 살' 이라는 표현은 '뼈중에 가장 소중한 뼈', '살중에 가장 소중한 살' 이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본문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소중한 혈육이란 뜻이다.

실로 아내는 남편에게 있어 하느님께서 특별히 주신 선물로서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소중한 존재이며, 남편 역시 아내에게 있어 내밀한 사랑을 나누어야 할 유일한 존재이다.

 

한편 지금까지 사람을 가리킬 때는 '아담'(adam)이란 단어만 쓰였다.(창세1,26; 2,5.15) 그러나 창세기 2장 22절에서 '여자'(ishah; 잇샤)란 단어가 처음 나오고, 본절에서는 '남자'(ish; 이쉬)란 단어가 처음 나오며, 더불어 '여자'(잇샤)란 단어의 어원까지 설명되어 있다.

'남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이쉬'는 성경에서 2183회나 사용되며, 본문처럼 주로 '여성'과 대비되는 '남성'을 가리킬때 사용된다. 이 단어의 정확한 어원은 알 수 없으나 '강함' 이란 뜻을 지녔을 것으로 추측한다.

 또한 '여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잇샤'는 본문이 밝히고 있는대로, '남자'를 의미하는 '이쉬'에서 나온것이 분명하다. 성경에서 781회 가량 나오는데, 대부분 남성과 대비되는 여성을 가리키는데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   (24)

 

여기서 '떠나다'(아자브; azab)'남겨두다'(판돤2,21), '끊다'(창세24,27), '짐을 부리다'(탈출23,5)란 뜻으로, 원래 속했던 집단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떠나가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결합하여'(따바크; dabaq)'붙좇다'(룻기1,14), '속하다'(예레13,11)는 뜻도 있는데, 밀접한 연관을 가지며 상호 완전한 소속감을 가지는 것을 말한다. 끝으로 '된다'(이루다;하야 ; hayah)'~이다' , '~이 되다'(창세1,3 ; 17 ,4 ;1 8,18 ; 32,11)는 뜻을 지녔다.

 

본문에서 '떠나다'는 미완료형으로, '결합하여', '된다' 는 완료형으로 사용되었다. 이처럼 '떠나다'는 단어가 미완료형으로 쓰였다는 사실은 혼인이 지금까지 부모에게 속해있던 상태에서 떠나는 것이기는 하나, 가족으로부터 완전히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육체적, 인격적으로 책임있는 존재로서, 독립된 존재로 탈바꿈하는 것을 뜻함을 암시한다.

반면, '결합하여' 와 '된다'(이루다)완료형으로 쓰인 것은, 혼인이 남녀가 단지 육체적, 형식적 결합이 아니라 상호간에 붙좇고 속하여 하나가 되는 경지에 이르러야 함을 보여준다.(마태19,6)

 

이러한 원리에 의해 이루어지는 혼인은 혼인 그 자체로서는 고귀한 가치를 지닌다. 그러나 이것은 동시에 그리스도의 성혈로 다시 태어나 그리스도의 신부로 비유된 성도가 신랑으로 비유된 예수님어떤 원리로 결합하여 일체과 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실로 큰 의의를 지닌다.(에페5,31.32)

 

 

 

하느님께서는, 창조하신 동물과 새들이 아담에게 걸맞은 협력자가 되기에 부족하므로, 혼자 있지 않고 함께 동반할 사람으로 하와를 만들어 주십니다. 성경은 하와가 아담의 갈빗대에서 만들어졌다고 설명합니다. 아담은 하와를 보고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하고 외칩니다.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는 구절은 고대의 관습을 반영합니다. 그러나 유다인의 관습은 여자가 부모의 집을 떠나 남편의 가문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혼인은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남녀의 결합’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모세가 이혼장을 써 주라고 한 것이라며, 이혼은 하느님의 창조 목적에 어긋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정당한 혼인의 결합은 사람이 풀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자가 남자의 소유물로 인식되던 시대에 창조주께서 의도하신 남자와 여자의 동등성을 복구시키고자 하십니다. 남녀 모두 같은 살과 뼈를 가지고 있으며 하느님의 모습을 따라 창조된 인격체임을 강조하십니다. 구약 시대에 용인되었던 일부다처제는 인간의 욕망과 권력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메시아께서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하느님의 근본 질서를 회복시키고 계십니다.
남자와 여자의 평등성은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합니다. 부부가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자세는 행복한 가정의 비결입니다. 배우자의 약점을 덮어 주고 차이점을 존중하는 태도는 자녀들에게 인격적인 사랑을 배우게 하는 원천이 됩니다.

(류한영 베드로 신부)

 

 

<혼인과 이혼>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마르 10,9)."

 

혼인과 이혼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분명합니다.

혼인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고, 이혼은 하느님께서 하신 그 일과그 일에 관한 하느님의 의지를 거스르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십계명과 율법이라는 법률의 해석과 적용에 관한 문제가 아니고, '하느님의 은총'에 관한 문제입니다.

혼인은 십계명보다 상위에 있는 '하느님의 창조 질서'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인간 사회의 제도나 법률이나 관습보다 위에 있는 '신앙'에 관한 문제로 생각해야 합니다.

 

하느님을 안 믿는 사람들도 흔히 배우자에게 (또는 배우자가 될 사람에게) 사랑을 고백할 때 '당신은 신이 나에게 주신 선물이다.' 같은 표현을 사용하는데,

나중에 마음이 변해서 이혼하게 된다면 신이 주신 선물이라는 자기의 고백을 번복하는 일이 됩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혼은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을 스스로 거부하는 일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문제에 관해서 '시대가 변했는데도 교회는 변하지 않고 너무 보수적이다.' 라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그런 비판은 종교와 신앙을 인간의 일로만 생각하는 사고방식에서 나온 비판이기 때문에 잘못된 비판입니다.

 

우리는 '영원히 살아 계시는 하느님'을 믿고 있고, 변함이 없으신 분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도 변함이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그 하느님을 믿는 신앙에도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혼인을 인간의 제도라고만 생각하면 시대의 변화에 맞춰야 하겠지만, '하느님의 일'이라고 믿고 있으니 바꿀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 하느님의 뜻을 실현시키는 좋은 쪽으로 시대가 변한 것이 아니라면 교회가 시대의 변화에 맞춰서 함께 변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같은 말이긴 한데, 이혼을 찬성하면 진보적이라고 하고, 반대하면 보수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혼인성사의 은총은 인간의 사상과 이념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믿음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진보나 보수로 분류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원리는 분명한데, 사람들의 실제 상황 속으로 들어가면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라는 바리사이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버려도 되는가?' 라는 질문에 답변하신 것뿐입니다.

그러니 '버림받은 사람'의 처지에 대해서는 따로 생각해야 합니다.

(일방적으로 당한 것이 아니고 합의 이혼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혼하면 안 된다.' 라는 말만 녹음기처럼 반복하는 것으로 그칠 수 없는 것이

인간 세상의 현실입니다. 이미 이혼을 했거나 당해서 아픔 속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가 교회와 사목자들의 숙제입니다.

병에 걸리기 전에 건강관리를 잘하라고 강조하는 일이 중요하지만, 이미 병에 걸린 사람은 우선 먼저 치료부터 해주는 것이 당연합니다. 병자를 앞에 두고 왜 병에 걸렸느냐고 비난만 하면서 치료를 안 한다면, 그것은 병자를 위한 태도가 아닙니다.


죄를 짓지 말라고 가르치는 일이 중요하지만, 이미 죄를 지었거나 죄 속에 있는 사람은 어떻게 할 것인가? 

단 한 사람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구원하려고 노력하신 예수님입니다.

예방도 중요하고, 치료도 중요합니다.

사실 교회는 건강한 사람들만의 공동체도 아니고, 성인들(의인들)만의 공동체도 아닙니다. 죄인이지만 성인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이 맺어 주신 것을 갈라놓은 사람'도 버리지 않으실 것이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지금 이런저런 아픔 속에 있는 사람도 스스로 신앙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어떤 식으로든 해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라고 교회가 있고, 공동체가 있는 것입니다.

(십계명과 교회법은 처벌을 위한 법이 아니라 구원을 위한 법입니다.)

'잃은 양 한 마리의 비유'는 지금 이혼의 아픔 속에 있는 사람들, 조당이라는 것에 묶여 있는 사람들에게 더 잘 들어맞는 비유입니다.

지금 누군가가 아파한다면, 예수님도 그 사람 때문에 아파하실 것입니다.

 ~ 송영진 모세 신부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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